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90화 (190/267)

191화 한국인이 그리움

다음 날, 국내 언론을 살펴봤는데 재밌는 기사가 몇 개 있었다.

[GL 그룹 구탁모 상무, LA 할리우드에서 포착?]

[선우진 자택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구탁모 상무… 소문처럼 GL 그룹과 선우진과의 관계 개선된 것으로 보여.]

누가 봐도 구 상무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모습.

대놓고 찍힌 건 아니고, 웬 커플이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 구석에 양복 입은 구 상무가 함께 찍혀 있었다.

사진의 주인공인 커플은 한 TV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와 그녀의 에이전트인 모양.

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발견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에 우연히 구 상무가 등장한 것… 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나 보네.’

LA 내 자택이 위치한 지역은 소문난 부촌.

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진 베벌리힐스보다 더 집값 비싼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평균 집값이… 어디 보자, 400만 달러였나?

그 덕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나처럼 별장 용도로 구매한 후 가끔 찾는 부자들, 할리우드 등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나 제작자들이 전부였다.

뭐, 다들 파파라치에게 찍힐 정도로 유명인이지만 동시에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란 거다.

그 탓에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게 이곳에 있었는데.

다른 데에서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파파라치의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

그저 할리우드 스타들만 사는 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파파라치들의 직장이나 마찬가지인 타블로이드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슈퍼 리치들이 블록마다 한 명씩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도심이 아니고 외곽 지역이다 보니 카메라 들고 다니면 눈길이 끌리기 쉬워 경호원들에게 쉽게 제재당하기 때문도 있었고.

뭐, 아무튼.

‘하는 짓이 재밌긴 하네.’

구 상무가 우연찮게 찍힌 사진은 절대 우연찮은 게 아니라는 뜻.

애초에 사진 속 주인공 커플이 이곳 히든힐스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유명 인사도 아니고 말이다.

뭐 어디서 적당한 가격에 해당 배우를 섭외해 온 게 아닐까.

이런 재밌는 짓을 해서 얻으려는 효과는 아마…….

-오 GL이랑 선우진이랑 같이 뭐 하나?

-얘네 SW 텔레콤 때문에 사이 안 좋은 거 아녔음?

-ㄴㄴ 그건 KTF랑 MKT고 GL은 아님. SW 텔레콤한테 4G 망도 GL에서 나서서 빌려준다고 한 거로 앎.

-ㅋㅋㅋㅋ GL이 눈치 빠르네. 다른 애들처럼 뻗대지 말고 바로 엎드리는 거. 눈치 ㅅㅌㅊ

-이 기사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GL 전자 주식 오늘만 5% 떡상ㅋㅋ

[email protected]특@급@정@보 [GL 디스플레이] [GL 에너지솔루션] 다들 잡으셨죠? 터지기 직전! 재료 기대해도 됩니다!

-ㅅㅂㅋㅋㅋㅋ 여기서도 스팸이네.

-오 나도 아까 오후에 저거 왔는데 ㅋㅋㅋ

-아니 ㅅㅂ 오후에 보내고 예상한 척 패고 싶네.

구 상무 사진이 보도된 기사에 달린 댓글들.

슬쩍 MTS를 켜 GL 그룹 회사들의 주가를 확인해 봤는데.

가장 덩치 큰 GL 전자조차 5%나 올라 있을 정도였다.

특히 배터리 사업을 하는 GL 에너지솔루션은 장중 13%나 상승해 있었는데.

차량용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GL 디스플레이 또한 소폭 올라 있었다.

[구탁모 GL그룹 차기 회장, 주식 맡기고 돈 빌린 까닭은?]

[재벌집 첫째 아들, 대출 통해 2,600억 원 마련… 상속세 납부 관측.]

[계열사 지분 통해 대출 받아 세금 내는 대기업 오너家…‘상속세 폭탄’에 빚 눈덩이.]

[‘선우진 호재’ 통한 GL 그룹 주가 상승으로 상속세 납부 9부 능선 넘긴 구탁모 GL 상무. 대출금만 무려 9,000억 원.]

거기에 상속세 납부를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기사까지.

머릿속에 대강의 정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뭐, 세금이란 게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긴 하지.

나 또한 매년 엄청난 액수를 세금으로 여러 나라에 내고 있다.

물론 애플이나 구글한테 잘 배운 덕분에 조세 피난처에 본사를 두긴 했지만.

그래도 매출이 매출이다 보니 종합적으로 다 합치면 한 해 내는 세금만 수억 달러다.

여하튼.

세금에 대한 고충이란 건 나도 잘 알다 보니.

구 상무가 이런 재밌는 일을 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내 직업이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글쟁이 아닌가.

다만…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나와 GL 그룹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닌데.

우리 사이에 혼자만 재밌으면 쓰나.

“아, 여보세요.”

[예! 선 대표님.]

“기사 봤습니다. 잘 나오셨더라고요.”

[아, 하하. 예, 보셨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요…….”

원래 콩 한쪽도 나눠 먹을 게 있는 법이다.

* * *

어렵지 않게 소울브레인의 인수가 끝났다.

인수하는 데 든 금액은 1조 원 정도.

다행… 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여하튼 인수하기 좋은 조건들이 겹쳤는데.

소울브레인 현 회장의 유일한 아들이자 기업을 물려받을 후계자였던 2세가 최근 세상을 달리했기 때문.

3세인 손녀가 있긴 했지만 올해로 고작 5살이었으니, 현 회장도 이런저런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내가 좋은 가격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던 것이다.

거기에 주 협력사인 GL 그룹과 오성그룹에서 넌지시 인수를 받아들이라는 압박도 있었고.

덕분에 서로가 윈윈할 수 있었던 소울브레인 인수.

[선우진, 갑작스러운 제조 기업 인수? 반도체 관련 소재 업체 사들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뛰어들 가능성 up, 오성과 MK의 위치 노리나?]

[1조 원 상당의 금액에 반도체 소재 업체 사들인 선우진…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진출 가능성 제기.]

소울브레인은 제조 기업.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와 제조업은 서로 맞지 않는 옷이었다.

소프트웨어 쪽이야 미래를 한발 앞서 살아온 회귀자라는 남들보다 빼어난 점이 있다지만, 제조업 쪽은 문외한이니 말이다.

사실 생산하려는 고순도 불화수소도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

다만, 소울브레인이 한일 무역 전쟁이 있고 나서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결국 성공해 냈으니. 내가 한발 앞서 돈 주고 시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정도.

‘소울브레인을 인수해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에 성공하고, 기업가치가 떡상하게 되면…….’

아마 그때는 다른 곳에 넘기게 되지 않을까?

내 말에 따라 MK 하이닉스라는 거대한 납품처를 포기할 곳에게 말이다.

예를 들자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운드리를 시작했을 거였으면 오성에 데이터 센터 건설을 맡기기 전에 뛰어들었겠죠.”

[하하. 그래서 전화드린 건 아니었는데… 감사합니다.]

지금 나와 통화하고 있는 박 부회장의 오성이나 구 상무의 GL 같은 곳들 말이다.

굳이 둘 중 정하자면 후자가 낫지 않을까 싶었다.

빚 받을 거리를 하나 달아 둔 덕분에 가격을 후하게 쳐주지 않을까 싶었다.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소울브레인이 GL에게 꽤 필요해질 것 같기도 했고.

그나저나-

“조만간 워싱턴에 오신다면서요?”

[예. 방미 경제인단의 일원으로 함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좋네요. 그때 한번 얼굴 보시죠.”

[네? 아… 워싱턴 근처에서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고. 저도 거기 참여하기로 했거든요.”

[정말이십니까? 분명 명단을 확인했을 때는 선 대표님을 못 찾았던 것 같은데…….]

박 부회장과의 만남 약속을 잡았다.

예전 트럼프와 통화를 했을 때, 그가 한 가지 행사에 나도 와 줄 수 있냐며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워싱턴에 갈 일정이 있었던 것.

참고로, 그 일정에 박 부회장 또한 함께 참여한다.

하지만 그가 나도 참여하게 됐다는 걸 모르는 이유가 있었는데.

“아, 저는 한국 측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거든요.”

[…예?]

“트럼프가 방미 경제인단을 맞이하는 미국 재계 인사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서요. 사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요. 국내서 벌이는 사업과 규모 차이가 열 배가 넘다 보니.”

[……????]

통화 너머로도 박 부회장에게서 느껴지는 잔뜩 당황한 기색.

하긴, 한국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경제인단을 맞이하는 한국인 미국 기업인이라…….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겠지.

하지만 나름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슬슬 문어발도 제대로 된 문어발들만 남겨 놔야 하니까.’

회귀 이후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키워드의 기업이라면 무차별적으로 투자하고, 인수하고 그랬던 나다.

내가 어떤 기업이 미래에 큰 성장을 거둘지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게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였는데.

덕분에 많은 이익을 보기는 했지만, 개중에는 겉모습만 그럴듯하지 안에서 보면 ‘스읍, 이거 지금 보니 생각보다 뭐 별거 없는데?’ 싶은 기업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참에 그런 기업 중 몇 개를 정리하려고 하는 것.

물론 그렇다고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기업들은 아니다.

나야 뭐 대략적인 미래를 알고 있는 데다가.

관련 분야에 투자해 온 것도 몇 년째였다 보니 이게 수년 내로 상용화될 수가 없는, 계속 갖고 있기에는 애매한 기술이나 기업이라는 걸 아는 거였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 세계 어디를 가건 핫한 주제인 4차 산업혁명에 아주 걸맞은 모습의 기업으로 보일 거다.

즉, 지금이 팔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는 것.

‘어차피 한국 경제인단들이 와서 트럼프 앞에서 할 말이라고 해 봐야 대미 투자를 늘리겠다는 거일 텐데.’

다들 최소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까지의 투자 계획을 들고 올 경제인단들이다.

부지 사서 공장 건설하고, 제품 개발 위해 미국 R&D 기업들 사들이고, 소프트웨어 파워에도 투자하고.

그런데 내가 미국에서 기업가 생활을 하다 보니 느낀 게 있다.

먼 타지에서 투자를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거.

분명 그건 한국 경제인단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한국인 좋다는 게 뭔가.

내가 나서서 잘 도와줘야지.

거기에 이왕 투자하고 이것저것 사들일 거면 같은 한국인인 내 거 사면 참 좋지 않겠나.

[선우진도 빚쟁이? 클라우드 투자 위해 130억 달러 추가 대출 요청한 선우진!]

[아마존과 구글과 맞서 싸우는 건 선우진에게도 무리였나?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느꼈다”라며 추가 대출의 이유 밝힌 SCP의 셀립스키 CEO.]

게다가 상황 또한 받쳐 주고 있기도 했다.

클라우드 사업에 쓰이는 돈이 무지막지하다 보니.

최근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았다.

덕분에 내가 요즘 자금 필요하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

이런 타이밍에 내가 눈물을 머금고 기업들을 파는 거였으니…….

사려는 수요는 꽤 많지 않을까?

‘사실, 진짜 급한 건 아니고 일부러 낸 기사이긴 한데…….’

거기에 이런 상황적 요소에다가 경제인단의 방미 일정에서 내 친구 트럼프가 ‘오! 그것 참 좋겠군!’ 따위의 말로 한두 마디 어시스트 해 준다면?

‘진짜 재밌는 일이 생기는 거지.’

빨리 방미 경제인단들을 보고 싶었다.

이런 게 참 외국 생활의 슬픔이다.

한국을 오래 떠나 있다 보면, 같은 한국인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진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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