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갑질 나빠요
주주총회 소집 요구는 금방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내가 가진 지분이면 이사회에서 거절하더라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접 총회를 소집할 수 있었으니 당연한 절차였는데.
[미래차 주주총회까지 남은 2주! 비상이 걸린 미래 자동차]
[선우진의 주총 소집 이유는? 재계의 관심 집중.]
남은 시간은 2주.
주주총회를 소집할 때에는 주주총회일의 2주 전에 각 주주에게 통지를 발송해야 하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장씨 일가와 미래차의 임원진들은 2주 내내 골머리를 싸매지 않을까.
대체 SW 인베스트먼트,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래저래 추측하면서 말이다.
뭐… 내가 원하는 건 별거 없다.
그냥 단순한 서열 정리 정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좀 보여 줘야지.’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를.
물론 그치들한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몇십 년 전에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들이었고, 오성에 밀린 지금도 그다음 가는 미래차였으니까.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그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걱정해야 하는 삶.
그런 게 그들에게 익숙할 리가 없다.
‘흐음. 그건 또 아니려나?’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니 익숙할 것 같기도 하고.
왜, 아무리 대단한 재벌가도 임기 동안은 대통령 눈치를 바짝 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건 오성이건 미래차건 다 똑같은 거였다.
예전 MB 정권 때 이제 막 대통령 당선자가 됐던 MB와의 만남을 위해 와병 중이라며 외국에 있던 오성 그룹 회장이 급히 귀국해 참석했던 건 꽤나 유명한 일화였다.
미래그룹의 전문 경영인, 재벌들 입장에서는 ‘마름’ 신세였던 MB에게 미래그룹과 미래차그룹 모두 바짝 엎드리기도 했었고.
즉, 권력이란 게 아무리 화무십일홍이고 금력과는 달리 결국 없어지기 마련이더라도… 임기 초기에는 끗발이 끝장난다는 뜻이다.
금력이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그만한 힘을 갖춤과 동시에 검찰과 기타 등등 정치권력의 눈치를 봐야 할 거리가 없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재벌가는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을 거다.
뭐, 여하튼.
‘몇 번 해본 일일 테니 꽤 익숙하겠네.’
임기 초기의 대통령에게 바짝 엎드리는 것처럼.
나한테도 그러면 된다.
물론, 길어 봐야 5년 레임덕까지 고려하면 4년만 눈치 보면 되는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나한테는 앞으로 최소 수십 년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미래차의 현 지분 현황은 대략 이러했다.
미래모비스가 20%, 장 회장과 장 부회장이 각각 6.3%와 1.6%이니 합이 대략 8%, 거기에 연기금이 7.8% 정도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미래차의 지분이 7.3%였으니, 나는 네 번째 대주주인 셈이다.
미래모비스, 장씨 부자, 국민연금 그리고 그다음이 나.
하지만 7.3%는 표면상의 수치였고 내게는 WS 매니지먼트가 몰래 사들인 4.7%만큼의 지분이 더 있다.
합하면 총 12%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딱 떨어진다.
무려 장씨 부자가 갖고 있는 지분의 1.5배.
하지만… 내가 장씨 부자보다 지분이 많다고 해서 미래차를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미래차의 20%를 들고 있는 미래모비스 또한 장씨 부자의 것이니까.
뭐, 그 미래모비스의 지분도 내가 8% 정도 들고 있기는 한데…….
또 장씨 부자가 지배 지분을 갖고 있는 다른 회사가 미래모비스의 지분을 20%가량 들고 있다.
달리 말하면, 내가 가진 12% 그 자체만으로는 미래차그룹의 지배 구조를 뒤흔들 수 없다는 뜻.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장씨 부자가 내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상속과 지배 구조 개편.
그게 현재 장씨 부자에게 놓인 당면 과제였기 때문이다.
“미래차그룹은 아직도 순환 출자 체제를 유지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즉,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라는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소리죠.”
당장 금성그룹이 순환 출자 구조가 드러나면서 불매운동을 맞았던 게 작년.
그렇게 몰매를 맞다가 결국 단계를 거쳐 완전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겠다 발표한 금성그룹이었다.
지주회사 전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미래차그룹도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는 뜻.
‘게다가 다음 정권은 야당이 쥘 게 확실한 상황이고, 순환 출자 해소는 그쪽의 대표 공약 중 하나였으니까.’
이번에도 여지없이 터져 버린 국정 농단 사태로 야당 쪽이 다음 대선에서 당선될 게 반쯤 확실시된 상황.
다음 정권을 잡게 될 정치권의 순환 출자 해소 의지도 확고했고, 공정거래법도 개정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서 여전히 순환 출자 체제로 기업을 운영하는 건 몰매 맞기 딱 좋았다.
대중들은 물론 주주들의 압박 때문에라도 언젠가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일.
그리고 아마 그런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장씨 부자의 승계 및 상속과 함께 진행이 될 텐데.
여기가 바로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지점이다.
‘지주회사 전환에는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지.’
제이슨과 SW 매니지먼트의 자체적인 분석 결과로는 대략 4조 원 이상.
심지어 돈 들어갈 구석이 그것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승계와 상속 또한 장씨 부자가 빠르게 해결해야 할 과제.
여기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장 회장이 갖고 있는 미래차 지분 6.3%와 미래모비스 지분 7.2%의 가치는 어제 종가 기준으로 3조 3,000억 원 정도입니다. 어제 장 마감 시점의 매수세를 보면 수일 내로 4조 원 상당으로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고요.”
“음… 여기서 미래차 주가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종전 주가보다 소폭 오른 채로 그 엇비슷한 주가를 유지한다고 가정해 보죠.”
어제자 미래차 종가가 12만 원가량.
이번 사태가 있기 전의 주가를 회복하고, 내 효과로 조금 더 오른다 생각하면 15~16만 원 정도가 될 거다.
내가 기억하던 미래차의 주가도 그쯤 됐던 것 같다.
“예. 그러면… 4조 원. 상속세 최고 세율과 대주주 할증을 적용하면 상속세만 2조 4,000억 원이 넘게 됩니다.”
“2조 4,000억 원이라… 그렇게 생각해 보니 별거 없어 보이기는 한데. 그건 제 기준에서나 그런 거겠죠?”
“하하.”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제이슨.
여하튼.
상속을 위해 필요한 현금이 대략 2.4조 원.
제이슨의 반응처럼 2.4조는 나한테나 ‘꼴랑 2.4조?’였지 미래차는 물론이고 어떤 재벌가 기준에서도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만한 돈을 상속세만을 위해 내야 한다 이건데.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수조 원의 현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물론 나야 뭐 그런 미친놈을 한 명 알고 있기… 보다는 그 미친놈이 나지만… 아무튼.
2.4조 원이나 되는 현금이 장 부회장한테 있을 리가 없다.
장씨 일가가 갖고 있는 주식 외 재산을 몽땅 내다 팔아도 그만큼이 되지 않을 테니까.
즉, 장 부회장은 언젠가 다가올 상속을 위해 실탄을 확보해야 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 예상되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갖고 있는 지분을 어느 정도 팔아 마련하는 법.
“현재로는 미래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가장 유력합니다.”
아마 그래야 할 상황이 왔다면 장 부회장은 미래글로비스를 팔았을 거다.
그가 미래글로비스의 지분을 무려 23%나 들고 있기 때문.
장 부회장이 갖고 있는 미래차그룹의 계열사 중 가장 많은 지분율이다.
즉, 조금 정도는 팔아도 지배력에 영향이 없다는 것.
그런 만큼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먼저 미래글로비스 지분을 시장에 내다파는 걸 생각했을 거다.
“혹은 미래모비스와 미래차를 합병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방법 또한 매우 유력해 보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미래차그룹 내 계열사를 분할·합병해 지주사를 세우는 방안도 생각했을 거다.
미래차와 미래모비스의 분할 및 합병.
그것만 이뤄진다면 순환 출자 해소와 경영권 승계 절차도 일단락될 수 있으니까.
물론… 이제는 둘 모두 불가능하게 된 방법이었다.
‘내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내 명의로 된 게 미래차 주식 7.3%, 미래모비스 4.9%, 미래글로비스 4.3%.
WS 매니지먼트의 것이 미래차 4.7%, 미래모비스 3.2%, 미래글로비스 3.1%.
내가 괜히 저 세 회사를 위주로 주식을 매수한 게 아니다.
순환 출자 구조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인 건 물론, 장씨 부자의 지배 구조 개편 및 승계 절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을 회사들.
즉, 장씨 일가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돼 버린 거다.
어라? 이게 뭐야?
갑자기 미래차 핵심 회사 주식을 우리만큼이나 들고 있는 애가 등장해 버렸네?
심지어 그놈이 한국에서 돈 제일 많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현금 많기로 유명한 놈이네?
그것도 마음만 먹으면 미래글로비스의 지분을 몇십 퍼센트나 살 수 있을 정도로.
이거 괜히 지분 팔고, 계열사 분할하고, 합병하고 그랬다가는… 저놈한테 홀라당 회사 넘어가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게다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이럴 수도 있다.
‘어? 너희 얘네 합병시키려고? 누구 마음대로?’
‘스읍… 마음에 안 드는데? 일단 스톱 해. 이거 대주주로서 정당한 요구 사항인 거 알지?’
‘뭐? 그래도 강행하겠다고? 야, 이거 여론전 함 해 봐? 자신 있어? 나 선우진인데? 대중들 돌아서면 국민연금도 내 편이다?’
승계를 진행해야 하는 장씨 일가로서는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장 부회장 나이가 한 50 됐나?’
잘은 모르지만 장 부회장의 나이를 고려하면 아들은 아직 서른이 안 됐을 거다.
반면, 내 나이는 현재 한국 나이로 23살.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고, 주치의 여러 명을 두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기까지 하는 덕에 최소 100살까지는 살지 않을까 싶다.
‘…바이오 쪽도 손을 좀 대야겠는데?’
문득 든 생각.
내가 알고 있던 미래 지식이 전부 소진되고, 만에 하나 내가 그 이후 쫄딱 망해 버리더라도.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먹고산다는 것처럼 나 또한 망하더라도 평생 놀고먹을 재산은 충분할 텐데.
돈만 많으면 뭐 어디에 쓰나?
결국 건강해야 돈 쓰는 것도 재미있고 그러지.
그걸 생각하니 내 생명 연장(?)을 위해서라도 그쪽에 투자를 좀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아무튼, 장 부회장의 나이가 50세라는 게 무슨 얘기냐면…….
어떻게 내게 열심히 사바사바 해서 내 반대 의사 없이 장 회장에게서 장 부회장한테로 미래차가 잘 승계되더라도.
결국 또 장 부회장에게서 그 아들에게 승계될 때까지도 나는 건강하게 살아 있을 거라는 거다.
즉, 앞으로 최소 수십 년.
3대에 걸쳐 장씨 일가는 내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건데.
‘조금 너무했나?’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빠르게 접었다.
지금 내가 장씨 일가에게 하는 짓을 다른 말로 하자면 갑질이라 볼 수 있을 텐데.
생각해 보니 갑질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안 그래도 요즘 재벌가들의 갑질 이슈가 핫하지 않나.
내가 재벌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걔네보다 돈 많은 사람 아니겠나.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갑질이란 걸 말이다.
다만, 내가 원체 유명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오가 있어서.
갑질도 누구한테 부리는지가 또 중요한 거니까.
그래서 장씨 일가를 택한 거다, 갑질의 대상으로.
‘우선 한 대 치고 반응 좀 볼까?’
“그러면 성명 발표해 주세요.”
“네. 진행하겠습니다.”
* * *
[“한국 경제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주주뿐만 아니라 소수 주주에 대한 권익도 보호되어야… 현재 한국에 만연한 순환 출자를 통한 재벌 그룹들의 지배 구조, 문제 있어.” SW 인베스트먼트의 주총 소집 이유!]
[특별 배당을 통한 주주 이익 환원 요구한 SW 인베스트먼트, “현재 미래차의 배당 성향은 너무 낮아. 글로벌 기업 수준인 4~50%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수준이 필요해.”]
[흔들리는 미래차! 그리고 더욱 흔들리는 범미래가!]
[미래차의 주주들, “SW 인베스트먼트의 의견 적극 지지!” 일부에서는 미래차의 주인이 선우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