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짚신도 짝이 있네
나처럼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노리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스위스의 또 다른 금융 기업이자 세계 투자은행 6위인 UBS.
2020년부터 크레디트스위스와 합병설이 돌았던 곳이다.
“스위스 금융 규제 당국과 주말 동안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쪽에서는 UBS보다 저희 측의 인수를 원하더군요.”
제이슨을 곧바로 스위스로 보내 인수를 타진했는데.
규제 당국의 생각은 UBS보다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고 한다.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모두 스위스의 은행인 만큼 합병 시 여러 시너지를 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스위스 진출을 더욱 환영하는 것.
‘그간 스위스하고는 쭉 연이 없었으니까.’
유럽 곳곳에 지어진 SCP의 데이터 센터.
적게는 수십억 달러부터 많게는 수백억 달러만큼의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며 그간의 나는 유럽의 여러 국가와 호의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그중 스위스는 쭉 예외에 놓여 있었다.
스위스에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건 비용적인 측면에서 큰 손해가 따랐기 때문.
‘와트당 11달러였나?’
스위스 취리히에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데에 드는 비용.
세계에서 데이터 센터 건설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곳이 스위스였다.
그다음 순위이자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뉴저지나 실리콘밸리가 와트당 9.5달러가량의 비용이 드는 걸 감안하면, 그동안 SCP가 스위스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던 게 왠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인수에 필요한 비용은 20억 달러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스위스 금융당국과 인수를 타진하는 사이, 크레디트스위스의 시총은 또 떨어져 어제자 장 마감 시간 기준으로 약 80억 달러.
예상되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손실은 50억 달러였으니 적절한 금액이다.
여기에 스위스 연방 정부가 우리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우발채무가 나오면 90억 달러까지 보증해 주겠다는 조건이 붙었고.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최대 1,100억 달러 정도의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음… 뒤에 것들은 사실 그렇게 필요하지 않겠지만.’
괜히 하는 생각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은행업 진출 소식이다.
크레디트스위스가 파산할까 무서워 인출런을 달렸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추가적인 고객 확보도 가능할 거다.
몇 년 전 그나마 크레디트스위스의 상태가 괜찮았던 때 기준 크레디트스위스의 관리 대상 자산 규모는 1조 5천억 달러.
그 배는 되는 규모의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오너가 되는 거였으니 말이다.
스위스 은행들이 10년도 더 전에 잃어버린 타이틀 ‘가장 안전한 은행’, 그걸 되찾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스위스 정부와 한 번 더 긴급 논의를 해 주세요. 예상 손실의 절반 정도를 탕감 가능할지에 대해서요. 대신…….”
안 그래도 최근 인공지능과 관련해 오픈 AI에서 스위스에 투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모교인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로잔연방공과대 등 스위스는 AI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과 연구 기관의 중심지이기도 했기 때문.
괜히 스위스가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 수가 세계 1위가 아니듯,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 그 다음가는 수준에 놓여 있는 것.
이걸 크레디트스위스 인수와 관련해 협상 카드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글도 스위스 취리히에 구글 캠퍼스를 두고 있지.’
이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오픈 AI가 있었으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AI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는 지금, 조금 더 본격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
[오픈 AI, 스위스에 신규 인공지능 센터 설립 발표. 10년간 100억 달러 규모 투자 예정.]
[인공지능 강국, 스위스. 선우진과 손 잡나.]
[크레디트스위스 매각 임박? 스위스 정부 선우진 측과 협상 진행 중?]
[“금융허브 뺏길라” 절박한 스위스 시총 절반도 안 되는 인수가로 선우진 끌어들여.]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스웜폰, 아이폰 턱 끝까지 따라와… 북미 신모델 판매량 벌써 아이폰의 70% 수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 10종, 스웜 롤러블과 폴더블은 각각 3위와 5위 차지… 스웜폰 1은 반년 만에 9위 랭크돼.]
그사이 가장 큰 성장을 거둔 곳이라면 단연 스웜폰.
롤러블과 폴더블뿐만 아니라, 새롭게 출시한 스웜폰 라인업도 첫 모델부터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의 판매량이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는데.
[월급 고스란히 갖다 바친다… 이제는 아이폰 사랑이 아니라 스웜폰 사랑?]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궈차오) 뚫고 점유율 1위 향해 나아가는 스웜폰.]
기존의 애플 사랑이 스웜폰 사랑으로 바뀐 거라는 평.
스웜폰 1의 출시 이후 中서 17주 연속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제이슨: 스웜 테크를 향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제이슨: 이대로라면 2조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현재 2조 달러 이상의 시총을 지닌 기업은 전 세계에 두 곳뿐이다.
세계 최초로 장중 3조 달러를 넘었다가 결국 종가 기준으로는 끝내 달성하지 못한 애플은 스웜폰의 약진 탓에 지금은 2조 2천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 시총 1위에 랭크되어 있는 애플.
그다음은 사우디의 아람코가 2조 100억 달러로 2조 달러를 아주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3, 4위인 알파벳(구글)과 MS는 1조 2천억 달러 수준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고.
‘스웜 테크가 IPO 절차를 밟으면… 최소 전 세계 3위 스타트인 거네.’
물론 여기에는 내 이름값, 일명 선우진 뽕이 존재한다.
내가 인수한 이후 엄청나게 뛰어 버리며 1조 달러 가까이 갔다가 지금은 조금 떨어져 8천억 달러 시총인 테슬라.
그리고 6천억 달러 시총의 스웜 모터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부분.
실제로 지금 두 회사의 매출과 수익 구조로는 현재의 주가 수준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도 지금의 테슬라와 스웜 모터스에는 버블이 껴 있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었다.
‘뭐… 그러면서도 내가 오너라는 이유로 매수를 추천하고 있지만.’
한때 테슬라가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에 대한 환상과 함께 ‘머스크 빨’로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 줬던 것과 비슷한 거다.
물론 머스크와 나 사이에는 꽤나 큰 차이가 존재했으니,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의 환상이 걷힌 지금에도 테슬라와 스웜 모터스가 저만한 시총을 지닌 기업이 된 거겠지만.
‘그래도 스웜 테크는 사정이 조금 낫지. 실제로 탄탄한 실적이 뒷받침해 주고 있으니까.’
스웜 모터스의 상장 당시, 스웜 모터스는 기껏해야 사전 예약이 시장의 눈높이를 웃돌았던 게 전부인 전망 좋은 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웜 테크는 얘기가 조금 달랐는데.
스웜 테크에 포함될 사업체 중 주요한 것들은 SCP, 스웜폰, 스워밍, 스웜 스토어 그리고 조만간 출시될 예정인 자체 OS.
이중 SCP는 어느새 아마존 AWS와 비슷한 클라우드 세계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고, 스웜폰의 실적 상승세 또한 놀라운 수준이었다.
스워밍과 스웜 스토어의 매출 또한 전 분기 대비 30~40% 수준의 증가세를 보이며 급성장하고 있었고.
‘기업 공개와 함께 2조 달러… 지금의 상승세를 몇 년만 더 보여 준다면 3조 달러를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세 달 뒤에 예정되어 있는 스웜 테크의 IPO.
괜한 자신감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세계 1위 부자 소리 말고도, 세계 1위 기업의 주인 소리도 듣게 되는 건데…….
‘딱히 엄청 만족스럽지는 않네.’
1위 하나 가지고 내 욕심을 전부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스웜 모터스와 스웜 테크, 스웜 캐피탈, 스웜 엔터까지.
내가 차차 기업 공개를 할 곳은 이렇게 총 네 곳인데.
그러면 1위부터 4위까지는 모두 차지해야 그나마 만족이 되지 않으려나.
우우웅-
“여보세요.”
그러던 그때 받게 된 국제전화 한 통.
한국에 계신 엄마의 전화였다.
[우진아, 너 조만간 한국 들어와야겠다.]
“나? 안 그래도 다음 주에 들어가긴 하는데. 뭔 일 있어?”
순간 부모님께 큰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지만.
이어진 엄마의 말을 듣고 그나마 안심이 됐다.
[일? 일이야 있지. 어휴, 네 누나가 사고 쳤다, 사고.]
왠지 모르게 누나를 타박하는 듯한 어조.
…교통사고라도 낸 건가 했지만, 아니었다.
“…사고는 진짜 사고네. 하긴 뭐 그럴 나이가 되긴 했지.”
* * *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로 일하고 있는 최준호는 처음으로 살인 사건 피의자를 심문할 때보다 더욱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
가슴이 쿵쾅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느낌.
“처, 처음 뵙겠습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짐작하고 있기는 했다.
그의 연인이자 같은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는 선아영 변호사의 집안이 보통 집안이 아니라는걸.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동안 공부밖에 몰랐던 그였기에 잘은 몰랐지만 사귄 지 1년이 넘고나서부터였나.
이제는 숨기기 힘들다며 그녀가 몰고 다니던 차가 국산 소형차에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웬 외제차로 바뀐 순간.
외모만으로도 자기에게는 한참이나 과분하다 생각했던 연인이 재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나도 나름 영감님 소리 듣는 사람이라 괜찮다 생각했는데…….’
물론 철 지난 호칭이라 지금은 최 프로 등으로 불리지만, 어쨌든.
그래도 자기가 어디 가서 꿀리는 신랑감은 아니라 생각했던 최준호였다.
하지만 보통 집안이 아닌 걸 넘어서, 이 정도일 줄이야…….
“아이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매형 되실 분인데.”
“아, 네! 아니… 어. 어, 그래.”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고, 그다음에는 제 연인이 농담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네. 편하게 우진이라 불러 주세요. 제가 형 없이 누나만 있다 보니 형을 갖고 싶었는데… 하하.”
선우진.
그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평소 TV를 하나도 보지 않아 댈 수 있는 연예인 이름도 몇 안 되는 그마저도 선우진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의 처남이 된다니.
“매형,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런 그가 자신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니.
도저히 적응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아뇨, 아뇨. 당치도 않… 아니, 아니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사과의 이유는 이러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라는, 검사로서의 탄탄대로를 밟아 가고 있는 그.
심지어 서울대를 나와 서울대 로스쿨이라는 학벌까지 받쳐 주고 있는 그였다.
검찰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라인을 붙잡아 승진 1순위로 뽑히고 있었고.
“음. 아무래도 검사 처남이… 아니, 우진이 네 매형이 검찰에 있다는 건 그림이 좀 그렇겠지.”
문제는 그런 그가 이제는 선우진의 매형이 되게 생겼다는 것.
선우진이라면야 기껏해야 일개 검사 나부랭이인 매형의 도움을 받을 게 아니라 당장 검찰총장과 독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위에서 꼬투리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했던 것이다.
그 탓에 그가 제 연인과 얘기 끝에 내린 결정이 결혼과 동시에 검찰을 나와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
“대신! 제가 매형이 검사 생활 그만두신 거 후회하실 일 절대 없도록 할 게요. 아, 그리고 곧 태어날 조카가 딸이라죠? 제가 그 조카한테도…….”
물론, 최준호는 자신의 검사 생활이 끝나는 것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