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바이오 쪽도 둘러볼 겸,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요새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한 느낌이었다.
회귀 이후로 거의 한국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미국도 같았지만, 그래도 여기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이 더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날 보더라도 잘 말을 걸지 않았다.
‘…어쩌면 경호원들 때문일 수도.’
총기 소지가 허용인 나라다 보니 경호원 모두 총기를 지참하고 나를 따라다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하튼.
스윽-
[선우진, 새로운 연인 포착? 3살 연하 독일 출신의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카밀라 라파엘리로 확인.]
-ㅅㅂㅅㅅ
-윗 댓글 뭔 뜻임?
-시발세상…….
-와 진짜 존나 부럽네; 키 커, 돈 많아, 얼굴은 존잘이야, 여자 친구도 예뻐… 시발 세상이 맞다 진짜.
-얘 근데 요즘 뭔 일 있냐? 최근 들어 여자 만난다는 기사만 겁나 나오네? 아니면 예전에는 비밀로 만나서 안 걸리다가 이젠 걍 숨기기 귀찮아진 건가?
-ㅋㅋㅋㅋ군대에서 여러 가지를 느낀 게 아닐까.
-2년 동안 땀내 나는 놈들이랑 몸 부대끼며 살아 봐라… 스님도 못 참음 ㅇㅇ
-ㄹㅇㅋㅋ
오랜만에 연예 뉴스란을 들어갔더니, 메인에 떡하니 내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 열애설이 한국에서 그렇게 핫한 기삿거리라던데.
기사와 댓글 반응처럼 나는 요즘 들어 이런 식으로 자주 연예 뉴스란에 등장하고 있었다.
뭐, 몇몇 추측처럼 군대에서 보낸 생활이 내 심경의 변화를 이끌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난 입대 이전에도 딱히 여자를 안 만나야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으니까.
19살 때는 아무리 회귀했다고는 해도 고딩은 좀… 정도의 생각은 가졌지만, 그게 전부였을 뿐.
그냥 일이 하도 바쁘고 집중할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보니 좀처럼 기회가 없었던 거다.
‘그리고 그때는 회귀 3년 차까지 겪는 회귀 뽕이 한창일 때였지.’
회귀해 본 사람만 안다는 회귀 뽕.
나도 그것에 걸리고 말았었는데.
돈 버는 재미에 맛 들려서 모든 투자와 사업을 손수 진두지휘하려다 보니 짬 낼 겨를이 없었던 것.
하지만 입대를 위해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사업체들이 나 없이도 돌아가는 체제를 갖추게 되고.
그게 지속되다 보니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일부러라도 숨기지 않고 여자를 만나기 시작한 이유가 있긴 했는데.
-그러면 그때 찌라시는 개헛소리였던 거네ㅋㅋㅋ
-애초에 ㅈㄴ 근거 없는 거기는 했음.
-군대 동기 선후임들 증언도 나왔었잖아, 그런 사람 절대 아니라고. 선우진 프로듀스 119 나올 때는 겁나 챙겨 보고 다음 남자 버전으로 나온 거 누가 틀으면 그딴 거 왜 보냐 그랬다던데 ㅋㅋㅋㅋ
-아니 ㅅㅂ 자기네 회사가 만든 거잖아 그것도ㅋㅋㅋ
-ㅋㅋㅋ아무리 그래도 군인한테는 그딴 거 맞지.
-ㅆㅇㅈ
-솔직히 처음부터 말이 안 됐음. 갑자기 뜬금없이 선우진 게이설이 말이 됨?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내 성적 취향에 대한 헛소리가 돌기 시작한 것.
선우진이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돈도 많고 그렇게 생긴 사람이 지금까지 열애설 한번 안 터진 게 말이 되냐며 그게 다 동성애자여서 그렇다는 헛소문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심지어 그런 소리가 돌게 된 이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국에는 한 가지 인터넷 유행어가 있다.
바로 게이(게시판 이용자)라는 단어.
뭐, 진짜로 그게 게시판 이용자의 준말로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디씨인사이드는 물론이고 롤 등의 게임에서도 활발하게 쓰이는 인터넷 용어였다.
주로 남성 유저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로, 용례는 자게이(자유 게시판 이용자)나 익게이(익명 게시판 이용자) 등이 있는데.
사실 어감이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사람 이름 뒤에도 붙여서 쓰고는 했다.
그리고…….
‘이놈들이 문제야, 이놈들이.’
-디씨 인사이드 선우진 갤러리-
그런 단어가 아주 활발히 쓰이는 곳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대체 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떠드는 선우진 갤러리였다.
이곳의 베스트 글, 일명 개념 글 목록을 보면 이랬다.
[오늘자 우진게이 씹호감인 점.]
[싱글벙글 우진게이 근황.]
[선우진 따라 투자하시는 분들 필독.jpg]
[우진 게이야…….]
나를 칭할 때 대부분 저렇게 칭하고 있는 것.
뭐, 물론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라면 저게 정말로 그 게이를 뜻하지 않는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무래도 글로벌 한 사람이다 보니…….
‘레딧에 누가 저 선우진 갤의 글들을 퍼 갔었지.’
영어권 사이트에도 나를 주제로 떠드는 비슷한 게시판이 있었는데.
멍청한 구글 번역기가 우진게이의 게이를 그대로 gay로 번역해 버린 거였다.
그리고 그게…….
한국인들은 왜 선우진을 게이라고 부름? -> 그러게. 한국에서 그가 커밍아웃을 했나? -> 그런 기사는 없는데… 근데 했으니까 그러는 게 아닐까? -> 하긴, 할리우드의 모든 모델과 배우가 쟤를 노려 왔는데 안 넘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겠지 -> 왠지 여자 안 만나더라… 선우진이 게이였구나!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되어 버린 것.
심지어 더 웃기는 건 그렇게 시작된 미국 내 선우진 게이설이 원인 제공을 한 한국에 역으로 수입되었다는 거다.
할리우드발 최신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둔갑되어서 말이다.
-근데 저번에는 다른 여자였지 않냐? 언제 헤어짐?
-몰루? 이번에 한국 잠깐 들왔었던데, 헤어지고 왔던 거였나?
-솔직히 선우진이 ㅈㄴ 아깝긴 했다 ㅇㅈ?
-쟤랑 비교하면 어케 안 아까움ㅋㅋㅋ ㅅㅂ 재산이 100조가 넘어, 100조.
-하루만 선우진 1일 체험 어케 안 되냐? 겁나 부럽네.
-남들은 보면서 침이나 흘릴 사람들을 계속 바꿔 가면서 만나는 삶… 그런 건 어떤 삶일까?
-진짜 선우진이 부자 중 젤 부러운 새끼임… 외모, 재력 양쪽에서 탑인 새끼라…….
그래서 뭐, 그때부터는 나도 내 자신을 풀어 버렸다.
연애 사업… 같은 거창한 말까지는 아니고.
내게 오는 사람 중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딱히 막지 않은 것.
그리고 그런 삶을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바짝 달라붙던 경호원들 수만 조금 줄여도 파파라치가 금세 늘어나 버리더라.
결국 그 덕에 미국은 물론 한국서도 다 사라져 버린 내 게이설.
다만, 그 영향으로 한국 내에서 내게 일종의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씌워지기도 했는데.
“뭐 보고 있어요?”
“아, 별건 아니고. 한국에 우리 기사가 나서.”
여기 이 카밀라는 지난 반년 사이 나와 열애설이 난 거로 치면 6번째인 여성이었다.
누가 보기에는 내가 6개월 동안 5명이나 되는 연인을 갈아 치운 끝에 카밀라와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닌 게, 엄밀히 따지면 그 6명 중 정말로 내 여자 친구였던 건 단 2명뿐이다.
미국의 데이트 문화는 한국과는 조금 달라서 별의별 남녀 관계가 있다.
그냥 going out 하는 관계, dating 하는 관계, 정말로 서로를 연인이라 부르는 관계, 결혼까지 기대하는 진지한 관계 등.
그저 캐주얼 하게 만남을 가지는 FWB 관계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다.
여하튼, 그런 미국식 단계 분류에 따르면 나와 서로를 연인이라 불렀을 만한 이들은 여섯 중 둘밖에 없었는데.
이게 한국에는 내가 그 여섯 명 모두와 사귀었던 거로 알려져 있었다.
분명 ‘연인은 아냐. 서로 알아가는 단계…….’라고 확실하게 알려 줬건만.
한국에서는 그게 사실상의 연애 인증이 되는 탓에…….
언론에는 뭐 선우진의 새 여자 친구다 뭐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더라.
그 이후에는 부정해도 안 믿어 주었고.
“그런데 이런 요트는 얼마 정도 해요?”
“이거? 글쎄, 한 50million 정도 하지 않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네.”
“와우… 50million…….”
지금 나와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와 있는 카밀라 또한 그런 관계였다.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
만난 지도 고작 일주일 된 사이였다.
이미 할 건 다 했더라도 서로에 대한 헌신(commitment) 없이는 서로를 연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연애란다.
-캬! 역시 인생은 선우진처럼.
-ㄹㅇ 다태선이다, 다태선. 다시 태어나면 선우진.
-구토로서 선우진 마음에 드는 점: ㅈ같은 다태호 소리 안 봐도 됨 ㅋㅋㅋㅋ
-ㅆㅇㅈ
-애초에 선우진이 구토이기도 함ㅋㅋ 메시 vs 호날두에서 항상 메시 뽑잖아.
다행인 점은 이런 나의 행보(?)가 별다른 비호감을 사지 않았다는 거였는데.
여성들 사이에서는 ‘선우진이라면 뭐… 그럴 만도 하지’와 같은 느낌이었고.
남성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며 아예 더 큰 호감을 얻고 있단다.
“계속 바다만 보고 있을 거예요? 우리 안으로 들어가요.”
뭐, 아무튼.
‘그러고 보면 나도 할리우드 사람 다 됐어.’
친구의 전 연인을 만나는 건 아직 거부감이 있어도, 이런 캐주얼 한 연애 스타일은 마음에 들더라.
디즈니 다음 간다는 소리를 듣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오너가 바로 나였으니, 당연한 소리이긴 했다.
* * *
[터키, 미국과의 외교적 갈등 격화… 경제제재 가능성도 대두.]
[트럼프 행정부, 터키에 간첩 혐의로 구금된 브런슨 목사의 석방 요구. 불발 시 경제제재 카드 꺼낼 수도?]
[미 행정부, 브런슨 목사의 억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터키 장관 2명의 미국 내 자산 몰수.]
[터키 “브런슨 목사 석방 요구, 터키 법치 무시하는 것”]
며칠 후.
터키의 반응을 살피며 제이슨과 통화를 했다.
“의외로 터키가 세게 나오네요.”
[60년 넘게 NATO 회원국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그 간의 동맹이 있는데, 말처럼 경제제재를 하냐 싶을 겁니다.]
“…어휴. 아직도 트럼프를 그렇게 모르나 보네.”
문득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지금이야 트럼프의 임기 초기니 설마설마 싶겠지.
당장 중국과 맞붙은 게 바로 직전인데 거기서 적을 또 하나 늘리는 게… 지금까지의 외교 상식으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일 테니까.
하지만 타이슨과 트럼프의 커다란 차이점이 하나 있다.
그건 타이슨은 복싱 선수다 보니 같은 체급의 복싱 선수와 일대일로 맞붙겠지만,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는 것.
자기 눈에 거슬리면 미들급이건 페더급이건, 심지어 상대가 몇이건 상관하지 않고 일단 패고 보는 게 트럼프다.
[보스의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재제를 가한다면…….]
“리라화가 엄청나게 폭락하겠죠.”
[예. 그리고 주변국과 기타 신흥국의 경제에도 영향이 클 겁니다. 남아공, 브라질, 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국의 통화가치도 덩달아 흔들릴 테고요.]
“음…. 터키에만 집중하지 말고 방금 말씀하신 국가들에 자금을 적절하게 나눠 투자하는 거로 하죠. 터키를 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전쟁에 병력을 보내 준 형제의 나라인데.
내가 너무 나쁘게 대하면 섭하지… 는 반 정도만 진심이고.
나머지 반은 세계의 경제 흐름이 내가 아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를 군데군데서 체험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더 크게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이 자금이다 보니, 진심 펀치로 때리면 안 그래도 불안정한 터키는 정말 폭삭 망할 수 있기도 했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니까…….’
그… 내 진심 펀치도 여러 나라가 나눠 맞으면 괜찮지 않을까?
때리려는 놈이 이런 말을 하니 무슨 학폭 가해자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중국 다음에 터키를 비롯한 신흥국들…….’
내가 중국 증시 폭락에 때려 박은 300억 달러는 지금 벌써 60%가 넘게 늘었다.
300억이 500억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것.
그러면 그 500억 달러를 터키를 비롯한 신흥국 환율 불안정에 베팅한다면?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크게 한탕 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20~30%의 수익률은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그 600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가지고 뭘 해야 할까.
‘그다음은…….’
하긴 뭘 해.
다시 중국으로 가야겠지
그때쯤이면 미중 무역 전쟁 2차전이 있을 거거든.
그것도 1차전보다 몇 배는 더 격렬해질.
아, 역시.
‘차이나 머니가 제일 기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