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후베이성에서의 연락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트럼프가 그랬다.
‘대단한 놈이네 진짜.’
일본 오사카에서 G20 정상 회의가 있던 게 한 달 조금 넘었다.
그때는 자유무역 어쩌고를 떠들었던 일본이 G20 정상 회의가 끝나자마자 입 싹 닫고 한국에 수출 제재를 가했던 게 트럼프한테 큰 감명이라도 준 걸까?
[결국 휴전 합의 파기한 미국?! 미국-중국 무역 전쟁 2차전 발발하나…….]
[3,000억 달러 규모 중국 수입품에 10% 달러 관세 부과한 미국.]
분명, 정상 회의 때 있었던 미국-중국 정상 회담에서 양국이 연말까지의 휴전을 합의했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8월이 되자마자 관세 부과를 시작한 트럼프.
역시 난놈은 난놈이란 말이지.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난놈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허. 대체 이걸 어떻게 예상하신 겁니까?”
“음… 생일이 지났거든요.”
“예? 생일이요?”
“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사실 나도 미중 정상 회담에서의 휴전 합의를 보고, 그간 트럼프의 마음이 바뀐 게 아닌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양국 정상끼리의 약속이다.
아무리 트럼프라 해도 이걸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깨 버릴까 싶었던 것.
하지만 며칠 전 트럼프에게 생일 선물로 비틀즈의 4명 전원의 사인이 들어간 앨범을 경매에서 낙찰받아 건네줬는데.
2016년 당시 트럼프가 직접 관여했던 대선 음악을 보고 택한 선물이라 그런가 무척이나 좋아하더라.
뭐, 수십만 달러에 달하던 낙찰가야 나한테도 그렇고 트럼프한테도 의미 없는 숫자이니 가격 때문에 좋아한 건 아닐 거고.
여하튼 선물을 주고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무역 전쟁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던 트럼프였다.
즉, 저번에 말했던 거에서 스탠스가 바뀌지 않았다는 뜻.
만약 바뀌었다면 넌지시라도 언질을 줬었을 테니 말이다.
“이번에는 충격이 그리 크지 않네요.”
“예. 1주일간 상해종합지수는 -7.2%, 다우지수는 -3.2%, 닛케이지수는 -5.4%입니다.”
다만 이미 한번 트럼프 맛을 제대로 봤기 때문인지.
예전과는 달리 미중 무역 전쟁의 재개가 세계경제에 그렇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물론 이건 내 기준에서의 얘기였고.
금융 시장에서 -3~-7% 정도의 급락세를 한발 앞서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치트키와도 같았다.
“음, 그럼 모두 정리해 보면…….”
“약 60억 달러입니다.”
단기간에 60억 달러를 손쉽게 획득.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수익은 무척이나 달달한 법이다.
거기에 저번 것과 이번 투자까지 합쳐 부가적인 이득까지 있었으니.
[이름값 하는 선우진… 올 분기 수익률 1위 ETF, 퓨쳐 인베스트먼트에서 차지.]
[수익률 1위부터 10위까지. 10개의 자리 중 7개를 차지한 퓨쳐 인베스트먼트.]
[역시 선우진이다?! 개인 투자자들 돈 싸 들고 퓨쳐 인베스트먼트로… 벌써 AUM 2조 달러 돌파해!]
게다가 순수 내 자산이 아니라, 남들 돈 받아서 굴리는 퓨쳐 인베스트먼트도 이번 분기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은 AUM을 늘린 자산 운용사가 되었다.
블랙록의 총운용 자산이 7조 달러 정도인데.
그 1/3 언저리까지 따라잡은 것.
지난 1년 동안 약 80%의 영업이익률로 다른 자산 운용사의 2~3배의 실적을 기록한 덕분이었다.
물론, 아무리 내가 퓨쳐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라고는 해도 저 2조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약간의 흐름 조정 만으로도 다른 펀드들을 활용해 크나큰 수익을 볼 수 있을 테니.
‘언젠가는 블랙록을 한참이나 뛰어넘고 20조 달러 AUM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단기로 빠르게 치고 빠지는 식으로 돈을 굴리지는 못할 거다.
나도 다른 자산 운용사들처럼 장기 투자로 자금을 굴려야 할 터.
하지만 그래야 하더라도 20조 달러를 굴릴 수 있게 되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뭐, 어쨌거나.
[“이제 미국에 더 이상 화웨이는 없다?” 화웨이와 70개 계열사에 대한 거래 제한한 미국.]
미중 무역 전쟁의 일환으로 이전 통신망에 백도어를 심었다 걸린 적이 있는 화웨이.
아예 대놓고 화웨이의 이름을 언급하며 숨통을 끓어 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미국이 가하는 제재가 강력했는데.
나하고 화웨이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터라 원래라면 강 건너 불구경 느낌으로 보기만 하면 됐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관련 있는 기업 중 하나가 화웨이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
[선 대표님…….]
“아. 구 회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화웨이 사용 금지 행정명령으로… GL U+가 큰일 나게 생긴걸요.]
바로 GL그룹, 정확히는 GL U+.
몇 달 전에 5G 주파수 할당이 끝나, SW 텔레콤을 포함한 4사 통신사 모두가 최근 망 공사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GL U+가 망에 들어가는 통신 장비 파트너로 택한 곳 중 하나가 바로 화웨이였다.
다른 통신사들은 오성, 에릭슨, 노키아 등을 쓰지만 GL만 홀로 화웨이 장비를 이용하는 것.
그런 만큼 이번 미국의 화웨이 저격 제재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물론 U+가 미국 통신업계에 진출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 GL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내수 시장 집중이 아니라 디스플레이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조준하고 있는 만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이렇게 미국에 밉보였다가는 자칫 예전 소련에 정밀기계 가공 제품을 넘겼다 대미 수출이 중단되어 엄청난 피해를 봤던 일본의 도시바 꼴이 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후우. 이게 참 마음이 그렇네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배상금을 안 받고 싶은데, 아시죠? 그러면 배임인 거.”
[예… 잘 알고 있습니다.]
SW 텔레콤은 기존 구축해 놓은 LTE 망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존 통신 3사 중 한 곳을 택해, LTE 망을 빌려 쓰는 계약을 맺었었는데, 그게 바로 GL U+였다.
그리고 당시 계약 조항에 따르면, 대여받는 통신망에 이번과 같이 해외 진출에 문제가 생길 시 GL U+에서 SW 텔레콤에 적잖은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SW 텔레콤은 다른 국내 이통 3사와는 달리 해저 광케이블과 스타링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까지 타게팅 하기 위해 넣었던 조항.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에릭슨이나 오성 쪽으로 통신 장비를 바꾸시죠? 아시잖아요? 자일링스 FPGA 기술이 세계 최고인 거.”
추가로 자일링스의 칩을 쓰는 에릭슨과 오성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저 두 기업이 내가 영업도 대신 해 주는 거 알는지 모르겠네.
* * *
타닥-!
요즘 들어 <황혼의 기사>를 쓰는 게 퍽 즐거웠다.
사실 <마지막 마법사>로 시작된 루덴 대륙의 이야기야말로, 내가 회귀 이후 가장 큰 신경을 쏟았던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신경뿐만 아니라 쏟아부은 애정으로 비교하자면 스웜이나 SW 프로덕션을 통해 엔터 사업을 키우는 거나, SCP를 통해 클라우드 시장을 석권하려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클 정도.
그렇기 때문일까.
그간 루덴 대륙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최종장인 <황혼의 기사>를 쓰는 게 즐겹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해.’
누군가 그러길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은 귀한 자식과도 같다 했는데.
자식이 없는 그리고 한동안도 없을 예정인 나로서는 그 의미가 아주 어렴풋이 이해될 뿐이었다.
하지만 <황혼의 기사>를 쓰면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약간의 슬픔만큼은 진짜였다.
무엇보다 <마지막 마법사> 주인공의 마지막을 내 손으로 써야 한다는 게 특히 그랬다.
‘그런 만큼 더욱 잘 써야겠지.’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
아쉬움을 뒤로하고 글에 집중해야 했다.
<황혼의 기사>는 <마지막 마법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글이었는데.
두 이야기 모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성장하는 성장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마법사>를 처음 썼을 때의 나와 <황혼의 기사>를 쓰는 지금의 내가 다른 만큼,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과거의 나였다면 지금처럼 쓰지 못했을 거야.’
몇 년 사이에 100권이 넘는 글을 썼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작가로서의 나도 그간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캐릭터를 살려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면에서는 <마지막 마법사>를 쓰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천지 차이였다.
요 몇 년 사이에 작가로서의 나뿐만 아니라 선우진이라는 사람 자체도 발전한 부분이 있기 때문.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을, 그것도 사람들을 다루는 위치에서 보아 왔다.
남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게 당연했다.
타닥-! 타다다닥!
그간의 삶을 통해 배운 것들을 최대한 글에 녹여 내고자 했다.
등장인물들의 매력과 개성, 그로 인해 생기는 글의 풍부함.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에 등장했던 영웅적 인물들의 현 모습을 다루는 데에 있어 그것들이 큰 도움이 됐다.
‘<찬탈자>의 완결 시간대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 그동안 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루덴 대륙 시리즈는 초장편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방대한 글.
그런 만큼 나오는 등장인물도 무척이나 많았고, 그중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들의 수도 상당했다.
하지만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에서 그렇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 주며 자신들을 각인시켰던 등장인물 대부분이 <황혼의 기사>에서는 그 끝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었으니.
글을 쓰는 데에 여러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생각나는 대로 쭉 쓰고 싶지만.’
“후우-”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간의 내 글 쓰는 방식대로라면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쭉 쓰는 것이 맞았다.
마치 영화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떠오르면 나는 그걸 글로 옮기면 되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황혼의 기사>는 선물과도 같은 글이니까.’
처음 <마지막 마법사>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그간 루덴 대륙의 이야기를 사랑해 준 독자들.
그들이 함께해 온 여정을 모두 마무리 짓는 최종장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내가 생각한 이야기는 이거니 알아서 보고 만족하시오’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독자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게 내 생각.
원래 독자들에게 맞춰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는 게 그간의 신조였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게 쓰고 싶었다.
‘아니지. 어떻게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게 바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글인 거니까.’
그동안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기나긴 그간의 여정을 함께해 왔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글을 쓴다는 게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이래서 용두용미가 그렇게 어려운 거겠지.’
최근에 본 드라마 하나도 그랬다.
스웜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된, 필리핀 현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는 한국인에 대한 드라마.
처음에는 꽤 괜찮은 후킹과 연출력으로 몰입도 높게 시작한 시리즈였다.
하지만 중후반부터 이상한 느낌이 솔솔 풍기더니, 후반에는 갑자기 초반부를 이끌었던 메인 캐릭터의 캐릭터성이 그대로 붕괴되며 허무한 결말로 끝이 나고 말았다.
완성본을 미리 받아 본 거였는데, 결말을 보고 각본을 직접 쓴 감독을 찾아가 재촬영을 위한 설득을 했을 정도였다.
뭐, 아무튼.
타다다닥-!
다시 글에 집중하기 시작.
앞으로 한두 달 정도는 다른 일에 신경을 끄고 집필만 할 생각이었다.
우우웅-
그렇게 열심히 작가 선우진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때.
마치 머피의 법칙과도 같이, 꼭 이럴 때면 방해하는 무언가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예, 여보세요.”
중국에서 긴급으로 온 전화를 받았다.
후베이성에 진출해 있는 SW 프로덕션의 지사장에게서 온 전화.
발신자를 확인하고 설마설마 싶었는데.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들이요?”
[예. 저번에 말씀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아직 2019년 9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몇 달 빨리 찾아온 코로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