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41화 (141/267)

141화 직관이 개꿀임

“와우. 이게 전부… 2억 달러라고 하셨죠?”

“네. 괜찮지 않나요? 저기 제 개인 작업실도 있다고요. 작업실 인테리어에만 1,000만 달러가 들었죠.”

“솔직한 제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2억 달러는 너무한 게 아닌가 싶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을게요. 대신 2억 달러의 값어치를 조금이라도 뽑아야겠네요. 안쪽 사진 좀 찍어도 되죠? 공중에서 쓴 소설… 아마 몇몇 독자는 그 캐치프레이즈에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

‘…저 정도면 이미 다 말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내가 들어가도 좋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작업실 안쪽을 살피기 시작하는 엘레나.

그녀는 한국에 있는 윅슨 출판사의 지사를 시찰하고, 관련 사업을 몇 개 국내에서 추진하기 위해 잠깐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김에 이번에 내가 장만한 전용기를 타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

나는 LA 공항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그녀는 그 이후 환승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예정이었다.

환승할 필요 없이 내가 내리고 나면 전용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라고 했지만, 그건 거절하더라.

지금 받는 연봉의 값어치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건데.

거기에 전용기 운영비에 대한 부담까지 추가하고 싶지 않단다.

뭐, 1시간 운영하는 데에 1만 달러 정도가 들긴 한다던데.

내게 1만 달러는 남들에게 있어 1달러와 같은 거라며 설득해도 계속 사양하더라.

그래도 1만 달러는 1만 달러라면서…….

그래서 굳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새해가 시작되면 제 앞으로 잡혀 있는 <찬탈자> 3부 관련 인터뷰가 있는데. 거기서 여기 하늘 위 작업실을 꼭 언급해야겠네요.”

“하하. 지미 키멜 라이브도 잡혀 있댔죠? 지미에게 안부 전해 줘요.”

내가 일전 출연한 적이 있는 지미 키멜 라이브.

그녀 또한 조만간 출연 예정이었는데.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군대에 가면서 몇 가지 부분 정도만 제외하고 윅슨 출판사의 운영을 윅슨 출판사 측에 전적으로 맡겼는데.

그 덕에 출판업계의 일약 스타로 떠오른 엘레나였기 때문이었다.

젊은 나이에 쌓아 온 여러 성공적인 커리어, 글이 좋아 출판사를 넘기고도 편집자로 계속 일한다는 이력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췄다.

특히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똑똑하고 전문성을 갖춘 금발의 젊은 여성이다?

방송사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상이다.

거기에 내가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 등에 대한 오피셜 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기까지 했으니.

지금처럼 엘레나가 출판업계의 아이코닉 한 인물이 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여전히 윅슨 출판사의 대표는 클레이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은퇴가 조만간 예정되어 있는 만큼 아마 다음 대표로는 엘레나가 선임될 거다.

으음. 회사의 운영자가 아니라 편집자로 남고 싶어 윅슨 출판사를 내게 넘겼던 엘레나에게 살짝 많은 짐을 넘기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하기는 싫지만 나보다 잘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고 말겠다.

엘레나가 원하는 건 오로지 좋은 글의 편집만 맡는 것이었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자신의 능력도 너무 출중한 나머지 웬만한 사람에게는 윅스 출판사의 대표 자리를 못 맡기겠는 거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그녀가 1년 정도 전부터는 사업 추진에도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는 것.

“한국에 왔던 건은 어땠어요? 이디북스?”

“아, 괜히 한국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더군요.”

이번에 엘레나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도 국내에서는 전자책 1위인 콘텐츠 플랫폼, 이디북스의 인수였는데.

작년 중순부터 이디북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전자책 플랫폼 인수에 나서고 있는 엘레나였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전자책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는 것.

물론 엘레나의 그런 사업 추진은 당연하게도, 현 전자책 업계의 압도적인 1위인 아마존 북스를 자극하겠지만…….

‘뭐,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니까.’

그렇다고 큰 부담은 없었다.

그 시작은 인터넷 서점이었다지만, 현재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이라기보다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기업.

온라인 쇼핑몰에는 관심이 없지만 아마존의 최대 캐시 카우인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에서 아마존과 맞부딪힐 생각인 나였다.

그런 만큼 전자책 업계에서의 마찰 정도야 가볍게 여겨질 뿐이었다.

굳이 속내를 밝히자면 오히려 일종의 경쟁 심리도 드는 게 사실이었는데.

아마존의 시작이 인터넷 서점인 것처럼 나 또한 비슷했다.

지금은 무슨 엔터 업계의 거물, 할리우드에 나타난 마이더스의 손, 브렉시트를 예측한 투자의 귀재 소리를 듣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정의하는 내 정체성 중 첫 번째는 단연코 작가로서의 나.

즉, 전자책 업계에서 아마존을 꺾지 못하는 건 그런 작가로서의 내가 가진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거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던데.

책이라는 내 분야에서는 아마존이건 뭐건 다 이겨 먹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하튼.

“그래요? 저번에는 생각보다 협상이 길어질 것 같다 하지 않았어요?”

“그랬죠. 그런데 내실을 살펴보니 부채 규모가 꽤 크더라고요. 매출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도 그대로고. 그래서 웹 소설 쪽으로 판도를 넓히려는 거 같은데… 잘 아시잖아요? 누구 덕분에 그쪽도 꽤 치열한 거.”

“하하. 뭐, 좋은 일 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플랫폼끼리 경쟁이 심해야 작가들이 밥 잘 벌어먹고 사는 법이거든요.”

나의 영향으로 원래보다 엄청나게 규모가 커진 한국 웹 소설 시장.

그런 만큼 경쟁 또한 심화되었는데.

그게 이디북스의 사업 확장을 어렵게 하고 있나 보다.

“네, 동의해요. 어쨌든 그 덕분에 이사회 쪽에서 매각 의지가 꽤 상당하더라고요. 저로서는 좋은 일이죠 뭐.”

지분을 전량 인수 하는 게 아니라 지배 지분만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내가 가진 또 다른 기업인 매니지먼트 회사 스튜디오 선우와의 협업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

수익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사들로서는 이번 매각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일 거다.

아무튼.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엘레나.

“오늘 비행 내내 글을 쓰실 거라 하셨죠? 음… 비행이 모두 끝났을 때 원고가 쌓여 있는 걸 기대해 봐도 되겠죠?”

그 말을 끝으로 씨익 웃으며 문을 닫는 엘레나였다.

그런데 엘레나가 보여 준 마지막 웃음이 꼭 ‘작가님, 마감은 제때 해 주시겠죠?’라고 묻는 편집자 이모티콘을 닮은 건 왜일까.

흐음… 생각해 보니 이디북스 인수가 마무리된 게 아니라면 굳이 지금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을 텐데.

설마 내가 전역 이후 글 쓰는 시간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고 나 감시하러 전용기에 함께 탄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

* * *

미국에 오고 이틀이 더 지났는데.

그사이 나는<찬탈자>를 3부까지 모두 집필할 수 있었다.

나머지 일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글에만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일.

특히 하늘 위 작업실의 효과가 꽤 좋았다.

작업 환경이 새롭게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면… 무언의 압박이 작업실 바깥에서 느껴져서일까.

글이 써지는 속도가 썩 괜찮더라.

물론 매일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쓴다면 그것도 아니게 되겠지만, 이번처럼 가끔 리프레시 하는 느낌으로 공중 집필을 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뭐, 어쨌거나.

“MR. 선!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

나는 오늘 한 파티장에 와 있다.

할리우드 내에서 내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은 만큼, 내가 미국에 왔다는 소식에 여러 초대가 쇄도했는데.

그중 한 군데에 참석한 것.

그리고 그곳에는 하비 와인스틴 또한 있었다.

“저도요. MR. 와인스틴. 저희의 첫 만남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앞으로는 건설적인 관계를 기대해 봐도 되겠죠?”

“당연한 말씀을요. 어제 체결된 유통 계약이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유통 계약을 체결한 게 바로 어제.

트렌트에게 추가적인 보너스를 지급해야겠다 생각하며, 와인스틴과의 대화를 더 나눴는데.

‘이 양반, 확실히 강약약강이긴 하네.’

방금 언급한 와인스틴과의 첫 만남.

그건 실제로 그를 만났던 걸 말하는 게 아니고, 예전 봉 감독의 신작 건으로 와인스틴 컴퍼니와 마찰이 있었던 걸 얘기하는 거였다.

당시 리미티드 릴리스로 개봉되고, 영화의 상당 부분이 와인스틴 컴퍼니의 의지로 삭제될 예정이라 봉 감독이 내게 그 작품의 미국 내 배급을 부탁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계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미국 내 배급을 결국 써밋 엔터가 담당하게 되긴 했었어도, 저작권을 100% 전부 가져오지는 못했었다.

우리가 70%, 와인스틴 컴퍼니가 30%.

아무튼, 그때 할리우드를 통해 들리는 소문으로는 하비 와인스틴이 갑자기 나타난 한국 애송이가 자신에게 덤빈다며 꽤 분노를 표했다던데.

“써밋-MGM의 이번 신작도 무척이나 좋더군요. 옥자! MR. 봉은 역시 천재적인 감독이더군요. 물론 저는 그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요. 아시다시피 그 잠재력을 할리우드에서 제가 가장 먼저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하하. 제가 MR. 선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가 봅니다.”

지금 내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하하.

웃음이 나올 뿐이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그때만 해도 아시아에서 온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했던 나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디즈니, 워너, 유니버셜과 버금가는 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한 거물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아, 저기 제 친구가 있어서 잠시 인사 좀 하고 와도 될까요? 해야 할 흥미로운 얘기가 있어서요.”

“…하하. 그럼요. 편하게 다녀오시죠.”

하비 와인스틴과 대충 이렇게 대화를 끝내도 괜찮다는 의미였다.

인사하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Sarcasm의 나라 미국에서 살아온 하비가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리 없다.

‘너랑 노는 건 흥미롭지 않으니 이만 갈게.’

대충 그런 거.

게다가 그렇게 떠난 내가 찾은 친구가 누구인지 알면 더 화가 나겠지.

“팀, 잘 지냈어?”

“와우! 우진, 왜 온다고 말 안 했어요?!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는데!”

“네가 여기 오는 걸 나도 몰랐으니까? 하하.”

티모시 할 샬라메.

티모시가 <찬탈자>의 주인공이면서, 최근 두 편의 영화를 새롭게 찍고 있는 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라지만.

글쎄.

아무리 그래도 이제 갓 스물을 넘은 젊은 배우한테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험을 하는 건 하비에게는 꽤나 자존심 상하는 사건이지 않을까.

그런데 뭐,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늙다리 하비와 노는 것보다 나처럼 젊은 티모시와 노는 게 훨씬 더 흥미롭고 재밌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조금 있다가부터는 하비 와인스틴이 몇 배나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되기는 하겠지만.’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한 두 시간 정도 남았나?

그동안 나는 오늘의 파티를 즐기면서 적당히 취할 생각이었다.

원래 뭐든지 살짝 알딸딸할 때 즐겨야 재밌는 법이다.

“우진, 그거 알아요? 제가 안 그래도 아까 네스에게 우진의 얘기를 엄청 한 거? 제가 이런 파티에 올 수 있는 건 모두 당신 덕분이라고요.”

“네스? 아, 네 매니저. 하하. 무슨 소리야 팀. 네 재능이라면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 반드시 스타가 됐을 거라고.”

“설마요! 하하. 그런데 우진, 오늘은 웬일이에요? 원래 이런 곳 별로 안 좋아한다지 않았어요?”

“너도 나처럼 2년 정도 군대에 있어 봐. 오늘이 늙다리들만의 만남이었어도 재밌게 느껴졌을 테니. 그리고 뭐…….”

오늘 예정되어 있는 개꿀잼 이벤트도 있고.

모름지기, 그런 이벤트는 직관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철칙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