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종전과 다른 회사
파리에 온 김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엄청난 유명 인사.
나도 돈 좀 벌면서 나름 유명해졌다지만, 그래도 이 사람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반짝-
“…아, 아앗.”
카페 안으로 그가 들어서자 순간 눈이 부셨다.
이런 게… 후광인가?
한 명의 축구 팬으로서 가슴 떨리는 자리.
아마 그 때문일 거다.
“지주,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지주, Zizou.
풀네임은 지네딘 야지드 지단.
프랑스의 레전드이자 축구사 전체를 통 틀어도 레전드로 꼽힐 마에스트로, 지단이었다.
오늘 내가 그를 만나러 온 이유는 하나였다.
“감독님께서 다음 시즌부터 크리스탈 팰리스의 지휘봉을 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으로 스카웃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건 바꿔 말하면 현 감독인 비엘사 감독과의 작별을 뜻하기도 했다.
‘다행히 안 좋게 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언론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비엘사 감독과는 이번 시즌 이후로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재계약 없이 원래 계약이 끝나는 때였던 이번 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다른 감독에게 맡기기로 한 것.
좋은 이별이라는 게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마냥 안 좋지만은 않은 끝맺음이었다.
서로 간의 이해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기 때문.
‘마르셀로, 모국인 아르헨티나로 가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네. 아직 삼파올리 그 친구가 맡고 있으니 확정은 아니지만… 협회에서 제의가 왔거든.’
며칠 전 그와 나눴던 대화.
아르헨티나인인 비엘사 감독이 메시의 은퇴 이전 아르헨티나의 지휘봉을 잡고 싶어 했던 것.
현재 아르헨티나의 감독은 호르헤 삼파올리.
빈말로도 그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이번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예상한 아르헨티나 축협에서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거였다.
그렇다고 몇 달 놔두고 감독을 경질할 수는 없으니 성적을 보고 경질을 결정한 후 그 대안으로 비엘사 감독을 찾은 것.
물론, 그렇게 되면 비엘사 감독이 확정나지도 않은 불확실한 자리 때문에 소속 구단을 떠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지만.
사실 그가 팰리스를 떠나는 건 단순히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자리 때문은 아니었다.
‘스읍…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경질성 계약 종료이기도 하지.’
[“비엘사 Out!” 팰리스에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 믿는 서포터들.]
[크리스탈 팰리스의 챔스 부진… 팬들은 그 원인을 비엘사에게로 돌려.]
구단 외적으로도 그에 대한 경질 여론이 꽤 있었던 것.
비엘사 감독은 지난 5년 동안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3개의 우승컵(EPL 2회, 리그 컵 1회)을 안겨 준 뛰어난 감독이었다.
그것도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 2연속 EPL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감독.
하지만 리그 내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챔스에서만큼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16강-4강-8강-16강.’
최근 4년 동안 크리스탈 팰리스의 챔스 성적이었다.
두 번째 진출한 챔스에서 4강에서 아쉽게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때만 해도 이후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점점 낮아진 크팰의 챔스 성적.
EPL에서는 2연속 우승에 이어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맨시티를 바짝 뒤쫓는 2위로 호성적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챔스에서는 계속 조기 탈락을 했던 것.
매번 돈은 맨시티와 함께 투 톱으로 쓰는데 챔스에서 성적은 나오지 않는 상황.
그 탓에 EPL 우승으로 인해 잔뜩 눈이 높아져 버린 크팰의 서포터들 사이에서 비엘사가 아닌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작년부터 나오고 있던 것이다.
사실 나로서도 불만이 있기도 했다.
‘덕배, 살라, 음바페, 반 다이크, 테오랑 뤼카 형제, 요즘 폼 좋은 마레즈랑 쏘니, 델레 알리…….’
거기에 번갈아 가며 출전해 득점력과 연계 양면에서 고루 장점을 보여 줌은 물론, 팀에 근본력을 불어넣는 즐라탄과 제이미 바디.
재작년에는 후방 빌드업을 위해 슈체츠니와 우파메카노도 새로 사 왔다.
베스트 11은 물론 로테이션 멤버까지 리그 최고급으로 갖춘 스쿼드.
‘이 정도면 최소 챔스 4강권 스쿼드긴 하니까.’
하지만 정작 성적은 오히려 떨어지기만 하고 있었으니.
나 또한 슬슬 작별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것.
즉, 지금의 상황은…….
‘비엘사 감독 스스로도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아르헨티나 축협에서 연락이 온 거지. 그리고 그게 챔스 성적을 원하는 나와 이해가 잘 맞아떨어진 거였고.’
서로의 이해가 살짝씩 맞물린 덕에, 완벽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모두 해피해질 수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최종 단계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지단이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챔스 2연패에 이어 올해까지 3연패를 노리는 지단 감독.
그가 바로 다음 시즌 팰리스의 감독이었다.
* * *
프랑스 몽트뢰유.
유비소프트 본사.
한창 새로운 소유주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그곳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우울했는데.
“빌어먹을.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게 대체 뭐가 되는 거야?”
“겨우 비방디한테서 지켜 냈나 싶었더니…….”
3년 가까이 그들을 괴롭혔던 적대적 인수 합병.
몇 주 전 있었던 비방디 그룹의 M&A 포기 발언으로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었는데.
어제자로 갑자기 발표된 지분 매각 소식이 그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 버린 것이다.
그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5% 상당의 지분의 소유주에게 비방디의 모든 지분이 넘어가다니.
심지어 다시 사 올 수도 없는 게 소유주가 바로 그 선우진이다.
프랑스인들도 축구 팬이라면 다들 알 정도로 유명한 슈퍼 리치이자 미디어 엔터 업계의 거물.
알려진 재산만 해도 유비소프트 시가총액의 10배는 넘었다.
‘다시 인수해 오는 건 말도 안 되고… 후우, 유비소프트의 역사가 이대로 넘어가는 건가?’
한평생을 유비소프트에 바쳐 온 기예모 형제로서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상황.
‘다른 아시아계 자본처럼 나온다면…….’
그러면 눈물을 머금고 오랜 둥지를 떠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사실, 전 세계 게임 산업에서 텐센트 등 중국발 자본의 위력은 요 몇 년 사이 엄청나게 증가한 상황이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무차별적인 투자를 해 지분을 취득하고.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친중국 계열의 게임을 제작하려 하는 중국발 자본들.
그런 모습이 일상화된 게 요즘의 게임 산업이었다.
기예모 형제를 비롯한 유비소프트 기존 경영진으로서는 선우진 또한 그러지 않을까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게임’이라는 것에서 한국인이 차지하는 위상이 위상이니만큼, 한국인과 중국인이 같은 동북아시아에 있다는 것만 비슷하지 무척이나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는 경영진들이었지만.
그건 게이머로서의 얘기였지, 게임 회사로 넘어가면 오히려 중국보다도 못한 게 한국이었다.
과금과 랜덤 박스 요소 등에만 집중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한국의 게임 회사.
그래서 게임 업계에서의 한국인은 게임의 민족, 하지만 못 만드는 민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선우진 또한 한국인인 만큼 유비소프트를 데리고 혹시 한국의 게임 회사처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아, 방금 막 아래에 도착했답니다.”
“후우. 모두들 준비하시죠.”
‘과연…….’
그렇게 걱정 속에서 선우진을 맞이하는 유비소프트의 경영진들이었다.
* * *
유비소프트 경영진과의 대화.
나는 정확히 31%의 유비소프트 지분을 소유한 덕분에 62%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회사를 내 마음먹은 대로 다룰 수 있다는 뜻.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게 주어진 권력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치체제로서의 독재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기업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내 사업체들에 그래 왔던 것처럼 유비소프트에게도 절대왕권을 휘두룰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유비소프트는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던 유비소프트와는 다른 회사가 될 겁니다.”
“…아.”
“…….”
어디선가 들려온 탄식.
슬쩍 시선을 돌려 보니 현 대표이사인 이브 기예모였다.
‘지금까지 유비소프트를 잘 이끌어 온 양반이긴 하지.’
어세신 크리드부터 시작해 파 크라이, 스플린터 셀 시리즈 등.
웰메이드라는 평을 받는 AAA게임(대작 게임, 게임계의 블록버스터나 플래그십을 뜻하는 용어)를 수차례 발매하고 성공시켜 왔다.
게임사에 어느 정도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데에 성공시킨 인물.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그랬다는 얘기였고…….
‘앞으로는 다르지.’
한 명의 게이머로서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내놓는 유비소프트의 신작들이 그 전작들과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래서 내가 방금 그렇게 말한 거다.
앞으로의 이 회사는 그 전과 전혀 같지 않을 거라고.
“우선, 개발비부터 짚고 넘어가죠. Mr. 기예모.”
“예.”
“왜 이렇게 개발비를 아끼는 거죠?”
“그게… 예?!”
“물론 총제작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기존 성공했던 유비소프트의 탬플릿을 활용하는 건… 뭐, 이해는 갑니다. 점점 치솟는 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결국 자기 복제만 계속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게이머들이 유비소프트의 게임을 계속 좋아해 주겠습니까?”
내가 게임 산업에 진출하는 건 단순히 게임을 많이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현 주력 사업이라 볼 수 있는 스웜과 써밋-MGM 등의 엔터 사업 그리고 클라우드 플랫폼인 SCP.
이 두 사업과의 시너지 때문이 가장 큰 이유.
일단 네트워크 기반 게임에 있어서 필수 인프라인 클라우드를 내가 이미 갖추고 있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스웜 및 써밋-MGM과의 시너지.
‘당장 스웜의 IP 중 게임과 연계해 써먹을 게 많지.’
<마지막 마법사>의 성공만 봐도 알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잘 쓴 글 하나가 영화가 되어 매 편마다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고, 게임화 또한 준비 중에 있다.
지금 이렇게 유비소프트를 사들인 게 바로 그 게임화를 위한 단계 중 하나.
거기에 <마지막 마법사>뿐만 아니라 <찬탈자> 등의 내것부터 시작해 스웜과 써밋-MGM이 보유한 IP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특히 어쌔신 크리드를 제작했던 유비소프트라면 <007 시리즈>의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게임도 하나의 IP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가 영화로 나와 흥행 수익이 4억 달러 가까이 됐던 것처럼.
많은 게이머의 사랑을 받는 게임을 만든다면 그게 영화나 드라마로 활용될 수도 있었다.
뭐, 그러니까-
“앞으로 유비소프트에서 개발비를 아끼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아껴야 할 부분에서는 아끼는 게 맞겠지만… 괜히 개발비 걱정하며 다른 시리즈에서 써먹었던 요소들 그대로 갖다 쓰는 일 같은 건 불허하겠습니다.”
“…예?”
“돈 아까운 거 잊으시고 팍팍 쓰시라고요. 알겠습니까?”
“…예! 예, 알겠… 습니다.”
이왕 만들 거 돈이라도 제대로 써서 작품성 및 게임성도 제대로 된 거 만들어 내라는 거다.
얼마나 많은 개발비가 들건 그거 이상으로 뽑아먹을 자신이 있으니.
“그리고 또 하나. 이제 유비소프트에 PC는 없습니다.”
“……?”
“퍼스널 컴퓨터 말고 요즘 한창 핫한 주제인 정치적 올바름 말입니다.”
“저… 그러면 각계각층, 특히 미디어 엔터 쪽을 중심으로 반발이 클 텐데요.”
“예? 누가요? 누가 저한테 시비를 건다고요?”
“…아.”
그리고 뭐, 알고 보니 주인공이 남성 아니고 여자였다거나.
고증이랑 다르게 갑자기 PC 떡칠한 캐릭터가 등장한다거나 그런 일도 없어야 한다.
왜, 백인에 빨간 머리 공주로 묘사되던 캐릭터가 갑자기 흑인이 된다거나.
전작에서는 남자 설정이었던 등장인물이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였다고 한다거나 그런 경우 말이다.
개중 몇 개는 실제로 유비소프트가 했던 짓이다.
뭐, PC 단체들에게 비난받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게임 회사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다.
“제가 한 해 미국 소수 인종 단체에 지원하는 돈만 얼마인지 아십니까?”
“…….”
“그리고 오너인 제가 아시아인인데요. PC로 저한테 덤빈다고요? 그러면 바로 오너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 하는 거로 몰고 가면 되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