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사실 고민을 좀 했다.
코로나바이러스-19.
원래는 우한폐렴으로 불렸던 그 질환의 탄생을 내가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
전 세계가 커다란 영향을 받는 팬데믹인 만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심각한 팬데믹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심지어 단순히 앓기만 하고 지나가는 질병도 아니었다.
수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은 족히 됐을 거다.
게다가 그것도 코로나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내 회귀 시점 기준에서의 얘기였으니, 그 이후에는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추가적으로 탄생했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회귀했던 시점에는 이미 백신이 개발돼 슬슬 실제 접종에 들어가던 시기이기는 했는데…….
혹시 아는가?
그 이후로 바이러스가 변이 됐다거나 해서 추가적인 피해를 일으켰을지.
‘원래 중국산은 믿으면 안 되거든.’
고대로부터 내려온 진리.
그건 설령 바이러스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뭐, 아무튼.
그런 피해를 알고 있는 만큼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회귀 후 2~3년 동안 골머리를 싸맸을 정도.
단순히 큰돈을 벌기 위해서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리 막지 않는 게 맞나 싶었던 거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막자… 였지.’
돈 벌 기회를 포기하면서도 막아야겠다는 것.
물론 위선자스러운 모습이기는 했다.
브렉시트, 미국 대선, 최근의 비트코인 투자까지.
미래 지식을 활용해 수백억 달러를 벌어와 놓고 이제 와서 위선을 떠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사망자 최소 수백만 명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걸 무시할 수는 없겠더라.
생명의 무게와 같은 고리타분한 생각은 아니었고… 뭐 그냥 그러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여하튼 그렇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 작년 초쯤에 우한시를 보러 갔는데…….
‘아니, 싯팔. 이걸 어떻게 막아?’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지로 꼽히는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 수산물 도매시장.
거길 들어가서 둘러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박쥐에서 바이러스가 유래됐다는 걸 어렴풋이 들은 적 있어 박쥐 판매만 어떻게 금지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순히 박쥐만 문제가 아니었다.
원숭이 골, 낙타 육봉(혹), 표범의 태는 귀여운 수준이었고.
사향고양이, 오소리, 공작, 기러기, 담비 등은 물론 문제의 박쥐까지.
온갖 야생 동물들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도축되고 냉동돼 판매되고 있었다.
이걸 보고 중국인들은 오히려 특별한 몇몇만 즐길 수 있는 식도락이라 한다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21세기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미개한 곳이었다.
‘이건 그냥 박쥐를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시장 전체를 폐쇄하는 건 기본이고, 그 외 장소에서의 판매도 모조리 막아야 할 터였다.
물론 그저 권력이 좀 있을 뿐이지 중국인도 아닌 외국인인 내가 할 수 있을 일은 아니었고.
실제로 광둥성 당서기에게 관련 얘기를 꺼냈다가 그건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
오히려 편견을 버리고 맛을 봐 보라며, 자기가 아는 기가 막힌 박쥐탕 맛집이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중국 쪽도 이제 슬슬 거리를 둬야겠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간 내게 온갖 꿀을 퍼 주던 나라인 중국이었지만,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한령이 점점 심해지면서 중국 내 스웜에 있는 K-콘텐츠들도 모두 금지된 지 오래였고.
트위치도 중국에서 꽤 잘나가는 편이었지만… 몇 주 전 머지않아 당국을 통해 규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서기가 전해 준 말이었으니, 아마 확실할 터.
“워싱턴 쪽에서 소식이 들어왔는데, 조만간 중국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논의가 있을 것 같답니다.”
“트럼프의 그간 행보를 보면 보통 수준이 아니겠죠?”
“예. 최소 수백억 달러는 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만간 있을 미중 무역 전쟁.
내가 아무리 트럼프와의 친분이 두텁다고는 해도, 이제는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할 때였다.
물론 당연히 친중이 아니라 친미가 맞는 선택일 테고.
여하튼, 그렇게 내린 결론.
코로나 팬데믹의 발발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시키자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이득도 챙기는 거고.
“우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하. 나야 항상 뭐 비슷하지.”
“하긴. 너한테는 굳이 잘 지냈냐 물을 필요 없긴 하지? 뉴스를 통해 소식 잘 듣고 있었어.”
마이크 마틴.
예전 <마지막 마법사>를 막 집필하던 시절, 내게 중세 시대와 관련해 많은 자문을 해 줬던 친구.
소설이 잘되면서 그 이후로는 출판사 전문 직원들의 도움을 받게 돼 끝이 나고 말았지만, 마이크의 스타트업 회사에 내가 투자하게 되면서 쭉 인연을 이어 가게 됐다.
그의 사업은 바로 내가 초창기 투자했던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
질병 유전자를 분석해 적합한 신약 성분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최근 몇 번의 성과를 거두며 기업 가치가 대폭 상승했다.
게다가 그 외에도 마이크 덕에 큰 이득을 본 것도 있었다.
‘리봉고로 번 돈만 따로 쳐도 수억 달러는 되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이고.”
리봉고 헬스.
마이크와 함께 있던 팀원 중 한 명인 글렌 툴만이 회사를 나가 차린 기업이었는데.
데이터를 사용하여 원격으로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을 관리하고, 리스크 관리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일종의 원격 진료 기업인 것.
당시 마이크를 통해 글렌이 내게 초기 투자를 제의해서 100만 달러에 지분 15%를 가져올 수 있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알버트가 자체적으로 400만 달러를 더 투입해 10%를 추가적으로 가져왔고.
그런데 그렇게 가져온 25%의 지분의 현 가치가 5억 달러.
4년 만에 2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기업이 되어 버린 것.
게다가 원격 진료 쪽은 앞으로도 쭉, 특히 코로나 이후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게 되는 분야였으니. 고작 20억 달러가 끝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바이오… 특히 신약 제약 쪽에 새로 투자할 생각이라고?”
“응. 네 사업과 겹치는 면도 많아서, 관련해서 의견을 들어 보려고.”
마이크와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 오늘 그를 부른 이유를 말해 줬다.
“신종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바이러스. 그런 전염병 쪽으로 연구가 활발한 곳 어디 없어?”
“전염병? 그쪽은 그렇게 수익성이 있지는 않은데.”
“그래? 메르스나 사스, 신종 플루처럼 전염병이 유행하는 건 매번 있어 왔지 않아?”
“그건 맞지만 신약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거든. 새로운 병이 유행하더라도 기존 의약품이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고, 신약이 개발돼 여러 검사를 끝내기 전에 유행병이 사그라드는 경우도 잦고.”
반대로 말하면, 기존 치료제가 효과가 없고 전염병이 몇 년은 갈 정도로 지독하다면 수익성이 엄청날 거라는 소리겠지?
오케이. 접수.
게다가 내 기억으로는 당시 FDA 등 승인 절차에 있어서 몇 년까지는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중국산답게 지독했거든.
‘우선 그쪽으로 투자 방향을 맞추고… 계속 돈을 집어넣다 보면 2년 후에는 결과가 나오겠지.
코로나가 발발하는 때가 19년 연말인가 그럴 거다.
20년도 1월에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간 적이 있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중국발 코로나가 유행이라더라 정도였는데, 돌아와서 한 달이 지나자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더니, 이내 의무로 착용하게 됐었으니까.
즉,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았다는 건데.
‘2년 정도의 대비면… 실제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화이자나 모더나보다 발 빠르게 백신 개발이 가능하겠지?’
* * *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박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전)오성타운이자 이제는 SW타운이 된 사옥에서의 만남이었는데.
바뀐 오성타운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며 박재용 부회장이 청한 장소였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는데요.”
“하하. 오래 있을 곳은 못 되더군요.”
구치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지, 순간 어두운 기색이 된 박재용 부회장.
그가 353일의 수감 생활 끝에 구치소에서 나온 게 바로 저번 주다.
물론 교도관이건 재소자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건 물론, 여러 편의를 봐줬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편한 생활은 아니었을 터.
“두부를 드리는 건… 조금 식상하겠죠?”
“그것만큼은 참아 주시죠. 출소 이후 먹은 두부만 10모는 넘을 겁니다.”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가.
뒤이어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SCP의 데이터 센터 건설이 2월부터 시작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본론이라 함은 오성그룹에서 맡게 된 SW 클라우드 플랫폼의 데이터 센터 건설.
이미 부지는 물론이고 각국 당국에서 관련 허가까지 모두 처리해 놨다.
이제 남은 건 오성그룹에서 건설에 들어가는 것뿐.
“하하. 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차적으로 건설하는 것인 만큼 전체에 비하면 적은 물량이지만, 그래도 어림잡아도 몇 조 단위의 프로젝트.
오성그룹이 챙길 이익금도 상당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답하는 박재용 부회장의 밝은 표정과는 달리, 그의 속마음은 마냥 밝지만은 않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SCP 출범,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노리는 선우진.]
[SCP 데이터 센터의 첫 파트너로 낙점된 오성전자. 매출 증대 기대에 주가 또한 상승세.]
여기까지는 참 좋다.
데이터 센터 건설을 통해 오성전자와 오성건설이 벌어들일 이익이 최소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
오성전자의 주가도 올랐고, 덕분에 구치소에 있으면서도 주주들의 박재용 부회장에 대한 지지도가 엄청나게 오르기도 했다.
나도 박 부회장이 구속된 직후 샀던 오성전자 주식을 정리하며 +40%의 수익률로 3,000억 원가량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이렇게만 보면 양쪽 다 윈윈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얘기가 조금 달라지게 되는데…….
[오성전자에 이어 MK 하이닉스까지? SCP 데이터 센터 건설에 추가적으로 참여하게 된 MK 하이닉스.]
[UK 데이터 센터 건설에만 20억 파운드(약 4조원) 투자하는 선우진, 물망에 놓인 협력사로는 국내의 오성전자와 MK 하이닉스!]
교토삼굴이라고.
영리한 토끼는 굴 세 개를 파 놓는다 했다.
나는 물론 토끼가 아니라 오래가는 에너자이저지만, 그렇다 해도 한 개의 굴을 파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오성전자에 못 미칠 지라도,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는 D램에 있어서는 오성전자의 크나큰 경쟁자인 MK 하이닉스.
그들에게도 데이터 센터 건설을 맡겨 버린 것.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 차등을 두기는 했다.
공사 규모만 놓고 보면 오성의 것이 2.5배가량 컸으니.
물론 MK 하이닉스가 끼어들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오성그룹과 박재용 부회장으로서는 당연히 서운할 수밖에 없는 처사이기는 한데…….
‘그런데 서운하면 뭐.’
어쩔 건가.
이번 데이터 센터 건설은 고작해야 1차에 불과한데도 그 규모가 수조 원이다.
앞으로 내가 발주할 데이터 센터가 수십조 원어치나 남았고.
굳이 AMD 얘기를 꺼낼 것도 없이 오성에서 알아서 내 눈치를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만한 물량을 주문하는 고객이 어디 흔한가?
오성에 있어서는 구글이나 MS, 아마존 못지않은 초특급 VVIP 고객이 바로 나인 셈이다.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데이터 센터 건설을 끝마치겠습니다. 오성이 어째서 한국 최고의 그룹인지 보여 드리죠.”
‘이거 MK보다 자기네들이 낫다고 어필하는 거 맞지?’
당연하게도 박재용 부회장은 바보가 아닌 터라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지금 하는 것처럼 내게 마냥 잘 보이려고밖에 할 수 없는 거다.
뭐… 이런 일과는 평생 거리가 먼 채 살아왔을 박 부회장이겠지만…….
익숙해지셔야지 어쩌겠나.
‘앞으로 몇 년도 아니고 수십 년은 넘게 쭉 이럴 텐데.’
그래도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그간 다른 재계 순위 낮은 재벌이나 협력사, 하청업체 사장 등.
그들에게 받던 대우를 나한테 해 주면 되는 일이었으니.
“오시기 전 SW 타운을 둘러봤는데, 참 좋더군요. 확실히 문화를 선도하는 곳답게 오성타운 시절보다 훨씬 엣지가 넘칩니다. 하하.”
그래도 오성은 처지가 낫다.
남을 보며 위안 삼을 수 있으니까.
지분이라는 목줄을 차게 된 미래차 그리고 목줄은 안 찼지만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오성.
어느 모로 보나 후자가 형편이 더 낫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