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산타와 미친놈
처음 시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규모가 합쳐서 40조 달러가 넘는다.
40조 달러와 비교하자면 수천억 달러의 현금도 고작 1~2퍼센트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그 정도로는 뉴욕 증시에 큰 영향을 주기 힘든 법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의 투자 선언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금액은 고작 수천억 달러가 끝이 아니었으니.
[선우진, “내년 미국 경제 낙관… S&P 500 연내 3,000 넘을 것이라 보고 있어.”]
[“기업 실적은 올랐지만, 주가는 떨어졌다.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이 주식을 살 타이밍이란 걸 알 것이다.” 확고하게 상승세 전망하는 선우진의 태도.]
“이 정도로 대놓고 발언한다고?”
“하긴… 지수가 너무 떨어지긴 했어. 9월까지만 해도 2,900이었던 게 지금은 2,400이잖아!”
“분명 골드만삭스랑 바클레이즈도 선우진과 비슷한 예상을 한 리포트를 내놨었지. 물론 저렇게 확고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웰스파고와 도이체방크, UBS도 내년 안에 3,000을 넘어설 거라 봤었고.”
사실 2019년이 되면서 몇 달 동안 쭉 하락세를 겪었던 뉴욕 증시가 반등할 것이라 예상하던 이들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대부분이 내년 증시에 대해 부정적인 리포트를 쏟아 내기는 했지만, 반대 의견을 내던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
그런데 거기에 선우진의 의견이 얹어지고, 그게 1,000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실제 투자까지 이어지기까지 했다.
월스트리트의 많은 이들의 의견이 앞으로 상승장이 올 거라는 것에 쏠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영향력.
그만큼 선우진의 그간 투자 행보가 월스트리트의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덕분이었다.
오하마의 현인 워렌 버핏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선우진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아예 없던 덕분이었다.
[모건 스탠리, 내년 박스권 장세 전망. “무역 전쟁 재발로 인한 실적 악화와 연준의 금리 인상 재개로 2019년에도 하락세 유지될 것.”]
[내년 증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리포트 발표한 RBC 캐피탈 마켓… “상승이 있더라도 일시적에 불과할 것.”]
하지만 그 반대의 의견을 쏟아 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곳 대부분이 이번 투자에서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퓨쳐 인베스트먼트에게 직접 옵션을 발행해 준 곳이었다.
기존 파생 상품 시장의 선물과 옵션을 모조리 사들이더니, 그것도 모자라 여러 은행에 직접 옵션 발행을 요청했던 것이다.
“대체 콜 옵션을 얼마나 사들인 거야?”
“아니, 선우진은 리스크 따위 생각 안 하는 거야? 포지션을 이렇게 일변도로 가져간다고? 그 정도로 확신한다는 건가?”
“우리가 선우진에게 발행해 준 옵션이 얼마어치지?”
처음에는 그저 혹시 모를 지수 상승을 대비하는 헤지 차원에 옵션을 매입하는 것이라 생각해 발행을 해 줬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적지 않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지수가 상승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더라도 보통의 투자자라면 적절한 차원에서 반대 포지션을 매입하거나 매도를 해 헷징을 하기 마련이다.
미래를 볼 수 있다거나 미래에서 온 게 아닌 이상 모든 투자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했고, 불확실성이란 곧 리스크를 말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진의 투자는 달랐다.
평상시에는 적절히 리스크를 나눠 가며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는 하지만, 이번과 같이 한 포지션에 모조리 때려 박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브렉시트부터 시작해 미국 대선, 가상 화폐 투자 등.
그리고 선우진은 그 모든 경우에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실패하지 않고 결국 엄청난 수익률을 보여 줬었고 말이다.
즉, 이번에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옵션이 전부 행사된다고 봤을 때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떠안게 되는 거야.”
“올해 가장 큰 상승장이었던 9월 기준으로는 약 80억 달러입니다.”
“허, 우리한테서만 옵션을 발행한 것도 아니니… 선우진의 예상대로만 된다면 월스트리트가 엄청난 손해를 보게 생겼군.”
선우진에게 옵션을 발행해 준 본인들이 그 대가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전, 브렉시트나 미국 대선 당시 선우진에게 수천억 달러를 털린 전적이 있는 투자 은행들.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선우진의 예상과 달리 내년에도 쭉 미국 증시가 하락세를 걷는다면 오히려 꽁으로 선우진의 돈 1,000억 달러를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예상을 더 믿다가 결국 틀리고 말아 선우진에게 돈을 헌납했던 전적이 몇 번이나 있다 보니 대비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는데.
“리스크 헤징 차원에서 우리도 풋 옵션을 좀 사들이자고.”
“지수 상승 ETF에도 베팅 좀 하고.”
그렇게 조금씩 뒤바뀌기 시작한 월가의 분위기.
결국 다우지수나 나스닥 종합지수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흘 늦은 산타 랠리… 아니, 선우진 랠리?]
[이변은 없었다. 이번에도 투자에 성공해 3일 동안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선우진.]
[다우존스 지수, 나스닥 종합지수, S&P 500 모두 4% 이상 동반 상승… 내년 상승 10% 웃돌 것이란 기대감 상승되고 있어.]
-와… 선우진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 겨우 한 명 투자했다고 쭉쭉 내려가던 게 상승세로 바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쟤가 천억 달러 박는데 어떻게 안 믿냐고 ㅋㅋ
-내가 투자 은행이어도 하락장 베팅하려다 멈칫할 듯 ㅋㅋㅋㅋ
-나도 롱 잡았다… 지금 레딧도 글코 투자 커뮤 가면 다 롱 잡으란 얘기뿐임.
-중국에서도 난리 남. 돈 많은 중국 따거 새끼들 선우진 무슨 행운의 화신으로 여기던데. 선우진 믿고 미국 증시 엄청 투자하더라.
-ㅋㅋㅋㅋ따거면 따거지, 왜 따거 새끼냐.
-돈 많으면 형이라 따거는 맞는데… 중국이라 짜증나서 붙임 ㅎㅎ;
-현명추.
-내년 증시 부정적 리포트 낸 놈들도 폭탄 목걸이 차게 하면 바로 스탠스 바꿀 듯.
-근데 이번에 투자 실패하면 선우진 제대로 쪽박 차겠네…….
-ㄱㅊ 1,000억 달러 쟤 기준 별로 안 큼.
-그건 맞는데 명성에 금 가는 게 엄청 크지 ㅋㅋ 지금까지 틀린 적 한 번도 없다가 이번에 이렇게 확언해 놓고 틀리면.
-어허! 아직도 이렇게 믿음이 부족하다니.
거기에 그 변화에 대한 소식이 기사화되면서 전 세계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다.
그렇지 않아도 선우진의 말을 듣고 상승장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에 기름이 부어지게 된 것.
특히 국내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해외 주식용 계좌를 새롭게 파는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간 선우진이 해외 증시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게 한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던 덕에, 안 그래도 매년 증가세를 보이던 해외 주식 거래액이 이번 계기를 통해 엄청난 급증세를 맞이한 것.
올해 11월까지만 해도 총 400억 달러 안팎이던 거래액이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가 되어 버린 것.
-가즈아!
-답은 미국 증시다! 찔끔찔끔 오르고 허구한 날 작전 휘둘리는 국내 증시 갖다 버려!
-우진 형님께서 좌표 찍어 주셨는데 안 드가는 호구 업제?
-ㅋㅋㅋㅋ 이제야 오냐. 난 진작에 투자해서 어제 이미 황올값 벌음 ㅇㅇ
-2만 원 벌고 좋아하는 거 보니 ㄹㅇ 소박하네…….
일명, 서학 개미.
원래보다 몇 년 빠르게 일어난 서학 개미들의 탄생이었다.
* * *
몇 주가 더 흘렀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던 나는 며칠을 한국에서 보낸 후 미국에 돌아와 시간을 보냈는데.
[다우지수 한 달 사이 10% 넘게 상승… 여러 금융사에서 연내 목표 지수 28,000 이상으로 상향 조정.]
[이번에도 적중? 아니면 그가 그런 흐름을 만든 것인가? 월스트리트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는 선우진의 투자 행보.]
[전방위적인 투자를 통해 20일 사이에 200억 달러가 넘는 이익을 거둔 선우진.]
그사이 미국 증시가 상승장을 맞이했다.
3주 남짓한 기간 동안 10%면 하락장에 베팅한 이들을 제외하곤 모두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20% 내외의 수익률을 거둬들이며 벌써 200억 달러 가까이를 벌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마이더스의 손, 선우진… 어쩌면 투자의 신일지도?]
[포브스 선정, 확고부동한 세계 부자 1위. 이번 투자를 통해 2위와의 차를 확연히 벌려.]
[애플의 작년 영업이익 약 700억 달러… 그 1/3을 3주 만에 벌어들인 선우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수익을 적극 공개했는데.
덕분에 원래도 높았던 유명세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특히 폭스 뉴스에서는 아예 내 특집 방송을 여러 차례나 방영하며 나를 정말로 ‘홀로 미국 증시의 흐름을 바꾼 투자의 신’처럼 포장해 주고 있는데.
‘래클런도… 아부가 심하네, 흠흠.’
사실 나는 지금의 내 영향력을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적잖은 기여를 한 건 맞지만, 고작 한 명의 개인이 마음먹었다고 세계 증시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나중이 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했다.
즉, 이번에는 시기가 잘 따라 준 덕분이 꽤나 강했다는 것.
애초에 올해 초부터 뉴욕 증시의 상승세가 시작될 게 아니었다면 나도 투자 초기에는 적잖은 손해를 봤을 거다.
뭐 결국에는 수익을 보긴 했겠지만.
‘하지만 진짜로 나 때문이냐 같은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지.’
결국 다른 사람들이 나 덕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진짜가 되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흐하하! 역시 자네밖에 없네.]
“뭘요. 제가 한 건 별거 없는데요.”
이대로라면 올 한 해 미국 증시가 꽤나 큰 상승장을 맞이하게 될 게 자명한 상황.
그동안 쭉 증시 부양책을 밀어 온 트럼프로서는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수차례나 미국 증시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말해 온 그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런 결과가 나오는 데에 일조한 게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인 나였으니.
이런 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겸손하기까지. 하하, 정말로 미국인이 될 생각이 없나? 보좌관에게 들어 보니 자네 같은 우수 인재는 한국에서도 복수국적이 가능하다던데.]
“…하하. 아, 으음.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게 미국 국적을 취득할 것을 권유하는 트럼프.
사실 이번이 두 번째다.
우수 인재 국적회복 제도는 나도 미처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된 건데,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에도 저런 제도가 있더라.
사회 각 분야에서 국익에 기여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를 대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해 준단다.
‘미리 알았으면 굳이 AMD를 간접적으로 인수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혹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인수하더라도 그 과정이 몇 배는 더 수월했을 거다.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인 만큼 후천적 국적취득자에게도 꽤나 관대한 면이 있으니까.
게다가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니고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출신에, 대부분의 사업을 미국에서 하고 있는 나는 보통의 미국 태생 미국인보다 훨씬 더 큰 우대를 받았을 거다.
결국 한국도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인재에게는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것처럼, 미국 또한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이에게는 한없이 친절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비슷한 일이 있으면 그때는 미국 국적 취득도 고려해 봐야겠네.’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수가 막히거나, 투자 규제 같은 게 걸릴 경우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볼 예정이었다.
어차피 한국의 복수국적 문제에 있어서 킹갓제네럴 까방권인 ‘군필’이라는 자격을 난 취득한 지 오래였으니, 별다른 문제도 없을 터였고.
뭐,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고 있다지? 조만간 서부 순회 일정이 있는데. 그때 봅세.]
저번에 워싱턴에서 본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또 보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며칠 후 샌프란을 방문한 트럼프 부부를 내 자택에 초대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떠나기 전 나를 포옹한 트럼프가 속삭이듯 건넨 말.
처음에는 이게 뭔 변태짓인가 기겁하고 떨쳐 내려고 했는데.
“오늘 즐거웠네. 아, 이걸 말하는 걸 잊었군. 조만간 중국 놈들을 또 손봐 줄 생각인데… 아마 내 생일 조금 지나서가 아닐까 싶네.”
“아… 예. 그렇군요… 예?”
아니, 도람푸 씨.
아무리 고마워도 그렇지.
이런 걸 나한테 말해도 돼?
이거 미친 대통령 아니… 아,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