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반도체 시장
“…….”
통화를 끝낸 트럼프가 의자에 깊게 몸을 뉘었다.
굳은 얼굴의 그였지만, 그를 잘 아는 측근들이라면 지금의 트럼프가 애써 제 기분을 숨기려 노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터였다.
“하하. 놀랍군, 놀라워.”
그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은 트럼프 타워 건물.
그의 사택 중 하나가 위치한 곳으로, 일전 후보 시절 선거운동본부가 있던 곳이라 도청 등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
덕분에 선우진과의 통화를 남들을 모두 물린 채 비밀리에 진행할 수 있었는데.
‘이럴 거면 근처에 대기시켜 놓을 걸 그랬군.’
통화를 끝내자마자 측근들을 다시 찾게 생겼다.
그 정도로 조금 전의 통화에 담긴 내용이 향후 있을 재선 여부에 중요한 키가 될 터였기 때문.
그렇게 그의 연락을 받은 측근들이 빠르게 트럼프 타워에 도착했는데.
“정말입니까? 코로나 백신 개발이 그렇게 빨리 가능하다고요?”
“허… 역시 Mr. 선이라고 해야 할지…….”
모두 모인 후 트럼프의 얘기를 들은 측근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의 임기도 어느덧 4년 차.
올해 11월이면 다시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벌써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가 꾸려지고, 재선을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백신 개발이었다.
어제자 기준 미국 내 확진자 수는 37만 명, 사망자는 1만 2천 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코로나 대확산으로 인한 여파는 단순히 인명 피해에만 그치지 않고 미국의 경제활동에 큰 충격을 남겼는데.
이번 달에만 2,400만 명의 노동자가 실직할 것으로 예상되며, 실업률도 1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실업수당 청구 건수만 벌써 660만 건에, 경제활동 중단으로 2분기 미국 경제가 30% 가까이 위축될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
그야말로 수십 년 내로 다시 없을 경제적 재앙이 미국에 닥친 것이다.
“코로나만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면 대선은 무조건 저희의 승리일 겁니다.”
“그다음 대통령도 저희 공화당의 차지가 될 확률이 높을 거고요.”
“게다가 운송비 등 몇 가지 비용만 제외하면 전면 무료라뇨? 그러면 백신에 책정됐던 예산안을 다른 복지 비용으로 돌려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미국인들의 삶이 힘들어진다는 건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정치권 사람들에게는 큰 기회가 된다는 소리였다.
누구라도 이 사태를 해결하는 이가 올해 연말에 있을 대선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추가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 또한 이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달 들어서 ‘초고속 작전’을 수립한 것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제약사를 지원하는 초고속 작전.
그 목표는 10월까지 광범위한 백신 공급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11월 대선이 있기 바로 이전 달, 백신 서프라이즈를 통해 재선을 용이하게 하고자 한 것.
하지만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은 초고속 작전이 수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부터 난항을 맞이했는데.
그들이 바라는 것만큼 백신의 개발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Mr.선의 말이 사실일까요? 화이자나 다른 글로벌 제약 회사들도 난색을 표했던 일 아닙니까?”
“닥터 막스 생각은 어떠십니까? 과연 수개월 내로 개발이 가능할까요?”
여러 글로벌 제약 회사의 개발 상황을 살펴본 결과, 10월 내로 안정성 높은 백신을 개발하기란 꽤나 요원한 상황.
물론, 언론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었다.
애초에 백신 개발에 실패한다면 어차피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WP)와 CNN 등의 친 민주당 언론에서는 연일 올해 1월과 2월 동안의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놓고, 코로나의 위험성을 간과해 사태를 더 키웠다 떠들어 대고 있는 상황.
그걸 반박해 내고, 행정부의 정책적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10월 내에 백신 개발과 생산이 가능하게 해야 했다.
단순히 그게 힘들어 보인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SW 바이오로부터 받아서 살펴봐야겠지만… 결국 모든 건 임상을 통해 알아봐야겠죠. 하지만 Mr. 선이 자신하는 만큼 백신의 성능이 충분하다면 FDA를 통해서 긴급 사용 승인을 내 임상 과정을 빠르게 건너뛸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SW 바이오는 신약 개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회사인데, 과연 백신의 성능이 충분할는지는…….”
트럼프의 측근 중 백신 개발 쪽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학협회 전 부회장 출신의 닥터 막스의 부정적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매우 합당했기 때문이었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등의 글로벌 제약사들도 백신 개발까지 최소 반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는 상황.
선우진의 자본이 함께한다지만 그래 봐야 신생 제약사에 불과한 SW 바이오의 백신 개발 성공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긴급 사용 승인을 통해 재선에 써먹었다가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네요.”
“예. 특히 안정성 부분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역으로 민주당 측의 공격 거리가 될 겁니다.”
혹은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거나.
만약 그런 경우라면 자칫하다가는 재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대선에서 참패하게 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단순히 백신 개발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안정성’ 높은 백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음, 너무 걱정들 말게. 내가 보기에 백신의 안정성에서 크게 우려할 부분은 없을 테니. 게다가 문제가 있더라도 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던 그때, 측근들의 회의를 지켜보던 트럼프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트럼프의 얼굴에는 SW 바이오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꽤나 엿보였는데.
‘허튼짓에 베팅 할 사람이 아니지.’
지난 몇 년간 지켜본 선우진이란 사람에 대해 트럼프 스스로가 무척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신에게 지금과 같은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터.
SW 바이오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것인 만큼 SW 바이오 백신이 수많은 부작용을 낳을 시 그 여파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선우진에게도 미치게 될 거다.
그가 지금까지 봐 온 선우진이라면 스스로 그런 일을 초래하지는 않을 터.
‘물론 그에 대한 보답은 톡톡히 치러야 하겠지만…….’
게다가 선우진은 이번 백신을 통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에 대한 대가까지 자신에게 요구한 상황이었다.
웬만한 확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상승장에 8천억 달러를 투자했댔나?’
요즘 들어 새로 생긴 주식시장의 격언 중에 그런 말이 있다고 했다.
선우진의 투자라면 일단 따라가고 봐라.
백신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서야 그 큰돈을 괜히 투자하지는 않았을 터.
대통령을 떠나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던 트럼프의 감이 지금은 그 격언을 따라야 할 때라 말하고 있었다.
* * *
뚝-
트럼프와의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마이크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수차례 확인을 했기에 자신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백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강조한 것.
‘그나저나… 이게 잘한 선택이려나?’
사실 조만간 있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여러 고민에 빠졌었다.
트럼프와 바이든.
둘 중 누가 승자가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근 2~3년 동안 바이든 쪽에 선을 대 놓은 거기도 하고.
하지만 항상 바이든을 제치고 트럼프를 재선하게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 한편에 쭉 존재했는데.
‘이만한… 대통령도 어디 없지.’
미국인이 아닌 내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바이든 중 진정으로 미국인에게 이득이 되는 대통령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둘 중 내게 더 큰 이득이 되는 쪽은 트럼프라 단언할 수 있었다.
우선 나와의 인연이 바이든보다 훨씬 더 깊다는 이유가 있었고.
‘이런 미친놈은 흔치 않으니까.’
아무리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외국인인 나에게 이만한 지원을 할 대통령은 트럼프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이유들로 트럼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밀자 결정한 것.
거기에 민주당 말고 공화당 인사가 정권을 잡는 게 기업가인 나의 입장에서는 더욱 좋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거나-
‘오성전자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됐네.’
내가 트럼프에게 백신을 대가로 요구한 건 바로 반도체였다.
다음 정권을 잡은 후 수백억 달러 수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수립할 것.
그것도 현재 AMD를 통해 진출한 팹리스 쪽이 아니라 반도체 제조 쪽, 즉 파운드리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파운드리 회사를 설립하는 게 승인 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 줘야 하고.’
사실 이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미 팹리스 쪽에서 AMD가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하며 퀄컴과 엔비디아의 매출을 거의 따라잡은 상황.
거기에 파운드리 회사까지 추가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을 터였다.
‘우선 자체 수요를 충족할 수도 있고…….’
SCP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수량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
초기에는 오성전자가 그걸 모두 충당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TSMC 등 다른 파운드리 회사에도 제조를 맡기고 있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만 매년 백억 달러 가까이 됐는데.
그게 몇 년째 지속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남들 배만 불려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만,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만큼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나라들에게 있어 민감한 사업 분야여서 이미 AMD를 갖고 있는 내가 파운드리 쪽에 진출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오성전자와의 파트너십을 갖추고 그것에만 만족해 왔던 거다.
‘하지만 이번 백신을 통해 트럼프를 다음 대 대통령으로 만든다면?’
그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 여러 승인 절차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게 어느 정도 미국의 이익이 되는 거기도 하고 말이야.’
현 파운드리 시장은 TSMC와 오성전자 등 미국 외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지금껏 파운드리가 아닌 팹리스 쪽에만 집중해 왔는데, 최근 들어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TSMC와 오성전자에 버금가는 ‘미국의’ 파운드리 회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 회사들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점점 오르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다음 대통령이 트럼프가 되건, 바이든이 되건 어차피 그쪽을 노리겠지.’
그런 만큼 다음 정권의 주인이 누가 되건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를 위한 여러 지원을 하게 될 거다.
수백억 달러 수준의 지원 정책부터 시작해 나아가 수천억 달러까지의 자금 지원 계획이 수립될 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트럼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든다면 그 지원 정책의 과실 대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반도체 시장을 완벽히 석권한다면 구글의 검색 엔진, 애플의 아이폰처럼 향후 수십 년을 먹여 살릴 먹거리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