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40화 (140/267)

140화 사기 말고 유통 계약을 맺다

도날드 트럼프의 선거 캠프.

탁-

“흐하하, 역시 MR. 선이로군.”

전화를 끊고는 웃음을 터트리는 트럼프.

그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는데.

‘한국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친구는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가 아직 공화당의 후보가 되기도 전부터, 그를 지원해 준 선우진.

그가 이번에도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소식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의 전화가 아니었더라도 언제나 선우진은 트럼프의 좋은 친구였을 것이다.

선우진이 공화당 후보 경선 이전부터 그에게 막대한 선거 자금을 지원했어서?

대부분 힐러리의 편인 다른 기업가들과 할리우드의 거물, 금융인들과는 달라서?

둘 다 아니었다.

‘그의 힘은 진짜지. 미국 엔터업계가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있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외국인이 내 편이라면야 뭐.’

지금껏 그 어떤 미국 대통령 후보보다 미디어,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이가 바로 트럼프였다.

그가 유세장에서 쏟아 냈던 발언들이 언론을 타 기사화되고, 그 기사들이 여러 소셜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공유되면서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고, 그러면서 단숨에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트럼프는 그 누구보다 소셜 미디어의 힘을 잘 알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스웜 앤 칠이라는 말도 있다지?’

그런 그가 판단하기에 선우진이라는 존재는 21세기 머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메이저 스튜디오라는 벽이 공고해진 이후로 어느 누구도 넘을 수 없던 할리우드의 벽을 3, 4년 만에 넘어 버렸고.

그가 보유하고 있는 OTT 서비스는 미국에서만 5,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 가입자 수 증가 속도만 따지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스냅챗을 모두 제친 틱톡의 성장세 또한 무척이나 놀라웠다.

거기에 미국 금융권에서도 엄청난 이슈가 됐었던 선우진의 최근 브렉시트 투자도 있었고.

과연 그 모든 성공이 우연일지, 아니면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결과일지.

어느 쪽이 되었든 그가 자신을 지지하는 이상 트럼프로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전자라면 그런 행운의 사나이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거였고, 후자라면 그의 놀라운 분석력이 자신을 당선자로 꼽았다는 것일 테니.

띡-

“내 방으로 바로 와 보게나.”

언론인 출신의 홍보·미디어 담당자를 자신의 방으로 호출한 트럼프.

트럼프가 방송 및 예능 업계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알았던 인물로, PI(President Identity) 전문가이기도 했는데.

대중에게 보여지는 일종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해 주는 전문가를 뜻했다.

어떠한 메세지를, 어떠한 모습을, 어떠한 모습으로 언론과 대중에 보여 줄 것인지 결정하는 담당자.

달리 말하면, 선거 캠프에서 도날드 트럼프라는 대통령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하는 이였다.

“이번에 준비해야 할 건 내 이미지 메이킹보다는 상대 이미지 메이킹일세.”

“힐러리 후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녀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을 일삼는지! 앞에서는 성차별과 여성 인권을 떠들어 대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추악한 인물이지. 그 점에 집중해 보자고. 하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이군? 지금 메일 하나 갔을 테니 확인해 보게.”

트럼프의 말에 빠르게 메일을 확인하는 홍보 담당자.

이내, 그의 얼굴 또한 트럼프처럼 변했다.

건수 하나 제대로 잡았다는 듯한 표정.

“이야기가 여러 번 돌기는 했죠. 가위손 하비(Harvey The Scissorhand)가 가위질만 잘하는 게 아니라고요.”

“흐흐. 며칠 전에 와인스틴 그 자식이 힐러리를 위해 기금 마련 행사를 주재했었지? 할리우드의 수많은 스타 그리고 스타가 되길 원하는 이들도 거기에 참석했고. 함께 한번 엮어 보자고.”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워후, 하루 이틀 준비한 자료가 아니군요.”

하비 와인스틴의 수많은 범죄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

거기에 필요하다면 얼굴을 밝히고 증언에 나서겠다는 피해자들까지.

고작 며칠 정도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설득하는 데에만 몇 달 가까이는 썼을 거다.

게다가 특히 더 놀라운 건 증언을 하겠다는 이들 중에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모델이나 배우들도 존재한다는 것.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나서는 증인들인 만큼, 힐러리 측에서 저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원해서 거짓 증언을 하는 거라 말하지도 못하리라.

이만한 스캔들이라면…….

‘안 그래도 비호감인 힐러리의 지지 기반을 더 약화시키기에는 충분하지.’

홍보 담당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했다.

물론 그가 모시는 트럼프 후보 또한 비호감 이미지라면 어디 가서 지지 않지만, 힐러리 후보도 그에 만만치 않았다.

이메일 스캔들, 그간 쌓아 온 위선적 이미지 등.

사실상 이번 미국 대통령 대선은 최선을 뽑는 게 아니라 최악과 최악 중 차악을 뽑는 선거.

그런 만큼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 스캔들과 그와 오랜 기간 깊은 관계를 유지해 온 힐러리 후보의 연관성은, 그녀의 지지층이었던 백인 여성 계층들에게 위선자 힐러리보다 차라리 트럼프가 더 낫다라는 인식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좋네요. 바로 진행에 들어갈까요?”

“아니. 사흘 후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 힐러리를 공격할지 계획을 짜는 데에 집중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사흘 후.

와인스틴과 관련된 정보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선우진과 약속한 시간이었다.

* * *

써밋 엔터-MGM의 사무실.

이제는 할리우드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거물이 된 트렌트의 방에는 부하 직원이 여럿 자리하고 있었는데.

“워, 이미테이션 게임이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배급한 거였어? 이거 작년에 아카데미 수상작 아냐?”

“네. 각색상 수상했을걸요? 노미네이트 됐던 것만 따지면 8개였나 9개 부문이었고요.”

“베네딕트의 연기가 끝내줬었지.”

“비긴 어게인도 TWC 거잖아요. 그건 알고 계셨죠?”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건 TWC, 더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그간 제작 혹은 배급을 맡았던 작품들을 최종 점검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 목록 중 스웜에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골라내 유통 계약을 맺는 것.

다른 스튜디오의 작품들과 OTT 유통 계약을 맺어, 그 작품들이 써밋 엔터-MGM을 통해 스웜에 공급되는 방식.

그들이 평소 하던 것과 별다를 게 없는 업무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선우진이 트렌트에게 직접 지시한 일이었는데.

그것도 한 달이나 전에 특별히 와인스틴 컴퍼니를 지정하기까지 하며 지시한 일이었다.

MGM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그 후처리를 한창 진행하던 바쁜 와중에 내려온 보스의 특명.

사실, 트렌트가 가장 궁금한 게 선우진이 왜 굳이 이런 사소한(?) 지시를 내렸는지였다.

‘그냥 위에서 까라니까 까는 거긴 한데…….’

그것도 그냥 위도 아니라 브렉시트에서의 투자로 할리우드 최고 부자가 된 보스가 말이다.

소식을 듣고 그 또한 얼마나 놀랐던지.

전역 축하 소식을 보낸 지 얼마나 지났다고, 보스의 얼굴을 뉴스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300억 달러를 벌게 된 투자의 귀재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뉴스가 나오고 한 일주일 정도 써밋 엔터의 모든 직원이 선우진의 얘기를 떠들었다.

더욱이 그런 막대한 자금이 생긴 만큼, 앞으로 그들의 보스가 MGM에 이어서 더욱 공격적인 투자와 확장을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직원들 사이에서 돌았었는데.

‘그 첫 스텝으로 와인스틴 컴퍼니를 사려는 건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든 트렌트였지만, 빠르게 그 생각을 지워 냈다.

그가 판단하기에 와인스틴 컴퍼니는 별다른 인수 가치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와인스틴 컴퍼니의 주인인 하비 와인스틴이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건 맞다.

과거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전설을 써 내려갔던 인물인 것도 맞고.

하지만 하비 와인스틴이 영화 제작자로 잘나가던 시절은 1990년대의 일.

지금 그의 시대는 지났다.

비록 와인스틴 컴퍼니가 그가 방금 언급한 이미테이션 게임을 배급했던 것처럼, 그의 할리우드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 건재한 건 사실이지만…….

‘글쎄. 우리가… 특히 보스가 신경 쓸 급은 아니지.’

최대로 쳐줘 봐야 와인스틴 컴퍼니는 미니-메이저급 회사.

이미 원래도 준메이저 취급을 받았던 데다가, MGM을 인수한 이후 디즈니와 워너, 유니버설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는 써밋 엔터가 M&A를 시도할 급은 아니었다.

굳이 수익성이 있어 보이는 걸 찾자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이미테이션 게임처럼 와인스틴 컴퍼니의 배급 작품 중 괜찮았던 것 몇 개를 가져오는 정도?

그런 거라면 좋아 보이는 것들이 몇 개 있기는 했다.

비긴 어게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킹스 스피치, 장고: 분노의 추적자, 피라냐 등.

늙은 독수리가 쌩쌩한 까마귀보다는 낫다고.

하비 와인스틴의 영화 보는 눈이 아예 죽지는 않았던 거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과 다른 써밋 엔터 직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는지.

“흠. 그러면 이미테이션 게임과 비긴 어게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킹스 스피치, 장고, 피라냐… 휘유-! 이렇게 정리하니 꽤 많네. 아무튼 여기에 MR. 봉의 스노우피어서 정도? 이렇게는 무조건 가져와야 할 것 같은데요.”

“MGM과 함께 배급을 했던 과거 작품들도 이번 기회에 같이 유통해야 하고요.”

“헬레이저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죠. 나름 OG들 사이에서 수요가 있다고요.”

“여기 이 목록들도 마찬가지야. 예전에는 와인스틴이 확실히 잘나가긴 했잖아?”

1시간 남짓의 회의 끝에 그들이 와인스틴 컴퍼니와 유통 계약을 맺을 작품들이 정해졌다.

이전부터 얘기가 오가던 목록 중 빠진 것도, 추가된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몇몇 굵직굵직한 와인스틴 컴퍼니의 배급 작품들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마션을 찍기 전 봉 감독이 와인스틴 컴퍼니를 통해 해외 배급을 했던 스노우피어서, MGM이 자금난을 겪던 시기 과거 와인스틴 컴퍼니와 함께 배급을 했던 십수 개의 작품 등.

가져올 만한 게 별로 없다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정리해 보니 수십 작품이 넘었다.

“좋아. 그러면 빠르게 협상을 끝맺어 보자고. 보스께서 주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거든.”

“사흘이라 하셨죠? 뭐, 딜이야 이전부터 오가고 있었으니… 하비가 최종적으로 어프루브 하기만 하면 마무리되는 건 금방이죠.”

“좋아. 아! 그리고 특약 조건 넣는 거 절대 잊지 마.”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트렌트.

선우진의 이번 지시에서 그가 특히나 강조했던 게 있었는데.

[TWC가 파산 시, 스웜과 유통 계약을 맺은 와인스틴 컴퍼니 작품들의 저작권은 써밋 엔터-MGM에 귀속된다. 써밋 엔터-MGM은 그 대가로 와인스틴 컴퍼니에…….]

스웜과 이번에 유통 계약을 맺게 될 TWC 작품들의 저작권이 와인스틴 컴퍼니가 파산한다면 그대로 써밋 엔터-MGM에 귀속된다는 것.

사실 유명무실한 조건이기는 했다.

아무리 지금 TWC가 창립자인 하비, 밥 와인스틴 형제의 경영권 다툼으로 첨예한 갈등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는 해도, 그럭저럭 잘나가던 스튜디오가 갑자기 파산할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물론 그렇기에 이런 이상한 조건을 왜 넣으려 하는 거냐고 TWC에서 반발할 법도 하긴 한데.

어떻게든 그런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 게 결국 트렌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써밋 엔터가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되며 대폭 오르게 된 그의 연봉.

할리우드의 여러 스타도 감히 사기 힘들다는 베벌리힐즈의 최고급 주택에서 트렌트가 살 수 있게 된 이유인 그 많은 돈은, 선우진의 지갑에서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까 그가 생각한 것처럼 결국 그는 보스인 선우진이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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