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230화 (230/267)

230화 게임스탑

사실 TSMC나 오성, MK에게 미국의 반도체 지원금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돈이다.

그만큼 메모리, 비메모리 가릴 것 없이 반도체가 호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

[반도체 제조 기업들, 미국 보조금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 ‘세금이나 인허가 문제로 트집 잡힐 수도’]

[중국 우시 공장에서 D램 50% 이상 생산하는 MK 하이닉스, 미국 반도체법에 부랴부랴 대미 투자 준비 중.]

하지만 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지금 미국의 태도를 대충 정리해 보면 이러했다.

‘야, 받아.’

‘…그게.’

‘안 받으면 이제 미국에서 장사 못 함.’

‘…….’

‘받을 거지? 아, 우리 보조금 받아 가니까 중국하고도 이제 빠이빠이 해라?’

사실상의 반협박.

이럴 때는 자신들이 세계 최강대국이자 패권국이라는 걸 제대로 사용하는 미국이었다.

“…선 대표님의 제의가 없으셨다면 오성도 큰 곤욕을 겪을 뻔했군요.”

“예. 아무래도 온갖 독소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아,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그런 조항들을 넣으라 한 건 아닙니다.”

물론 거기서 오성전자는 조금 예외다.

나와의 합작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법에 포함된 몇몇 독소 조항을 우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

그런데…….

“…예. 그렇겠죠.”

약간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리 답하는 박 회장.

몇 달 전 회장직에 취임한 그였다.

달리 말하면, 오랜 와병 끝에 박희건 회장이 별세하셨다는 뜻이었고.

코로나 사태로 가족장 형태로 간소하게 치러졌지만 나 또한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왜 내 말을 안 믿는 것 같지?’

SW 반도체에서 신설할 반도체 공장의 부지는 텍사스주 테일러시.

일단은 이곳에 앞으로 10년에 걸쳐 1,0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7곳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에 맞춰 방미 일정을 잡은 오성의 박 회장과 사담을 나누던 중이었는데.

이거 영, 박 회장이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다.

진짜로 미국에게 따로 그러라 내가 지시한 게 아닌데.

애초에 나 같은 일개 기업인이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의사에 관여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내가 어디 그 정도 힘이 있다고!’

이거 참 억울하다, 억울해.

물론…….

[‘한국인이 차리고, 한국 기업이 2대주주인 기업이 미국 기업?’ 민주당, 트럼프 행정부 맹비난.]

[SW 반도체는 벌써 미국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한다 밝혔다. 미국인을 고용해 미국의 산업을 키우는 회사가 왜 미국 회사가 아닌가? 트럼프, SW 반도체 관련 확고한 생각 밝혀.]

…그 정도 힘이 뭐 없는 건 아닌데.

진짜로 내가 추가하라 부탁한 조항들이 아니기도 했다.

내가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알아서 미국에서 넣었을 조항들이니까.

‘뭐… 8, 90년대 일본 팼던 것과 비슷한 거지.’

당시 미국이 동맹국이었던 일본을 대상으로 했던 제재의 수준은 지금 중동을 패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사실 미국은 어떻게 보면 엄청난 양아치 국가다.

상대 무역국이 동맹국이더라도 자기네들의 이익을 필요 이상으로 침범한다 싶으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러 제재를 가하며 기강을 잡곤 한다.

그것도 한번 팰 때 지독하게 팬다.

괜히 그때 한번 쳐 맞은 일본이 그 이후부터 워싱턴에 엄청난 돈을 뿌리는 게 아니다.

‘그래도… 중국에 비하면 착한 양아치지만.’

양아치인 건 미국과 중국 둘 다 마찬가지.

그런데 두 양아치 간의 차이가 있다.

한 놈은 그래도 이유가 있을 때만 때리고, 쳐 맞은 후 사리면 나중에는 ‘그래, 앞으로 잘하자’라면서 때렸던 놈을 챙겨 준다면…….

다른 놈은 이유 없이 일단 때리고 본다.

아니, 이유가 있긴 할 텐데 그걸 안 알려 주고 외국 기업들에게 말도 안 되는 태클을 걸고 보는 거다.

나도 그쪽 양아치 국가에서 사업할 때 그거 안 당하려고 온갖 애를 썼었다.

‘사드 배치 때문에 한한령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만 봐도…….’

당연하게도 앞놈이 미국이고, 뒤에 나온 놈이 중국이다.

‘아! 우리 일진은 착한 일진이라고요! 삥 뜯고 현금 영수증도 해 준다고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SW 반도체에 여러 편의를 봐줬지.

아무리 나와 트럼프의 밀월 관계가 이번 재선으로 더욱 돈독해졌다고는 해도, 이게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코로나 백신 덕분에 재선? 그게 뭔가요?

이런 스탠스로 입 싹 닫았겠지.

“SW 반도체의 지분 50%는 시장에 유통시킬 생각입니다. 일부는 유동 물량으로 흘러가고, 일부는 기관과 몇몇 대주주에게로 흐르겠죠.”

“알겠습니다.”

그래서 SW 반도체의 주식을 절반이나 유통 주식으로 돌리는 거다.

나머지 50%에서는 내 지분이 35%,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오성전자의 몫이 15%가 될 거다.

물론, 구글이나 다른 빅테크들이 그런 것처럼 내가 가지게 될 주식의 일부는 차등 의결권을 부여받은 클래스 B 주식이 될 거다.

일반 주식의 몇 배나 되는 의결권을 지닐 수 있는 것.

덕분에 내 경영권이 빼앗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아무리 미국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한다 해도, 이익까지 내가 독점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이익은 남들과 나눠야 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파워가 센 기업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건 아니다.

미국의 오랜 정치 가문, 금융사, 오일 머니로 미국 내 엄청난 영향력을 행세하는 중동 왕가 등.

조금 모자랄 뿐이지, 나 못지않은 권력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모두와 맞서 싸울 수는 없으니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최선.

그리고 편 먹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이익을 공유하는 거였다.

‘여기에는 민주당 쪽 인사들도 포함이지.’

SW 반도체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가 그리 강력하지 않은 이유.

저쪽에도 조만간 SW 반도체의 우군이 될 사람들이 있었다.

* * *

[SW 재단, 학교 법인 인수 완료했다 발표.]

[선우진이 인수한 대학교는? 한양대학교. 한양 법인에서 분리해 인수한 것으로 알려져.]

예전부터 추진한 적 있던 한국의 사립대학 인수를 끝내 마무리 지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처음 내가 SW 재단을 통해 사립대학 인수 의향을 밝히자 먼저 타진해 온 재단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인 곳이 한양대였다.

이공계 관련해서도 전통의 강자인 곳이기도 했고.

‘카이스트나 포스텍처럼 과학기술 관련 연구 중심 대학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물론 내가 필요로 하는 건 핵심 기술과 관련된 이공계 인재들이 맞다.

한국에서 고급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해 내 여러 테크 기업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것.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과학기술분야에만 집중하기에는, 내 첫 번째 직업인 ‘작가’라는 타이틀이 울게 될 거다.

엄청난 돈을 버는 와중에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집필 활동.

아마 앞으로 수십 년은 계속 글을 쓰지 않을까.

그런 만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계열들이 포함된 종합대학을 인수해야겠다 느꼈다.

거기에 내가 금융사도 몇 곳 갖고 있는 만큼 그쪽을 위한 인재도 필요했고.

[SW 재단의 학교법인 인수, 산학 협력을 통한 핵심 인재 안정적 확보가 목표인 것으로 해석돼.]

일찍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적 있는 오성의 경우를 참고했다.

인수 이후, 총장 직선제 폐지.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하게 하고, 내 사업체의 몇몇 인사를 그 이사회로 파견.

거기에 몇 개의 학과를 신설했다.

[반도체공학과, 인공지능학과, 미래모빌리티학과 등 6개 특성화 학과 신설한 한양대학교.]

-와… 저기 졸업하면 바로 선우진 사업체로 직행하겠네.

-기사 보니까 필름 스쿨도 만들었네? 아예 제대로 자기 배럭으로 쓰겠다는 뜻인 듯 ㅋㅋㅋ

-오성이 성대 인수하고 떡상한 것처럼 한양대 대학 서열 ㅈㄴ 오르겠네.

-ㄴㄴ 그래도 한국은 스카이임.

-언제적 스카이 ㅋㅋ 이미 설카포인데? 서울대는 몰라도 나머지는 따라잡을 거라 봄 ㅇㅇ

-오성이 인수하고 연고대 버리고 성대 가는 애들 생김? 오성도 20년 동안 못 한 걸 선우진이라고 가능할까?

-내가 지금까지 그 소리하다가 쪽 당한 놈들 한둘 본 게 아닌데 ㅋㅋㅋ

-ㄹㅇ 결국 선우진이 선우진 할 결말 아직도 모르는 놈들이 있네.

나도 단기간 내로 성과를 볼 생각은 없다.

애초에 앞으로의 수십 년을 보고 대학교를 인수한 거다.

그런 만큼 목표도 크게 잡았다.

‘베이징대, 싱가포르 국립대, 홍콩대, 도쿄대 등을 뛰어넘는 아시아 최고의 대학.’

예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왜 한국의 인재들이 해외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많은데, 반대로 해외의 인재들이 국내 명문대로 오는 경우는 적을까?

아시아권의 다른 대학들은 그렇지 않다.

홍콩대나 싱가포르 국립대 같은 경우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의 많은 인재가 앞다투어 진학을 한다.

저 멀리 중동에 있는 NYU-Abu Dhabi 같은 경우도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인재들을 모으고 있었다.

‘한국에도 그런 대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자국민들만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진학하길 원하는 대학을 말하는 거다.

물론 아시아 금융의 허브라고 볼 수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특수성 덕분에 그 나라들의 대학이 그런 역량을 갖춘 거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는 그 대신 내가 있지 않나.

…너무 자화자찬 같아서 조금 부끄럽긴 해도 내 여러 사업체가 홍콩과 싱가포르에 몰리는 글로벌 IB들에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하여튼.

‘오성이 성대에 매년 1,000억 원 정도를 지원한댔지.’

오성전자의 시총이 오늘자로 약 5,000억 달러다.

그나마도 4,000억 달러 정도였다가, SW 반도체와의 합작 뉴스 이후 며칠 내내 치솟아 그렇게 된 것.

오성 같은 구멍가게(?)도 매년 1,000억 원을 지원하는데.

[SW 재단, 10년간 3조 원 파격 투자 예정이라 밝혀. 그간 오성의 연평균 지원금의 3배.]

[연구 중심 대학 변신 노린다. 한양대 이사회에 새롭게 취임한 최영재 이사 “반드시 아시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 것. 최종 목표는 영어권 명문대에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 대학.”]

[“국내 최고 인재들이 의대가 아니라, 우리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게 만들겠다”라며 포부 밝힌 최영재 이사.]

국내 대학 서열을 아예 바꿔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경제 회복은 SW 바이오의 백신과 함께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에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

“이건 뭐야? 아! 나 틱톡에서 본 거 같아. 쏘-주! 맞지? 한국 술.”

“응. 한번 마셔 볼래?”

오랜만에 소주병을 꺼냈다.

돈을 벌게 된 이후, 주로 마시는 주종이 바뀐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끔은 소주를 찾곤 했다.

특히 맵고 짠 한식을 먹으면서 술을 마실 때 소주만 한 술이 없다 보니 그럴 때마다 애용했다.

“으으. 이거 뭐야. 엄청 맛없는데?”

하지만 오늘 소주를 꺼내 마시는 건 한식 때문이 아니었다.

괜히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

물론 소주 맛을 보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미카일라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소주는 딱히 기분 내고 싶을 때 먹을 만한 술은 아니다.

“좀 더 들어가서 자.”

“뭐 보는데? Reddit? 이거 내 남동생이 엄청 보는 건데.”

미카일라는 데이트한 지 반년 정도 된 호주의 여배우다.

뉴욕에 연극 학교를 진학하러 왔다가 나를 만나게 됐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말을 걸었다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보고 있던 건 레딧의 주식 서브레딧.

[r/WallStreetBets]

이게 바로 오늘 내가 소주를 꺼낸 이유였다.

U/DeepFuckingValue

-게임스탑 주식(GME)에 100% 숏이 올 거야.

-내가 작년 7월부터 말했지. 게임스탑이 3달러일 때부터 이 주식을 사라고.

└이 새끼 또 왔네.

└지겹지도 않냐? 1년이 넘게 꾸준 글 쓰는 것도 대단하다.

└그런데 잠깐만… 이 친구가 올린 유튜브를 봤는데 분석이 꽤 정확해 보이는데?

└정말로 주가가 폭등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어. 폭스바겐 때를 생각해 봐

‘…게임스탑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Those who are good at returningand regression are good at i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