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생일 알림이 뜸
짐 켈러와의 대화 이후, AMD 쪽에 말해 관련 설명이 적힌 보고서를 받았다.
‘그때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네.’
사실 보고서를 정독해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던 건 여차저차 해서 지미의 말대로 이번 새로운 칩셋 기반의 VM(가상 머신)을 SCP에 적용한다면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보다 50% 빠른데, 40% 저렴한 기능을 갖출 수 있다는 것.
그 외에 데이터 분석 워크로드를 대규모로 실행 가능하다든가, 의사 결정 방식을 재구성해 데이터 관리를 간소화할 수 있다든가, EDA 시스템을 통해 어쩌고가 가능하다든가 하는 건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떤 원리로 이게 가능한 건지를 이해하려면 나도 진짜 각 잡고 몇 주는 관련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사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결국 이 말 아닌가.
이번에 나온 3세대 EPYC 프로세서가 개쩔고, 그걸 기반으로 만든 가상 머신은 더 쩔고.
그것들을 설계한 짐 켈러와 그의 동료들은 외계인이라고.
‘그래. 회귀자도 있는데, 외계인이라고 없을 게 뭐야?’
뭐, 우스갯소리는 여기서 끝내고.
언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던 말.
오성의 박 회장이 했던 말로 기억하는데.
그때와는 지금이 시대가 달라진 걸 감안해 조금 고치자면, 천재 한 명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일 거다.
짐 켈러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 낸 칩셋과 가상 머신.
보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그것들을 통해 AMD는 물론, 클라우드 시스템에 적용해 창출할 수 있는 가치만 생각해 봐도 족히 100만 명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았다.
‘이렇게 쭉 클라우드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2~3년 내로 제대로 된 클라우드 게이밍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비디오 게임의 스트리밍 원격 플레이.
엔비디아, 닌텐도 등 많은 게임 회사가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클라우드 게이밍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정확히는 나오긴 나오는데 하나씩 어딘가 하자가 있는 서비스들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게 틀림없는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의 빅테크들도 몇 년 내로 클라우드 게이밍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 회사들이 뛰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그 이전에 제대로 된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를 출시해 그와 동시에 시장을 석권하는 것.
그러기 위한 준비도 차곡차곡 잘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클라우드 서버 구축을 위한 데이터 센터는 매년 수백억 달러는 족히 넘는 금액을 투자하는 SCP를 통해 충당할 수 있었고.
막대한 데이터 사용량에 따른 지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통신망을 구축할 준비도 모두 끝내 놨다.
바로 슬슬 위성을 쏴 올리고 있는 스타링크.
완성된다면 전 세계 어디서나 최대 속도 200Mbps의 지원이 가능하니, 클라우드 게이밍에는 차고 넘칠 거다.
‘이것들뿐만이 아니지.’
그 외에도 가상화 컴퓨터 사용을 위한 GPU를 AMD를 통해 개발하고 있었다.
SCP 클라우드 서버와의 최적화가 용이하도록 설계 단계부터 준비하는 것.
거기에 클라우드 게이밍은 서버에서 보내 주는 영상 및 음성 신호를 받아서 출력하는 것인 만큼, 최대 1440P와 120 FPS를, 결정적으로 레이 트레이싱까지 지원하기 위해 트위치도 열심히 기술 개발에 애써 주고 있다.
게임사를 여럿 인수한 것도 클라우드 게이밍을 위한 일환 중 하나였다.
기껏 기똥찬 서비스를 내놓고, 플레이 할 게임들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물론 제대로 된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을 만든다면 함께하기 위해 달려들 게임사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MS나 소니 등이 내 바람처럼 클라우드 게이밍을 포기하더라도, 자기네들 독점작을 허용해 주지는 않을 거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콘솔을 굳이 비싼 돈 주고 살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테니까.
‘뭐… 딱히 처음부터 이런 의도를 가지고 사업을 확장해 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간 내가 해 온 사업들이 클라우드 게이밍을 위한 최적의 준비가 되어 버린 것.
이래서 여러 빅테크나 재벌들이 문어발 사업을 하는 건가?
새로운 서비스가 필요할 때 그간 여기저기 뿌려 놓은 것들이 쓸모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웜과 연계한다면…….’
아직은 2억 명 남짓의 구독자 수를 가진 스웜이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될 거다.
현재 내 예상 목표치는 지금의 2배가 넘는 4억 명.
다른 OTT 서비스들과는 달리 중국 시장에도 진출한 스웜인 만큼, 전혀 무리가 아닌 목표였다.
그리고 가입자 4억 명을 바탕으로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그중 10분의 1만 가입해도 4천만 명이다.
4천만 명이면 현재 최신 플스인 플스4의 전 세계 누적 판매량과 맞먹는 수였고.
엑스박스는 비교할 거리도 못 됐다.
‘콘솔뿐만 아니라 게임용 고성능 컴퓨터 시장도 모두 죽겠지.’
그로 인해 AMD의 손해도 생기겠지만, 클라우드 게이밍 서버용 GPU와 CPU에 대한 수요로 메울 수 있을 테고.
으음. 이런 상황을 두고 뭐라고 하더라.
‘나 혼자만 수익 업?’
* * *
런던에 지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을 나와 집으로 향하다 지나가게 된 SW타운.
‘사람 겁나 많네.’
슬쩍 보니 이른 아침부터 SW타운 근처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는데.
‘건물을 또 하나 사길 잘했어.’
북적이는 인파 중 대다수는 SW타운에 속한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국내와 외국에서 찾아온 K-POP 팬들이었다.
다만, SW타운 쪽은 아니었고 바로 맞은편 건물에 인파가 몰려 있었다.
‘하도 케이팝 팬들이 찾아와서 직원들이 고생했었댔지.’
최근 몇 년 동안 BTS를 비롯해 SW 엔터에 속한 그룹들이 글로벌적인 히트를 치고 있었는데.
그것도 그냥 히트 수준이 아니라 초히트 수준이었다.
원래 내가 알던 BTS의 최정상 인기를 2년 정도 앞당긴 느낌.
여하튼 그 탓에 BTS가 속해 있는 SW 엔터 그리고 SW 엔터가 자리한 SW타운이 일종의 케이팝 성지가 됐었는데.
이게 응원하는 아티스트들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곳이라면 찾아가 보고 싶은 게 팬덤의 마음이다 보니, 찾아오는 팬들이 너무 많아 SW타운의 직원들도 출퇴근에 곤욕을 겪기 시작했던 것.
작년엔가 관련 보고를 받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SW타운 앞에 있는 건물 두 채를 사들였다.
팬들이 찾아오는 게 막는다고 막아질 일이 아니었으니 다른 방향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한 게 SW타운 바로 맞은편에 있는 ‘더 스웜’이라는 곳이었다.
더 스웜은 SW 엔터를 찾아오는 팬들을 위한 독립 공간으로 소속 아티스트 관련 전시, 굿즈 숍 등이 있는 복합 문화 공간.
아예 건물 두 채를 연결해 지은 공간 전체를 팬들을 위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 거다.
거기에 소속 아티스트들이 나서서 더 스웜 방문에 있어서 SW타운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니.
그 덕에 SW타운 쪽은 근처와는 달리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엄마, 나 왔어.”
오래 지나지 않아 도착하게 된 본가.
한국에 들어올 때의 루틴 같은 거다.
우선 본가에 들러 하룻밤을 보낸 후 내 집으로 향하는 것.
한국에 있는 날이 적으니 올 때마다 얼굴은 보고 가라는 부모님의 말 때문에 생긴 루틴이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본가 사용인분들도 일찍 퇴근시키고 가족끼리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아까 아침부터 골프 치러 나갔다. 너 오늘 오는 날이니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휴. 선약이라고 가야 한다는 거 아니니?”
“뭐, 그럴 수도 있지. 한국 들어올 거라고 그제 말했으니까.”
그리고 바로 식탁으로 직행.
런던에 있을 때 내 식사를 책임졌던 쉐프 중 한식 전문 쉐프도 있었다지만.
아무리 기똥찬 맛을 자랑해도 엄마 손맛이 주는 그 느낌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탓에 내 루틴에는 본가 직행 후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기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 밥 한 그릇 더 줘.”
그렇게 두 그릇을 뚝딱하고.
엄마랑 같이 스웜을 틀고 드라마를 보면서 떠들었다.
내 취향의 건 아니었고 엄마가 요새 빠진 드라마인 펜트하우스였는데.
“어우, 저 나쁜 년.”
“…….”
‘자극적인 게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네.’
이제 국내에서 드라마를 쓴다 하는 작가 중 70~80%가 모두 SW 프로덕션에 영입되어 있는 상황.
그덕에 별다른 내 지시 없이도 저렇게 인기작들을 알아서 끌어올 수 있었다.
“오셨어요? 어, 뭐야 같이 왔네?”
“오다 마주쳤다.”
“엄마, 딸 왔어.”
그리고 조금 지나서 도착한 아버지와 누나.
함께 저녁 식사를 가졌다.
오랜만에 넷이서 함께 가진 식사 자리.
이렇게 내가 들어오는 날이면 최대한 넷이 모두 모이려고 노력하지만, 저번에는 누나가 변시 준비하느라 바빠 셋이서만 먹었었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고, 들어간 로펌도 3대 로펌 소리 듣는 대형 로펌이었다.
하지만 들어간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퇴사 후 학부 선배가 차린 소규모 로펌에 입사했는데.
사실, 나 때문이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선우진 누나’라는 타이틀이 알음알음 알려진 터라.
로펌 내에서 특혜를 받는 데에 신경이 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
뭐 그래도 지금은 학부 때 선배, 동기 등이 속한 곳에서 일하는 거라 그런 거 없이 편하게 지낸대서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가족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밤이 되어 든 잠자리.
‘음. 이게 바로 소소한 행복이지.’
막 잠에 빠지려다가 든 생각.
생각해 보니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누나! 누나! 일로 와 봐!”
“…….”
“빨리! 급해!”
“아 씨. 왜, 뭔데?”
“불, 불 좀 꺼 줘.”
“……? 뭐 이런 미…….”
“어허. 누나 저번 달 카드값 많이 나왔더라?”
“…….”
달칵-
날 한번 째려보고는 불을 끄고 나가는 누나.
이게 바로 15년 전의 선우진이 보내는 복수다.
* * *
탁, 타다닥-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는 한동안 집필에 집중.
가끔씩 강주원이나 양 PD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집에만 박혀 지냈다.
최근 벌여 놓은 일들이 알아서 잘되고 있던 덕에 신경 쓸 게 없었던 것.
‘오랜만의 집콕이네.’
과거, 회귀 이전 집-작업실-집-작업실만 반복했던 시절이 떠오르는 기분.
글 쓰다가 막히면 게임 잠깐 했다가, 유튜브 잠깐 봤다가, 다시 글 쓰고.
그러다 또 막히면 배달 음식 시켜서 배를 채우면서 트위치나 스웜 등을 시청.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 오히려 <황혼의 기사> 진도가 더 잘 나가고 있었다.
우우웅-
그러다가 울리게 된 핸드폰.
알림을 확인해 보니 언젠가 맞춰 뒀던 일정 알림이었다.
곧바로 제이슨과 윌리엄에게 연락해 화상 회의를 가졌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셨죠?”
[그럼요, 보스.]
[보스도 잘 지내셨습니까?]
한국 들어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그동안 쭉 돈 많은 백수 라이프만 지내다 보니 둘과 얘기하는 것도 꽤나 오랜만의 일.
“음. 몇 달 전에 했던 일을 또 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그동안 제 지시대로 현금 비중은 잘 늘려 놓으셨죠?”
[물론입니다.]
돈 많은 백수 라이프를 잠시 멈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아까 전 울렸던 알림이 누군가의 생일 알림이었기 때문.
[@트럼프 생일 [email protected]]
‘생일 선물 비싼 거 해 줘야겠네.’
나의 영원한 친구.
차이나 머니와 함께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