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돈 복사 버튼
가장 먼저 상승한 건 제약 회사들의 주가였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동반 상승한 제약 회사들.
덕분에 나름 소소학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하루 만에 3억 달러.
아무리 요 몇 년 사이 돈에 대한 내 기준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억 달러 정도면 꽤 큰 금액이라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만큼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황밍 상무위원과의 통화가 있고 바로 다음 날.
[중국 질병 관리 본부,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인 것으로 확인.]
분명 며칠 전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말을 해 줬건만, 이제야 인정하는 중국 당국의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태국에서 중국 외 우한 폐렴 확진 환자 처음 신고… 국내 감염 의심자는 관련 없는 것으로 밝혀져.]
[태국에 이어 일본, 네팔까지? 급속도로 퍼지는 우한 폐렴. 우한 내 17명 확진 환자 추가 발생. 현재까지 확진자 수 60명대.]
이제 중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확진 환자가 신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빠른 대처를 보여 주고 있지 못하는 중국.
현재 확인된 확진자라고는 고작해야 60명 남짓에 불과하고, 해외 확진자도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거로는 코로나19는 바퀴벌레와 꽤 닮아 있다.
조금은 불쾌한 비유지만 아무튼, 이미 집 안에서 바퀴벌레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 바퀴벌레를 잡는다고 해도 절대 그거로 끝이 아니라는 거다.
한 마리라도 눈에 띈 이상 이미 수십, 수백의 바퀴벌레가 집 안에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한시 확진자 추가 확인, 18일과 19일 각각 59명과 77명 확진 받아…….]
[한국 내 첫 우한 폐렴 확진자 발생, 접촉자 밀접 모니터링 중.]
하루가 다르게 중국 내 확진자 수가 늘어났다.
급기야 한국에도 확진자가 발생했고.
일전 제이슨과 윌리엄에게도 말한 적 있듯이 우한시는 중국 내 교통 요지였다.
중국 한복판에서 장강 교통로와 남북 철도가 교차하니, 한국으로 따지자면 마치 대전과도 같은 곳.
수많은 인구가 우한시를 거쳐 상하이, 베이징, 광둥성 등 중국 내 주요 지역으로 퍼지고.
그곳들에서 해외 여행객들과도 접촉하게 되니,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러니까 진작에 도시를 봉쇄하라고 했건만.’
물론 도시 봉쇄와 같은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2003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에도 사스의 높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도시 봉쇄와 같은 수단은 동원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내가 SW 바이오를 통해 제공한 자료들이 그럴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지 않았나.
초기부터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SW 바이오에서는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분석을 얼추 끝낸 상태였다.
물론 변이를 거치기 이전 초기 유형에 대한 것만 그런 것이고, 아직 백신 개발 또한 여러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그래도 위험성과 변이 가능성, 확산성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분석이 된 상태였다.
그런 자료를 중국 당국에 아낌없이 제공하는 것은 물론, 내가 알고 있던 미래 정보까지 더해 수차례나 경고했는데.
결국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더니, 지금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었다.
* * *
코로나19 사태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흘러갈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이상, 나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트렌트, 얘기는 들어서 알겠지만 지금 중국발 유행병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에요.”
[예. 바로 관련 대응 팀을 조직하겠습니다.]
우선, 써밋-MGM에 코로나19를 대비한 태스크포스 팀을 만들 걸 지시했다.
단순히 영화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관련 전문가 및 의료진들까지 초빙해 구성한 태스크포스 팀.
앞으로 포스트 팬데믹 이후의 제작 현장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제작은 당분간 포기해야겠지.’
아직 미국 내 확진자는 몇 명 되지 않지만, 대유행으로 번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분명 영화는 물론, 방송과 음악 등의 촬영 중단 조치가 내려질 터.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써밋-MGM 측에서 그간 나의 지시로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 놨다는 점이었다.
최근 2년 사이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무리를 하면서까지 영화 및 예능 프로그램 등의 촬영을 서둘러 온 것.
사실 극장에 개봉되고 인기를 끄는 영화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만큼 써밋-MGM과 같이 덩치 큰 제작사들은 영화 제작 및 개봉 등에 있어 면밀한 계획을 짜기 마련이다.
자칫하다가는 자기네 작품들끼리 서로 흥행을 방해하는, 제 살 깎아먹는 모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한동안 할리우드 제작이 중단되는 걸 알고 있었으니, 일정을 꽉꽉 채워 촬영을 서둘렀던 것.
그덕에 후편집 등의 과정만 거치면 당장에라도 개봉할 수 있는 작품들이 써밋-MGM에는 꽤 쌓여 있었다.
‘물론 개봉할 생각은 없지만.’
준비된 작품은 모두 스웜에서 독점 개봉할 예정이었다.
SW 프로덕션을 통해 국내에서 제작된 작품이나 영화가 아닌 드라마들을 제외하면 그간의 써밋-MGM의 블록버스터는 모두 극장 개봉 이후 시간이 지나면 스웜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쳐 왔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스웜에만 독점 개봉하려는 초강수를 두려는 것.
그렇기에 이런 계획을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써밋-MGM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다.
요 몇 년 사이 흥행 타율 70% 이상을 자랑하며 손만 댔다 하면 대부분 성공하는 제작사로 명성을 떨쳐 온 써밋-MGM인 만큼, 극장 개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전략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
하지만 그런 여론을 알면서도 강경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코로나 대유행 사태를 계기로 OTT의 중요성이 이전과 더할 나위 없이 커지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OTT들이 갑작스레 발발한 코로나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스웜 독점 블록버스터들의 공세로 코로나 이후로 새롭게 OTT에 유입될 이들을 대거 가져오기 위한 것.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관성이란 게 있어서 기존 쓰던 서비스를 쉽게 해지하지 않는 법이다.
“컴캐스트와 AT&T, 디즈니와의 협상도 서둘러 주시고요.”
[예. 걱정하지 마십쇼. 디즈니를 제외하고 다른 두 곳과는 이제 마지막 협상만 남은 상태입니다.]
그 외에도 훌루 인수를 서둘렀다.
미국 내 3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OTT, 훌루.
디즈니와 폭스, 컴캐스트 산하 유니버설, AT&T 산하 워너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플랫폼이었는데.
조만간 폭스 인수에 대한 반독점법 심사가 끝이 나면 훌루의 지분 30%가 내 소유가 된다.
그거야 이미 반 확정 상태이니, 나머지 지분도 모두 사들이려는 것.
코로나 팬데믹이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걸 모두 짐작하지 못하는 지금이 훌루를 사들이기 가장 좋은 적기였다.
현재의 훌루 가치는 약 150억 달러.
OTT 경쟁이 지금보다 심해지는 몇 년 후면 최소 5배는 넘게 뛰게 될 거다.
‘워너가 AT&T에 넘어간 게 다행이야. 기존 경영진들과 달리 우리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까.’
게다가 AT&T에서는 자체적으로 HBO 맥스라는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여러 회사의 합작 플랫폼인 훌루에는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으니, AT&T에서도 지금 훌루의 지분을 적정가에 넘기기 좋은 시기라 판단하고 있을 거다.
채무도 많은 기업인 만큼 지분 매각 대금으로 채무를 줄이고 싶어 할 테고.
그리고 이렇게 여러 준비를 진행하는 사이.
[우한 폐렴, 일주일 사이 전체 확진자 1,422명으로 급증…….]
[질병 관리 본부, 우한 폐렴 오염 지역 ‘우한’→‘중국 전역’ 변경 예정.]
[중국 자금성 40년 만에 문 닫아… 중국 전체 31개 성(직할시 4개·자치구 5개 포함) 중 30곳이 공공 위생 경보를 최고 단계로 높여.]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서킷 브레이커 작동한 중국 증시, 10% 넘게 폭락…….]
[홍콩H지수, 일주일 새 -13.24%. 검은 월요일…….]
중국 내에서 코로나가 심각하게 번져 나가면서 중국 증시와 홍콩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수십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풋에 베팅했기에, 그 몇 배가 되는 금액을 일시에 벌어들일 수 있었고.
‘이젠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막을 수 없겠지.’
중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경제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거다.
그로 인한 여파는 상상초월일 거고.
“오늘부로 필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내 밑에는 원격 근무 체재를 진작에 도입하고 있던 사업체들이 많았다.
내가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의 지분을 25%나 갖고 있는 만큼 적극 활용해 왔던 것.
언젠가 다가올 코로나로 인해 벌어질 언택트 시대에 대한 준비이기도 했고 말이다.
특히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퓨쳐 인베스트먼트는 언제라도 90% 이상의 원격 근무가 가능하도록 준비했었다.
이번 사태가 전례 없는 비극적인 유행병 사태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게 다시 없을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증시, 국채 금리, 달러, 유가… 뭐 하나 가릴 것 없이 엄청난 동반 폭락이 있을 겁니다.”
제이슨과 윌리엄과 셋이서 함께 한 화상 회의.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팬데믹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했던 적이 여러 번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확신에 가까운 말을 하는 건 또 처음이다.
그리고 저 둘은 내가 이렇게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인물들.
“공급과 수요 가릴 것 없이 다 무너지는 초유의 위기가 발생할 겁니다. 민간 소비는 물론 기업 투자가 전부 줄어들 테고요.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최악을 선보일 거고요.”
[엄청난… 역사적 대폭락이 있겠군요.]
[보스의 예상대로라면 대공황 시기와 비슷한 대폭락이 촉발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 정도의 위기가 찾아올까요?]
하지만 그런 둘로서도 쉬이 믿기 어려울 거다.
우한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하나가 대공황에 준하는 위기를 낳게 될 거라니.
“대공황만큼 길게 지속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단기적인 충격만큼은 그와 비슷할 겁니다.”
[…….]
급기야 조용해진 둘.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로 인한 여파에 대한 두려움?
아니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비슷할까?
“후우.”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간 여러 미래 정보에 의지해 큰돈을 벌어오며 많이 무던해졌다 생각했는데.
꼭 회귀 초반 비트코인으로 처음 수백억 원을 벌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동원될 돈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 모든 돈을 잃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돈을 벌게 될까……?’
도무지 그 결과가 상상이 안 되는 것에서 오는 떨림이었다.
“가용 가능한 2,400억 달러 모두… 진행해 주세요.”
경기 침체와 유가 하락, 금값 상승 등에 오랫동안 준비해 온 돈 모두를 베팅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