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애플이 긴장함
코로나가 내게 무척이나 큰 기회가 됐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현금성 자산을 몇 배나 늘릴 수 있었고, 나에 대한 이미지는 물론,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까지.
여러모로 큰 수혜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데서도 이득을 보게 될 줄이야.’
요 몇 년 사이의 할리우드의 경쟁 구도를 설명하자면 대충 이러했다.
전통적이면서 지금도 엄청난 포스를 보여 주던 디즈니 VS 압도적인 자금력과 작품 선구안으로 빠르게 떠오른 신흥 강자 써밋-MGM… 그리고 고만고만한 그 외 기타 등등.
물론 그 외 기타 등등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할리우드에서 메이저 스튜디오 소리를 듣는 곳들이니까.
그저 마블과 스타워즈, 픽사와 월트 디즈니 등으로 무장한 디즈니가 너무 강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법사> 시리즈를 필두로 007, 마션, 라라랜드, 패러사이트, 보헤미안 랩소디 등 냈다 하면 박스 오피스 성적 10억 달러를 가뿐히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는 우리 써밋-MGM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사실상 할리우드에서 써밋-MGM, 이제는 거기에 폭스까지 추가된 우리와 경쟁할 곳이라고는 디즈니가 유일하다는 거였는데…….
‘알아서… 삽질을 해 주네?’
코로나19로 인해 할리우드가 마비되고 생긴 변화.
아니, 어쩌면 코로나와는 무관하게 그저 무능한 경영진들 때문일 수도 있다.
“써밋에서 새롭게 인력들을 채용하자고요?”
“예. 최근 디즈니… 특히 마블 스튜디오에서 나온 스태프가 많습니다. 거기 위쪽이 좀 문제가 많더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트렌트가 설명해 줬다.
초창기 멤버이자, 아이언맨 때부터 여러 작품에 총괄 프로듀서로 관여한 마블 스튜디오의 제작 담당 부사장.
최근에는 승진해 포스트 프로덕션과 VFX, 애니메이션 부분 사장직을 맡고 있다는데, 그녀가 문제라고 한다.
마블의 실세 중 실세로 본인의 지시를 잘 따르는 스태프들은 초고속 승진을 시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서 퇴출시킨다는 것.
심지어 마블 스튜디오와 디즈니가 가진 힘을 적극 활용해 퇴사한 스태프들이 아예 VFX 업계 전체에 취업을 못 하도록 압박을 넣는단다.
“어… 대체 그 지시가 뭐였기에 이렇게까지 한 거죠? 독선적인 상사가 조직 화합에 도움이 안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지시를 불이행한 거면 써밋-MGM에서 고용하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아, 그게 말입니다.”
트렌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블의 실세 중 실세라는 그 고위직 인사는 여성으로, 일찍이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사실 개인의 성적 지향이 어떤 것이건 미국,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 써밋-MGM에도 수많은 동성애자 직원이 존재했고, 임원급 인사 중에서도 여럿 있었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어떤 제작사를 가건 동일한 일.
회사 내에 그런 다양성을 가지는 게 작품 제작 등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블의 경우는 그게 조금 얘기가 달랐나 보다.
“음… 본인의 성향을 영화에도 적극 반영하려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PC가 핫한 키워드이지 않습니까. 그런 요소들을 넣으면 매출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갑질을 일삼는 것뿐만 아니라 마블의 여러 작품에도 일명 ‘PC질’을 강요한 것.
뭐… 나는 딱히 작품에 그런 성향을 넣는 걸 반대할 생각은 없다.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그리고 내 회사인 써밋-MGM이 추구하는 가치는 딱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직 재미.
재미만 있으면 그게 PC로 떡칠이 되어 있건, 갑자기 영화 중간에 닌자가 나타나 모두를 학살해 버리건 상관없다는 마인드다.
하지만 그래서 마블이 그런 PC주의를 적극 수용하고 재미가 있어졌냐 하면…….
[마블, Phase 4 매출 절반으로 줄어… 이전 6편 영화의 평균 15억 달러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흔들리는 마블 페이즈4? 평균 매출 7.7억 달러.]
글쎄,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당장 재미를 나타내는 가장 주효한 지표 중 하나인 매출부터 급락했기 때문.
세간에서는 타노스의 핑거 스냅과 함께 지성체 절반이 아니라 마블의 매출이 절반 사라졌다 놀리기도 한다.
‘뭐… 여기에 우리 영향도 있긴 하지만.’
내가 회귀하기 이전의 디즈니는 할리우드의 절대 강자였다.
슈퍼히어로 무비가 대세가 된 시대.
DC를 갖고 있는 워너가 잠시 반짝한 해도 있었지만, 수익성에 있어서는 디즈니를 따라갈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내놓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써밋-MGM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몇 년 전부터는 우리와 1위 자리를 두고 연일 다투는 상황.
그걸 보고 디즈니의 경영진들이 어떤 생각을 한 건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디즈니의 영화가 나오는 주기가 빨라졌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개봉도 안 했던 샹치는 몇 달 전에 야심차게 개봉했다가,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으며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극장에서 사라졌다.
나로 인해 일어난 몇 가지 나비효과 중 하나.
물론 긍정적인 나비효과는 아니었다.
픽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등을 앞세워서 어벤져스, 겨울왕국, 토이 스토리와 같이 냈다 하면 흥행하는 IP들은 이번에도 엄청난 수익을 거뒀지만.
그 외의 것들은 흥행을 하기는 했어도 기존 디즈니의 명성에는 썩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것.
뭐… 아무튼 간에.
“채용 진행하시죠. 마블에서 나온 인력들 말고도 요즘 할리우드 여기저기에 코로나로 실직한 스태프들이 꽤 많잖아요? 그중 실력 있는 스태프들도 꽤 있을 테니 써밋이 이참에 다 흡수하는 거로 하죠.”
남들은 투자를 줄이며 빨리 코로나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상황.
오히려 확장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핀란드에도 부는 선우진 바람… 글로벌 통신 기업, 노키아 선우진의 품으로. 인수 금액은 약 150억 유로로 추정.]
[‘스웜폰’! 정말 만들어지나? 노키아에 이어 32억 달러에 블랙베리 인수한 선우진.]
언론에 공개된 노키아와 블랙베리 인수 소식.
덕분에 이제는 선우진이 뭘 노리고 있는지 다들 알게 됐다.
GL의 MC사업본부를 인수한 것에 이어 노키아와 블랙베리까지 사들였으니.
사실상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 공개 인터뷰를 한 거나 다름이 없게 된 거다.
이런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곳이 있었는데.
“선우진이 제2의 애플이 되고 싶은 건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 강자 애플.
애플의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주제는 선우진의 스마트폰 시장 진출이었다.
“아무리 선우진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일이지. 구글과 MS의 경우를 생각해 봐. 괜히 픽셀폰과 윈도우폰이 실패했겠어? 아무리 자금이 많다고 해도 우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어. 아마존의 파이어폰은 말할 가치도 없을 테고.”
“나도 동의해. 우리가 수십 년간 쌓아 온 브랜드 가치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선우진의 스마트폰 진출 소식에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만들었던 빅테크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들 중 살아남아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구글 정도만이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픽셀폰을 계속 출시하고는 있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글쎄, 내 생각은 달라. 구글, MS, 아마존까지. 그 회사들의 이미지가 어떤지를 생각해 봐. 아마존은 물류 기업 이미지가 강하고, MS는 세상 아무도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늙어 빠진 공룡이지. 구글도 트렌디 함보다는 실용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고. 하지만 선우진은 어떻지?”
대중들이 애플을 그리고 아이폰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쿨해 보이고 트렌디 해 보이니까.
단순히 마케팅 비용을 때려 붓는다고 해서 얻어 낼 수 없는 이미지가 애플에게는 있었다.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아이폰의 역사가 만들어 낸 이미지.
“선우진은… 유니크하지. 그와 같은 사람이 미국에 또 누가 있지? 일론 머스크? 5년 전이라면 비슷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때, 이제 일론 머스크를 두고 혁신의 상징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나?”
하지만 그건… 선우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애플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회사를 여러 곳이나 가지고 있었고.
10년도 되지 않아 지구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된 사내였다.
투자에 손만 댔다 하면 매번 대박을 터뜨리고,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가 바로 선우진이었다.
게다가 스마트폰 시장을 떠나면, 선우진 만큼 새로움과 혁신의 상징인 사람도 또 없다.
지금 미국의 10대와 20대는 선우진의 SNS인 틱톡에 열광하고 있고, 그 이후의 세대도 모두 스웜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미국의 어린 여성들이 예전 비틀즈의 전성기처럼 열광하고 있는 BTS 또한 선우진의 SW 엔터 소속이다.
여기에는 선우진의 외모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튜브나 틱톡에 BTS와 함께하는 선우진의 영상이 뜨게 되면, 그 조회 수는 가볍게 몇억 회를 기록하지 않나.
달리 말하면, 선우진이라는 개인은 지난 10년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만이 가졌던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의 인기와 명성은 전성기의 스티브 잡스와 비견될 만했다.
그런 그가 스웜폰에 진지하게 도전한다면?
“적어도 처음 제품만큼은 대박을 터뜨릴 거야. 특히 10대들 사이에서라면 스웜폰을 두고 아이폰을 사는 게 구식으로 느껴지게 될 수도 있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CEO가 된 팀 쿡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 인사고, IT 업계의 거물이지만 그에게는 잡스와 같은 혁신적인 이미지는 없었다.
그저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의 경영 잘하는 CEO일 뿐이다.
“게다가 선우진에게는 AMD가 있지.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사도 갖고 있고. 메모리나 OS는 없겠지만, 그거야 다른 방식으로 대체가 가능할 거고.”
심지어 선우진은 유일하게 애플과 같은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로 통일된 생태계.
애플이 칩부터 시작해 하드웨어, OS, 소프트웨어 등 모든 걸 독자 개발하는 노선을 택한 것처럼, 선우진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미 관련된 기업을 여럿 소유하고 있을뿐더러, 맨땅에 헤딩까지 할 수 있는 자본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전 세계 기준 10억 명이 넘는 아이폰 사용자에서 오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애플이 성공시킨 독자 생태계를, 그는 몇 년 내에 비슷한 수준으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더욱 나은 측면까지 존재했다.
애플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애플 TV+, 아케이드, 북스 등의 엔터 쪽 사업.
그 시장의 애플, 즉 절대 강자인 게 바로 선우진이지 않나.
“틀림없이 선우진의 스웜폰은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거야. 스웜의 구독자가 몇 명인지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그 성장세도.”
“어쩌면 안드로이드 시장은 스웜폰으로 통일될 수도 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애플의 경영진들.
회의를 계속해 가면서 여러 대비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재밌는 점은 이런 저들의 모습이 지금까지 애플의 회의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들의 위치를 위협할 경쟁사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
그리고 그 말인즉슨, 그래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오성전자의 스마트폰… 애플이 보기에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스웜폰이 오성전자의 것보다 더욱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