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게임이 결실을 봄
제4이동통신사의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역사는 2010년으로 돌아가는데.
당시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점찍으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제4이통’을 추진했던 것.
하지만 여러 이유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는데.
그럼에도 역대 정부들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이후로도 무려 7차례나 진행이 됐을 정도란다.
하지만 7차례의 시도가 있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지금까지 7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뜻.
한국 모바일 인터넷(KMI)이 구축한 컨소시엄에 이어 인터넷 스페이스 타임(IST), 그 외 여러 알뜰폰 사업자 등이 계속해서 도전해 왔지만 심사 기준에 미달해 매번 고배를 마셨었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의 사업권 신청이었던 만큼 방통위에서 재무 건전성을 이유로 불허했던 것.
기존 통신 3사와 맞서 경쟁하기 위해선 수년간 조 단위 투자를 감당할 만한 재무 능력이 절실한데, 대기업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동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는 물론 가계 통신비 인하를 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재무 건전성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재무 건전성으로 나를 따라올 곳이… 있기는 하려나?’
즉,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제4이통’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정부의 합법적인 비자금 조성 루트요?”
“예. 물론 엄밀히 따지면 그저 떠도는 소문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사실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CM 헬로비전에서 SW 헬로비전으로, 이제는 SW 텔레콤의 이상기 사장의 말.
[태종모바일 - +3.54%]
[서울텔레콤 -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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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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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몇 가지 주식 차트도 함께 보여 줬는데.
오를 재료가 전혀 없는 주식들이 적게는 3%부터 시작해 많게는 10%대까지 올라 있었다.
저런 상승의 이유가 모두 ‘제4이통’ 때문이라는 것.
“여기 있는 목록들이 다 지금까지 정부들이 제4이동통신사로 선정 떡밥을 뿌렸던 곳이라 이거죠?”
“예. 맞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제4이통’ 떡밥은 대부분 이랬단다.
우선 고위 공직자들이 내부 정보를 활용해 특정 통신사의 주식을 선취매를 한다.
그다음 언론에 제4이동통신사 관련 발표를 하면서 주가를 띄운다.
그리고 고점에서 팔아넘긴 후 결국 사업자 선정을 불발시킨다.
‘거참… 별의별 방법으로 돈을 버는구나.’
-ㅋㅋㅋ이번 정부도 또 시작이네.
-방법 좀 바꾸긴 함ㅋ 국회에서 먼저 얘기 시작하는 건 좀 새로웠다.
-일단 바로 탑승!
-이럴 줄 알고 평소 동전 시세 갈 때마다 사 모음ㅎㅎ
-이번에는 곡소리 좀 안 나게 적당히 처묵으라~ 아니면 빠지기 전에 사인 주든가~
-그런데 여야 다 저러는 거 보면 이번엔 제대로 먹으려나 본데? 양쪽 다 뿌리려면 돈 많이 들 거 아녀~
혹시나 싶어서 들어가 본 시리즈 종토방.
거기에는 이번 사태를 그간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지만 여기에… 선우진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선!
우!
진!
“보도 자료 준비하세요. 저희가 그 제4이동통신사에 도전한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슬로건은, 이런 게 좋겠네요.”
* * *
비슷한 시각.
MK그룹 회장실.
“뭐야, 이놈들… 왜 이래?”
최원태 회장이 곧바로 비서실장을 불렀다.
제4이통이라니.
갑자기라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또 이거냐는 것.
지지난 정부 이후로 두세 번씩은 거쳐 가는 일이다.
제4이동통신사라는 재료를 통해 고위직들이 수십억씩 챙겨 가는 일.
그런데…….
“청와대 쪽 움직임 알아봤어?”
“예. 현 정부의 의지는 아니랍니다.”
그러면 청와대가 아니라 여의도에서 주도하는 일이라고?
이건 또 최원태 회장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정말 자기들끼리 이러는 거라고? 의원 놈들이 갑자기 헛바람이라도 든 거야, 뭐야?”
용돈이라도 찔러 달라는 건가?
최원태 회장이 다시 한번 제4이통 관련 발언을 한 의원들의 목록을 살폈다.
특이한 점은 여야 가리지 않고 갑자기 제4이통 안건을 떠들고 있다는 건데.
그래도 가장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의원들이 있었다.
‘양형필… 김병원…….’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꺼낸 두 의원.
같은 당의 의원들이다.
한 명은 6선이고 다른 한 명은 4선.
처음에는 6선인 양 의원이 주모자인가 싶었지만…….
“그 말 확실해?”
“예. 양 의원 나이가 올해로 일흔둘입니다. 국회에서도 친한 의원들에게 다음 총선에서는 정계 은퇴하고 출마하지 않을 거라 몇 번이나 언급했었답니다.”
“그랬던 놈이 갑자기 이러는 거면… 누가 큼지막한 당근을 쥐여 주려 했다는 건데…….”
6선 정도면 중진과 원로를 넘어서 이제 슬슬 정치 인생 끝물에 다다르는 시점이다.
특출 난 몇몇이라면 당권은 물론 옥좌도 넘볼 시기.
어쩌면 양형필 의원도 지금 시점에 와서 그런 욕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은퇴하려고 보니까 권력이 주는 단맛이 그리웠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형필 의원은 그 정도의 깜냥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중국통’으로 대중 감정이 극악에 달한 지금 여론의 지지를 받기란 쉽지 않다.
경력 또한 대통령감은 아니다.
지난 정부가 초기 친중을 표했던 시절 장관직을 거쳐 가긴 했다지만, 사드 배치 등으로 대중 관계가 악화되며 물러난 인물.
그 덕분에 화를 피하기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당의 중추 역할로 복귀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6선은 6선이다 보니 여의도에서 꽤 존중을 받기는 해도, 이제는 양 의원이 했던 말처럼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할 때.
‘주모자는 다른 놈이라 이건데…….’
“김 의원 연결해 봐.”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상의도 없이 제4이통 건을 꺼냈으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MK그룹과는 그리 가까운 인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룹 회장 정도 되다 보면 국회의원 연락처쯤이야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비서실장이 김병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뚜- 뚜- 뚜-
“……?”
낭패한 표정을 짓는 비서실장.
그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는 잠시 방을 나갔다.
그리고 몇 분 후.
“회장님, 김병원 의원이 통화를 거부했습니다.”
“…뭐?”
“통화하고 싶으면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시라고… 그러면 성의를 봐서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최원태 회장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고작해야 4선 의원.
그것도 어디 난다 긴다 하는 여의도의 거물이 아니라 그저 지역구 경쟁자들이 허접해서 의원 배지를 유지하는 김병원 의원이다.
그런데… MK그룹 회장 보고 뭐?
하지만 그의 그런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기도 전에, 비서실장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회장님,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포털 뉴스 경제란.
댓글이 많은 순으로 랭킹이 정렬된 그곳에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가 몇 개 있었는데.
“조금 전 막 나온 기사들입니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통신사, 새로운 통신사의 기준을 세우겠다!” 자신감 숨기지 않은 선우진.]
[선우진의 새 사업… ‘제4이통’ 도전?]
[정보 통신 기술(ICT) 업계에 새 바람 부나?!]
[SW 텔레콤 사명 변경 후 제4이동통신사 도전 소식에 통신 3사 모두 주가 하락.]
* * *
“쯧. 어디 MK그룹 따위가 말이야. 그것도 비서실장이.”
탁-
그런 말과 함께 거친 손짓으로 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김병원 의원.
그의 뒤에 서 있던 비서관이 그런 그를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기한테 MK가 따위였다고…….’
보면 볼수록 참 대단한 양반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룹 비서실장이 아니라 주요 계열사에서 전화만 와도 한창 굽신댔을 텐데.
이제는 그룹 회장이 자기를 찾는다는 전화에도 저리 나오고 있다.
태도 바꾸는 게 저렇게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울 수가 있나?
아니면 저렇게 해야 저 형편없는 능력으로도 4선까지 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비법 하나를 깨우친 비서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원님, 그런데 선우진 대표가 정말 제4이동통신사 사업을 추진하려는 걸까요? 그간 대기업들이 괜히 안 쳐다본 게 아닐 텐데요.”
“흐흐. 자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
“예?”
“나도 좀 알아봐서 잘 아네. 대기업들이 그동안 시도를 안 한 이유? 그야 돈이 안 돼서겠지. 정확히 말하면 돈이 되긴 되는데 그만큼 들어가는 투자 비용이 무지막지하니까.”
“맞… 습니다.”
비서관이 놀란 마음을 애써 숨키며 김병원 의원을 바라봤다.
김 의원의 말대로 제4이동통신 사업은 망 구축 비용에 최소 수조 원이 드는 사업.
거기에 단말기 설치나 망 유지 보수 및 신구축 비용 등 매년 추가적으로도 1~2조 원은 가볍게 쓰였다.
지금까지 정부의 여러 혜택에도 대기업들이 이통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던 이유가 있는 것.
아직 보고도 하지 않은 상황인데, 그걸 알고 있다고?
물론 이 정도야 인터넷 포털에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오는 정보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김병원 의원이 직접 그걸 찾아보기는 했다는 건데.
그간의 김병원 의원을 아는 비서관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
바뀐 거라고는 선우진이 연관된 일이라는 것 하나뿐인데.
‘대체 이 양반한테 선우진은 어떤 존재인 거야?’
본회의 바로 직전까지도 서류 한 장 안 읽어 보던 사람이 미리 공부를 하다니.
선우진이 아니었다면 이끌어 낼 수 없었을 변화였다.
여하튼.
“그런데, 왜! 선우진 대표는 그런 사업을 하려는 걸까? 남들 보기에는 딱히 돈 될 것 같지도 않은데? 자네는 그 이유가 뭔지 좀 알 것 같나?”
“그…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예?”
“하지만 나는 그것만큼은 잘 알지. 선우진 대표가 하는 일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어야 한다고.”
“…….”
“가만히 지켜만 보게. 조만간 알아서 기똥찬 솔루션이 나올 테니.”
확신에 찬 김병원 의원의 얼굴.
그걸 보면서 비서관은 생각했다.
요즘 선우진이라면 일단 믿고 보든… 일명 선우진 광신도들이 인터넷서 심심찮게 보이던데.
‘이 양반… 그중 한 명이었나?’
* * *
“역시 대단하시군요.”
셀립스키가 찾아와 말했다.
그는 막 미국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는데.
AWS에서 함께했던 과거 동료들을 SCP로 영입하기 위한 미국행이었다.
통화를 통해 설득하지 못했던 이들을 직접 스카웃하기 위해 갔었다고.
“통신사라…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셨던 겁니까?”
“그림이요?”
“예. 그간 투자하셨던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기업이요. 아니,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회사까지. 대체 언제부터 시작하신 겁니까?”
언제부터 스타트업들에 투자했냐고?
단순히 그걸 묻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대답했다.
“음. 13년도쯤부터요?”
스팀 유저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게 있는데.
스팀의 가장 메인 게임은 바로 라이브러리 채우기라는 것.
나중에 하려는 생각도 없고, 딱히 재밌어 보이지 않아도 우선 무료이거나 엄청 저렴하다 싶으면 일단 구매해 라이브러리를 채워 놓는 유저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기분으로 해 왔던 한 가지 취미가 있었다.
바로 스타트업 컬렉팅.
핀테크, 메타버스, VR, AR, 인공지능, AI, 빅데이터, 자율 주행, 무선통신, 바이오, 블록체인, IoT, 드론 등등…….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수많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라이브러리를 채워 왔다.
홀로 나만의 라이브러리 채우기 게임을 해 왔던 것.
차이점이라고는 남들은 많아 봐야 1~2달러를 주고 스팀 라이브러리를 채운다면, 나는 그 100만 배 정도를 더 주고 내 스타트업 라이브러리를 채웠다는 점이다.
물론, 과장 하나 없이 내가 올해 기준 대한민국 20대 평균 자산인 9,632만 원의 100만 배…….
그러니까 96조 3,200억 원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었으니, 거기서 거기인 행위였지만.
아무튼.
“자그마치 5년 전이군요. 그때면 오픈 랜(Open RAN)의 개념도 구체화 안 됐을 시기였을 텐데.”
“……?”
셀립스키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SCP에 써먹을 구석이 있을까 싶어 셀립스키에게 내 스타트업 라이브러리를 공유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중 통신 쪽과 관련된 회사들의 서류를 뽑아 오더니 한 장 한 장 짚어 가면서 열변을 토하는 셀립스키.
“특히 이 기업은 참 놀랍습니다. 겨우 80만 달러에 이런 기술을 가진 회사의 지분 40%를 가져오시다니…….”
“…투자가 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긴 하죠.”
“예.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통신 기술 쪽에도 조예가 깊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렇군요! SCP를 시작하신 것도 그 일환이었던 거군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외치는 셀립스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흐름이다.
“클라우드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범용 서버 기반 소프트웨어를 활용한다면… 아예 통신 네트워크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꾸릴 수 있겠죠. 네트워크가 가상화되는 거니 자본 투자와 운용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게 될 테니까요.”
“음… 그게…….”
“그렇게 되면 SCP의 데이터 센터가 무선 기지국과 코어 네트워크 역할까지 대신할 수 있고요. 업데이트도 원격에서 이뤄지니 유지 비용도 낮아질 테고…….”
“…….”
“AWS에서도 엣지 컴퓨팅이 언젠가 대세가 될 거라 말한 사람들이 있었죠. 물론 모두 공상가 취급을 받았지만요. 아, 그 친구 중 몇 명이 이번에 SCP에 합류했습니다. 이 얘기를 해 주면 좋아할 것 같군요.”
이래서 나는 공돌이들이 싫다.
문과식 감성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그래도 셀립스키는 경영인이기는 해도 태생이 공돌이였던 터라.
다행히 뭐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했는데.
‘내가 지분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의 기술들을 이래저래 잘 조합해 보면… 통신사에 들어갈 비용이 엄청 줄어든다 이거지?’
정리해 보자면 그런 거 같았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 말이 진짜였군요. Mr.켈러의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었는데.”
‘또 그 양반이야……?’
지금쯤 리사 수와 함께 열심히 갈려 나가고 계실 엔지니어 선생.
또 당신이오?
“대표님을 보스로 부르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던데… 혹시 저도 그렇게 불러도 되겠습니까?”
“어, 음. 편하신… 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