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57화 (157/267)

157화 돈지랄

크레이그를 만나고 일주일이 더 흘렀다.

그 일주일 동안, 자체적으로 꾸리고 있던 블록체인 관련 팀의 개발자들을 크레이그에게 붙여 그의 능력을 검증함은 물론.

“깨끗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출생에 여기서 쭉 살았군요. 학창 시절에는 쭉 조용한 편이었고… 전형적인 IT 너드네요.”

그에 대한 뒷조사도 마쳤다.

누군가에 대한 뒷조사를 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인터넷 인연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고, 그의 능력 또한 여러 개발자의 증언을 통해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선우진, 가상 화폐 거래소 차리다?!]

[선우진의 바이비트, 다음 달 출범 예정.]

[가상 화폐 그리고 블록체인. 선우진이 주목하는 그 잠재력은?!]

이미 혼자서 어느 정도 거래소의 얼개를 짜 놓은 크레이그였다.

거기에 실리콘밸리에서도 나름 알아주는 실력의 개발자들이 여럿 붙으니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이르면 다음 달 초에 바이비트를 출범시킬 수 있게 됐다.

내가 기억하는 바이낸스나 FTX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에도 이미 수많은 거래소들이 시장에 존재하는 상황.

벌써 전 세계적으로 1,000개가 넘는 가상 화폐 거래소들이 있었다.

-와! 선우진이 거래소를 차린다고? 대박이네.

-다른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큰일 났는데? 새우들 싸움에 고래가 등장해 버린 거잖아.

-그래서 언제 나오는데? 바로 내 모든 비트를 옮길 테니 나오기만 하라고.

-이거 소문 아니고 진짜인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 줘!

-선우진은 역시 다르네. 요즘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글로벌 IB들에서도 가상 화폐에 주목하고 있긴 한데… 그들이 신경 쓰는 건 블록체인 기술 그 자체지, 가상 화폐가 아니더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코인 커뮤니티에서 바이비트의 출범 소식을 반겼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글로벌 가상 자산 거래소 1위를 달리던 마운트콕스가 해킹되어 문을 닫은 게 2년 반 전이다.

나는 그 전에 모든 코인을 내 개인 지갑에 옮겨 놔서 피해를 피했었지만,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 수천 명에 달했고 74만 개가 넘는 비트코인이 사라졌었다.

심지어 그런 일이 한 번만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마운트콕스 이후로도 크고 작은 몇 개의 암호 화폐 거래소에서 해킹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례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경우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킹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거래소들이 대부분 파산 신청을 했기 때문.

어차피 대부분의 가상 화폐 투자자 입장에서 거래소는 거기서 거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이 거래소가 내 돈 안 떼어먹음?’과 같은 신뢰도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전 세계의 모든 가상 화폐 시총을 합친 것 만큼’의 돈을 가진 내가 거래소를 차린 거다.

설령, 해킹을 통해 가상 화폐를 모조리 털리더라도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게 앞으로 바이비트를 바라보는 가상 화폐 투자자들의 첫 번째 인식이 될 것이다.

여하튼.

[BTC: +8.72%]

내가 가상 화폐 시장에 참여한다는 소식 때문일까.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코인의 가격이 소폭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출범 소식을 발표하기 이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 외 알트코인들을 어느 정도 사 놓은 덕분에 이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물론 큰돈은 아니었다.

내가 현재 가상 화폐에 투자한 돈은 3억 달러 정도.

몇 년 전에 고점에서 비트코인을 모두 정리한 이후, 지금까지 틈틈히 사들인 게 그 정도였다.

더 투자하지 않은 것은 괜히 더 많은 돈을 가상 화폐 시장에 투입했다가는 내 기억보다 빠르게 코인 붐이 올까 해서였다.

현재 비트코인의 가격은 올해 초 개당 1,000달러를 넘겼다가 폭락 빔을 맞으며 700달러 선에 안착된 상태.

아마 앞으로 몇 달 동안은 1,000달러 수준에서 보합세를 이룰 터.

내가 가상 화폐 시장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는 건 올해 중순, 진정한 코인 붐이 시작될 때일 것이다.

* * *

사실, 내가 가상 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는 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코인 투자를 하고 있던 투자자들이나 관련 커뮤니티에서나 큰 이슈가 됐을 뿐,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선우진이 새로운 사업을 하나 추가하는구나 정도의 인식에 불과했다.

아직 코인이란 건 대부분에게 있어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금융권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는데.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여러 글로벌 IB에서도 현재 가상 화폐 시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개중 가상 화폐의 잠재력을 꽤 높게 평가하는 IB나 금융사도 여럿 있었지만, 그건 극히 소수일 뿐.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주목하는 건 가상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자체였다.

오히려 실체도 없는 가상 자산 따위가 몇 년 만에 10배가 넘게 올랐다는 점에서 이미 거품이 차오를 대로 찼다고 평가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만큼, 바이비트의 출범은 월스트리트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바이비트 따위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월스트리트와 더욱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회사의 출범 때문도 있었다.

[퓨쳐 인베스트먼트?! 선우진, 자산 운용사까지 차리나?]

[지금껏 보유 회사 모두 95% 이상의 지분을 유지해 온 선우진.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선우진이 직접 밝힌 퓨쳐 인베스트먼트의 미래, “대부분 액티브 ETF로 운영될 것. 적극적으로 투자 타깃을 발굴해 큰 수익을 기대하게 만들겠다.”]

[“우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본다.” 선우진, 사명의 이유 직접 밝혀 화제.]

바로 퓨쳐 인베스트먼트.

예상대로 월 스트리트는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는데.

-와; 바로 대출에 영끌까지 해서 전 재산 다 박음 ㅋㅋㅋㅋㅋㅋ

-우진 성님만 믿고 간다.

-근데 브렉시트 때처럼 우리 돈으로 도박하다 쪽박 차면 어캄??

-ㄴㄴ 선우진이 그러는데 그런 식으로 과감한 투자는 안 할 거라 했음. 대신 미래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 짜서 운영할 거라고.

-흠… 그러면 수익률 생각보다 안 높은 거 아님?

-ㅋㅋㅋㅋㅋㅅㅂ 선우진이 지금껏 벌인 사업 중에 망한 거 하나라도 있나 보고 와라ㅋㅋㅋㅋ 저 새끼 내가 보기엔 ㄹㅇ 미래에서 왔음.

-ETF 낸 거 보니까 테슬라 비중이 꽤 높던데;; 자기가 지분 겁나 들고 있는 만큼 그거 뻥튀기하려는 수작 아니냐?

-?? 뭐래노; 이미 선우진이 산 이후로 테슬라 2배 올랐는데.

-가상 화폐 관련주들 비율이 높은 것도 좀 걱정스럽네… 그거 걍 다 사이버 머니 아님?

-ㄹㅇㅋㅋㅋ 싸이월드 도토리 아니냐고.

-선우진은 신이다! 걍 믿어!

-걍 돈 벌고 싶으면 우진 성님 허리춤 붙잡고 따라가는 게 맞음 ㅇㅇ 난 엄빠 퇴직금까지 털어 넣었다.

└현명한 사람 ㅇㄷ

특히 한국에서 유입된 투자금이 엄청났다.

내가 투입한 돈을 제외하고, 외부에서 투입된 운용 자산(AUM) 중 20%의 비율이 모두 국내발 자금이었던 것.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높은 비율이었다.

그만큼 나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기대가 높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퓨쳐 인베스트먼트, 이번 분기 운용자산 발표. 무려 1,350억 달러에 달해.]

그렇게 해서 출범 2달 만에 모인 금액이 1,350억 달러.

저기서 내 명의로 되어 있는 게 200억 달러 정도였고 명의 세탁을 통해 투자한 게 250억 달러 정도가 됐으니, 그걸 빼면 900억 달러 정도가 순수 외부 유입으로 들어온 돈이었다.

만족스럽다면 만족스럽고, 불만족스럽다면 불만족스러운 금액.

세계 1, 2위로 꼽히는 자산 운용사인 뱅가드그룹이나 블랙록의 AUM이 저것의 수십 배가 되는 걸 생각해 보면 불만족스러웠고.

이제 막 출범한 회사가 한국의 최대 규모 기금인 국민연금의 4분지 1정도의 운용 자산을, 그것도 두 달 만에 모았다는 걸 생각하면 만족스러웠다.

‘뭐… 차차 늘어날 테니까.’

어차피 수익성으로 증명한다면 AUM은 더욱 계속해서 늘어나게 될 터.

특히 구성해 놓은 펀드 중 블록체인 및 가상 화폐 관련 주식들을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짜진 ETF가 여럿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 있을 코인 붐을 타고 엄청난 수익성을 보여 줄 ETF들.

그것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올해가 끝났을 때에는 퓨쳐 인베스트먼트의 AUM이 서너 배는 가볍게 늘어나지 않을까.

뭐, 아무튼.

“반갑습니다, 닥터 수.”

퓨쳐 인베스트먼트가 설립된 덕분에 탄탄대로로 진행될 수 있었던 AMD의 인수.

이제 그 마지막 단계만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단계라 함은 지금까지 AMD를 이끌어 왔던 CEO인 리사 수를 설득해 회사에 남게 하는 것.

한국에서도 관련 밈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 인사이자, 능력 있는 CEO인 그녀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올해 AMD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Ryzen 시리즈의 CPU’는 그녀가 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가 대성공하게 되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잡아야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한 준비도 미리 해 놓았는데.

“10년 내로 AMD라는 이름이 인텔과 NVIDIA보다 위에 있게 만들겠습니다. 저와 함께하시죠.”

“포부는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AMD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그 일을, Mr. 선께서 인수한다고 가능해질까요? 본인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시는 거 아닌가요?”

“제 능력보다는 닥터 수의 능력을 믿는 거죠. 물론 닥터 수 혼자로는 부족하겠지만요.”

“……?”

엔지니어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CPU나 GPU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다짜고짜 AMD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겠다 큰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리사 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해 놓고, 하지만 그녀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떠들었다.

듣고 있는 입장인 리사 수로서는 이게 뭔 소린가 싶을 거다.

실제로 내 말이 모두 끝나자 그녀가 보인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하. 무슨 뜻이죠? 저 혼자로는 부족하지만, Mr. 선이 있다면 가능할 거다? 컴퓨터 시장이 단순히 돈만 있다고 정복 가능한 거라 생각하시는 거라면… 무척이나 오만한 생각이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 당연히 그런 소리는 아니죠. 물론 자금이 필요하다면 그게 수십억 달러든, 수백억 달러든 바로 지원할 생각은 있지만, 제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아, 제가 손님 한 명을 불렀는데, 혹시 지금 데리고 와도 괜찮을까요?”

리사 수를 계속 AMD에 남게 하면서, 그녀에게 했던 인텔과 NVIDIA를 넘어 AMD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말을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게 하나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를 꽤 치러야 하기는 했었지만.

‘덕분에 머스크가 삐졌지.’

탁-

그리고 때마침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한 명.

그게 누구인지를 본 리사 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에게는 꽤나 익숙한 얼굴일 터.

“…짐?”

“오랜만이야, 리사.”

바로 짐 켈러.

전 세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반도체 공학자.

인텔에서 수석부사장을, AMD에서 부사장과 수석설계자를 지냈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테슬라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역할을 맡던 사내였다.

반도체 공학에 있어 천재 중의 천재.

그런 그를 머스크에게서 빼 온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 것.

‘어디 보자… 한 6,000만 달러 들었나?’

테슬라와의 위약금을 대신 지불하는 데에 1,000만 달러.

짐 켈러의 1년 연봉으로 5,000만 달러.

그야말로 돈지랄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는데.

돈지랄, 내 주특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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