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프롤로그 (1/341)

프롤로그

“씨발”

나는 반 까치 정도 태운 담배를 마지막으로 끝까지 빨아들이며 낮게 읊조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을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신이 있다면 나에게 이따구 시련을 준 것인가.

평범하게 그렇지만 남들보다는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이름 있는 학교를 갔다.

먹고 살려고 원하던 전공 대신 상경계열을 전공했다.

교우관계도 다른 사람에게 믿을만한 사람, 마음 씀씀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정도는 됐다.

휴일에 집에 누워서 시뮬레이션 게임 줄창 돌리면서

‘간디 씹새끼가 왜 우리 집에 핵폭탄을 날리고 지랄이야!’ 하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았다.

공돌이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같이 사업을 했다가 말아먹었다.

“씨발 이거네”

아이템은 좋았다.

시중에 널려있는 아이디어도 아니었고, 실현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성공하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샘셩은 절대 아니지만 나름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살아남을 만 했고.

나는 좀 굴러도 내 가족은 떵떵거리면서 남들에게 괄시 안 받고 살 만큼은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왜 망했냐고?

“대기업이나 되는 새끼들이 코 묻은 푼돈 좀 만져보겠다고 별 짓을 다하는구만.”

그 놈들과 시작은 좋았다.

- 혹시 임기찬 사장님 맞으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젊고 유망한 기업가 분은 뵙기가 힘들죠!

- 아이템도 그렇고 사업 구성도 그렇고 굉장히 맘에 드는데요? 그렇지만 여기 이 유통망 부분에서 벤처가 맡기에는 힘든 부분이 보이긴 하네요.

- 흠···. 임 사장님. 혹시 우리 회사와 협업 한 번 해보는 거 어떻습니까? 미진한 유통 부분은 우리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업부에는 터치 안 할테니 사업은 임 사장님 마음 가는대로 하십시오!

경영의 제 1원칙. ‘내가 ㅈ도 모르는 분야에는 적임자를 앉힌다.’

회계나 세무는 알아도 유통은 깜깜한 나는 그 제안을 덜컥 받아버렸던 것이다.

- 아이고~ 저희 같은 구멍가게가 선생님들 같은 대기업과 함께라면 천군만마나 다름없죠! 유통은 저희가 해결하기가 힘들었던 분야인데 이렇게 도와주신다면 안 받을 수가 없네요!

“씨발 받지 말걸.”

다 태워서 이제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난간 밖으로 있는 힘껏 던지며 나는 다시 낮게 읊조렸다.

- 음···. 기찬 씨? 저희가 유통을 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사업 쪽에도 비효율적인 부분이 좀 있더라구요. 혹시 ‘조언’을 좀 해드려도 될까요?

- 보다보니까 마케팅 쪽도 힘든 것 같던데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직원 교육이 미흡한 것 같네요. 저희가 한 번 맡아봐도 될까요?

경영의 제 2원칙. ‘효율성을 최대로.’

23살의 꼬꼬마 벤처 사장은 학교 수업에서 배운 대로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이것도 덜컥 받아버렸다.

- 기찬 씨. 혹시 어디 대학 나왔어요? 아 거기요? 나쁘지 않죠. 저요? 하하하저는 ‘연려대’ 나와서요. 어쩐지 손이 좀 많이 간다 싶네요. 하하.

- 하···. 기찬 씨? 사업 구상이 애초부터 글러먹었잖아요. 이런 식으로 해서 파이를 어떻게 뽑아 먹겠다는 겁니까?

- 사업도 구상 다 됐고, 유통도 다 짜졌는데 왜 시작을 하면 안되냐구요? 아하하 우리 기찬 씨가 학교에만 있다 나와서 잘 모르나 본데 원래 다 때가 있는 겁니다. 원래 사업은 자본금 까먹으면서 시작하는 거에요!

경영의 제 3원칙은 지랄시발쌈싸먹을개새끼들.

꼬꼬마 공대생 공돌이와 꼬꼬마 상경대 문돌이로 구성된 23살 듀오가 안 입는 팬티까지 팔아 만든 1억 원의 자본금은 대기업의 시간 끌기에 의해 수개월 만에 공중으로 사라졌다.

- 예? 자본금이 다 떨어져요? 하 참 진짜. 그래서 뭐. 우리한테 금전적으로 지원해 달라 뭐 이겁니까?

- 그···. 기찬 씨. 아니 우리 좀 오래 봤으니까 기찬이라고 할게.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괜찮지? 응 그래. 이봐, 기찬이. 그건 우리도 해결 못해줘.

우리가 기찬이 너한테 뭘 못해줬냐? 유통망 확보해줬지, 사업 구상도 체계적으로 만들어줬지, 직원들 기본 교육도 시켰지···. 여기에서 돈까지 바라면 아주 그냥 개새끼지 개새끼. 아 기찬이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렇게 우리가 만들고 계획한 모든 것은 물에 젖은 종이처럼 흐물흐물해지고 결국에는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기찬아 미안하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다. 진짜 내가 병신이다. 내가 너무 병신처럼 순진했다.’

‘따흐흑 기찬아!’

‘으헝헝 친구야!’

다시 생각해도 좀 추하긴 하네. 사람 잔뜩 모인 대학가 술집에서 남정네 둘이 부둥켜안고 뭐하는 짓이람. 에이잉.

“좀 소년만화 같긴 하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난 이미 바보가 되버린걸~. 아 실패의 부작용이 너무 심했나? 머리에서 스뽄지밥이 기타 들고 뚱띵띵땅하는 걸 보니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투자자’님께서는 조져진 우리 사업을 가여운 마음으로 여기사 우리 쪼꼬미 기업을 단돈 5천만원 반값특가로 인수해 가셨다.

2500만원 손해야 뭐···. 1년에 1000만원 씩 갚는다고 치고 알바를 존나게 뛰면 어떻게든 30살 이전에 갚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마음이 차분해진다. 당면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설계하는 거야 말로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큰소리 땅땅 쳤는데.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분노와 절망에 불타던 머리가 식으니까 가족이 생각나네.

사업은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던 우리 엄마, 이미 몇 번 해먹은 전력이 있어서 실패도 경험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엄마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호적에서 파이는 것 아닌가?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은 한번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어릴 적 들었던 학창 시절의 엄마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셨다고 했다.

그 무슨 만화? 베르사유의 딸기꽃인지 장미인지 그걸 보고 그랬다는데.

내가 그것까지 알바는 아니고, 난 그저 엄마가 그렇게 동경하던 프랑스로 한번 쯤은 돈 걱정 안하고 맘 편히 갔다 왔으면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돈’ 걱정이 없이 가는 건 이제 좀 불가능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답배갑에 손을 넣어 마지막 남은 담배 한 대를 꺼냈다.

더운 여름, 담배에 불을 댕기는 것도 영 곤혹스러웠지만 그것을 덥다고 불평하기에는 이미 머릿속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곧 온다던 태풍 덕인가 그나마 바람이 불어줘서 후끈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버틸 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 돛대인데 아씨···.”

그 바람 덕에 날아간 담배, 그것도 장초이자 돛대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난간 뒤 10센티 남짓한 공간에 사뿐히 착지해주셨다.

아아아주 고맙다아. 애초에 안 날아갔으면 더 고마웠을 텐데 말이지.

담배가 굴러간 공간은 아주 절묘해서 손을 쓰기에는 1 티모미터정도 멀었고, 난간을 올라가서 넘어가기에는 조금 위험했다.

물론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한강다리 위에서 난간을 넘는다는 생각을 ‘조금’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난 혈기왕성한 낭랑 23세 사업 조진 벤처기업 사장인걸?

게다가 저건 돛대다! 돈 주고도 못사는 돛대! 어서 저 친구를 앰뷸런스로 구조해서 심폐소생술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리고 내가 난간을 넘어 돛대를 집은 순간.

“아니 씨발”

내 담배를 날린 돌풍님이 또 불어 닥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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