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워싱턴에 옴
딱- 달칵- 딱!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마우스와 키보드.
“음…….”
이거 재밌네.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플레이 하고 있던 건 <마지막 마법사> 게임이었다.
물론, 유비소프트에 맡긴 게임이 벌써 나온 건 아니었다.
AAA 게임의 개발 기간은 최소로 잡아도 2~3년.
유비소프트를 인수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무리 많은 돈을 때려 박아도 불가능했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원하는 퀄리티가 아니라 졸작이었을 게 틀림없었고.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님.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오늘 처음 플레이 하는 거일 텐데도 쭉 순위가 상위권이시라니…….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 올라온 채팅창.
저들은 내 작품의 팬이자, 이 게임의 개발자들이었다.
톡, 토독-
-저도 너무 재밌었습니다. 게임도 너무 훌륭하고요.
즉, 지금까지 내가 플레이 했던 건 <마지막 마법사>의 팬 메이드 게임이었던 것.
한 인디 게임 스튜디오가 작년 비상업적 이용을 조건으로 게임화 진행을 내게 문의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게임이었다.
소규모의 제작 인원과 개발비가 들어간 만큼 유비소프트에서 한창 제작 중인 AAA 게임과는 퀄리티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건 당연.
하지만 웬만한 AAA 게임들에 못지않은 재미가 느껴졌는데.
‘오토 배틀러 장르의 게임이 벌써 나올 줄이야.’
도타의 유즈맵인 오토체스로 시작해 롤토체스로 이어진 오토 배틀러 방식의 게임.
그것과 무척이나 유사한 <마지막 마법사>의 팬 메이드 게임이었다.
같은 세계관과 시대를 공유하는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에 등장하는 영웅적 인물들을 유닛으로 따와, 그 유닛들을 적절히 조합해 자신의 덱 파워를 올려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배틀에서 이기는 방식.
거기에 덱의 성장을 돕는 아이템들도 <마지막 마법사>나 <찬탈자> 등에서 등장했던 유물들이라 퍽 익숙한 면모가 있었다.
‘도타에서 오토체스가 나오기 전에 제대로 다듬어서 출시하면 좋을 것 같은데…….’
게임이란 건 얼마나 그래픽이 화려하고 스토리가 뛰어나고와 상관없이 결국 얼마만큼의 재미를 주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게임이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높았다.
게다가 <마지막 마법사>나 <찬탈자>의 팬들이 게임화를 바란 것도 벌써 수년째.
하지만 유비소프트 인수가 최근에 이뤄졌다 보니 최종 출시까지는 적어도 2년여가 남아 있었다.
즉, 그동안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게이머 팬들을 달래 줄 것이 필요하다는 뜻.
작중 배경인 루덴 대륙의 이름을 따온 루덴 택틱스라는 이 게임이 바로 그게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탁- 타닥!
-제가 이 게임에 투자하고 싶은데요.
-정식으로 게임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네요.
-아, 그리고 유닛 간 시너지 관련해서 수정하고 싶은 게 있는데… 계약이 이뤄지면 말씀드릴게요.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에 이어 루덴 대륙의 최종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를 준비 중이거든요. 그것과 연관된 요소인데, 게임에 미리 반영해 팬들에게 힌트를 줄까 싶어서요.
곧바로 내 의사를 전달한 후 잠깐 기다렸다.
“……?”
하지만 몇 분 동안 기다려도 아무 답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뭐지. 인터넷이 먹통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쯤.
기다렸던 대답이 돌아왔다.
-Mother****** is this real?!?!????
음…….
생각보다 격한 분들이셨네.
* * *
방미 경제인단과의 일정에 앞서 조금 일찍 워싱턴에 도착했다.
재밌는 점은 내가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내 앞으로 수많은 초대장이 보내져 왔다는 것.
‘공화당 상원의원… 민주당 쪽도 몇 명 있고. 월가 인사 중에서도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이 있네?’
정중하게 답장을 써 모두 거절했다.
모두 미국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인 만큼, 만나면 좋은 사람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내 기준에서는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기도 해서였다.
트럼프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그에게 내가 피해를 볼까 싶어 친분을 쌓기는 했지만, 미국 정계와도 엄청나게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현 대통령과 지금의 관계면 충분하다고 느꼈을뿐더러, 정치에 관여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이나 정계에서 나를 친공화당 인사로 분류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 거였지, 대부분의 인식은 기업가다 보니 당연 공화당의 스탠스를 지지하는 중도 인사로 보는 게 맞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내가 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미국 내 여러 기부 행사도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내 주된 사업이 엔터테인먼트 쪽인 만큼 할리우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할리우드의 반공화당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줄을 잘 타야 했다.
사실 할리우드의 인사가 보수당을 지지한다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다.
물론 나는 보수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돈 주는 편 우리 편의 스탠스였으니…….
그렇게 보이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매해 돈을 엄청 쓰는 거지.’
특히 할리우드가 그렇게 환장하는 소수 집단 관련 자선 활동에 엄청난 기부금을 매년 퍼붓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아시안이라는 소수 집단의 일원이다 보니.
여하튼, 비슷한 맥락으로 어디까지나 나는 외국인.
내가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지만 지금 이상으로 미국 정치에 관여한다는 인상을 주는 건 별로 좋지 못했다.
“우진!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래클런. 그간 잘 지냈죠?”
하지만 그렇게 대부분의 초대장을 거절했어도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했다.
바로 래클런 머독과 같이 내게 이득이 되어 줄 사람 말이다.
“하하. 그럼요. 모두 우진 덕분입니다.”
최근 머독가의 후계 구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래클런.
그 과정에서 내 도움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 그것도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오고 있었다.
“우진의 말대로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21세기 폭스 매각 건을 맡기셨습니다. 아마… 후계 구도를 확정 짓는 마지막 건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21세기 폭스 인수를 통해 래클런의 승계를 확정 짓고자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20세기 폭스 필름 코퍼레이션을 그대로 가져오고 말이다.
“그리고 충고해 주신 것처럼 디즈니와 컴캐스트, 양쪽 모두와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각각 524억 달러와 600억 달러로 입찰해 왔고요. 그중 컴캐스트는 모두 현금으로 지불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금액을 들으니 조금 속이 쓰리는 느낌.
게다가 저 금액도 고작 초기 제안에 불과하니 경쟁이 붙는다면 최소 700억 달러 선으로 뛰게 될 거다.
나까지 끼어드는 걸 디즈니와 컴캐스트가 알게 된다면 더 오르게 될 터였고, 얼마나 오르게 될지도 미지수였다.
“그러면 800억 달러의 제안이면 충분하겠죠?”
그럴 바에는 아예 입찰 금액을 확 높여 버리기로 했다.
디즈니와 컴캐스트의 인수 의사를 초장부터 눌러 버리기 위함.
본인들의 입찰 금액보다 2~300억 달러를 높게 쓴 거였으니, 인수 의사를 철회시키기에는 충분할 거다.
폭스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금액이니 래클런의 후계 구도를 확정시키는 건 덤이었고.
“800억 달러요? 당연하죠. 그 정도 제안이면 아버지께서도 단번에 승낙하실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단번에 밝아지는 래클런의 얼굴.
물론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내가 세게 부른 거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이니까 저 정도 금액이지.’
1~2년 후에 인수가 이뤄진다면 최소 1.5배는 뛰게 될 거다.
코로나 이후 언택트 시대가 오면서 OTT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의 가치가 훌쩍 뛰게 되기 때문.
저만한 인수 금액이라도 지금이 오히려 저가라 볼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코로나 이후에 대비해야지.’
언론에서는 디즈니나 파라마운트 등이 OTT 쪽에 뛰어든 걸 보고 OTT 전쟁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전쟁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 자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
그나마도 그 파이의 대부분을 나와 넷플릭스가 양분하고 있고 말이다.
‘그덕에 디즈니도 그렇고, 다른 곳들도 OTT 쪽에 뛰어들고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힘을 못 쓰고 있지.’
나의 영향으로 원래보다 빠르게 OTT 사업에 뛰어들게 된 콘텐츠 제작사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나비 효과가 오히려 내게 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이후처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니까.’
어차피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은 언택트가 대세가 되는 코로나 이후처럼,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집에서 보내지도 않고.
즉, 사람들이 OTT와 같은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 쏟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해 봐야 3, 4시간 남짓.
코로나 시대처럼 여러 OTT를 동시에 구독하고 챙겨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비자는 보통 1개의 OTT 서비스만 구독하고, 많아 봐야 2개 정도만 구독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구독하게 되는 OTT 서비스들은 90% 이상이 스웜이나 넷플릭스로 한정되는 것.
‘대부분 사람의 소비는 업계 1, 2위에 쏠리기 마련이니까.’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타 OTT 대비 몇 배는 많으므로 거기에만 쏠리는 거다.
심지어 넷플릭스와 단독 공급 계약을 맺었던 자사 작품을 회수하며 초반 엄청난 성장세를 가져갔던 디즈니+마저도 최근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었다.
‘아무리 마블 시리즈가 대단하다고 해도 한두 달이면 전부 볼 수 있으니, 한두 달 무료 구독을 즐기고 해지하는 거지.’
[OTT 전쟁… 디즈니의 후퇴로 마무리되나?]
[HBO 맥스의 저조한 매출에 울상 짓고 있는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계속된 투자에도 구독자 수 겨우 300만 명에 머물러…….]
마블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매년 매출 순위에서 써밋-MGM을 비롯한 다른 스튜디오를 찍어 누르는 디즈니마저 그러고 있었으니.
다른 플랫폼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스웜이나 넷플릭스의 성장을 보고 OTT에 뛰어들었던 곳들이 전부 이전의 기대와는 다르게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래클런.”
“예. 저만 믿으세요.”
그리고 여기서 내가 꼭 21세기 폭스를 사 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다.
단순히 스웜의 콘텐츠를 확장시키고 디즈니와 같은 경쟁사에게 더 큰 콘텐츠 폭을 제공하는 걸 막는 걸 넘어서…….
또 다른 이득을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
‘훌루의 지분 중 30%가 폭스 꺼니까.’
현 미국 OTT 시장의 점유율을 보자면 스웜이 42%, 넷플릭스가 33%, 훌루가 13% 정도였고.
나머지 12%를 여러 OTT가 나눠 점유하고 있었다.
업계 3위 플랫폼인 훌루가 나머지 OTT들만큼의 파이를 먹고 있다는 건데.
저 훌루는 디즈니 30%, 폭스 30%, 컴캐스트 30%, 워너 10%로 총 4개의 콘텐츠 기업들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즉, 21세기 폭스만 인수하면 나는 바로 경쟁사의 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자본을 더 투자해 디즈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지분을 가져와 아예 스웜에 편입시킬 수도 있었다.
‘뭐… 반독점법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다.
아직 OTT 산업이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독점법상으로 규제받는 별도의 산업이 아니었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로 봤을 때에는 내가 21세기 폭스를 가져오는 것도, 스웜이 훌루를 흡수하는 건 허용되는 범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란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아무래도 미국은 로비가 합법인 곳이다 보니…….
그래서 이번 워싱턴 일정이 중요한 거였다.
“아. 래클런, 내일 저녁 제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실래요? 중요한 손님이 오는데 래클런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야 환영이죠. 그런데 중요한 손님이라 하심은……?”
“래클런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퍼스트 네임은 도날드에 패밀리 네임은 트럼프라고.
요즘 별명은 미스터 프레지던트인 양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