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미국 증시가 하락함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다이먼 대표님과 한번 뵀었던 토드 컴즈입니다.”
“아, 네. 기억나네요. 예전에 버크셔에 있으셨던 분 맞죠?”
“하하.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워렌 버핏의 펀드매니저였다 JP 모건의 사외 이사로 선임된 경력의 컴즈 이사.
월가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버핏이 자신의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는 다시 버크셔 해서웨이로 부를 생각을 하고 있다던데.
그룹의 투자를 총괄하는 투자 책임자 후보라고 한다.
‘나름 월가의 거물인 거지.’
JP 모건의 이사에다가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를 총괄하는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될지도 모르는 유력 인사라.
이런 사람을 보고 월가의 거물이라 하는 거겠지.
물론…….
“음. 오랜만에 고향분들을 뵙는 거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예, 하하. 그러시죠. 그러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내 기준에서는 딱히 거물은 아니었지만.
저 양반 말고 JP 모건 대표인 제이미 다이먼이나 워렌 버핏 아저씨 본인이 온 거면 몰라도, 월가 주식쟁이들한테 시간 쓰려고 오늘 온 건 아니었다.
“후, 항상 하는 거지만 이 짓도 힘드네요. 이래서 이런 곳은 잘 안 오려고 하는데, 잘 지내셨죠?”
평소처럼 열심히 달라붙는 코쟁이 아저씨들을 거절하고 일단은 박재용 부회장을 찾아왔다.
“…….”
그런데 박 부회장의 눈빛이 전과는 다른 느낌.
꼭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
음… 어제 난 기사 때문인가?
그걸 벌써 봤나 보네.
“흠흠. 제가 타블로이드지들이 떠드는 것처럼 양다리를 걸친 건 아니고요. 왜, 며칠 함께 보냈더니 배역 하나만 꽂아 달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런 건 또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라 곧바로 관계를 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건데… 이게 그 텀이 좀 짧았다 보니 오해가 있더라고요.”
“……?”
…이게 아닌가?
뭐, 아무튼.
“하하. 다른 분들 좀 소개시켜 주시죠. 아시다시피 제가 한국 재계 쪽에는 아는 분이 몇 안 되지 않습니까?”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애초에 오늘 온 목적이 이거기도 했고.
방미 경제인단이 싸 들고 온 선물 보따리.
5년간 40조 원 가까이 된다 했던가?
그 커다란 선물 보따리의 세부적인 투자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는 언론에 나온 것보다 몇 배는 더 자세하게 이미 미국 보좌진들에게 흘러들어 온 상황인데.
그걸 나 또한 어제자로 받아 본 상황이다.
꽤 도움되는 정보가 많았는데.
“저분이 DS 그룹 박 회장님이시죠?”
“예. 맞습니다.”
가령, DS 그룹이 연료 전지와 에너지 저장 장치 사업 연구 개발 분야를 위해 7억 달러의 대미 투자 계획을 들고 왔다거나.
거기에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나 지문 인식 기술 등 자잘한 수천만 달러짜리 대미 투자 계획을 들고 온 중견기업도 여럿 있다거나 하는 정보들.
‘오늘은 우선 밑밥만 좀 깔아 놓고…….’
조만간 있을 한국 경제인단과 트럼프의 회담에서 트럼프가 그 밑밥을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탈바꿈시켜 줄 거다.
일종의 합작 프로젝트.
‘MK에도 바이오 관련해서 떠넘길 게 한두 곳이 아니지.’
이번 방미 경제인단 중 가장 큰 금액의, 44억 달러짜리 투자 계획을 들고 온 MK 그룹.
셰일가스나 LNG, 화학 쪽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바이오 쪽에도 6억 달러 상당의 투자 계획이 있더라.
* * *
며칠 후.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트럼프와 방미 경제인단에 포함된 총수 간의 회동까지 모두 끝이 났다.
나 또한 미국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린 한미 경제인 미팅에 참석했는데.
[방미 경제인단, ‘투자 보따리’로 통상 압박 해소?]
[이례적으로 한국 경제인단의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 칭찬한 트럼프 미 대통령, 한미 경제 관계 청신호?]
[MK 그룹, 미 바이오 산업 진출 청신호… 투자 촉진 MOU 통해 미국 진출 교두보 마련.]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한미 정상회담 및 양국 간 경제인 회담. 선우진 깜짝 등장도 화제.]
[트럼프, “한국 대기업에 감사… 지금이 대미투자 적기.”]
덕분에 한국 경제인들로부터 4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갖고 있던 기업의 지분이나 특허 등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거기에 몇몇 미국 경제인도 관심을 보여 20억 달러 정도를 추가적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합이 60억 달러.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이네.’
웬만한 빅테크 기업의 한 분기 순이익에 달하는 금액.
하지만 요즘 쓰는 금액의 스케일이 하도 커져서 그런가.
엄청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이게 다 클라우드 때문이지.’
셀립스키에게 연락을 해 이번에 벌어들인 60억 달러를 클라우드 사업에 그대로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나: 6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SCP에 추가 유입될 겁니다.
-셀립스키: 알겠습니다.
-셀립스키: 과감한 투자를 위해서는 100억 달러 정도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투자액만 무려 300억 달러.
올해도 전반기 투자 금액만 200억 달러가 넘었다.
거기에 60억 달러를 더 넣은 거였는데, 10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하니.
이제는 돈 먹는 하마 수준도 아니었다.
‘블랙홀 아니야? 이 정도면?’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투자이기도 했다.
그간 내가 가장 힘을 써 온 건 SW 프로덕션을 시작으로 스웜을 비롯한 엔터 쪽 산업이었지만, 앞으로의 무게 추는 달라질 예정이었다.
SW 클라우드 플랫폼, 조만간 엄청난 먹거리가 되어 줄 미래 사업.
코로나가 발발하면 전 세계의 데이터 사용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거다.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만 따로 놓고 봐도 시장 규모가 몇천억 달러 수준이 될 테니.
그전에 AWS와 MS의 애저와 싸울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후발 주자의 설움이지 이게…….’
아마존이나 MS가 현재 쏟아붓고 있는 돈과 비교도 안 될 만큼을 퍼붓고 있는 SCP였다.
심지어 나와 같이 시장 후발 주자인 구글도 50~60억 달러 정도만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
덕분에 SCP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투자금 이상을 벌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하지만 마냥 불평할 거리는 아니었는데.
다행히 SCP가 출범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난 덕에 슬슬 성과가 나오고 있었던 것.
-셀립스키: 올 분기 들어서 매출이 250%나 성장했습니다. 구글 클라우드의 영업이익은 벌써 넘어섰고요.
지난 분기까지만 해도 2% 조금 넘던 점유율이 5% 수준으로 확대.
거기에 영업이익만 따지면 우리보다 매출이 1.5배 높은 구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SCP가 더 많은 돈을 투자한 대신, 구글과 달리 손실을 줄이면서 사업 확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특히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나 분석 소프트웨어와 같은 고수익 서비스에서 구글을 한참이나 따돌릴 수 있었다.
‘그래도 쓰는 만큼 성과가 나오긴 한다는 거지.’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 투자한 곳은 데이터 센터 건설뿐만 아니라 서비스 효율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쪽이 주력.
덕분에 점유율은 물론 관련 기술 또한 업계 1위인 AWS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갖출 수 있었다.
그건 곧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져 신규 고객사들이 SCP를 구글이나 애저보다 먼저 고려하게 만들고 있었고.
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는 고객사가 한번 채택하면 경쟁사의 유사 서비스로 전환하기가 어렵다.
그런 만큼 고객 유치가 가장 중요했는데.
아직 클라우드 전환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은 지금이 그나마 내가 뛰어들 수 있는 순간이라는 거다.
AWS나 애저가 클라우드를 통해 분기별로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만큼을 재투자하기 이전에, 최대한 점유율을 높여 놔야 하는 것.
-나: 추가 투자 계획을 잡아 보겠습니다.
-셀립스키: 네. 알겠습니다.
결국 이 돈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계속 돈을 퍼부어야 한다는 거다.
‘작년까지만 해도 돈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되어 버렸지?
* * *
연말이 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는데.
당장에라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이던 양국이 약간씩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준 것.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미중 무역전쟁… 휴전 돌입?]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합이로 최소 90일 이상 중지된 무역 전쟁… 휴전인가, 종전인가?]
[자국 금융시장 개방 및 미국 제품, 서비스를 더 구매할 것이라 약속한 중국… 한발 물러서나?]
[결국 중국의 양보로 끝나게 된 미중 무역 전쟁.]
서로 숨을 고르며 휴전 페이즈에 돌입한 모습.
하지만 이대로 미중 간의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 보는 낙관적인 관측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는데.
‘트럼프가 여기서 끝낼 리가.’
이제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아 버렸다.
지금까지의 미국 대통령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노빠꾸의 사내가 바로 트럼프라는 것을.
“무역 전쟁에 대한 긴장감이 완화되며 단기적으로 증시가 상승하고 있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입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월가에서는 90일이 지나는 대로 2차전이 발발할 거라 예측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요.”
양국의 합의 발표가 단기적인 증시 상승만 가져왔을 뿐.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증시가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뉴욕 증시에서 자금을 뺐던 게 천만다행이었네.’
지금까지의 나는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퓨쳐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뉴욕 증시의 기술주와 성장주 위주로 적잖은 금액을 투자해 왔는데.
결국 미국의 경제 상황이 앞으로 한동안은 쭉 우상향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다만 단기적으로 어떻게 오르내리게 되는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탓에 자칫하면 이번 미중 무역 전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볼 뻔했다.
무역 전쟁이 결국에는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사이 뉴욕 증시의 하락을 가져온다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
하지만 다행히도 중국 증시 하락에 베팅한다고 뉴욕 증시에 투자했던 자금 대부분을 회수했던 덕에,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있었다.
‘덕분에 다른 기업들보다 여유가 생겼어.’
AWS를 통해 흑자 전환한 이후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는 덕에 주가 하락을 겪고도 지난해보다 35% 이상 오른 아마존을 제외하고.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등 경쟁사의 주가가 모두 마이너스로 마감하게 될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내게는 큰 이득이 된 것.
하지만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나처럼 피해 갈 수 없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계속해서 추락하는 미국 증권 시장…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 전쟁.]
[증권 시장의 급감 현상의 원인은 모두 ‘트럼프 리스크’ 때문.]
[미국 경제 살리겠다더니… 오히려 손실로 마감시킨 미 행정부.]
지난 10년 동안 유래 없는 상승장을 이어 오다 이렇게 하락장을 맞이하게 된 거였으니.
자연스레 적잖은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비난이 한곳으로 쏠렸다.
하지만 우리의 트럼프가 어디 보통 대통령인가.
모두가 자기 보고 뭐라 해도 당당하게 ‘그게 왜 내 잘못?’을 외칠 수 있는 게 바로 트럼프였다.
아니나 다를까.
[Donald J. Trump (@realDonaldTrump)]
-연준은 장타는 날리지만 퍼팅을 못 해 성적이 나쁜 골퍼와 같다. 미국 증시가 흔들리는 건 기준 금리를 인상한 연준 때문. 제롬 파월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성탄절 하루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놓고 연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저격해 버린 트럼프.
[제롬 파월 경질 위기? 미국 경기 침체 공포 커져…….]
[트럼프가 불지른 블랙 크리스마스… 다우지수 133년 역사상 크리스마스 이브 최대 폭락!]
[일본 증시 폭락세 출발 끝에 5% 하락. 트럼프 리스크 전 세계 경제 혼란에 빠트려.]
그 여파는 통상 주가 상승이 찾아와 ‘산타 랠리’로 불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정반대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다우존스 지수 – 22,378.25]
올초 2만 4천으로 시작해 중순에는 2만 6천을 넘겼다 결국 2만 2천대로 마무리되게 생긴 다우지수.
12월 1일까지만 해도 2만 5천을 넘겼었으니.
한 달도 되지 않아 10%가 넘는 폭락을 겪은 거였다.
그리고 다우지수뿐만 아니라 나스닥과 S&P 500의 3대 지수가 모두 하락하는 상황이었는데.
[2019년, 공포의 한 해가 될지도…….]
[투자 심리 차갑게 얼어붙어… 국제통화기금 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 3.7%로 낮춰.]
[전 세계 경기가 올해를 정점으로 꺾일 것이란 예측 늘어나고 있어.]
그 결과 시장의 불안감이 정점에 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잠시 휴전은 했다지만 이대로 미중 무역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으니, 내년에는 더욱 가혹한 한 해가 될 것이라 전망하는 것.
‘분명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미국 경제가 쭉 호황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증시 상황은 조만간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제이슨, 현재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죠?”
“뉴욕 증시 하락에 저희도 영향을 받아 꽤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국과 터키에서 큰 이득을 본 덕에 600억 달러가 넘습니다.”
“…….”
왠지 모르게 내리꽂고 있는 차트들이 꼭 셀립스키의 웃는 얼굴과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