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화끈한 투자
사실 나도 이 정도까지 통신 시장에 투자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뭐, 애초에 그 계기부터 얄팍한 이유였지 않나.
스읍… 이놈들이 나를 건드려?
안 되겠다. 안 그래도 망 사용료 때문에 고민 중이었는데 이참에 내가 먹어야지
처음에는 그 정도 생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제대로 구체화하기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여론 조사 기관 세 곳에 따르면 SW 텔레콤이 정식 출범할 시 바로 통신사를 이동할 거라 대답한 비율이 43%에 달합니다. 약정 종료 후에 바꾸겠다 대답한 비율도 32%고요.”
우선, 내 예상보다 더 큰 호응이 따라왔기 때문.
그만큼 통신 3사에 대한 국민적 불호 여론이 컸다는 뜻.
“몇 달 뒤에 5G 주파수 경매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기본 경매가는 9,820억 원으로 1조 원 상당의 최종 낙찰가가 예상됩니다.”
거기에 타이밍도 좋았다.
과거에 그런 기사를 여럿 본 적이 있다.
[IT 강국, 대한민국. 세계 최초 5G 기술 선보여……!]와 같은 것들.
그런 걸 처음 봤던 게 이상기 대표의 말대로 올해 말쯤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다.
‘굳이 4G에 투자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언젠가는 5G로 교체될 기술.
게다가 코로나가 터지면 데이터 사용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테니 수요 또한 충분할 거다.
만약 4G LTE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버리고, 5G에만 집중해 5G 요금제를 다른 통신 3사의 LTE 요금제와 비슷한 가격에 내놓는다면…….
가격 경쟁력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발 주자이기에 취할 수 있는 전략.
“5G로 전국에 망 구축을 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까요?”
“3.5GHZ와 28GHZ 대역 전부 전국망을 구축할 때 드는 비용은 최소 10조 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4G를 거칠 필요 없이 5G로 바로 뛰어드는 건 어때 보입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전까지는 기존 통신 3사의 4G망을 빌려 써야 할 겁니다.”
“돈을 더 쓴다면 1년까지 단축할 수 있을까요? 시공사들이야 넘쳐날 테니. 1년 정도면 망 대여료를 아무리 비싸게 책정해도 큰 부담이 안 될 테고, 정부가 과도한 대여비를 막아 주기도 할 테니까요.”
내 물음에 이상기 대표가 어렵다는 듯한 얼굴을 했는데.
“그러면 시공사들의 일정을 당겨야 하는 만큼 최소 12~13조 원이 들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13조 원 정도가 드는데… 그다음 하시려던 말은 뭐죠?”
“……?”
재차 묻자 당황한 얼굴을 하는 이상기 대표.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 주파수 경매에 1조 원, 망 구축비에 13조 원, 유통망 구축 등이 5조 원 이상. 한 해 투자 비용만 20조 원이 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요……?’라고 답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 이상기 대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와 접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런가?’
그가 대표로 있는 SW 텔레콤의 전신인 SW 헬로비전은 CM 그룹에서 인수해 와 그대로 운영을 맡겼던 곳.
SW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사실상 그전의 CM 헬로비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회사였다.
이상기 대표도 인수 당시에만 한 번 얼굴을 봤을 뿐, 이번에 보는 게 두 번째였다.
즉, 이상기 대표는 잘 모르고 있다는 거다.
자기네 회사 오너가 나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가 올해 SCP의 투자비로 책정한 게 300억 달러입니다. 사실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3배 더 많아요. 그리고 내년 투자비로도 비슷한 만큼이 준비되어 있고요.”
“…….”
“참고로 대출 하나 없이 순수한 제 돈으로 하는 겁니다.”
“예?!”
이 아저씨, 이제 안 건데 표정 변화가 격해서 좀 재밌네.
여하튼.
돈 많이 번 이후로 안 한 지 한참 된 거긴 한데…….
오랜만에 남들처럼 나도 해 보지, 뭐.
내 돈 말고 남의 돈도 빌려서 사업하는 거.
“저한테 돈 빌려주겠다는 금융 기관들은 넘쳐 납니다. 아마 1시간이면 300억 달러 이상 최고 조건으로 대출해 줄 테니 자기네들한테 빌리라는 은행들이 열 곳은 넘을걸요?”
“어… 저, 그러시면 지금까지 다른 사업들은 금융 기관 대출 없이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입이 떡 벌어지는 이상기 대표.
어서 와.
선우진은 처음이지?
* * *
이왕 화끈하게 가는 거, 제대로 화끈하게 가기로 했다.
[제이슨 - 골드만삭스에서 400억 달러를 2.6%의 이자율로 대출해 주겠다고 합니다.]
[제이슨 - 자일링스 M&A 주관사를 자신들에게 맡기면 2.3%까지 이자율을 낮춰 줄 수 있다고도 하고요.]
[제이슨 - 스탠다드 차타드에서는 200억 달러가 최대라고 합니다. 2.5%의 이자율이고요. 기한은 두 곳 모두 5년입니다.]
[제이슨 - 현재까지로는 골드만삭스의 조건이 가장 좋습니다.]
톡, 토독-
[나 - 골드만삭스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거로 하죠. M&A 협상을 맡기는 거로.]
[나 - 추가적으로 스탠다드 차타드 쪽에 150억 달러 더 빌리는 거로 하고요.]
모름지기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해야 제맛이라 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른다.
언젠가 책이나 기사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재벌물의 등장 인물 중 누가 한 말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 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우드 등 다른 비용으로 훅훅 써 버려 조금씩 줄어들던 곳간이 다시 꽉 차 버리니 남의 돈임에도 기분이 좋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돈이 풍족해진 만큼 고려할 수 있는 옵션들이 더욱 많아졌다.
“최적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서는 네트워크 지연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해저 광케이블 설치는 필수죠.”
대출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온 셀립스키.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네.’
그래도 그냥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 봐야 할까.
클라우드 서비스의 핵심은 바로 저지연.
그건 단순히 데이터 센터를 여럿 설치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전 세계 곳곳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필수적.
그런 만큼 아마존과 구글, 페이스북과 MS 모두 자체적인 해저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있다.
실제로 광케이블 길이로 전 세계 기업들의 순위를 매겨 보자면, 통신사들이 아닌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순이었다.
SCP 또한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전 세계에 모두 깔아야 했는데.
괜히 셀립스키가 내개 ‘돈 내놔라, 선우진.’을 시전했던 게 아니다.
대출금을 바탕으로 국내에 5G 전국망을 깔고 전 세계에 해저 광케이블도 설치할 생각이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둘을 함께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통신 3사처럼 2티어 통신사로 만족하지 않아도 되잖아?’
통신 사업자들은 티어 1, 2, 3으로 급이 나뉜다
같은 티어의 통신사끼리는 서로 데이터를 주고 받아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티어의 통신사들은 윗티어의 통신사를 이용하면 돈을 줘야 한다.
2티어 ISP인 통신 3사들은 외국의 1티어 통신사들에 데이터를 전송할 때 트랜짓이라 부르는 이용료를 내고 있는 것.
그렇다면, 왜 통신 3사들은 1티어 통신사가 되지 않고 이용료를 내면서까지 2티어로 만족하는 걸까?
바로 해저 광케이블 때문이다.
1티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을 내고 깔 바에는 그냥 일본 통신사에 돈 주고 빌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게 통신 3사들의 입장이란다.
해 봐야 5,000만 명 조금 넘는 한국 인구수.
거기서 세 회사끼리 싸우느라 매년 마케팅 비용도 몇 조 원씩 드는데, 해저 케이블까지 깔 여력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나한테는 어차피 클라우드를 위해서 깔아야 하는 비용인 거고.’
즉, 어차피 깔아야 하는 해저 광케이블.
이걸 SW 텔레콤과 잘 결합해서 SW 텔레콤을 1티어 통신사로 만든다면?
한번 생각을 해 봤다.
SW 텔레콤이 1티어 통신사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때의 국민 여론이 전세계 해저 광케이블을 갖춘 SW 텔레콤이라는 국내 기업이 있음에도, 지금처럼 통신 3사가 일본 광케이블을 빌려 쓰는 걸 용납할까?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인데?
즉, 울며 겨자 먹기로 통신 3사는 해저 케이블 사용을 SW 텔레콤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
자기네 경쟁 회사에게 알아서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그때 가서 부랴부랴 해저 광케이블을 깔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능력이 안 되기도 했고.
* * *
[대한민국, 최초의 1티어 통신사 가질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여]
[선우진의 발표에 과학 기술 정보 통신부 응답? “IT 강국인 한국에 그간 1티어 통신사가 없었다는 건 크나큰 단점. 데이터 시대에 맞춰 통신 산업에서도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 갖춰야…….”]
[사실상 확정된 SW 텔레콤의 제4 이통 선정. 추가 정책 브리핑에서 “긍정적으로 검토 중. 사실상의 허가 절차만 남은 셈.”]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가 코앞… 선우진이 한국 통신 업계 선도하게 되나?]
발표가 있자마자 방송국과 신문, 인터넷 뉴스를 가리지 않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덕분에 IT면은 나와 관련된 기사가 전체 점령.
경제면은 반 정도 점령이었는데.
[국내 통신 3사, 선우진의 발표 이후 대규모 하락세]
[‘통신 3사의 대위기’… 금융 기관들 부정적인 리포트 쏟아 내고 있어]
다른 반은 통신 3사의 얘기였다.
3사 모두 주가가 순식간에 10% 이상 빠졌기 때문.
[MKT: -16.34%]
3사 중 이용자 수가 가장 많았던 MKT가 가장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용자 수가 많았던 만큼 그 충격이 제일 클 것이라 판단한 것.
-ㅅㅅㅅㅅ쑤아리~~~ 내가 경고했제~
-지금까지 MKT 안 팔고 들고있던 흑우 없제?
-ㅋㅋㅋㅋㅋ선우진이랑 마찰 있을 때 안 팔고 뭐했냐?
-커뮤에서 보고 아빠보고 MKT 바로 정리하라고 함 ㅋㅋㅋ 처음에는 뭔 소리냐 하셨는데 오늘 덕분에 살았다며 소고기 사주신다네 ㅎ
-걍 딱 말해줌. MKT 말고 MK 하이닉스도 들고 있는 애들 있지? 전부 팔고 오성전자로 넘어가라 ㅇㅇ 힌트 줬다
-위엣 놈 주식 초보인 듯; 오성은 이미 선우진 버프 받고 오를대로 올랐는데;
-여전히 여력 있다ㅋ 선우진 하루 이틀 보냐?
-맞말추
특히 MKT 주식 토론방의 반응이 제일 핫했는데.
[MK 하이닉스: -4.35%]
그 때문인지 반도체 호황기를 타고 연신 최고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MK 하이닉스의 주가까지 소폭 하락하더라.
-하;; 시발 선우진 개새끼
-아… 진짜 왜 이러냐…
-최원태 그 새끼를 욕해야 함 ㅅㅂ 지가 뭐라고 선우진한테 깝침?
-ㄹㅇ 걍 주제 파악 못해서 대가리 처맞네 어휴
MK 하이닉스 토론방과 MKT 토론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했다.
꽤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우우웅-
‘……?’
[박재용 부회장 - 대표님, GL그룹의 구탁모 상무로부터 대표님 연락처를 묻는 연락이 왔는데요. 알려 줘도 되겠습니까?]
그때 도착한 박 부회장의 연락.
GL그룹의 구탁모 상무는 GL그룹의 후계자.
즉, 박 부회장이 그런 것처럼 사실상의 실세였는데.
토도독-
[나 - 예. 알려 주셔도 됩니다.]
답장을 보내고 몇 분이 지났을까.
바로 전화 한 통이 모르는 번호로 왔다.
‘항복… 신호인가?’
아직 전화를 받기도 전인데 그 내용이 짐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