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퍼기 경이 옳았음
[루나 호재 왔냐?]
[루나가 이더리움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 ㅇㅇ]
아무래도 루나가 요즘 코인 시장에서 가장 핫한 코인인 모양.
게시판을 조금 더 살펴봤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게시글보다 루나에 대한 글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한 해 동안 엄청 올랐었구나.’
대부분의 김치 코인이 결국 폭망했던 것과는 달리, 로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엄청난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작년 3월의 상승률만 3,000%에 달할 정도.
평균으로만 따져도 월마다 수백 퍼센트가 오른 수준이었다.
‘20년에만 해도 1달러 선이었던 게 작년에 엄청 뛰더니 지금은 100달러 가까이 되네.’
2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100배 상승.
게다가 차트를 보아하니 그간 폭락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해 왔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좋은 투자처가 또 있을까.
-루나는 신이야! 루나는 신이야!
-다른 알트들은 나락가는데 루나는 혼자 오르네.
-예치하면 연 20%를 주는데 가격도 ㅈㄴ게 오르는 코인이 있다?!
-도권 0.1 선우진이란 말은 취소다. 선우진 따라 투자한 것보다 루나로 더 많이 범 ㅇㅇ 내겐 선우진이 0.1 도권이다.
그래서인지 루나 얘기를 하는 투자자들 사이에는 광기가 가득해 보였다.
요즘의 하락장에서도 루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모습.
비트코인 시즌 1과 시즌 2 때의 투자자들보다 더욱 열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과연 저들의 믿음이 맞을까?’
루나가 언제까지나 좋은 투자처로 남을 수 있으려나.
“크레이그, 넌 어떻게 생각해?”
[음. 사실 무척 위험한 구조 같아요. 공격에는 취약한 구조지만 공격을 방어할 수단이 마땅치 않죠. 몇몇 가상 화폐 전문가도 루나를 보고 비슷한 경고를 하기도 했어요.]
테리아와 루나가 연동되는 시스템.
일견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완벽한 시스템 같지만 군데군데서 알고리즘의 헛점이 보였다.
‘코인을 예치하면 연 20%의 이자를 준댔지. 그러면 그 20%를 줄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
그만한 고이율을 떠받칠 별다른 수단이 없다면, 결국 그 부담은 후발 투자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투자자들의 돈을 담보로 삼는 일종의 돌려 막기인 셈.
자산이 뒷받침되는 게 아니면서 연 20%의 수익을 약속하는 건 피라미드 구조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간의 역사가 증명하듯 피라미드 구조는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었고.
물론 시간이 흐르면 연 20%의 이율을 낮춘다고 운영진 측에서 말하긴 하지만…….
‘글쎄. 그때까지 루나와 테리아가 버틸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런 허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전체적인 암호 화폐 시장과 루나의 폭발적인 상승세 덕에 감춰졌던 것.
하락장이라는 위기 속에서는 훤히 드러날 수밖에 없을 거다.
‘물론 루나와 테리아 운영진 측이 가진 비트코인의 수량이 밖으로 안 드러나면 당분간은 괜찮긴 하겠지.’
그치들이 갖고 있는 디페깅 방어용 비트코인이 고작해야 8만 개라는 건 바이비트의 오너인 나였기에 알 수 있던 정보였다.
암호 화폐 시장에 존재하는 다른 세력들 입장에서는 8만 개 수준이 아니라 수십만 개 수준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상식적으로 수백억 달러짜리 시총 코인의 담보가 겨우 수십억 달러어치라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저 사실이 드러나면 큰일이겠네.’
루나에 대해 살펴본 지 하루도 되지 않는 나에게도 이런 허점이 훤히 보이는데.
다른 세력들이 바보도 아니고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 테리아-루나의 알고리즘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뭐, 여하튼.
“크레이그, 만약 루나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이비트의 힘 없이 그냥 순수한 외부 세력의 입장에서.”
크레이그에게 지시해 루나 공격 시나리오를 짜 보라 했다.
테리아를 디페깅시켜 루나를 폭락시키는 게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지.
‘개판이군.’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음… 며칠 정도면 충분하겠는데요?]
“며칠?”
[네. 아니, 며칠까지도 필요 없겠네요. 몇 시간이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들어갈 자본도 그리 크지 않단다.
어제자 루나의 시가총액은 약 450억 달러.
하지만 테리아를 디페깅시키는 데에는 수백억 달러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디페깅을 막기 위해 테리아와 루나 운영진들이 매집해 놓은 비트코인의 수량은 고작해야 8만 개.
현재 가치로는 약 35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루나를 폭락시키기에는 그보다 적은 금액이 들 것 같단다.
많아 봐야 이십억 달러 정도.
[이십억 달러어치의 테리아를 매집했다가 한꺼번에 팔아 버리는 거죠. 아니면 대량으로 공매도를 때려도 되고요.]
“그렇게 되면 1테리아의 가치가 1달러보다 밑으로 떨어지겠지.”
[예. 그리고 그걸 다시 1달러로 만들기 위해 루나 코인이 새롭게 발행되겠죠. 물론 그런 만큼 루나의 개당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질 거고요.]
그러면 그걸 본 투자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주식시장에서나, 코인 시장에서나 ‘큰손’의 위력은 강력한 법이다.
왜, 내가 어떤 주식을 사거나 팔거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그걸 따라하는 개인 투자자나 기관들이 많지 않나.
주식시장에서도 기관이나 유명 헤지펀드들의 매도 소식이 알려지면 따라서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시간으로 지갑 변동 내역을 추적할 수 있는 코인 시장에서는 그런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매일같이 큰손 투자자들의 지갑 변동 내역을 살피는 이들만 상당수 있을 정도.
‘그런 코인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의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지금의 테리아 - 루나의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건 기존 투자자들이 루나를 팔지 않고 버틸뿐더러 계속해서 신규 투자자들이 유입되기 때문.
하지만 매도 물량이 쏟아져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시장에 퍼진다면?
신규 투자자들의 유입이 씨가 마르는 건 물론 기존 투자자들도 예치해 놓은 코인을 팔려고 서두를 거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가격은 고작해야 8만 개의 비트코인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을 거고.
‘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루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소리네.’
그렇다면 공격을 해야 할까?
일차적으로 생각하면 백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볼 수 있을 테니 하는 게 맞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느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잘나가는 코인이지만 근본이 김치 코인인 만큼 루나를 들고 있는 한국인 투자자들이 많아서도 있고.
‘그래도 루나 정도의 시총을 지닌 코인이 폭락해 버리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테니까.’
거래소의 오너인 내가 오히려 암호 화폐 시장의 전체적인 폭락의 포문을 열게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 * *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뭐, 엄밀히 따지면 펜이 아니라 노트북이긴 하지만 여하튼.
탁- 타닥 타다닥-
한동안 손을 못 대고 있던 <황혼의 기사>의 원고.
나오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이 바빴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잘 쓰고 있다가 갑자기 코로나가 터져 버리다 보니.’
그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 탓에 글에 집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백신 개발도 서두르고, 투자 관련 사항도 실시간으로 살펴야 했고, 스웜이나 SCP 관련해서도 내 결정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원래라면 다른 이들이 대신했을 일들도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매일마다 급변하는 탓에 최종 결정권자인 내 오더가 필요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는데.
-FUCK! 글 내놓으라고!
-글 안 씀? 글 안 씀? 글 안 씀?
-헤이. 우진. 난 네가 여러 사업적 영역에서 이뤄 내는 성과를 무척이나 리스펙해. 너만큼 대단한 사업가나 투자자가 다시 나오기도 힘들겠지. 하지만 너만 한 작가도 그렇다는 걸 좀 깨달아 주지 않을래?
-<황혼의 기사> 집필 소식을 듣고 밤잠을 설치던 때가 기억나네… 아직도 안 나온 덕분에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치고 있어.
-1권 나올 때까지 숨 참는다던 내 친구는 이미 죽었어. 어제가 사망 2주기라 무덤까지 갔다 왔다고 lol
개인적으로는 그간 <황혼의 기사>를 기다렸던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
루덴 대륙 시리즈를 모두 마무리하는 의미로, 그간 이 이야기를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의미로 글을 써 보자며 처음 시작했던 글이 이제 와서는 그들을 가장 괴롭히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너무 기다리게 하긴 했어.’
하지만 원래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특히 글이란 건 더욱 그랬다.
가끔은 좋은 글을 쓰려고 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안 좋은 글이 나올 때가 있다.
탁-
“…음.”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지 않을까.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뭘 써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
쓸 때는 괜찮은 것 같다 생각하며 썼는데, 다음 날이 돼서 다시 살펴보면 그다지 와닿지가 않았다.
“여행이나 가 볼까.”
지난 1년간 무척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그 때문인지 요즘은 예전보다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사실 오랜만에 글을 잡은 것도 그걸 환기하려는 목적이 컸다.
한데, 정작 그런 글이 또 내게 부담감을 주고 있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여행을 못 다니기도 했고.
“에드, 바로 떠나죠.”
돈이 많다는 건 언제나 좋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욱 좋았다.
바로 전용기를 공항에 대기.
공항에 가는 동안 어디로 떠날지를 물색했다.
“그랜드캐니언으로 가 보죠.”
미국을 왔다 갔다 한 것도 십수 번이 넘는데.
정작 관광지를 돌아다닌 적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자유의 여신상도 뉴욕에 네 번째쯤 갔을 때나 겨우 보고 왔을 정도.
그런 만큼 그랜드캐니언을 가 보기로 결정했다.
* * *
그랜드캐니언 투어는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특히 인디언 구역에 위치한 앤텔로프 캐니언.
모래가 빚어낸 사암 협곡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빛과 색깔, 그림자 형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을 몇 시간째 지켜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인디언 거주 지역인 나바호를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도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서 그런가.
마음에 여유가 절로 생기는 기분이었다.
“보스, 안 힘드십니까?”
“그럭저럭요. 에드는 힘든가 보죠? 근육이 하도 많으셔서 슬슬 힘들어하시는 것 같은데.”
“하하. 설마요.”
보통의 배낭 여행객들이 그러는 것처럼 커다란 배낭과 함께 사막을 걸어 보기도 했다.
사막을 걷다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보면 그 근처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여러 대비를 한 만큼 완전히 자연과 맞서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도심을 돌아다니는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상을 느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사이로 오렌지 빛 석양이 넘실거리는 걸 지켜볼 때의 기분이란.
신발 속 모래를 계속 털다가 결국 포기하고 그대로 끌면서 걷기도 하고.
저물녘이 돼 점점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갖고 온 노트북을 꺼내 들기도 했다.
“반가워요.”
“음. 당신 얼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놀라운 건 인디언들도 나를 아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는 것.
내가 너무 유명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그러던 와중.
[보스,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크레이그로부터 받게 된 연락.
[도권이 트위터를 통해 자기 포지션을 공개했습니다.]
“음. 설마 자기네들이 갖고 있는 비트코인이 얼마인지 공개했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맞는데요?]
순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진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네 약점을 제 스스로 까발렸다는 건가?
일전, 크레이그와 얘기했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퍼거슨 감독의 명언도 함께 말이다.
Sir. 알렉슨 퍼거슨 왈.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내가 공격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무너지게 생겼는데?’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암호 화폐 시장을 폭락시키는 건 양심이 좀 찔리지만.
이미 벌어지게 생긴 거 그 과정에서 수익을 거두는 건 괜찮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