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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학교 (4/341)

학교

일사천리라더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좀 빠른 것 같은데.

싱글벙글한 사제 아저씨가 심각해진 얼굴이 된 채 저택을 떠나고 삼 일 후, 내 입학은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다시피 결정되었다.

다만 문제는···.

“육군학교라니, 그거.. 그래도 군대 아닌가..?”

왜? 아니 어떻게 하면 대학교를 가고 싶다는 게 군대로 바뀔 수 가 있지?

난 ‘불세출의 천재’가 되고 싶은 거지, ‘불세출의 뺑이’를 치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다!

이미 뺑이라면 굳건이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질리도록 치고 왔거든, 더 이상은 사양이다.

한 인생에 군대 두 번이라니, 내가 댄스가수도 아니고 말이야.

그것보다, 내가 군인이 되면 피에르와 조르주의 뒤룩뒤룩 살찐 엉덩이를 걷어찰 수가 없게 되는 것 아닌가.

군인이 민간인을 패? 와 이거 완전 군법회의에 총살감이지.

내 머릿속에는 군사법정에서 헌병대에게 질질 끌려 나가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결국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다음 날, 내 고민은 그 싱글벙글 사제 아저씨가 다시 찾아옴으로써 사그라졌다.

내 고민을 들은 사제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기욤 군! 군인이 되라고 보내는 게 아니네. 자네가 고등교육기관에 알맞은 나이가 될 때까지 훌륭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고자 보내는 것이네.

“그..그렇군요. 사려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자네 같은 인재가 군문에 들어섰다가 혹여 전쟁터에서 죽는다면 우리 프랑스에게 얼마나 큰 손해겠는가? 걱정하지 말게!”

“아..예..”

비유 한 번 살벌하네. 18세기의 프랑스 대체 뭐지.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인외마경 그런 건가?

아, 그러고 보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 있는 국가끼리 한 번씩 치고받았다고 했다.

내가 1771년생이니까, 대략 8년 전만 해도 총성이 울리던 시대란 말이지.

음, 이해했다. 아아아주 폭력적인 시대구만. 내 머리카락이 충격을 먹고 아주 쭈뼛쭈뼛해지고 있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사제는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 하느님. 이 어린 양이 별 탈 없이 무사히 파리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소서.”

설마 이 아저씨 내가 닭살 돋은 게 살벌한 자기 말 때문이 아니라, 혼자 파리까지 갈 생각에 긴장한 걸로 보인거야? 와따 마 프랑스 진짜 살벌하구마잉...

그리고 이어지는 사제의 말에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던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음.. 하느님의 종으로서 어찌 이 아이를 홀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는가?

난생 처음 부모와 떨어져 홀로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니 두렵기도 하겠네만, 걱정하지 말게! 파리에 있는 자네 하숙집까지 하느님의 종인 나, 세르주가 자네와 동행할 테니 말이네!”

예? 아니 아저씨가 왜 나랑 같이 가요? 어깨동무는 왜 하죠?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내 정신은 그저 아득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마차에 타기 전, 주머니에서 요상한 병을 꺼내, 내용물을 조금씩 눈에 흘려 넣는 세르주 주교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

“우욱. 우웨에엑.”

“으하하하. 기욤 군, 이렇게 길게 마차를 타본 건 처음인가보군?”

“살..살려주세요.”

“어허, 이게 다 자네가 선택한 학교로 가는 길 아닌가? 그곳에선 아무도 자네를 봐주지 않네. 지금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는 법을 익히시게나.”

“구아아아악!”

내가 연신 마차에 달린 창문 밖으로 아침으로 먹은 메뉴를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와중에도 우리의 세르주 주교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말하는 것 좀 봐. 사실 저 양반, 직업이 사제가 아니라 해병대인거 아냐?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이 덜컹거리는 마차를 어떻게 저리 편안한 것처럼 타고 가는 건지 모르겠네.

18세기의 도로, 그것도 나라의 중심인 수도도 아닌 지방의 도로는 21세기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 때 처참했다.

아니 매우매우매우매우 처참했다.

아니 세상에 막말로 5미터 갈 때마다 주먹만한 자갈에 마차 바퀴가 위아래로 요동치는 걸 어떻게 도로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 양반 진짜 멀미약이라도 먹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 시대에 멀미약이 어디 있어.

“주교님은···. 매우 편해 보이시네요. 우욱”

“하하. 사제라는 특성 상.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게 일상이어서 그렇다네.

주교라는 직책을 얻기 전까지는 여러 도시를 전전하곤 했네. 고향이나 살던 곳에서 서품을 받은 사제는 보통 그 지역에서 계속 지내지만, 대학에서 서품을 받은 사제는 총주교님의 명 아래 여러 곳에 부임하기 때문이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세르주는 이 수상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도로에 완벽하게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주교님. 혹시···.”

“응? 무언가 물어볼 것이라도 있는가?”

“주교님만의 멀미를 낫게 하는 팁 같은 건 없나요..?”

“하하. 나한테도 그런 건 없다네!”

나는 가뜩이나 프랑스 남쪽 끝에서 북쪽 끝 파리로 가는 먼 길이, 이 심각한 수준의 도로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정신은 다시 또 아득해지고 말았다.

***

주교직을 받고 게헨느에 온 날부터 이번 여행 전까지, 세르주가 게헨느를 나선 일은 전부 일 때문이었다. 성직자회의, 정기총회, 기타 잡일 등등.

단 한 번도 편한 마음으로 게헨느를 나서본 적이 없었다. 세르주는 지루함을 잊기 위해 아무도 안 보는 예배실에서 혼자 외롭게 숨바꼭질을 하여도 바쁜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사람이다.

드는 것은 노력이오, 가져오는 것은 피곤에 찌든 몸뿐이었으니 이 세상 누가 출장을 좋아하겠는가?

때문에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시작한 세르주는 매우 들떠있었다.

마차 창문 밖으로 내민 손을 가을의 푸근한 햇살과 바람이 상냥하게 훑고 지나가는 것부터, 거의 1년 만에 보는 추수철의 황금빛 벌판은 짐짓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게헨느의 농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포도밭도 탐스러운 보랏빛 빛을 뽐내지만 사람의 식생활의 근본에 해당하는 밀의 황금빛 이야말로 자연이 내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색이 아닐까.

여유로움에 몸을 맡긴 세르주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웨엑. 우웩”

옆의 13살짜리 꼬마는 별로 여유롭지 못한가보다.

“주교님... 저 정신 나갈 것 같아요. 나 정신 나갈 것 같애. 우웨엑”

“이잉... 기욤 군, 젊을 때 고생도 해보는 거라네. 나약하게 굴지 말게나. 에헴.”

사실 세르주는 멀미가 심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멀쩡하냐고? 바로 세르주의 필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멀미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욘석. 하하하. 저번 여행에서 쓰고 남은 벨라도나가 좀 있어서 다행이군.’

아트로파 벨라도나. 아름다운 숙녀의 꽃, 그리고 암살자와 마녀와 악마의 풀.

즉, 독초다.

얼마나 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남자가 이 잔혹한 독의 희생자가 되었던가. 얼마나 많은 마녀가 이것으로 악마를 불러냈을까.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뭐야! 그 꽃 당장 태우지 못해!’라고 말하겠지.

그러나 모든 만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유가 있는 법.

적정량을 희석해서 사용한다면, 이 독초는 사람을 죽이는 악마 루시퍼가 아니라 멀미라는 악마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수호천사 미카엘이 되는 것이다.

그는 문득 이 팁을 전수해준 자신의 선배 사제가 생각났다.

- 우웨엑. 형제님.. 형제님은 대체 어떻게 멀쩡하신 겁니까?

- 어허. 이게 다 네 믿음이 부족한 것 아니겠느냐? 쯧쯧.

- 삼 일 전까지만 해도 같이 위장을 비워내던 분이 갑자기 멀쩡해지셨는데, 그러면 삼 일 전의 형제님은 불신자였단 말입니까?

- 뭐? 이 맹랑한 짜식이. 말해주려고 했는데 없던 일로 해야겠다.

- 자꾸 그러시면 형제님이 학교 옆 카페 종업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떠벌리고 다닐 겁니다.

- 야!!! 그건 반칙이지!

- 그러면 어서 비법을 내놓으란 말입니다. 으하핫!

단골 카페 종업원과 모종의 관계를 맺던 선배는 우연히 어느 날, 자신의 여자 친구와 키스한 이후에는 멀미가 이상하리만치 안 나던 걸 발견했고.

나름대로의 입증 끝에 여자친구가 눈에 넣던 이 벨라도나 희석액이 멀미를 멈추는 걸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원만한 해결 끝에 알아낸 선배의 ‘비법’덕에 세르주는 그 많던 출장의 나날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기욤 군에게는 미안하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저도 스물다섯에 서품을 받고 난 뒤 알게 되었으니 기욤 군에게도 그때 알려드리죠.’

세르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소년은 멀미약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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