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선우진 보고 배움
개인 섬을 가지는 건 몇몇 부자의 로망일 거다.
나도 그런 로망을 잠깐이나마 가져 본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별게 없단 말이지.’
당연하게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섬을 샀다.
그것도 두 개나.
하나는 하와이에 있고, 다른 하나는 플로리다에 위치한 열대 섬.
내가 지금 와 있는 곳이 플로리다의 섬이었다.
“하와이는 그래도 뭐 이것저것 있어서 덜 심심한데, 여기는 크기도 작고 무인도나 마찬가지라… 별거 없긴 해요.”
“하하. 그래도 보안만큼은 최고겠군요.”
그것도 시커먼 남자 두 명과 와 있다.
원래는 프라이빗하게 애인과 놀기 위해 구매한 섬이었는데.
몇 번 와 본 후 그대로 놀려 놓다가 나도 오랜만에 찾은 거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그저 그랬지.’
첫 이삼 일 정도는 다들 좋다고 하더니 금방 싫증을 내더라.
아무래도 섬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 보니 숙박 시설과 몇 개 편의 시설을 제외하고는 뭐가 없기 때문.
그래도 사람이 없는 만큼 남들 시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데.
거기에 부근에 다른 섬들도 없어서 요즘 파파라치들 카메라가 아무리 좋고 드론이 있다 해도 프라이버시만큼은 확실히 보장됐다.
“두 번째 뵙는 거죠? Mr. 드산티스.”
“기억하고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그래서 지금 와 있는 거기도 했다.
나와 함께 열대 섬을 찾은 시커먼 남자 두 명은 바로 트럼프와 현 플로리다 주지사인 공화당의 론 드산티스.
그가 이곳 플로리다 주의 주지사여서 이 자리에 초대한 건 당연 아니였고.
2년 후 있을 다음 대선의 공화당 후보가 될 이로 꼽히는 이였기에 부른 거였다.
‘누구한테 들키면 그림이 이상해지니까.’
현 세계 최고 부자와 재선에 성공한 현 미국 대통령 그리고 그다음 대의 공화당 후보로 나올 정치인.
이 셋이 남들 몰래 만나 얘기를 나누는 건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지 않나?
저 나쁜 기업가 놈과 친기업적 정치인들이 또 모여 작당을 한다고 말이다.
물론…….
‘그게 맞지만.’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 밀회하고 있지.
여하튼.
‘티파티 성향… 고보수주의자라 했었지.’
트럼프가 자신의 후계로 생각하는 것답게 트럼피스트 성향이 꽤 강하다 했다.
재정 건전성보다는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을 지지하고, 관세, 보호무역에 우호적인 정치인.
그러니까 전형적인 강성 공화당 정치인이라 볼 수 있었다.
즉, 여러모로 나에게 도움이 되어 줄 인물.
‘트럼프 MK-2라고 보면 되는 건가?’
대신, 70대 후반이 되어 가고 있는 고령의 트럼프와는 달리 훨씬 더 젊은 40대의 대선 후보.
트럼프보다 노빠꾸 성향이 덜한 만큼 컨트롤이 더욱 쉬워 보였다.
거기에 드산티스 주지사가 대선 후보급 정치인으로 뜨게 된 건 플로리다 주지사가 된 이후.
그사이 지지자들을 어느 정도 확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굳건한 지지자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드산티스 주지사 개인에게는 불만스러운 사실이겠지만, 래클런 머독을 통해 폭스 뉴스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
‘게다가 요즘 또 위기라지?’
[디즈니, 美 대선 유력 후보 론 드산티스 고소. 소송전 벌어져.]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던 론 드산티스, 반기업 성향 드러내나?]
플로리다주에는 디즈니월드가 있다.
1개의 테마파크로 이뤄진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4개의 테마파크와 2개의 워터파크로 구성된 디즈니월드.
당연히 디즈니랜드보다 몇 배나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는데.
2만 5천 에이커에 달하는 그 부지는 ‘디즈니 특구’라 불릴 정도로 디즈니에게 여러 특혜가 부여되어 있었다.
부지 내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부지를 개발하거나 스스로 세금을 부과하는 식의 자치권.
과거 플로리다 주정부가 디즈니월드를 플로리다주에 유치하기 위해 부여했던 것이다.
[드산티스 주지사, 플로리다주에 디즈니월드에 대한 특혜 몰수하는 법안 통과시켜.]
하지만 최근 드산티스가 디즈니월드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법안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정황은 이러했다.
티파티 성향의 정치인답게 동성애 관련 교육 금지법 발의를 했던 드산티스.
그걸 본 디즈니의 전 CEO 밥 차펙이 드산티스를 향한 비난 성명을 냄과 동시에 드산티스와 공화당을 향한 정치후원금 지원을 중단하는 선언을 했다.
드산티스 측에서는 디즈니월드가 받던 특혜를 몰수하는 법안으로 대응하게 된 거였고.
‘뭐, 그러다 디즈니가 특별 조항을 발동시켜 그걸 막고, 드산티스는 또 디즈니월드 근처에 교도소를 짓겠다고 하고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됐지.’
여하튼.
요지는 그거다.
공화당 정치인 드산티스가 디즈니와 정면으로 맞붙게 되면서, 공화당 측 지지자들로부터 드산티스가 ‘반기업 성향’을 지닌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
거기에 디즈니가 원래 플로리다에 짓기로 했던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 캠퍼스 건설까지 백지화하며, 플로리다 내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건 덤이었고.
즉, 드산티스가 차기 대선 후보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그걸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했는데.
“플로리다주에 네오시티 프로젝트라는 게 진행되고 있다죠?”
그게 오늘 만남의 이유였다.
네오시티는 플로리다 오세올라 카운티에 조성 중인 3만 평 부지에 3조 원가량이 투입되는 미국 최초 계획형 스마트 시티.
‘3조 원이라…….’
예전에는 3조라고 하면 참 크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건 왜일까.
달러로 치면 30억밖에 안 되는 거라 그럴까?
“예. 네오시티에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공제, 조세 감면, 에너지 판매세 면제 등 입주 기업을 위한 혜택도 마련된 상태입니다.”
“좋네요. 제가 안 그래도 최근 반도체 관련 투자를 늘리려고 생각 중인데.”
“물론 이미 애리조나와 오하이오에 여러 특혜를 받고 공장 건설에 들어간 터라, 플로리다 주에 투자할 금액은 추가 예산 중 1/5밖에 안 되겠지만요.”
내 말에 반색하는 얼굴이 됐다가 그다음 이어진 말에 멈칫하다가 재빠르게 표정을 바로 하는 드산티스 주지사.
짧은 시간 동안 표정이 빠르게 변화하는 게 퍽 볼만했다.
아무튼.
1/5면 얼마야.
“음… 한 200억 달러? 그쯤 될 것 같네요.”
“……?”
“……????”
차례대로 얼굴이 요상해지는 드산티스와 트럼프.
어저께 박 회장도 그렇고.
요즘 내 직업이 갈고리 수집가가 된 기분이었다.
*
[SW 반도체, 플로리다 주에 200억 달러 투자 규모 발표!]
[드산티스 주지사 ‘SW 반도체 투자 유치’로 반기업 이미지 회복?]
[“디즈니는 고작해야 10억 달러짜리 투자를 가지고 주정부의 정당한 행사를 협박하고 있다. 참 웃기는 일.” 드산티스 주지사, 자신은 반기업이 아니라 반PC라 밝혀 지지율 회복.]
*
반도체 치킨 게임.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곳이 누구인지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반도체 산업은 그저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단순 투자 액수 차이로 미래 경쟁력을 점칠 수 있는 시장이 아닌 것.
아무리 돈을 때려 박더라도 시간 없이 좁힐 수 없는 효율의 차이가 크다.
괜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그들의 예상 만큼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단순히 돈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올해 연말이면 3나노 2세대 공정과 4나노 4세대 공정을 적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역시 오성입니다.”
TSMC의 기술력에 조금 못 미칠 뿐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 오성전자가 함께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3나노에서는 오성이 TSMC보다 앞서는 면모도 있었다.
기존의 핀펫 공정을 여전히 3나노에도 유지하고 있는 TSMC와는 달리, 오성은 3나노부터 GAA 공정을 적용하니까.
[TSMC가 결국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350억 달러 수준으로 높였다죠?]
“예. 4년간 약 1,500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 오성이 내게 합류한 이유.
그건 바로 오성이 점점 TSMC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최근 양산되고 있는 7나노급 이하의 수율부터 해서 수익성 문제, 자금 사정 등 때문이었다.
물론 보유 현금으로만 따지면 오성이 TSMC보다 앞서지만, 오성은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까지 함께 생산하고 있는 기업.
그 외의 모바일 기기나 노트북, 전장, TV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무튼.
반도체로만 따져도 메모리 반도체 쪽도 매년 수조 원을 투입해 경쟁 우위를 지켜 나가야 하는 시장인 만큼, 오성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TSMC 파운드리 투자 금액 오성 4배…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결과 메모리를 포함한 오성전자의 설비 투자 총액은 TSMC 이상이지만, 파운드리 투자액만 따지면 TSMC의 1/4 수준이었을 정도로 투자 격차가 벌어졌던 것.
물론 과거의 얘기다.
지금은 기술을 지원하는 대가로 오성전자가 반도체 SW 반도체의 지분의 가치가 족히 천억 달러는 되는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자금이 빵빵한 게 지금의 오성이었다.
[오성전자 - 101,250 KRW]
-10만 전자 다시 왔뜨아!
-존버는 승리! 존버는 승리!
-9만 원에 샀다가 울면서 5만 원에 나간 흑우 없제?
-ㅋ 9만 원에 익절했다가 5만 원에 줍줍한 사람은 여기 있음.
-10만 전자 가지고 좋아하지 마세요… 조만간 20만 전자 옵니다… 선우진 붐은 온다…….
덕분에 오성전자의 주가도 많이 상승했고.
듣기로는 외국인 투자 비율도 이전 대비 꽤 상승했다고 한다.
예전보다 여력이 많이 생긴 것.
지금의 반도체 불황은 파운드리 쪽뿐만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쪽에서도 벌어지는 일인 터라 오성전자는 양쪽에서 불황을 겪고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성에게는 다행인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요즘 선 대표님의 행보를 보면서 깨닫는 게 많습니다.]
“제 행보요?”
[예. 지금 같은 시기에 반도체 추가 투자 결정… 그것도 수천억 달러의 규모로요. 하하. 사실 그런 건 오성이 잘 하던 전략이었는데 말이죠.]
며칠 전, 박 회장과 얘기할 때는 반도체 감산을 고려하고 있다던 그였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여러 차례의 불황 속에서 다른 경쟁사들이 일제히 감산 행렬에 들어갈 때도 홀로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라며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던 오성전자였다.
그리고 그런 고난의 시기를 버텼기에 지금처럼 오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는 확고부동한 세계 1위가 될 수 있던 거였고.
하지만 그런 오성전자도 이번에는 감산을 고민 중에 있었는데.
그 정도로 반도체 불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내년이 되면 올해 영업이익 대비 최소 70~80%가 줄어들 거라는 예상도 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그러셨죠.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요. 선 대표님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게 많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하지만 박 회장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왠지 그 생각이 바뀐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일이 되자 무슨 뜻이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오선전자, “이번에도 감산 없다. 오히려 투자 늘릴 것.”… MK하이닉스 직격탄.]
[메모리 반도체 업계, 역대급 치킨 게임 시작되나… 반도체 한파 속 오성전자 추가 투자 소식에 MK와 마이크론 모두 울상.]
[한 해 이자 비용만 최소 1조 원… ‘감산·투자 축소’ 발버둥 치는 MK하이닉스, 감산 없다는 오성 때문에 위기.]
“…….”
돈으로 때리는 재미.
왠지 그걸 박 회장도 익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