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치킨 게임을 시작함
최근의 월 스트리트를 요약하자면 ‘그래서 상장 언제 해요?’라 볼 수 있었다.
온갖 금융기관에서 투자 문의가 쏟아지고 있었다.
미 증시에 상장하기에 앞서 초기 투자가 가능한지 문의하는 곳이 과장 조금 보태서 수십 곳이 넘었다.
심지어 직원들을 통해 내부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도 계속해서 있다는 모양.
‘우리한테 투자하길 원하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이토록 많을 줄이야.’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고 해야 하나.
최근 하락장 속에서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
하지만 우리는 예외라는 듯 여기저기서 지분 매입 의사가 쏟아지고 있는 거였다.
‘뭐, 지금껏 이렇게 상장 의사를 밝힌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내가 지금껏 소유하고 있던 핵심적인 회사들은 모두가 비상장회사였다.
스웜과 써밋 엔터, 틱톡과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등 대부분 사업체의 지분 100%를 내가 홀로 보유하고 있었다.
상장을 통해 굳이 돈을 충당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도 있었지만, 내 마음대로 경영하는 데에 그게 훨씬 더 수월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미래를 모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만용으로 보일 수 있는 사업적 선택도 과감히 해야 했다 보니 그랬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으니 슬슬 증시 상장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
자금을 더욱 확보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검색엔진도 그렇고, 자체 OS 도전은 나로서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중대한 사안.
지금의 내 힘으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증시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이후 온갖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사들일 생각.
앱 생태계 구축이 그렇게 어렵다면 아예 생태계를 내 손으로 만드려는 거다.
페이스북과 오성전자, 화웨이 등이 도전했지만 모두가 실패한 일.
심지어 구글과 MS도 반쪽짜리 성공이라 볼 수 있었다.
각각 모바일 OS와 PC용 OS를 장악하고 있지만 양쪽 모두를 석권하지는 못했으니.
오직 애플만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생태계를 PC부터 모바일까지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애플이 구축한 그러한 생태계였다.
언젠가는 모바일은 물론 노트북, 각종 웨어러블, IoT 장치, 태블릿, 스마트 기기, 자율 주행 차량까지 하나의 단일 OS로 돌아가는 것.
‘물론 몇몇 부분은 오성전자에 의존해야 하겠지만.’
애플처럼 태블릿과 웨어러블, 노트북까지 모두 제조할 생각은 없었다.
오성전자에 대해서는 내가 꽤 큰 통제권을 갖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의존할 생각.
애초에 이미 모바일 시장을 내가 도전한 만큼, 그 이상의 파이까지 먹으려는 건 너무 불필요한 경쟁이었다.
‘…오성도 먹고살 게 있어야지.’
내가 원하는 건 오성을 내가 통째로 집어삼키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내 자체 OS에 종속되는 거면 만족했다.
사실 일정 지분 이상을 오성도 들고 있는 만큼 엄밀히 따지면 종속도 아니었다.
일종의 영구적인 파트너십 관계가 되는 거지.
아무튼-
[선우진, 맥 OS 개척자 빌 스티븐슨 영입? 운영체제까지 노리나?]
[오성산 스마트 워치와 스마트 TV 탑재된 자체 OS, 타이젠. 연내 탈바꿈한다?]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선우진… OS 진출 가능성도 제기돼.]
조금씩 내 행보가 알려지면서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에 알려진 건 내가 검색엔진에 도전한다는 것뿐이었지만, 점차 내가 결국에는 자체 OS에까지 진출하게 될 거라 예상하기 시작하는 것.
심지어 최근에는 타이젠이 조만간 리워크된다는 정보를 통해 나와의 연관성을 유추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걸 아예 확실히 할 겸, 기업 구조를 개편하면서 상장을 추진하는 거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이것저것 많이 사들이긴 했구나.’
개편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
대부분 빅테크가 다 한 문어발씩은 한다지만, 지금 보니 나만큼 문어발을 걸친 놈도 없는 것 같았다.
회사들을 통합해 몇 개 분야로 나누더라도 들어갈 구석이 없어 따로 자회사로 놓아야 할 회사들이 여러 곳이었다.
-스웜 엔터: 스웜, 써밋-MGM, 폭스, 스웜 게이밍, 스포티파이, 틱톡, 트위치 등
-스웜 테크: SCP, 스웜폰, 스워밍, 자체 OS 등
-스웜 캐피탈: SW 인베스트먼트, WS 매니지먼트, 바이비트, 퓨쳐 인베스트먼트 등
-스웜 모터스: 스웜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회사, 전장 기업 등
우선 크게 나누는 건 이렇게 네 부문.
저것들 외에도 스웜 뮤직 그룹이나 SW 엔터, 여러 게임 개발사나 소프트웨어 회사 등이 속해 있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AMD, SW 반도체, 테슬라 같은 회사들은 여전히 별도의 회사로 존재할 거고.
여러 투자 은행이나 자산 운용사들과 이미 저 회사들의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기에 내린 결정이다.
굳이 남들 배를 열심히 불려 줄 필요는 없으니까.
“골드만삭스, JP모간, 모간스탠리, 앨런앤드코, 씨티그룹 등 총 17곳에서 상장을 주관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튼 각각의 부문으로만 따져도 미국 IPO 역사상 최대 기록을 모두 경신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만큼 주관사들이 떼 지어 달려들었다.
모두 옵션으로 주식을 배정받고 싶어했고.
“뉴욕증권거래소의 제프리 스프레처 회장이 보스를 뵙길 원하고 있습니다. 나스닥의 아데나 프리드만 대표이사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나를 두고 거래소끼리의 경쟁도 한창이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두 곳은 모두 IPO 유치를 위해 서로 물밑에서 경쟁하는 관계였는데.
역대 최대 수준이 될 게 분명한 이번 IPO인 만큼 회장까지 직접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고 있는 것.
‘사실 나스닥 쪽으로 반쯤 마음이 기울었긴 한데.’
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IPO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보여 왔던 건 뉴욕증권거래소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줄곧 나스닥이 뉴욕증권거래소를 앞지르던 모습을 보여 줬는데.
그런 선전의 배경에는 최근 나스닥이 기업들이 자사 이미지 구축을 위해 좋아하는 키워드들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갖춘 거래소로 평가받기 때문이었다.
뭐,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상장사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한 한 명은 여성, 다른 한 명은 소수 인종이나 성 소수자 등으로 하도록 한다.’
여성 이사의 경우 엔터 쪽에야 여성 인사들이 넘쳐나고, 테크 쪽에는 리사 수도 있고 하니 문제가 없는 데다가, 소수 인종 이사회 구성원은…….
‘내가 당장 소수 인종이잖아.’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핵심 경영 트렌드가 되면서, 여러 간접 규제도 생기는 요즘.
왠지 모르게 꿀 빤다는 생각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 * *
야심차게 출발했던 SW 반도체는 사실 초기부터 살짝 위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공장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위기냐 싶을 수도 있지만.
[반도체 시장에 부는 역대급 한파… ‘IT버블 붕괴’ 닮아…….]
[반도체 하락 사이클 지난번보다 심각, 반도체 겨울 다가오나?]
시작도 하기 전에 업황이 얼어붙어 버린 것.
공장 건설에 들어가고 완공을 기다리는 사이, 업계 전체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이 상상 이상이었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IT 수요가 줄어들기도 했고, PC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 탓이다.
‘음. 그나마 나는 지금까지는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기는 한데.’
몇 달 전만 해도 대체 공장이 언제 완공되는 것일까 불평했다.
최근 1, 2년은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수요는 많지만 반도체가 없어서 못 팔던 상황.
남들 다 떼돈 벌고 있을 때 나만 못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오히려 그게 반대가 되어 버렸다.
남들 다 적자 걱정을 할 때 나 혼자 상황을 관망할 수가 있었다.
‘뭐… 그렇다고 공장 완공을 늦출 수는 없으니 그때 이후가 걱정이지만.’
물론 SW 반도체의 사정만 생각하면 늦추는 게 맞았다.
지금의 업황이 그때까지 지속된다면 열심히 생산하더라도 적자를 보면서 팔아야 하는 상황.
게다가 반도체 공장의 특수성 때문에 한번 가동하기 시작하면 다시 중단시킨 후 재가동하는 게 어려워 물릴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엄청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기도…….’
애초에 내가 SW 반도체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SCP의 성장을 위해 세계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데이터 센터는 물론 인공지능(AI)과 머신 러닝을 위한 서버용 반도체, 자율 주행차까지.
그곳들에 필요한 막대한 반도체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차피 내 자체적인 수요를 충당하는 것만으로도 SW 반도체가 제 역할은 할 수 있다는 뜻.
게다가 지금의 업계 불황이 내게 이득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시장이 나날이 얼어붙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사들이는 가격도 싸지고 있다는 거니까.’
아직 SW 반도체의 공장이 완공되지 못한 탓에 여전히 오성전자를 통해 반도체를 공급받고 있다.
관계가 관계인 만큼 남 주는 것보다는 덜 아깝지만, 그래도 매번 오성전자의 실적을 너무 쉽게 올려 주고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체적으로 반도체 가격이 치솟고 있던 탓에 매 분기마다 수십 %씩 상승하는 반도체 가격을 지불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오랜만에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것.
-박 회장: 오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실적이 꽤 하향세네요.
-박 회장: 매출은 여전한데 영업이익은 지난 분기 대비 39%가량이 하락했습니다.
가끔씩 박 회장과 톡을 주고받을 때 앓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깔끔히 무시.
지금까지 비싸게 사 줬으니 이제는 싸게 사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더 불황이었을 거기도 했고.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반도체지만, 최근 챗GPT의 성공 덕에 인공지능 데이터 처리를 위한 칩 수요가 폭등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런 폭등 속에도 여전히 전체적인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라는 건 그만큼 차디찬 겨울이 찾아왔다는 뜻이지만.
‘한동안 더 떨어졌다가 SW 반도체 공장이 완공될 때쯤 수요가 회복되면 좋을 텐데.’
…잠깐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반대 상황이 나을 수도 있어 보였다.
[인텔, 270억 달러 설비 투자 계획 180억 달러로 수정.]
[MK 하이닉스, “앞으로 투자 최소화할 것. 내년 투자 비용 올해 대비 절반 이상 감축 예정”]
[원계획보다 투자 규모 30% 삭감한 마이크론. TSMC는 전 직원에게 휴가 장려하는 메일 보내기도.]
여러 반도체 회사가 모두 긴축을 외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
이미 다가온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한파를 대비해 일종의 겨울잠을 자려는 거다.
하지만 반도체는 설비의 특성상 한번 생산 투자를 줄이면 다시 생산량을 늘리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그러면 그냥 치킨 게임을 지금부터 시작해도 되는 거 아닌가?’
원래는 SW 반도체 완공 이후 시작하려 했던 치킨 게임.
때마침 기회가 찾아온 만큼 놓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톡, 토도독-
그렇기에 바로 박 회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 박 회장님, 이럴 때일수록 저희가 공격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나: 기존의 1,000억 달러 투자 규모를 조금 더 늘리죠.
-나: 한… 2,000억 달러 정도로요.
보낸 지 몇 초 되지 않아 1 표시가 사라졌는데.
-박 회장: ?
……?
조금은 이상한, 그냥 말 그대로 물음표 하나짜리 답장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