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남의 손으로 코 풀기
“저는 이만 좀 쉴게요.”
“예. 알겠습니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에드가 경호팀원에게 저택 점검을 지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래클런과 트럼프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당연하게도 USSS 요원들에게 잠시 저택 경호를 맡겨야 했다.
아무리 내가 전 세계 최고 현금 부자라고는 해도 미국 비밀임무국에게 ‘거, 대통령 경호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님들은 밖에서 기다리슈’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USSS 요원들은 개개인이 특별 사법권을 갖고 있는 이들.
이왕이면 그들과 좋은 사이로 지내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트럼프가 편의를 봐준 덕에 경호팀장인 에드와 그 밑 두 사람까지 함께하는 건 허용됐다.
래클런은 그나마도 불가능했으니 뭐.
‘나쁘지 않은 만남이었어.’
예전, 나는 트럼프에게 래클런을 루퍼트 머독의 후계자로 만들 거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트럼프는 그게 과연 가능하겠냐며 물었었고, 나는 오히려 루퍼트 머독과 같은 사람이 더 다루기 쉬운 법이라는 대답을 했었다.
물론 그때의 내 말이야 그저 미래를 알고 있는 회귀자가 부린 허세에 불과했지만… 글쎄, 그런 말을 듣고 그 말대로의 결과가 나온 걸 본 트럼프로서는 다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령, 성인이 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 된 자신의 후원자가 세계 최대의 미디어 제국인 머독 제국을 움직일 정도의 힘까지 갖췄다는 착각 말이다.
거기에 아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은근슬쩍 21세기 폭스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조만간 써밋-MGM이 21세기 폭스를 인수하게 될 거고, 래클런이 거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래클런이야 그냥 트럼프 앞에서 자기를 띄워 주는 건가 싶어서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는 다르게 여겨졌을 거다.
그리고 반대의 입장인 래클런 또한 꽤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거다.
현 미국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예정에 없던 자신까지 함께하게 있을 수 있는 사내.
심지어 예전 공언했던 대로 자신을 머독 제국의 후계자에 아주 가까운 위치로 만들어 주기까지 했으니.
[래클런 - 우진, 오늘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뭐, 조금 전 래클런에게서 이런 문자가 온 게 영 이상한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영광까지야…….
미국 사람들 호들갑은 아직도 잘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 * *
트럼프와의 식사가 있고 다음 날.
또 한 명의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피트 파슨스, 번지라는 게임 회사의 CEO였는데.
M&A 협상을 주관하기로 한 골드만삭스의 인사도 동석했다.
저번 400억 달러 대출 이후 골드만삭스에서 추가 대출을 받은 터라, 여러 M&A 건에서 그들을 주관사로 맡기는 것.
‘자일링스 M&A 때 보여 준 능력이 괜찮기도 했고’
[선우진, 자일링스 인수 완료까지 단 한 걸음. 남은 건 규제 당국으로부터의 인수 승인 절차뿐.]
[총인수 금액 288억 달러… 미디어 엔터뿐만 아니라 반도체 업계에서도 거물이 되어 가고 있는 선우진.]
[AMD의 핵심 사업과 자일링스의 FPGA 기반 기술의 연계 방향은? 고성능 적응형 컴퓨팅을 통한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확보로 보여.]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자일링스 인수 건.
협상 이전에 추정했던 인수 금액보다 10억 달러가량 저렴하게 합의되었다.
이제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반도체 이해 당사국들의 반독점 심사만 진행되면 모두 마무리.
[선우진의 자일링스 인수 무산될 수도?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이 허가하지 않아 빅테크 기업 간 인수 합병이 비승인되는 경우 다수 발생. 미중 분쟁에 대한 보복으로 추정.]
일각에서는 요즘 들어 가속화된 미‧중 패권 경쟁으로 서로가 보복 차원에서 승인을 하지 않는 탓에 반독점 심사가 길어질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며칠 전 후싱루이로부터 큰 문제 없이 중국의 심사가 끝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아마 반년 내로 전부 승인이 날 수 있을 터.
한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해 당사국에 속한 미국과 영국, EU 등도 나와 별다른 마찰이 없으니 말이다.
여하튼.
“오랜만에 워싱턴에 오니 좋네요. 물론 제가 출발한 곳도 워싱턴이었지만요, 하하.”
그런 말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피트 파슨스.
자신이 저 서부 끝에서 동부 끝까지 왔다는 걸 알아 달라는 의미였는데.
‘내 실수이긴 하지.’
헤일로와 데스티니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스튜디오인 번지.
한때 MS의 산하 제작사였다 독립한 이곳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소재지가 워싱턴인 걸 보고 오늘 만남을 갖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워싱턴이 워싱턴 D.C.가 아니라 서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워싱턴주였던 것.
내가 미처 그걸 알지 못하고 나름 번지 쪽을 배려한답시고 이곳에서 보기로 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정반대였던 거다.
‘미리 알았다면 그냥 LA에 있을 때 만남을 가졌을 텐데.’
워싱턴주와 LA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면 수 시간 내로 도착할 정도.
아마 LA에서 만나는 게 나한테도 그렇고 피터 파슨스에게도 편했을 거다.
하지만 번지 측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던 탓에 며칠 전에야 번지가 위치한 워싱턴이 이곳 워싱턴 D.C.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출시한 데스티니 2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위기를 맞고 있는 번지 입장에서야 내가 미국 반대편으로 오라는 거에 뭐라 말을 할 상황이 못 되었던 것.
뭐, 아무튼.
M&A와 관련된 협상이 빠르게 진행됐는데.
서로 합의점이 잘 맞았던 덕분이었다.
“최종 인수 금액은 24억 달러. 이중 16억 달러는 바로 지급되지만, 8억 달러는 5년으로 나눠 주식을 가진 직원들에게 배분되는 것에 모두 동의하십니까?”
그렇게 최종적으로 나온 인수 금액.
1/3의 금액이 몇 년에 걸쳐서 지급되는 건 지분을 갖고 있는 직원들이 곧바로 이탈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24억 달러면 현 번지의 시장가치보다 꽤 후하게 쳐준 거였다.
내 입장에서 번지는 꼭 인수할 필요가 있는 게임 스튜디오였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히 번지의 IP가 훌륭해서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단 최신 IP인 데스티니 시리즈는 1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2는 혹평을 받으며 제대로 된 매출을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후 지속적인 DLC 출시를 통해 평가를 회복한다 해도 엄청나게 매력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번지의 대박작이자, 현 MS XBOX의 대표작인 헤일로 시리즈도… 이제는 더 이상 번지의 것이 아니었는데.
기존 MS 자회사에서 번지가 독립하면서 관련 판권을 MS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헤일로 시리즈 또한 번지가 아니라 MS의 새로운 자회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있는 상황.
물론, 모두 넘긴 건 아니었는데.
그게 내가 번지를 인수하려는 가장 큰 이유였다.
‘영상화 판권… 그중 MS에게 넘어간 것은 극장용 영화와 애니메이션, TV용 시리즈뿐이지.’
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 MS에서 적잖은 신경을 썼었던 건지, 해당 사항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거기에 함정이 있었다.
TV나 극장용은 물론 애니메이션, 소설, 그래픽 노블 등 여러 실사화 시리즈에 대한 판권은 모두 기재되어 있지만, 당시에 아직 관련 개념조차 없었던 OTT용 판권은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것.
즉, 내가 번지를 사들이면 헤일로의 OTT용 시리즈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것.
물론 MS가 들으면 ‘그게 뭔 개소리냐’라고 나올 소리였다.
분명 헤일로는 자기네들 것인데… 왜 OTT용 시리즈를 우리 쪽에서 만드냐 그러겠지.
하지만 해당 사항은 이미 여러 로펌을 통해 계약을 검토해 본 결과, 헤일로 프랜차이즈를 처음 제작한 건 번지이므로 충분히 번지에 해당 권리가 존재한다 볼 수 있다고 답을 받았다.
‘헤일로 시리즈는 MS XBOX의 초대형 대박 프랜차이즈지. 헤일로가 없는 엑스박스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야말로 엑스박스 진영을 대표하는 시리즈.
심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다른 콘솔들에 비해 IP가 딸린다는 소리를 듣는 엑스박스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
그렇기에 매 신작이 나올 때마다 MS에서도 헤일로 시리즈와 관련해 엄청난 홍보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따로 유명 감독과 배우를 기용해 홍보용 실사 영상도 발매마다 제작하고.
다른 회사라면 무지막지한 홍보비가 들었을 만큼의 홍보를 MS 자사 플랫폼을 통해 퍼붓는다.
그리고 그건 달리 말하면…….
‘내 손 안 대고 남의 손으로 내 코를 풀 수 있다는 거잖아?’
이러다 빌 게이츠 아저씨가 나 싫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요즘은 여러 기부와 선행으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고, 특히 한국에서는 세계 최고 부자로 쭉 유명세를 떨쳐 온 덕에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인 빌 게이츠였다.
하지만 사실 빌 게이츠는 젊은 시절에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온 탓에 실리콘밸리의 악마 소리까지 들었던 양반이라던데.
그래도 이제는 결혼 후 나이도 먹고 하면서 많이 유해졌다고 한다.
다만, 아무리 그렇게 바뀌었다고는 해도…….
‘헤일로 시리즈 홍보는 MS가 알아서 할 테니, 나는 그냥 OTT용 시리즈만 내면 되는 거지.’
남이 와서 자기 손으로 코 풀고 이익은 다 챙겨 가면… 나이 먹고 유해진 빌 게이츠 아저씨도 예전 성깔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 * *
[써밋-MGM, 게임사 ‘번지’ 24억 달러에 인수 완료.]
[유비소프트에 이어 번지까지 사들인 선우진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게임사들.]
[중국 모바일 게임사 여러 곳 인수한 SW 인베스트먼트.]
[선우진, 사실상의 게임 시장 진출 선언… 게임 시장 전체에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행보 지켜봐야 할 듯.]
-와;; 선우진 이제 게임도 만드냐?
-만든 지 한참 됨 ㅋㅋ
-유비소프트 인수는 <마지막 마법사>나 <찬탈자> 게임화 맡기려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듯?
-영화에다가 OTT에다 TV 드라마, 스트리밍, 이제는 게임까지? ㄹㅇ 미디어 업계 거물이네.
-솔직히 이제 선우진 정도면 디즈니랑 비빈다고 봄 ㅇㅇ
-디즈니? 아무리 그래도 엔터만 놓고 보면 아직은 힘들지.
-일단 OTT에서는 씹압승임ㅋㅋ 마블 빠라 디즈니플러스 나왔대서 바로 구독 때렸는데; ㄹㅇ 볼 거 없더라. 걍 이미 몇 번이고 본 마블 영화들 재탕용.
-그래도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저작권 수에서는 씹넘사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모름.
-근데 요즘 마블 ㅈ 박고 있는 거 보면… 지금까지 IP들은 몰라도 앞으로는 선우진이 앞설 듯.
-맞말추. 디즈니 이 새끼들은 어벤져스랑 핵심 시리즈에만 좀 집중하지. 왜 이렇게 문어발이냐? ㄹㅇ 극 마블빠인데도 다 못 보겠더라.
-그런 면에서 써밋 쪽이 제대로긴 함. 핵심만 딱딱 내놓으니 팬들이 따라가기에도 좋음.
-아 그래서 <마지막 마법사> 게임 언제 나오냐고 ㅋㅋ
* * *
[써밋-MGM, 번지 인수의 이유?! “헤일로 시리즈, OTT용 드라마 제작 예정… 내년 말까지 제작 완료 후 방영할 것”]
[갑작스러운 써밋-MGM의 발표에 황당하다는 반응 보인 MS… “헤일로 시리즈는 번지가 아닌 343 인더스트리의 것.”]
[써밋-MGM 측 대변인으로 나선 커클랜드 앤 앨리스 소속 에드워드 뉴턴 파트너 변호사, “써밋-MGM의 발표에는 아무런 문제점 없어… 관련 자료를 MS 측 법무 팀으로 보냈다.”]
[눈 뜨고 코 베인 빌 게이츠? 실리콘밸리의 젊은 천재가 늙은 악마를 물 먹이다!]
[“스웜을 위한 헤일로 시리즈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 당시 번지에서 제작됐던 공식 설정에 기반한 스토리 될 것. 물론 MS 측에서 원한다면 MS 측의 세계관 합류 가능.”이라 밝힌 써밋-MGM의 CEO 트렌트 아놀드.]
-ㅋㅋㅋㅋㅋㅋㅋㅋ뭐고 이거.
-누가 상황 정리 좀.
-예전에 헤일로 만든 번지 선우진이 사 감 → ott용 드라마 시리즈 제작 발표 → MS에서 왜 자기네들 건데 너희가 만드냐고 항의 → 계약서 검토 결과 ‘ott용’ 판권은 넘어간 적 없음(커클랜드 앤 앨리스가 미국 1위 로펌임) → MS 측에서 말장난하냐며 소송 검토 → 근데 까고 보니 진짜로 문제없는 듯?(애초에 할리우드 제작사 놈들 판권 소송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라 문제 있었음 제작한다고 말도 안 했을 거 ㅋ) → 제작은 확정됐고 팬들은 오히려 환호 중 → 써밋 측 “팬들은 우리 와서 좋다고 난리인데 너희는 어쩌실?” 시전…….
-정리추.
-캬, 고생했다.
-헤일로가 근데 뭐임? 유명함?
-ㅇㅇ… 한국서는 아재 픽이긴 한데 미국서는 걍 fps 씹근본 of 근본.
-엑스박스 대표 시리즈라 MS에서도 버릴 수가 없음. 헤일로는… 걍 엑스박스 유일 구세주 수준.
-하프라이프랑 바이오쇼크급이라고 보면 됨.
-헤일로 팬들은 지금 써밋이 자기네들 위해 영화 만들어 준다니까 좋다고 난리 났거든? 그런데 MS 측에서도 자기네 콘솔 살리려면 헤일로 팬들 무조건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거라… 아마 울며 겨자 먹기로 적당히 합의 볼 수밖에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