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45화 (145/267)

145화 해볼 만했다

위스콘신과 펠실베니아.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깃발을 꽂았던 곳이었다.

심지어 위스콘신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이후로 32년 만에 첫 승리를 거둔 공화당 후보였고.

펜실베니아에서는 조지 H. W. 부시 이후 28년 만에 승리를 거둔 첫 공화당 후보였으니.

“이게 무슨…?!”

힐러리의 선거 캠프.

그곳에 있는 모두가 멍한 얼굴로 개표 방송이 틀어져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선을 확신하고 있던 그들이었는데.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위스콘신과 펜실베니아가 트럼프에게 넘어가다니.

두 주는 선거인단 수를 합치면 총 30명이나 되는 곳이었는데.

총 538명으로 구성된 미국 전체 선거인단 수의 5.5%를 공화당에 내줘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것 뿐만 아니라….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 경합주로 꼽혔던 플로리다주의 선거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트럼프 후보가 457만7375표로 49.1%를 획득, 클린턴 후보가 444만5680표로 47.7%를 획득. 트럼프 후보의 승리입니다. 이 결과는 트럼프 후보의 정말 큰 승리로, 플로리다주에서의 승리를 통해 트럼프 후보는 29명의 선거인단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양 측의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에서 트럼프가 거둔 승리.

이전, 위스콘신과 펜실베니아에서의 30명, 거기에 플로리다에서의 29명을 합치면 59명.

총 선거인단 수의 11%를 트럼프가 획득한 것이었는데.

세 주 모두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지역이었다.

달리 말하면, 힐러리에게 있어서는 그저 11%를 내준 게 아니라 그 두 배로 차이가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아…….”

힐러리의 선거 캠프의 누군가에게서 순간 터져나온 탄식.

침묵 속에서 터져나온 그것이 선거 캠프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앞서 있었던 여론조사와는 정반대의 결과.

물론, 선거가 모두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중요한 경합주인 오하이오, 일리노이, 미시간 등이 남아 있었는데.

그 모든 경합주들에서 힐러리가 승리한다면 선거의 향방이 뒤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오하이오주의 결과를 추가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트럼프 후보의 승리. 이로서 16명의 선거인단을 추가적으로 확보한 트럼프 후보입니다. 현재 양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를 정리해드리자면 트럼프 후보가 232명, 클린턴 후보가 197명입니다.]

또다시 들려온 패배 소식.

232 VS 197.

당선을 확정짓는 270명까지 고작 38명 만이 남은 트럼프 측이었다.

“…….”

힐러리의 선거 캠프가 숨소리마저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묵에 휩싸이게 된 것도 당연한 일.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했겠는가?

압도적인 패배.

역사에 남을 정도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그리고 침묵에 쌓인 힐러리의 선거 캠프와는 달리.

“Yeah——!”

“와아아-!”

환호성과 탄성, 온갖 축하의 말들이 쏟아지는 곳이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우리가 이겼다! 이겼어!”

트럼프의 선거 캠프가 바로 그곳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대권만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뤄진 상원, 하원 선거.

하원 선거에서의 승리야 원래 공화당이 승리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대선과 마찬가지로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할 거라 예상되던 상원 선거에서 선방하며 다수당 지위를 지키게 된 공화당이었는데.

이로서 공화당이 대권은 물론 상원과 하원을 모두 가져오게 된 것.

즉, 정말로 미국을 마음껏 좌지우지할 수 있는 슈퍼 파워의 공화당 트럼프 정부가 탄생한 것이었으니.

“하하! 고맙네, 고마워!”

트럼프는 물론이고 공화당의 모두가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 *

나는 지금 뉴욕에 와 있었다.

정확히는 뉴욕 시 맨해튼 남부, 월 스트리트의 어딘가.

SW 인베스트먼트의 본사가 위치한 곳에.

“축하드립니다.”

원래라면 제이슨의 방이었을 대표실에 나 혼자 자리하고 있었는데.

프라이빗하게 누군가와 통화하기 위해서였다.

“Mr. 트럼프… 아니, Mr. 프레지던트.”

오늘의 결과로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내가 된 도날드 트럼프.

[흐하하, 고맙소. 모두 Mr. 선. 당신 덕분이지.]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같은 겸양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 제 영향이 적지는 않았죠.”

[흐흐. 이래서 내가 Mr. 선을 좋아한단 말이지. 정가의 늙은이들과는 다르게 시원시원한 점 말이야.]

나도 트럼프의 이런 성격을 꽤 좋아한다.

미국의 대화법이 한국과 비교해서 꽤 직설적이라는 게 세간의 상식이었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의 얘기였고, 정치인들과의 대화는 한국과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Sarcasm의 나라답게 한국보다 더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는데.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하게. 보좌관들과 검토를 거쳐야겠지만… 정말 무리한 게 아니라면 내가 반드시 은혜를 갚을 테니. 하하!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라면 내주지 못할 게 뭔가?]

“예. 뭐, 저도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 사업을 하려면 모름지기 셈이 확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업가이자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는 그런 일반적인 미국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가답게 나처럼 직설적인 구석이 있는 것.

물론, 오늘의 통화에서 바로 AMD나 NVIDIA 중 하나를 달라고 말하지는 못 했다.

그런 세세한 것을 얘기할 정도로 통화의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

그래도 이제 막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나와 5분 가까이 통화했다는 건, 정말로 그가 내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는 걸 뜻했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게 20분 정도 전이었는데.

적어도 내가 그가 통화해야겠다 생각한 이들 중에서 꽤나 우선순위에 속한 게 분명했으니까.

뭐, 여하튼.

트럼프의 당선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진작에 알고 있던 거였고.

‘과실이 얼마나 달콤한지가 더욱 중요하지.’

대표실의 유리창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봤다.

“Fuck! 정말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고?! 젠장, 난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민주당이었는데!”

“시끄러!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히 좀 해!”

물론 그중에는 개인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민주당 지지자도 있었지만.

그런 이마저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 극적인 역전이 이뤄지던 때보다는 조금 덜 바쁜 SW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이었는데.

아까 전에는 사소한 잡담 한 마디 없이, 숨 소리와 키보드, 마우스 달깍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었다.

선거 결과가 트럼프의 우세로 접어들면서 순식간에 급락하기 시작한 세계 증시.

우리가 앞서 구축해놓은 숏 포지션들을 빠르게 청산해야 했기에 모두가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혼란스럽게 요동치던 채권시장과 외환시장, 각국 증시 등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뽑아내야 했었으니.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축하드립니다, 보스.”

기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는 제이슨.

난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먼저 물었다.

“총 얼마죠?”

몇 달 전 브렉시트 때가 떠오르는 물음.

“대략 163억 달러입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자면 수익금이 적기는 했다.

그때가 900억 달러가 조금 안 됐었으니, 5분의 1 정도의 수익을 거둔 거였지만.

그래도 한화로 20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트럼프의 당선이 충격적이라고는 해도, 영국이라는 세계 경제의 한 축이 EU를 떠나는 것보다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으니.

“와우. 짦은 시간 안에 엄청난 수익을 거두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이 정도면 만족 of 만족, 대만족이었다.

‘각국의 증시랑 환율이 요동친 게 짧은 시간이기도 했고.’

처음에는 트럼프가 우세해지면서 하락세로 출발한 세계 금융시장.

그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생길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는데.

그걸 반대로 말하면,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면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전세계 금융사들이 바보도 아니고 트럼프 당선에 대한 시나리오를 세워놓지 않았을리도 없을 테니.

처음에는 증시나 환율이 요동치더라도 금방 안정화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도 선거 도중에는 하락세를 보여줬지만, 결국 막바지에는 다시 반등하며 1.4% 상승으로 마감했다.

유럽 증시도 비슷했고.

다만,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 있다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직격타를 맞게 될 멕시코 증시와 아시아 증시였는데.

주가와 페소화 가치가 바닥을 찍어버린 멕시코.

그래도 자칫하다가는 멕시코의 경제가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공격적으로 베팅하지는 않았다.

‘동정심이라기 보다는… 괜한 변수를 만들면 안 되니까.’

멕시코가 선진국 반열에 들지는 못 한다지만, 그래도 개발도상국치고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

당장 미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전세계의 수많은 제조업 회사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건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약 그런 나라가 갑자기 망하거나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된다면 내가 아는 미래 정보의 대부분이 아예 어그러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멕시코를 대놓고 공격하지 않고 적당적당한 이득만 챙긴 것.

“역시 보스이십니다. 조지 소로스는 역사에 남을 투자의 전설이지만, 악마라 불리며 많은 비판을 받는 사람이었죠.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하고 악한 게 어디 있겠습니다만은… 보스의 지금과 같은 모습과 참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투자를 하시면서도 조지 소로스의 수십 배를 벌어 들이셨으니….”

다만, 내가 앞서 멕시코에 대해 너무 심한 공격을 하지 말라고 했던 오더를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제이슨은 이번에도 나를 저렇게 봐주고 있었다.

* * *

비슷한 시각.

쾅-!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미래 자동차의 회의실.

그곳의 분위기는 힐러리 선거 캠프 이상으로 참혹했는데.

미래 자동차에게 쏟아진 공매도 공격.

처음에는 이게 웬 기부 천사인가 했다.

그들 또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미국 대선의 개표 방송에 따르면, 힐러리의 당선이 무척이나 유력한 상황이었으니.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 기업답게 미래 자동차 또한 민주당과 힐러리에게 끈을 미리 만들어놓았었는데.

힐러리가 당선된다면 앞으로 미국 수출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게 분명해보였다.

당연히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고.

하지만 그런 선거 예상이 흔들린 것도 한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여러 경합주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진 것.

[-4.3%]

순식간에 미래 자동차의 주가가 하락해버렸다.

“어떤 놈들인지 아직도 못 알아냈다고?!”

“예… 그게… 갑자기 월가에 나타난 신생 사모펀드라고 합니다.”

“신생 사모펀드가 어떻게 그만한 금액을 동원해! 수십 억 달러가 장난이야?! 배후가 있을 거 아니야, 배후가!”

심지어 그들에게 쏟아지는 공매도 공격이 엄청난 규모로,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금이 줄 기미가 안 보이는 상대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커다란 충격을 막기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있는 미래 자동차였는데.

그들이 그저 그런 기업도, 평범한 재벌들도 아니고.

한국에서 오성 다음으로 크다는 미래 자동차였다.

저 외국계 사모펀드가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지금까지의 공매도 공격을 하는 데에도 많은 자금을 소모했을 터.

돈이 무한정으로 솟아나오는 화수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해가 조금 크기는 하지만….’

버틸 만은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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