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73화 (173/267)

173화 이윤 추구

며칠 전, MKT의 주관으로 통신 3사 대표들의 회동이 있었다.

“모그룹 차원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이라고요?”

“예. 회장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고 계신 사안입니다.”

MKT 안석진 대표의 말에 다른 두 대표들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통신 3사가 주도해서 선우진을 저격하자고?

그 이유야 당연 이해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망 사용료는 MKT뿐만 아니라 다른 통신사들 내에서도 여러 번 얘기가 오간 사안이니까.

구글, 스웜, 넷플릭스 등에서 사용하는 해외 네트워크 트래픽이 국내 기업의 4배가 넘는 실정이다.

그걸 망 사용료로 받았다면 단순 계산 해도 매년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거기다 해가 지날 때마다 그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었으니.

저 기업들의 망 사용료 또한 점차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받을 수만 있다면 통신사들 입장에서는 두 팔을 들고 환호할 상황.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건, 저들이 가지는 우월한 위치와 더불어 선우진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밉보이면 어쩌려고.’

국내 재계에는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선우진이라는 아웃라이어의 존재는 언제나 재계의 화제일 수밖에 없는데.

특히 화제가 됐던 게 바로 지난번 미래차그룹과 있었던 마찰이었다.

당시 미래차가 겪었던 압도적인 수량의 공매도 공격.

그 시작은 WS 매니지먼트라는 사모펀드가 끊었지만, 재계에는 그 배후에 선우진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그 싸움의 끝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게 선우진이었기 때문이다.

WS 매니지먼트는 고작해야 공매도 장난질을 통해 꽤 큰 이득을 본 게 전부겠지만, 선우진은 그 이후로 미래차그룹에 대한 상당한 지배력을 획득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재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지배 구조 점검에 들어간 건 공통의 일이었고.

MK그룹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선우진을 건들자고? 심지어 MKT가 먼저 나서서?’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MKT의 제안.

심지어 최근 SCP에서 1조 6,500억 원어치의 공사를 발주받았던 MK하이닉스다.

다른 두 대표의 입장에서는 MK그룹 또한 오성이나 미래차그룹과 같은 친선우진 계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으음… MK는 선우진 대표와 사이가 좋았던 거 아닙니까? 저번에 SCP 데이터 센터 건설에 들어간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요.”

“하하. 정반대입니다. 일시적인 협력이었죠. 오히려… 그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희 회장님이 이번 일을 지시하신 이유가요.”

“예?”

“아직 언론에는 발표되지 않은 사항이지만… SCP의 차기 파트너는 오성전자로 사실상 확정이 났습니다. 그 탓에 회장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고요.”

곤란한 미소와 함께 안석진 대표가 지난날 최원태 회장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MK그룹의 사장단 회의.

UK 데이터 센터 건설이 오성 쪽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에 최원태 회장이 직접 소집한 회의였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MK하이닉스의 이희석 사장의 말이었다.

최근 총 16곳의 국내 데이터 센터 건설 계획을 발표한 SW 클라우드 플랫폼.

하지만 16곳 중 MK가 할당받은 건 고작 두 곳뿐이었다.

그나마도 관련해 SCP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통보까지 있었다.

이유는 기존 건설 현장에 있어서 오성과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

처음에는 그저 핑계인 줄 알았다.

서류에 적혔던 숫자들을 보며 ‘오성이 이렇게 퍼 줘 가며 공사를 했다고?’ 싶었던 것.

‘아니, 정말이잖아? 오성은 이번 기회로 돈 벌 생각이 아예 없는 건가?’

하지만 거짓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부품의 질부터 시작해 비용까지.

그의 기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성이 MK보다 월등히 뛰어났던 것.

“쯧.”

탁-

이희석 사장의 보고를 들은 최원태 회장이 작게 혀를 찼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류를 내려놓는 최원태 회장.

기업인으로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젊은 나이로 대기업 회장직에 올라 지금의 MK그룹을 있게 한 대단한 기업인.

그게 최원태 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였다.

‘박재용 그 애송이가 생각을 잘했군.’

그런 그였기에 일련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SW 클라우드 플랫폼의 데이터 센터 건설 사업에서 MK하이닉스가 오성전자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있었다.

이희석 사장의 보고대로 라면 이번 공사를 통해 오성이 벌어들였을 수익은 0에 가깝다.

물론 기업이 하는 일이니만큼 수익성이 정말로 0은 아니겠다마는.

들어가는 인력과 장비 등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이번 공사를 통해 돈을 벌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데이터 센터 건설로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접근 방식이 달랐던 거다.

MK하이닉스에서는 이번 건을 향후 최소 5년은 그룹의 먹거리가 될 사업으로 생각했다면, 오성에서는 이번 건을 일종의 조공으로 생각했던 거다.

마치 옛 제후국이 황제국에게 조공을 바치듯이.

오성 또한 족히 공사 한 번에 몇백억 원은 됐을 이익금을 그대로 갖다 바쳤다.

왜 그랬을까? 오성이 굳이 뭐가 아쉬워서?

앞으로 있을 공사 대부분을 오성이 가져가게 됐다고는 해도, 공사 비용을 낮춘 탓에 큰 이익이 되지 못할 텐데?

“…….”

‘MK의 한계인 거지.’

MK하이닉스의 경우 사업 구조가 D램과 NAND로만 이루어져있다.

오로지 메모리 반도체에만 주력하는 것.

하지만 오성전자는 다르다.

종합 전자 및 반도체 회사인 오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이고 시스템 반도체까지 다룰뿐더러, 그 반도체들을 쓰는 전자 제품 사업까지 오성전자의 주 사업 영역이었다.

그리고 선우진에게는 SCP뿐만 아니라 AMD도 있었다.

CPU와 GPU 시장에서 각각 인텔과 NVIDIA에 밀리는 만년 2등 기업이라지만, 선우진의 인수 이후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AMD.

박재용 부회장은 거기에 베팅한 거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에서 이익을 줄이더라도, 그 외의 분야에서 선우진을 통해 크나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MK하이닉스는 할 수 없고, 오성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래서 파운드리 쪽을 진작 확장했었어야 했는데.’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선우진과 SCP 건을 놓친 것도 마찬가지다.

만약 잡을 수 있었다면 분명 황금 동아줄이었겠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잡지 못한 지금은 그저 MK의 경쟁자에게 먹이를 주는 또다른 경쟁자일 뿐이다.

‘우리야 반도체 쪽은… 굳이 AMD에 연연할 필요는 없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전례 없는 슈퍼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D램과 NAND 모두 몇 년째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았다.

그런 만큼, MK하이닉스는 AMD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AMD가 MK하이닉스의 제품을 찾지 않는다면 인텔과 NVIDIA에 팔면 될 뿐이니.

‘지배 구조도… 예전과는 다르지.’

선우진-미래차 사건이 있은 후로 바뀐 재벌 기업들의 모습을 딱 하나 뽑으라면.

분명 유동성 확보일 것이다.

마치 방파제를 쌓듯, 실탄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한 재벌 기업들.

그렇게 요 1년간 주요 재벌 그룹들이 곳간에 쌓은 현금성 자산은 이전 해의 130%를 넘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었고.

말로는 다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을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한 거라고는 하지만…….

재벌이라면 그 이유를 너도 알고 나도 알았다.

지상 최대의 현금왕, 선우진.

혹시 모를 그의 마수에 대비하기 위한 것.

MK 또한 MK이노베이션, MKT, MK하이닉스 등의 주요 계열사에서 현금성 자산을 16조 원 가까이 보유 중이었다.

즉, 이 정도면 아무리 선우진이라도 MK그룹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뜻.

결국 고민 끝에 최원태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있던 MKT의 안석진 대표를 불렀다.

“안 대표.”

“예, 회장님.”

“자네가 사람들을 좀 만나 줘야겠어.”

승부사.

재계에서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최원태 회장이었다.

그룹 고위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한 것처럼 공격적인 인수 합병과 거침없는 투자로 MK그룹을 지금의 자리에 올린 게 바로 그였다.

이 결정이 과연 어떤 결과로 돌아올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인터뷰도 하나 해 줘야겠는데, 괜찮겠나?”

그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 * *

사실 나도 처음부터 망 사용료를 안 낼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스웜의 초창기만 해도 꼬박꼬박 냈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 법인을 만들고…….

본사를 해외로 이전시키게 되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었는데.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코리아는 유럽보다 15배나 망 사용료가 비싸요. 게다가 저희는 콘텐츠 사업자로서 이용자들에게 요금을 받아 사업하는 거지,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고요.’

‘커먼 캐리어 원칙(사회 필수 기반 시설을 독점 혹은 과점하고 있는 판매자들은 합리적 가격에 서비스해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하죠. 자동차 제조사가 도로 만드는 데 돈 내는 거 봤나요?’

‘이미 망 연결료에 대한 비용 지불은 처음에 끝마쳤죠. 그런데 사용료를 내라고요? 코리아의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들은 대체 망 중립성은 어디에 팔아먹은 거죠?’

임원진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

내 소유의 기업이라고 해서 내가 운영하는 건 아니다.

모두 CEO가 존재하고 각 부문을 담당하는 임원진들도 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한국에서 부과하는 망 사용료는 너무 과도하고 불필요했던 거다.

뭐, 임원들이 저러니 별수 있나.

나야 돈 대 주는 물주일 뿐인데 막을 도리가 없지, 안 그런가?

그래서 그때 이후로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임원들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고.’

망 중립성은 전 세계가 공통으로 지키는 인터넷 통신 시장의 원칙.

그런 망 중립성에는 단대단 원칙이라는 게 있다.

영어로 End인 단은 망의 양 끝을 뜻하는데.

스웜이나 구글의 서버 또한 단이고,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PC,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도 단이다.

단대단 원칙이라 함은 이런 단의 사용자는 최초 ISP와 계약을 맺을 시 연결료만 지불하면 되고, 그 이후 트래픽에 데해서는 추가 과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즉, 한국 통신사들의 망 사용료 부과는 글로벌 기업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

보통의 해외 기업들이야 그래도 한국에서 서비스 제공을 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내겠지만.

구글과 넷플릭스처럼 우월적 협상 지위를 지닌 빅테크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돈 내라고? 싫은데? 안 낼 건데? 그러면 뭐 어쩌실?’

이런 태도로 나와도 통신사들이 뭐라 못 하는 거다.

그렇다고 구글이나 넷플릭스를 끊어 버리면 고객들이 들고 일어설 테니.

그래서 저 두 기업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망 사용료를 내지 않도록 계약을 맺은 것.

망 이용 대가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와 콘텐츠 사업자(CP) 간 상호 협의하에 정해지는 것인 만큼 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보고 나도 한 수 배우는 심정으로 따라했다.

‘저기 망 사용료는……?’

‘안 내.’

‘예?’

‘안 낸다고.’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얘기라, 인도계 미국인인 스웜 글로벌의 대표가 나갔을 텐데.

나중에 말을 들어 보니 저런 4달러식 협상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양아치 짓을 한 것도 아닌 게.

국제 기준에서는 저게 전혀 문제없을뿐더러, 애초에 우리는 1티어 통신사인 미국 ISP에 접속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국내 통신 3사보다 상위 티어의 ISP에 이미 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냈다는 뜻.

‘대신 캐시 서버 만들어 드림. 구글이나 넷플릭스도 그렇게 했다며?’

심지어 서버 내 데이터를 복사해 담은 캐시 서버도 국내에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고.

만약 우리의 캐시 서버가 없었다면, 국제 기준 2티어인 한국의 통신 3사는 1티어인 미국 ISP에 매해 수천억 원의 접속료를 지불해야 했을 거다.

즉, 직접적으로 사용료를 안 낸다 뿐이지 간접적으로 통신 3사의 접속료를 절감시켜 주었다는 것.

게다가 저 당시만 해도 우리와의 계약에 통신사들이 별 불만이 없었다.

캐시 서버를 여럿 증설해 미국 ISP에 대한 접속료를 줄여 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어? 그래 놓고 지금은 트래픽 사용량이 늘었다고 이리 나오고 있으니 원.

양아치는 오히려 통신 3사였다.

‘아마 그때는 지금처럼 트래픽 사용량이 엄청나게 뛸 줄 몰랐겠지.’

그런데 이게 몇 년이 지나 보니 한 해에 최소 수천억 원어치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욕심이 생겨 버린 거다.

‘그래, 뭐… 시리즈나 코코아는 나와 경쟁 기업이니 이해한다 쳐.’

자기네 밥그릇이 뺴앗기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저들 또한 당연히 할 수 있는 공격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이제 와서 태도를 사악 바꿔 버리는 통신 3사의 모습은…….

‘조금 화나네?’

물론, 나 또한 기업가인 만큼 그런 그들의 태도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학교 다닐 때 다들 배우지 않나.

자고로 기업의 첫째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

졸업한 지 몇 년 됐지만, 나는 선생님 말 잘 듣던 모범생.

기업의 첫째 목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을 비난하지 않는다.

당연한 건데 뭐.

어? 기업이 이윤 추구 한다는데, 뭐 잘못됐어?

암, 그렇고 말고.

톡, 토독-

“예. 접니다. 선우진. 별거는 아니고요. 음, 부탁? 그래요. 부탁이라고 하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그 이윤 추구라는 거.

* * *

[다가오는 5G 시대, 세 통신사가 아니라 네 통신사가 함께해야 할 때.]

[‘제4이통사’ 사업… 신규 사업자 진입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김병원 의원, “가계통신비 인하하겠다던 정부… 결과물은 어디에? 제4이통사 도입을 통해 경쟁 구도 만들어야…….”]

[양형필 의원, “통신비 줄여 국민들 지갑에 여윳돈 만들 필요 있어.”]

[여야 가리지 않고 외치는 제4이통사… 과연 실현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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