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비슷한 돈을 범
매출액 약 80억 달러, 영업이익 약 9억 달러, 추정 기업 가치 약 820억 달러.
내 인수 이후 제대로 체질 개선을 해낸 AMD의 2018년도 실적 및 현 상황이었다.
[인텔 나와! 엔비디아 나와! 이제는 저렇게 말할 수 있는 AMD?]
[인수 후 겨우 2년. 무엇이 AMD를 이렇게 탈바꿈시켰나?!]
[선우진의 빼어난 용병술, 이번에도 빛을 발하다! 리사 수에게 무제한적인 지원은 물론 짐 켈러의 영입까지…….]
1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번 적자만 기록하던 AMD가 내 인수 시점 후부터 흑자 전환 한 건 물론, CPU와 GPU 산업에서 인텔과 엔비디아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여전히 업계 2위인 건 맞지만 1위와의 차이가 현격히 줄어든 것.
거기에 가상 화폐 광풍으로 거둬들인 엄청난 실적까지.
요 몇 년간은 그야말로 AMD의 해였다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없었는데.
“후우, 며칠 전에 누가 그러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CEO가 있다면 저일 거라고요.”
“…하하.”
정작 그 주역 중 한 명인 리사 수의 얼굴은 별로 좋지 못했다.
“뭐, 맞는 소리죠. 웬만한 오일 머니 펀드보다 돈이 더 많은 오너의 무제한 지원, 칩 설계에 있어서 자타 공인 1인자인 짐 켈러와 그런 그의 명성을 보고 AMD의 문을 두드린 수많은 인재 그리고 그에 따른 실적과 그 덕에 제가 받게 되는 어마어마한 인센티브까지.”
그래, 저렇게 말만 들어 보면 리사 수가 불평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 흠흠.
사실 왜 저러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음… 그런데 제가 지미한테 그쪽을 건드려 보라 말한 건 아니고, 걍 물어만 본 거거든요?”
“거짓말 마세요. 짐이 우진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요.”
일전 openAI라는 기업과 관련해 짐 켈러에게 질문도 할 겸 관련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분명 그때 챗봇 AI과 검색엔진의 결합에 대해 말했던 짐 켈러였는데.
우리의 괴짜 천재가 그 대화 이후 그쪽에 흥미를 가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리사 수가 말하는 것처럼 그때 나와 했던 질답을(분명 나는 정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지만) 짐 켈러가 일종의 오너가 내리는 사인으로 알아먹은 건 덤이었고.
그렇게 대화형 AI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그였고, 결국 그 분야에 홀딱 빠져 버리기까지 했는데.
‘스읍. 원래도 지미가 인텔을 나온 후 그쪽으로 빠졌던가?’
언젠가 세기의 천재가 AI 칩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를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원역사에서도 일어났을 그 일이 나로 인해 몇 년 더 앞당겨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게 날 보는 리사 수의 눈길이 그리 곱지 않았던 이유였고.
라이젠의 첫 설계자이자 지금도 라이젠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활동하며 AMD의 시장 점유율을 기존의 2배로 끌어 올리는 데에 과장 하나 없이 반 이상의 역할을 한 짐 켈러.
심지어 라이젠 3000의 출시가 올해 5월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CPU 칩 설계가 아니라 AI 칩 설계로 짐 켈러의 관심이 옮겨 간 거였으니.
‘그게 애초에 고용 조건이었어서 뭐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짐 켈러와의 계약서에는 관련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일제 위약금 없이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고, 자신의 프로젝트 참여 정도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즉, 할 수 있더라도 안 했겠지만 애초에 강제 수단도 없었다.
뭐, 여하튼.
‘그때의 대화가 그 의미였을 줄이야…….’
몇 달 전 짐 켈러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우진, 접니다.’
‘아, 지미, 오랜만이네요. 보니는 잘 지내죠? 보내 줬던 레몬청 잘 먹었다고 전해 주세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통화.
그래서 그냥 안부 전화인가 싶어서 별 특별한 말 없이 10~20분 정도 통화하다 끊었는데.
도중에 이런 대화가 오가긴 했다.
‘아! 이걸 물어보는 걸 잊을 뻔했군요. 우진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MS? 아니면 구글?’
‘제 목표요? 음… 아무래도 둘 다겠죠?’
‘둘 다라… 예, 알겠습니다.’
뭔가 모르게 비장한 느낌으로 답하던 짐 켈러라 똑똑히 기억이 났다.
아무튼 당연 그때 내가 둘 다라 한 것은 어차피 두 기업 모두 내가 이겨야 할 빅테크였으니 그런 거였지.
‘아니, MS의 빙은 물론 구글의 검색엔진까지 이길 생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고요, 아조씨.’
물론 저번 OpenAI를 두고 나눴던 짐 켈러와의 대화에서 그런 미래를 생각해 보긴 했다.
대화형 AI를 통해 구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검색엔진에서 구글을 이겨 버리는 상상을 했던 것.
하지만 아직 먼 미래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짐 켈러가 이렇게 첫 삽을 나 대신 떠 준 것이었다.
비록 짐 켈러 본인은 나의 선제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후우… 짐이 라이젠 3000에 끝까지 참여했다면 정말 역대급 시리즈가 됐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인텔의 턱끝까지 쫓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
“하하. 아쉬운 일이긴 하죠.”
그렇게 아무리 리사 수가 말해도 안 들어먹을 짐 켈러 대신, 어느 정도 원인 제공자인 내가 리사 수의 투정을 들어 주고 있는 거였는데.
‘확실히 지금이 인텔을 때려눕힐 적기긴 하지.’
작년 초 있었던 초대형 사고 CPU 게이트.
대부분의 인텔 CPU와 IBM의 POWER CPU 그리고 ARM 일부 아키텍처에서 몇 가지 중대한 보안 취약점이 발견된 사건을 일컫는 말인데.
2010년대 IT계 최대의 보안 이슈로까지 발전하며 상대적으로 취약점이 덜 발견된 AMD가 엄청난 반사이익을 보게 됐었다.
거기에 인텔의 CPU 공급량 부족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었으니.
조만간 출시될 라이젠 3000을 처음부터 끝까지 짐 켈러가 담당했다면 엄청난 결과물이 나와 그걸 통해 글로벌 CPU 점유율을 1.5~2배 늘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이 20% 조금 넘은 상태니 2배가 늘더라도 40%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CPU 시장에서 인텔을 이기는 것보다…….’
구글을 검색엔진 시장에서 이기는 것.
몇 배는 더 어렵겠지만 그게 몇십 배는 더 가치 있어 보였다.
* * *
며칠 후.
나는 나를 찾아온 또다른 손님을 맞이했는데.
“어서 오세오. 귀한 곳에 이런 누추한 분이……!”
“하하. 아닙니… 예?”
“농담입니다. 들어오세요.”
오성그룹의 박재용 부회장이 샌프란시스코 내 저택을 찾아왔다.
“와우. 대단한 경관입니다. 집안 내부도 무척 훌륭하고요.”
“천만 달러가 넘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그런데 박 부회장님도 이 정도 수준의 별장은 여러 채 갖고 계시지 않나요?”
“아버지나 어머니께 간간이 물려받은 게 몇 채 있긴 했는데… 지금은 다 정리했습니다. 쓸 일도 그렇게 없고 현금이 좀 필요해서요. 딸아이가 미국에서 쓰는 곳을 제외하곤 팔게 되더라고요.”
박재용 부회장은 그런 이유 외에도 자신 같은 재벌이 호화 별장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 여론이 좋지 않아서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선 대표님은… 하하. 참 부럽습니다. 본인의 재력을 과시하셔도 질시를 사지 않고 오히려 사랑을 받으시니까요.”
“저는 돈 많은 사람보다는 다른 쪽으로 먼저 알려졌으니까요. 그 덕분이 컸죠. 아! 그러면 제가 비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박 부회장님이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재벌이 될 수 있는 방법?”
“그런 게 있습니까?”
암 있고 말고.
박 부회장이 한다면 하루 만에 유튜브 100만 명을 찍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가볍게 아이폰 신제품 리뷰, 신라호텔 계산 안 하고 튀기부터 시작해서…….
‘(ㄹㅇ세계 최초) 갤럭시 뉴 시리즈 언박싱.’
‘말 사서 남 준 썰 푼다 ㅋㅋㅋ’
‘그가 청문회에서 웃참할 수밖에 없던 이유.’
‘오성 회장이 가면 줄 안 서고 T익스프레스 공짜로 탈 수 있다? 없다?’
나름 창작자의 혼을 불태워 짜낸 콘텐츠들이었는데.
“어… 음. 긍정적으로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비즈니스 언어로 해석하자면 완곡한 거절이라는 뜻.
아쉽네. 이거 진짜 대박이었을 텐데.
뭐 안 한다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현금이요?”
“예. 하하. 대표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 저도 대표님 따라 미국 증시에 투자를 좀 했습니다. 제 사재를 털어서요.”
그간 30% 가까이 오른 미국 증시었는데.
내가 언론에 처음 투자 의사를 밝혔을 때 바로 따라 들어왔다면 적잖게 벌었을 거다.
그런데 오성그룹 부회장의 사재는 어느 정도였으려나.
“물론 대표님만큼은 아니고요. 제 재산 대부분이 현금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래도 4,000억 원 정도 투자해서 50% 가까이 벌어들였습니다.”
4천억 원이란 액수는 조금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50%면 나랑 수익률이 비슷한데?
물론 규모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오, 잘하셨네요.”
여하튼, 저 말을 하고 난 이후 박 부회장의 얼굴이 꼭 칭찬을 바라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해 줬다.
실제로 좋은 수익률이기도 했고 말이다.
‘꽤 과감하게 투자했나 보네.’
레버리지 ETF라도 산 거겠지.
음, 아마 박 부회장이 이렇게 과감한 투자를 한 건 상속세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도 와병 중인 그의 아버지, 박 회장.
승계야 확정이니 그건 걱정 없겠지만, 그 승계에 따른 어마어마한 상속세는 꽤 큰 걱정거리일 것이다.
대충 계산해 봐도 약 10조 원 정도였으니.
‘10조 원… 큰돈이지.’
그 정도 현금 갖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아무튼.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 저도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대표님은 이번 투자로 벌어들인 게 대체 어느 정도이신 겁니까?”
“저요? 음…….”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정직이 내 신조 중 하나인 터라.
“흠흠. 현재까지는 600억 달러가 조금 안 됩니다.”
“…….”
* * *
[박재용 부회장, 사재 털어 미국 파생상품 시장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약 4,000억 원 가까이 투입한 것으로 보여.]
[예상 수익 최소 2천억 원? 오성그룹 부회장의 미국 증시 투자 연일 화제.]
[일각에서는 선우진에게 어드바이스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돼…….]
-ㅋㅋㅋㅋㅋ재용이도 미증 투자했네.
-와; 선우진한테 어드바이스;; 사실이면 ㅈㄴ 부럽네.
-사실은 아닐 듯. 오성도 쫀심이 있지 자기네들 전략실 놔두고 선우진한테 물을까.
-모건스탠리도 선우진 말 반대로 갈 때마다 매번 피 보던데, 오성 전략실이 뭐라고 ㅋㅋ
-여튼 박재용도 돈 ㅈㄴ 벌었겠네.
-ㅈㄴ가 맞나? 스읍… 선우진 때문에 현실감 사라져서 그런가 예상 수익 2천억 원이라니까 왤케 적어 보이지?
-(정보) 선우진의 뉴욕 증시 투자 예상 수익금은 현재까지 대략 550억 달러다.
-?????
-550억 원이어도 평생을 놀고먹을 텐데… 달러? 시발 ㅋㅋㅋㅋ 아니 ㅋㅋㅋㅋㅋ
-? ㄹㅇ?
-ㅇㅇ 더 높을 수도 있음.
-와… 와 씨…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걍 웃음만 나오네.
-(정보) 작년 한 해 오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약 58조 원이었다. 즉, 선우진은 3달도 안 돼서 작년 오성전자 영업이익보다 많은 돈을 번 거다
-ㅋㅋㅋㅋㅋ열심히 폰 팔아 봤자 뭐 하냐고~
-아ㅋㅋ 열받아서 박재용도 따라 투자한 거였네.
-ㅋㅋㅋ반도체, 스마트폰 ㅈㄴ 열심히 팔면서 사상 최대 실적 내놨더니, 옆에서 서류 몇 장으로 두 달 만에 비슷하게 돈 번 놈이 있네. 심지어 그놈이 자기보다 원래도 돈 더 많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