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야수의 심장
[@CitronReasearch]
[공매도 연구를 중단하겠다. 시트론 리서치는 더 이상 숏 보고서를 내지 않을 것. 우리는 앞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으로 몇 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트위터에 올라온 시트론 리서치의 항복 선언.
앞으로 공매도보다는 롱 포지션 추천으로 사업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소리였다.
“시트론의 항복이 생각보다 빨랐네요.”
“하하. 그럴 수밖에요. 보스께서 나서시는데 안 그럴 곳이 어디 있을까요.”
“로빈후드도 진작에 매수 버튼을 활성화했다죠?”
“예. 아무래도 시타델 헤지 펀드가 철회 지시를 내린 것 같습니다. 소송 문제도 있고… 결국 승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요.”
으음.
왠지 모르게 신나 보이는 제이슨.
이번 게임스탑 사태에서 공매도 기관들을 제대로 털어먹자는 지시를 내리자 눈을 빛내기도 했던 제이슨이다.
가만 보면 헤지 펀드들 엿 먹이는 거 참 좋아한단 말이지.
‘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고작해야 일주일.
언론에서는 이 일주일을 두고 ‘The Wild Week’, 미친 일주일이라 부르고 있던데.
미친 일주일이 끝나고, 그다음 일주일은 아마 몇몇 기관에게 있어 지옥의 일주일이 아니었을까.
결국 다가온 공매도 상환일.
숏 커버링을 위해 게임스탑에 공매도를 때렸던 기관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스탑의 주식을 사서 되갚아야 했다.
[GME - 943.71$]
그렇게 게임스탑은 결국 900달러를 넘겨 버렸다.
반년 전 같은 날짜와 비교해 보자면 약 200배의 폭등.
20배가 아니라 200배다.
물론 게임스탑의 주가가 언제까지나 천장을 뚫고 있던 건 아니다.
공매도 세력이 감당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고, 나도 매도 물량을 받아 내지 않고 팔아 치웠으니까.
[GME - 729.78$]
[GME - 621.16$]
[GME - 543.17$]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던 게임스탑의 주가.
하지만 내려가는 건 더욱 빨랐다.
거의 초 단위로 주가가 수십 달러씩은 빠졌다.
그렇게 결국…….
[GME - 127.57$]
950달러 가까이 갔던 게임스탑이 120달러로 떨어지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사이에 우리는 갖고 있던 물량을 대부분 처분할 수 있었고.
‘한 650억 달러쯤 된댔지.’
SW 매니지먼트가 이번 사태 동안 거둬들인 총수익은 650억 달러가량이었다.
멜빈과 시트론 등 여러 헤지 펀드가 본 손해는 900억 달러가 넘어가지만, 나만 롱 포지션을 잡은 게 아니기에 저 정도의 수익이 나온 것.
‘개인 투자자들도 있고, 나 말고도 롱 포지션을 사들인 기관들도 몇 군데 있었지.’
이런 게 월 스트리트의 무서운 점 아닐까.
분명 개인 vs 기관의 싸움으로 시작했던 게임스탑 사태가, 결국에는 기관 vs 기관으로 귀결되었다는 게.
물론, 그렇게 안 나눠 먹고 나 혼자 과실을 독식할 수도 있었다.
취득한 게임스탑의 주식을 가지고 매도와 매수를 반복하면서 엄청난 변동성을 준다면 나 이외의 롱 포지션 기관들은 물론, 숏 스퀴즈를 기대해 게임스탑을 사 모았을 개인 투자자들이 모두 털고 나갔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큰 수익일뿐더러, 그렇게 되면 내가 게임스탑과 개미들 털어먹으려 한 기존 헤지 펀드들과 차이가 없지 않나.
나도 한때 일확천금을 꿈꾸고 게임스탑을 샀던 사람으로서, 결국 대부분에게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나는 결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공매도 세력 파산 가시화!]
[숏 커버링으로 수백억 달러를 날린 헤지 펀드들, 투자자들의 원성 쏟아져.]
[멜빈 캐피탈 “우리의 패배… 투자자들에게 죄송할 뿐.”]
[시트론 리서치 사실상의 항복 선언… 200억 달러 넘는 손실.]
-To the moooon-!
-우리가 결국 해냈어!
-우리? 선우진이 해낸 거지
-그가 우리의 신이고, 우리는 그의 신도인데 뭔 차이가 있지? 우리가 해낸 거나 마찬가지라고 lol
-누가 해낸 거든, 결국 헤지 펀드 새끼들은 제대로 엿을 먹었지 hahahahahaha
-서브프라임 때 우리 집은 제대로 망했었지. 내 어린 시절을 엉망으로 만든 건 금융가 놈들이었다고 haha 결국 우리가 그놈들을 제대로 한 대 때려 준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WSB 서브레딧을 살폈다.
마치 축제라도 일어난 것 같은 분위기의 서브레딧.
이곳 외에도 온갖 투자 커뮤니티를 들어가면 다 게임스탑의 얘기뿐이었다.
레딧뿐만 아니라 한국의 투자 관련 갤러리, 혹시 몰라 살펴본 중국과 일본 등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전 세계적인 사태이긴 했지.’
[공매도 세력 완패… 게임스탑, 전 세계 금융 역사를 뒤집다.]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건! 선우진은 또 한 번 헤지 펀드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GME 사태, 가장 유명한 밈(meme)스탁이 되다.]
실제로 게임스탑 사태를 두고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었다.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일본, 중국, 유럽 각지에서 나왔던 기사들.
거기에 글로벌 유명 인사인 나까지 참전했다는 소식이 겹쳤으니.
각국의 9시 뉴스 같은 곳에서 게임스탑 소식을 며칠 내내 보도했을 정도였다.
‘흐음…….’
그러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게임스탑의 주가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까요?”
“3~40달러까지는 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작년보다 두 배는 더 되겠네요?”
“예. 아무래도 게임스탑이라는 기업 자체가 전보다 몇 배는 더 유명해졌으니까요.”
이번 사태로 게임스탑이라는 기업이 얻게 된 유명세.
거기에 원래부터 오프라인 소매점 중심에서 온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체제 전환을 꿈꾸고 있던 게임스탑이었다.
일단 지금 보유 주식으로 수익을 보고, 게임스탑의 주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때.
게임스탑이라는 기업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현 게임스탑 경영진의 보유 지분이 어느 정도 되죠?”
“저희에게 매도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갖고 있던 지분은 약 17%였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고점에서 그 물량 대부분을 매도했더군요. 지금은 8% 내외인 것 같습니다.”
8%, 경영진이 들고 있는 물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수치.
사실상 그들 대부분이 게임스탑이라는 회사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게임스탑의 한 주 가치는 엄밀히 따지면 20달러 정도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체재를 전환하려고 한다지만, 어쨌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 사업인 오프라인 소매업이 대부분 폐쇄되고 있는 상황.
사실 이번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위기를 맞이했을 기업이 바로 게임스탑이었다.
…하지만.
“게임스탑의 주가가 저점을 찍게 됐을 때, 지분 취득에 나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회사를 인수하시려는 겁니까?”
“네. 물론 50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때의 얘기입니다. 그 이상은 너무 오버 밸류니까요.”
이전까지의 게임스탑과 지금의 게임스탑이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과거의 게임스탑은 그저 20~40대 미국인들이 어릴 때 애용했던 비디오 게임 전문 소매점 체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게임스탑은 전 세계 사람들이 적어도 이름 한 번은 들어 본, 누가 봐도 게임과 관련된 글로벌 유명 회사였다.
물론 게임스탑이 갖고 있는 여러 자산의 가치는 형편없지만, 유명세라는 무형적 가치만큼은 엄청난 수준.
‘스팀은 몰라도… 에픽게임즈보다는 게임스탑이 유명해졌겠지.’
그런 게임스탑의 가치를 내가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론칭했던 스웜 게이밍은 아직까지는 클라우드 게이밍에만 국한된 서비스.
스팀과 에픽게임즈 스토어처럼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도 언젠가 론칭할 예정이었지만, 여러 문제로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은 이제 막 뜨고 있는 사업 분야다.
전체 산업의 이용자 수를 따져도 스팀이나 에픽 게임즈 스토어 등의 게임 유통 플랫폼 가입자 수의 1/100 수준.
그런 만큼 게임스탑이 이번에 얻게 된 유명세를 적극 활용한다면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의 전환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주가가 40달러까지 떨어진다치면 시총은 약 30억 달러. 절반을 확보한다고 하면 주가 상승까지 고려해 20억 달러 정도가 들겠지.’
게임스탑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전 세계에 그 이름을 광고한 거나 다름없었다.
슈퍼볼 광고가 30초에 700만 달러인데.
그 300배의 효과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거다.
심지어 게임스탑은 단순히 유명세만 얻어 낸 게 아니다.
기관과 개인 투자자 간의 싸움으로 시작돼, 결국 개인들이 이겨 낸 이번 사태의 상징이 바로 게임스탑.
거기에 게임스탑이 기존 북미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갖고 있던 ‘게이머들의 성지’ 이미지가 겹치며 이번 사태는 개미들의 승리이자, 게이머들의 승리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걸 내가 가져오는 것인 데다가, 650억 달러 벌고 20억 달러 쓰는 거면 뭐…….’
괜찮은 거래이지 않나 싶었다.
* * *
이번 게임스탑과 함께 언급된 슈퍼 리치 두 명을 꼽으라면, 나와 일론 머스크일 것이다.
[@elonmusk]
-소유하지 않은 집이나 차는 팔 수 없는데 소유하지 않은 주식을 어떻게 팔 수 있지? 이건 헛소리이고, 공매도는 사기야
[Gamestonk!]라는 트윗에 이어 저런 트윗까지 올렸던 머스크.
그가 이번 숏 스퀴즈 사태에 꽤나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마 돈도 적잖이 챙겼겠지.’
쏟아지는 매도 물량을 받아 낼 때, 나 이외에소 수억 달러 가까이 게임스탑 주식을 사들이던 곳이 한 곳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매수 상황과 보유 상황을 WSB 서브레딧에 실시간으로 중계하기까지 하던데.
익명으로 올린 글이었지만 머스크를 잘 아는 나로서는 누가 봐도 머스크다 싶었다.
그 특유의 관종 심리와 찬양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
[@elonmusk]
Profile : #Tesla, #SpaceX, ‘#Bitcoin’
뭐가 됐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윗질에 꽤나 재미를 붙였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급기야 자신의 트위터 바이오에 비트코인 해시 태그를 추가하는 머스크.
[시장 흔드는 머스크 트윗… 게임스톱 이어 비트코인도 급등.]
그 효과인지 한 시간 만에 3만 2천 달러에서 3만 7천 달러로 약 20%가 뛴 비트코인 가격.
[@elonmusk]
-(pic)
머스크는 그걸 또 캡처해서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고 있었다.
이것 봐라, 이게 나의 영향력이다 말하고 싶은 걸까.
뭐, 이유가 어떤 게 됐건 간에, 일련의 모습을 보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머스크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재미가 들린 게 아닐까.’
게임스탑의 폭등은 단순히 내가 일으킨 게 아니다.
WSB의 투자자들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게임스탑 사태를 보고 큰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뛰어들었던 수많은 개인 투자자.
거기에 더해, 자신은 이번 게임스탑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투자해 큰 소득을 버는 걸 보았을 여러 투자자.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고.
남이 급등주로 돈 버는 걸 보면 자신도 따라 하고 싶은 법이다.
‘게다가 게임스탑 말고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상승한 주식들이 엄청 많았지.’
테슬라도 그중 하나.
엄청난 시총을 자랑하면서도 두 배 가까이 오른 애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1년 사이 수백 퍼센트가 오른 여러 급등주는 말할 것도 없고.
‘한번 투자의 맛을 본 사람들이 계속 참을 수 있을까?’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단순히 게임스탑으로 2억 3천을 모두 잃었던 게 아니다.
2억을 넣었던 게 3억 5천이 됐다가, 3억이 됐다가, 결국 더 떨어져 1억이 됐다가.
그렇게 반 토막이 됐을 때쯤 손절했고, 남은 1억 언저리의 금액을 또다른 급등주에 박았다.
‘남들 다 벌고 떠났는데 나만 못 번게 억울했으니까.’
이미 급등주의 맛을 알아 버리면서 탐욕에 휘둘리게 된 거였다.
그렇게 급등주들을 잔뜩 사들이고, 결국 모두 잃고 말았었다.
‘비트코인은 지난해보다 엄청나게 올라 있지.’
머스크의 트윗으로 3만 7천 달러가 됐다가, 지금은 3만 5천 달러를 유지 중인 비트코인.
그 외에 다른 알트코인 중에는 지난해보다 3~4배는 가볍게 오른 것이 많았다.
요즘 들어 다시 온갖 커뮤니티에 [코인으로 번 돈 인증 ㅋ] 하면서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참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라면 몰라도, 과거의 나는 절대 그러지 못했을 거다.
‘이제부터는 내가 모르는 미래야.’
더 이상 예전처럼 미래 정보에 의지할 수는 없다.
내가 지금 예상하는 것처럼 비트코인이 엄청나게 치솟을 수도, 반대로 폭락할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탐욕은 끝이 없지.’
지금까지 여러 투자를 해 오면서 봐 왔던 하나의 진리.
문득, 미래 정보가 아닌 내가 지금껏 봐 온 사람들의 탐욕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 가상 화폐에 투자한 자금을 더 늘려야겠어요.”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 말입니까?”
“지금까지의… 10배? 일단 그 정도면 되겠네요.”
야수의 심장.
오랜만에 그걸 발동시켜야 할 순간이었다.
돌아가기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