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루나 대폭락
만우절은 꽤 지났는데.
순간 크레이그가 농담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느 미친놈이 자기네 포지션을 자기가 알아서 밝혀?’
그런데 진짜로 감동 실화였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트위터에서 키배 붙다가 공개라니.
‘도권 이 양반도 머스크병에 걸린 것 같은데…….’
크레이그가 보내 준 도권의 트윗 목록을 살펴봤다.
도권: 테리아 페그 담보로 3억 만 달러를 유치하겠다.
질문: 진지하게 묻는데 그 3억 만 달러 어디서 나옴?
도권: “당연히 네 엄마한테서”
가볍게 패드립을 선사해 주는가 하면.
도발 트윗: “루나가 1년 후에 더 낮은 가격일 것에 1,000만 달러 건다.”
도권: “콜 (특정 암호 지갑에) 돈 넣으면 나도 넣을게.”
천만 달러짜리 내기까지 벌이기도 하고.
‘천만 달러 날리게 생겼는데?’
여하튼.
저런 기상천외한 트윗을 남발하던 테리아의 도권 대표는 급기야 자기네들의 포지션까지 소셜 미디어에서 시원하게 밝혀 버린 거다.
갖고 있는 BTC가 8만 개가 넘으니 안심하라니.
정말 그 정도면 방어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 걸까?
“크레이그, 다른 세력들 움직임은 어때? 테리아를 공격하려 한다거나.”
[음. 일단 드러난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문제겠죠.]
“…그렇겠지.”
당장 나도 루나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고 있는데.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루나가 취약한 알고리즘의 코인이긴 해도… 덩치가 큰 코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
글로벌 10위권의 시총을 자랑하는 대형 코인.
게다가 탈중앙화 금융(DeFi·디파이) 코인의 선두 주자와도 같은 루나였다.
그런 루나가 대폭락하게 된다면, 테리아-루나와 비슷한 구조의 스테이블 코인들은 모조리 그 신뢰성을 잃게 된 거고.
그뿐일까?
그 여파가 디파이 시장은 물론 암호 화폐 시장 전체에 미치게 될 거다.
암호 화폐를 주로 다루는 수많은 신생 헤지펀드.
어쩌면 그중에 파산하게 되는 곳들도 적지 않을 거다.
‘규모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제2의 리먼 사태가 되는 거지.’
안 그래도 최근 코로나 버블이 터지면서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맴도는 암호 화폐 시장에서 그만한 사건이 터지게 되는 것.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뻔하디뻔했다.
‘게다가 디파이 시장이 알아서 흔들리는 걸 보고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도 뻔하고.’
내가 디파이 쪽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탈중앙 코인을 미국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까.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내가 디파이 코인을 만들면 그건 정말로 법정화폐에 준하는 수준의 코인이 탄생하는 거다.
수조 달러의 자산가, 그것도 현금성 자산만 6~7천억 달러 가까이.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액이 4천억 달러가 조금 넘는데.
그런 내가 탈중앙 코인을 만든다면…….
‘성공이야 하겠지. 성공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의 시작이다.
자신들의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발권력을 그 무엇보다 신경 쓰는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EU 등의 주요 통화국들도 모두 참전하게 될 전쟁.
그리고 그건 분명 나 vs 나머지 전부라는 일방적인 일 대 다 전쟁이 될 터였고 말이다.
‘그냥 패배 확정이지.’
아무리 나라고 해서 한 국가의 정부와 싸울 수는 없다.
뭐, 소규모 교전 수준이라면야 몇 번 정도 이길 수는 있어도 결국에 지게 되는 건 나일 거다.
그게 나라 하나도 아니고 미국까지 포함된 강대국들과 싸우는 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Mr. 선, 자네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난 언제나 자네의 편일 거요.]
SW 바이오의 백신을 통해 트럼프의 재선을 반확정했던 당시 그가 내게 했던 말.
달리 말하면, 내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한다면 그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흔들리는 디파이 시장을 바라보는 미국의 태도도 비슷할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탈중앙 금융.
아직 달러의 위치를 위협하기에는 덜 여물었지만, 그래도 미국 입장에서 가만두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일 거다.
아니, 사실 이건 미국뿐만이 아니다.
이름부터 대놓고 탈중앙인 걸 어떤 정부가 마음에 들어 할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루나가 대폭락을 하게 된다?
그것도 수많은 헤지펀드의 파산과 여러 개인 투자자의 엄청난 손해를 불러일으키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길 만한 일이지.’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등 가상 자산에 대한 규제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이 되니까.
코인 시장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코인 시장에 끼어들겠다라.
얼마나 좋은 명분인가?
그리고 애초에 규제가 없는 시장이기에 각광받으며 성장한 코인 시장에 규제가 끼어들게 된다면?
‘한동안 겨울이 오겠는데.’
버블이 터지고도 4만 달러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는 BTC.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지금의 가격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이그, 우선 우리가 갖고 있는 가상 자산들을 처리하도록 해.”
[예, 보스.]
“그리고… 암호 화폐 시장 전체에 숏을 치는 거로 하고.”
내가 루나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거다.
숏을 때린 후 먼저 나서서 루나를 공격한다면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폭락장을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구경하기만 할 필요도 없겠지.
누가 봐도 앞으로 폭락장이 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
돈 벌 기회가 뻔히 보이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 * *
월 스트리트의 여러 헤지 펀드.
그중 가상 자산을 주로 다루는 곳들은 새벽에도 사무실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일정 시각이 되면 장이 닫히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암호 화폐 시장.
언제든지 시장 변화에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 시장 상황을 24시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왓 더… 이거 뭐야? 어디 전쟁이라도 터졌어?”
“숏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렇기에 갑작스레 나타난 수많은 숏 물량에 그들이 즉각 반응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지?”
“몰라! 지금 그게 중요해?!”
어마어마한 공매도 수량.
한 개인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여러 대형 금융 기관이 연합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흠. 러시아가 정말 우크라이나를 침공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수량은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악재가 발견된 거일 수도.”
문제는 그런 공매도가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거다.
요즘의 암호 화폐 시장은 코로나 버블이 터지며 생긴 투자시장의 위축 속에서도 꽤 잘 버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장이 활황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폭락장이 예상되는 것도 아니었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만한 숏 물량이 쏟아진다는 건 그들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악재가 시장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시장 상황에 함부로 대응하기도 주저되는 순간이었는데.
“팀장님, 이것 좀 봐 봐요.”
“뭔데?”
그러던 그때.
가상 자산이 아닌 실물 자산을 주로 다루는 한 대형 헤지펀드의 매니저가 자신의 보스에게 찾아가 서류 하나를 건넸다.
“뭐? 비트코인 10만 개를 대출받자고? 그게 뭔 미친 소리야?”
50억 달러 가까이 되는 가치의 비트코인을 대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
심지어 그걸 전부 루나로 바꿔 공매도를 때려야 한단다.
그렇게 하면 족히 100억 달러는 넘게 벌 수 있을 거라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더욱 말이 안 되는 게 있었는데.
“알고리즘이 이 정도로 취약하다고? 잠깐. 그러면 공격을 막기 위해 대비해 놓은 수단이 있을 텐데. 겨우 10만 개로 이만한 시총의 가상 화폐를 무너뜨리자고?”
“예. 다음 장도 한번 살펴보시죠.”
“…8만 개? 디페깅을 위해 매집한 비트코인이 고작 8만 개라고?”
“그렇습니다.”
가상 자산 관련 투자를 그리 활발히 하지 않는 헤지펀드였기에 루나에 대해서는 이름만 몇 번 들어 본 게 전부인 그였지만, 애초에 구조가 몇 배는 더 복잡한 금융 자본을 십수 년간 다뤄 온 전문가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서류 몇 장에 담긴 내용만으로도 루나가 가진 취약함을 파악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시나리오대로 흐를 가능성이… 꽤 크겠는데?’
테리아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그걸 다시 맞추기 위해 루나가 자동으로 발행된다.
시장에 존재하는 루나의 수량이 늘어나는 것인 만큼 자연스레 루나의 가격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운영진이 보유한 자금으로는 막을 수 없는 수준의 공매도를 친다면?
테리아와 루나의 가격이 동시 하락하게 되는 것.
그걸 본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느끼며 매도세를 보일 거다.
그리고 그런 매도세가 나타나는 만큼 또다시 루나가 재발행될 것이고.
‘악순환의 반복이 되겠지.’
주식시장이라면 그래도 서킷 브레이커라는 안전장치가 있다.
하지만 코인에는 그런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도 되지 않아 시총 수백억 달러 짜리 코인이 붕괴할 수도 있었다.
“좋아. 승인할 테니 진행하게.”
원하는 대로 된다면 50억 달러를 투자해 100억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는 투자.
게다가 가능성이 낮은 것도 아니었으니, 투자를 승인하지 않을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 * *
크레이그에게 관련 지시를 내린 후, 사막에서 며칠을 더 보냈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가 자연이었던 만큼 투자 관련해서는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전체적인 방향은 이미 지시를 내렸고 그 이후부터는 크레이그에게 일임했기에 그런 것.
‘뭐, 알아서 잘하겠지.’
기껏 여행까지 떠나오면서 잡은 글에 대한 영감을 꼴랑(?) 몇백억 달러 신경 쓰느라고 놓칠 수는 없었으니.
‘오랜만에 몸을 혹사시켜서 그런가. 아이디어들이 막 떠오르네.’
<황혼의 기사>에 대한 것도 있고.
신작에 대한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나바호 구역에 위치해 있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모래 언덕들 그리고 여러 기암괴석까지.
경이로운 자연 경관을 보다 보면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내 자신이 절로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상을 글로 승화시키면…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은데.’
이래서 사람들이 오지 여행을 다니고 그러는 건가.
좋은 데에서 좋은 밥 먹으며 돌아다니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감상.
가끔은 일부러라도 이렇게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꼭 모험을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에서는 별 생각 없이 서술 몇 줄로 끝냈을 장면들.
그런 걸 직접 겪어 보니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처럼 글 생각을 하며 보낼 때가 좋긴 하네.’
돈을 벌 때의 짜릿함도 좋지만 좋은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기쁨은 그것 이상이었다.
세계 최고 부자가 되면서 엄청나게 바빠졌지만 여전히 글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누군가처럼 글에 인생을 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글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여행이었네요.”
“그래요? 전 에드가 너무 힘들어한 거 같아서 미안했는데.”
“무슨 소리이십니까? 제가 언제 힘들어했다고.”
“사막에서 8시간째 걸을 때였나? 그때 엄청 헥헥대셨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여행의 끝.
마지막 날은 주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빌려 그간의 여독을 풀기로 했다.
“……?”
욕조에서 몇 시간이나 있었던 터라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투자 상황을 확인했는데.
“0.09달러?”
분명 크레이그와의 저번 통화 이후 5일도 안 지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개당 80달러가 넘던 루나가 0.1달러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아니, 이 정도까지 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