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내가 제일 잘나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얗게 불태웠어.”
밤을 새워 가며 <라스트 에이지>를 플레이 하기를 어언 한 달.
눈물을 머금고 <라스트 에이지>를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쉬는 동안 게임 말고 신작 집필도 할 생각이었는데…….’
마음만 그랬을 뿐, 정작 글은 하나도 손을 못 댔기 때문.
괜히 개발진들이 <라스트 에이지>에 대해 자신하던 게 아니었다.
평소 집필을 즐기는 나로 하여금 한글 창을 켤 생각을 아예 못 하게 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한국 RPG 마지막 희망? 라스트 에이지 PC방 점유율 15% 넘겨.]
[MMORPG 새 역사 쓰나,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호성적 거두고 있는 라스트 에이지.]
실제로 흥행 반응도 예상했던 것만큼 나오고 있었다.
특히 서구권에서의 인기가 상당했는데.
벌써 경쟁사인 MS 산하 베데스다의 인기작인 엘더스크롤 온라인에 준하는 액티브 유저를 확보했을 정도였다.
최대 동시 접속자 수도 무려 85만 명을 기록.
올해 초 로아가 기록한 스팀 최고 동접 131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라스트 에이지>가 스팀이 아니라 에픽게임즈를 통해 독점으로 퍼블리싱 됐다는 걸 감안하면 꽤나 고무적인 수치였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성장을 거듭했다고는 해도 아직 에픽게임즈와 스팀 간의 격차는 현격하기 때문.
[넷플릭스 주가 폭락, 2분기 가입자 수 1분기에 비해 20만 명 감소…….]
[실적 발표 직후 프리마켓 시간대부터 -25% 찍은 넷플릭스, 결국 –40%로 마무리.]
여하튼.
그 한 달 사이 대폭락한 넷플릭스의 주가.
지난 몇 년간의 상승분을 그대로 반납해 버렸다.
최고점인 650달러 기준 70% 이상이 폭락한 195달러 선까지 붕괴.
스웜에 비하면 그 증가세가 적을지라도 꾸준히 가입자 수를 늘려 온 넷플릭스가 이번에는 11년 만에 가입자가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음. 제이슨, 넷플릭스 인수 계획은 올 스탑 하는 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덕분에 OTT 천하일통 계획은 중단된 상태.
이제는 굳이 넷플릭스를 노릴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저번 폭락 때는 그래도 빠르게 회복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힘들겠지.’
하락 폭도 더 크거니와, 예전처럼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 금방 회복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계속된 금리 인상에도 여전한 물가상승 압력… 연준 결국 기준금리 또 인상.]
[4.75∼5.00% 된 미국 기준금리, “인플레이션 위험에 상당히 주의하고 있다”라고 금리 인상 이유를 밝힌 연준.]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고금리 시대.
미국의 최고 금리는 결국 5%를 찍어 버렸다.
덕분에 시장에는 유동성이 씨가 마른 상황.
불과 1년 전만 해도 돈이 넘쳐 흐르던 걸 생각하면 참 급격한 변화였다.
거기에 디즈니의 사실상 항복 선포로 스웜의 콘텐츠 폭은 너욱 넓어지게 될 텐데.
투자자들로서는 굳이 넷플릭스를 살 이유가 더욱 없어지는 거다.
‘그나마 남아 있는 돈은 싸그리 스웜 모터스로 몰렸고.’
공모가 43달러로 시작했던 게 지금은 67달러.
전체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3,400억 달러였던 게 5,300억 달러가 되었다.
‘너무 높긴 하네.’
점차 주가가 오를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를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동시에 지금의 주가에는 거품과 과도한 기대 심리가 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스웜 모터스의 전망이 밝다고는 해도, 이미 세계 전기차 시장 1위 사업자인 테슬라의 시총을 거의 따라잡을 정도는 절대 아니기 때문.
‘뭐,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한데.’
때때로 테크 기반의 성장주들은 이런 과도한 펌핑을 보이곤 한다.
제대로 된 기술도 없이 완성차 하나 생산 못 했던 니콜라의 시총이 한때 포드를 뛰어넘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해.’
시장에선 유동성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데 스웜 모터스의 주가만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상황.
자본시장의 돈이 모두 스웜 모터스로 빨려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 첫 기업 공개라는 게 그만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이러다 스웜 모터스가 한번 주저앉으면 시장 전체가 함께 폭락하게 되는 거 아냐?’
“보스,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던 그때.
제이슨의 추가 보고.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할 수도 있다고요?”
미국 내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 가능성.
대략적인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던 건 테크 기업들이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은 실적과 무관하게 엄청난 평가액을 자랑했다.
‘거기에 나도 한몫 보탰지.’
내가 지분 투자를 하거나 아예 사들였던 여러 스타트업.
그것들이 몇 년 후 수십억 달러의 가치로 치솟으며 여러 대박 신화를 만들어 냈었다.
그걸 보고 ‘제2의 선우진’이 되겠다는 투자자들이 부지기수로 생겼었는데.
당장의 수익이 적더라도 잭팟을 노리며 돈을 싸들고 벤처캐피탈을 찾던 투자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렇게 한창 때만 해도 테크 관련 스타트업이다 하면 최소 수천만 달러 평가액부터 시작하던 시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저금리 시대가 갑자기 끝나 버리고 고금리 시대가 온 거였고.’
그런 변화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금융시장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던 것처럼, 스타트업 시장 또한 금리 인상으로 모든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투자자들이 예전처럼 평가액만 높았지 실속은 없던 기업들에 돈을 넣고 가만히 있지 않게 된 것.
돈이 안 된다 싶으면 빠르게 투자금을 빼는 투자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잭팟을 노리고 벤처캐피탈을 찾는 이들도 없었다.
그 결과 테크 기업들의 주식이 급락했고, 온갖 스타트업들의 가치도 마찬가지로 급락했다.
‘실리콘밸리 은행한테는 악몽이었겠네.’
실리콘밸리 은행, SVB는 조금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은행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명 스타트업들의 은행으로 불리는 SVB의 주요 고객은 스타트업 회사들이다.
그리고 스타트업 기업에게는 기존의 전통적인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바로 대부분의 스타트업 기업들은 빚을 내면서까지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
‘여유 자금을 은행에 맡기기만 하지, 빌리지는 않는다는 거지.’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야 하는 곳이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선행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수익이 생기면 그게 은행의 이자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
하지만 SVB의 특수한 구조는 대출 단계에서부터 막혀 버리는 거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돈을 빌려 가면서까지 투자를 하지 않으니까.
즉, 현금은 계속 쌓여 가는데 그 현금을 빌려줄 곳이 없는 것.
물론 SVB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전문가인 만큼 그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서 쌓인 현금을 어떻게든 굴려야 하지.’
하지만 문제는 SVB가 그런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으로 택한 게 미국 국채, 그것도 장기채였다는 것.
뭐, 어떻게 보면 썩 나쁜 판단은 아니다.
미국이 망할 일은 없을 테니 초우량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
수입이 크지는 않아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대상이다.
…물론 저금리 시대에서의 얘기였지만.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채권의 금리보다 그냥 은행에 돈을 맡길 때의 금리가 더 높으면 누가 채권을 사려고 할까.
특히 SVB가 사들인 채권은 10년 단위의 장기채.
가격이 똥값이 될 수밖에 없었다.
SVB 입장에서는 현금은 죄다 장기채에 묶였는데, 장기채 가치는 하락했고, 다른 수익이 나올 구멍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거기에 스타트업 관련 투자가 사라져 버리며, 스타트업의 돈줄도 말라 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겹쳤다.
스타트업 회사들은 돈이 없으니 이제 SVB에 맡겨 놓았던 돈을 인출하려고 하는데, SVB에는 그 돈을 모두 똥값이 된 미국 장기 국채에 넣어 놨던 것.
[SVB, 210억 달러 규모의 채권 포트폴리오 매각… 18억 달러 정도 손실 본 것으로 확인.]
돈줄이 마른 스타트업들은 돈을 빼내고.
SVB는 그 돈을 주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 채권을 팔고.
그걸 본 SVB의 고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대로라면…….”
“뱅크 런이 올 가능성이 큽니다.”
채권 매각 소식에 불안해진 고객들은 더 많은 자금을 회수하고, SVB는 더 많은 채권을 팔며 더 많은 손실을 보게 되고.
그걸 본 고객들은 또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려고 할 거다.
그러다 그 인출량을 결국 SVB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대로 붐.
SVB가 파산하는 거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자칫하다가는 SVB의 파산 사태가 금융권 전체로 충격이 퍼질 수도 있었다.
은행의 파산이라는 확실한 악재가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 연쇄 작용까지 일으키며 다른 은행들의 파산도 촉발시킬 수 있는 것.
“물론 그 여파가 금융권 전체로 퍼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SVB는 조금 특수한 포트폴리오로 이뤄져 있기에 다른 은행들에 대한 영향력이 엄청난 수준은 아니거든요. 몇 군데 정도는 파산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체적인 수준으로 커지지는 않을 겁니다.”
제이슨의 의견.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단기적으로 은행주 위주로 하락세가 올 수는 있겠죠?”
“예. 그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음… 돈이 또 생기겠네.’
최근에는 그래도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어째 마를 일이 없을 것 같은 기분.
한 달 전 IPO로 받은 용돈 약 300억 달러.
이번에는 그래도 그 배는 벌 것 같았다.
* * *
미래차의 주가는 최근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글로벌 증시가 전체적으로 하락세인 지금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버블이 한창이던 시기, 미래차 - 애플카 협력 소식으로 한창 달아올랐던 주가가 25만 원이었다.
[미래자동차: 321,500원]
그런데 지금은 훌쩍 넘겨 버린 것.
[미래자동차 시가총액 70조 원 넘겼다, 모두 선우진 효과?]
[스웜 모터스의 상승세 속에 폭등한 미래자동차 주가.]
모두 스웜 모터스 덕분이었다.
미래자동차가 여러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취득한 스웜 모터스의 지분은 총 10%도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수백억 달러의 가치가 나가기 때문.
미래자동차 전체 시총의 절반이 넘는 것이다.
‘스웜 모터스가 잘나갈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잘나가는 게 아닌가 싶은 수준.
일전, 스웜카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테슬라의 시총이 약 5천억 달러였다.
스웜카가 그만한 가치가 되려면 최소 5년은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5년은커녕 5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 대신 미래차가 200억 달러의 빚을 지기는 했지만…….’
선우진이 중간중간 투입한 자본금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 빚.
게다가 그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선우진 본인이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자금이 너무 많았던 나머지 지분이 희석되기도 했고.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미래차가 보유한 스웜 모터스 지분의 현 가치를 생각하면 엄청난 이득이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자신의 늘어난 자산을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미래차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70년이 넘게 걸렸지.’
자랑스러운 미래차의 76년 역사.
그걸 선우진이 뛰어넘기까지 필요했던 건 고작 몇 개월이었다.
‘여기서 70년이 더 지난다 해도…….’
현재 선우진과 미래차 사이에 놓여진 철저한 갑을 관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관계가 앞으로 달라질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