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39화 (139/267)

139화 그럴듯한 거짓말

탁, 타다닥-

정말 오랜만에 글만 쓰는 느낌.

사실 그동안 일에 더 집중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리프레쉬도 필요한 법.

웹 소설 작가가 유일한 직업일 때는 처음에 좋아서 시작했던 글쓰기가 힘들어졌던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사업에 집중하다가 글을 쓰게 되니,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특히 <찬탈자>에서 왕좌를 기업의 주인 자리로 치환하게 되면 요즘 내가 겪는 일 중 글에 써먹을 것도 많고 해서 그런가.

일에 집중하면서 머릿속에 쌓아 뒀던 스토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빅터 3세가 노려야 할 건 왕과 왕세자의 미묘한 권력 갈등…….’

처음에 생각해 뒀던 이야기는 늙은 왕이 왕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거였지만, 쓰다 보니 조금 바뀌었다.

군주의 자리에서 물러나지는 않고, 그저 정사를 돌보게만 하는 것.

조선식으로 따지자면 대리청정이었다.

‘늙어 죽기 직전까지도 권력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왕이 양위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원래라면 대리청정도 하지 않았을 늙은 왕이다.

하지만 왕국 내에서 왕세자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계속된 압박 속에 대리청정을 하게 된 것.

전제군주제인 조선이라면 불가능한 얘기겠지만 기본 바탕이 봉건제인 반더 왕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

그렇게 왕국 전체는 물론 왕국 내에서도 왕과 왕세자의 세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빅터 3세.

쫓겨나듯 왕궁을 떠났던 가장 비천한 왕자는 북부에서의 고행 끝에 저울을 기울이기에 충분한 추가 되어 왕국에 복귀하게 된 것.

타다다닥-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쓰고 싶은 건 많았지만 쓸 수 있는 건 한정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

그간 사업에 집중하면서 쌓아 놨던 스토리 중, 그런 점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건 과감하게 쳐 냈다.

특히 집중한 건 왕과 왕세자 그리고 빅터 3세까지 모두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 내고자 한 것.

그 누구도 완전히 정의롭지는 않았고 완전히 악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마법사> 속의 주인공은 여러 행보를 거치며 영웅이 된 소시민이 보여 주는 영웅적 면모가 중심이었지만, 그 끝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빅터 3세는 그런 식으로 그려 내고 싶지 않았던 것.

그렇게 집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우우우웅-

미리 맞춰 놨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집필에 몰입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 것.

“스읍.”

그런데 오랜만에 글에 집중했던 기분이 깨져서 그런가.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리 잡혀 있던 일정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미국 가는 비행기에서 마저 써야겠다.’

모레에 미국행이 예약되어 있는데.

거기서 <찬탈자> 3부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10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 시간인 만큼 충분할 터.

게다가 집필에 필요한 환경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기도 했다.

‘전용기를 샀으니까.’

기업가라는 놈들은 자기들 돈 벌 찬스를 어떻게 그리 안 놓치는 건지.

예전부터 전용기 구매할 생각이 없냐며 내게 묻던 보잉사가 이번 브렉시트 건으로 내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게 알려지자, 또 연락을 해 오더라.

에어버스에서도 연락이 온 건 마찬가지였는데 두 회사 모두 누군가 미리 발주했던 항공기를 내게 제시한 거였다.

아마 브렉시트로 인해 큰돈을 잃고 전용기를 구매할 여력이 사라진 이들이 주문했던 건가 싶었다.

사실 전용기라는 게 뚝딱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꽤나 급했던 건지 두 회사 모두 꽤 큰 할인을 제시했었으니까.

아무튼.

결국 보잉의 것이 에어버스의 것보다 한 단계 더 좋은 전용기였던 터라 보잉의 것으로 최종 선택했다.

보잉 747-8VIP.

1억 4천만 달러짜리였는데 추가적인 인테리어 비용으로는 6천만 달러가 들었다.

총액 2억 달러.

‘이 정도 사치쯤이야 뭐.’

오성그룹에서 건물을 산 거야 사옥으로 쓸 예정이었으니 이유 있는 소비였지만.

이번에 구매한 전용기는 순전히 그냥 사고 싶어서 산 사치품.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억 달러라고 하니까 커 보이기는 한데… 사실 큰돈인 건 맞다.

내게 있어서 사치의 기준이 점점 커지는 것도 맞고.

하지만 내가 브렉시트를 통해 번 돈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투자로 900만 원을 번 기념으로 택시 타는 데에 2만 원을 쓴 거나 마찬가지.

게다가… 조만간 꽤나 손쉽게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찬스도 있었고.

“이게 내부적으로 분석한 시나리오인가요?”

“예.”

보고서와 함께 나를 찾아온 제이슨.

그가 건넨 보고서는 3달 후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가 어떤 식으로 흐를지에 대한 분석 시나리오였다.

3달 후에는 4년에 한 번 있는 전 세계의 가장 큰 행사, 월드컵… 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이슨이 대표로 있는 SW 인베스트먼트(브렉시트 이후 새롭게 설립했다)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의 경제 흐름을 미리 예측해 온 것.

“브렉시트와 흐름이 비슷하네요?”

“예. 트럼프 후보의 정책이 미국 우선주의인 만큼, 신흥국…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의 증시와 통화가 모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경제도 덩달아 불안정성이 늘어날 거고, 그렇게 되면 안전자산 쪽으로 돈이 몰리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브렉시트 때와 비슷한 시나리오.

안전자산의 대표 주자인 금과 엔화는 또 오르게 될 것이다.

‘이쯤 되니 아베가 좀 불쌍해지는데?’

4년 동안 아베노믹스로 내려놓은 엔화의 가치가 브렉시트 이후 몇 시간 만에 원상 복귀 하고.

그러면서 브렉시트를 예상했다는 듯 엔화 상승에 베팅한 웬 이상한 놈 하나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커져 버리고.

그 탓에 아베의 지지도는 바닥에 내리꽂았었는데.

그래도 브렉시트의 충격이 조금씩 가시면서 다시 일본 증시도 반등했고.

덕분에 아베의 지지도 또한 다시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얘기였고.

‘원래 맞은 데 또 맞으면 엄청 아픈 법인데…….’

후우.

진짜 불쌍해서 어쩌냐.

그 이상한 놈은 성격도 별로 안 좋아서 때린 데 또 때리는 거 좋아한다던데.

뭐, 어쨌거나.

“한국도 영향이 꽤 크겠죠?”

“예. 트럼프 후보가 계속해서 강조해 온 게 보호주의 무역 강화 그리고 무역 상대국의 통화 절상 압력인 만큼… 한국처럼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곳들은 전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순간, 한국의 증시 또한 순간적으로 폭락하게 될 거다.

특히 내 기억으로는 개표 초반 힐러리가 우세하다는 소식에 증시가 상승하다가 개표 과정이 진행되면서 급락하게 될 텐데.

그렇게 변동성이 심화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돈 벌 구석이 많다는 소리였다.

“흠.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저는 애국자가 아닌 걸까요?”

“설마 그러겠습니까. 대한민국에 보스만큼 많은 외화를 벌어 오시는 분이 어디 있다고.”

“벌어 와 봤자죠. 제가 가진 해외 법인이 벌어서 해외에 쓰는데요 뭐.”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제일로 치는 애국자가 일본 때려잡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제이슨의 말이 맞긴 하다.

언론에는 브렉시트를 통해 내가 일본에서 4조 원을 벌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덕분인지 특히 일본을 싫어하는 몇몇 사람한테서 나는 엄청난 애국자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브렉시트 때와 조금 다르게 갈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저희 포지션은 한국에도 꽤 비중을 두는 거로 하죠.”

“한국에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역시 아무래도 본진 자원이 튼튼해야 확장도 잘되겠더라고요.”

나는 한국 증시와 외환시장에도 숏 포지션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즉, 이번에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한국도 제대로 털어먹겠다는 것.

‘가만히 있으니까 호구인 줄 안단 말이지.’

기존부터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던 CM 그룹과 이번에 새롭게 구축한 오성을 제외하면 그간 나와 연관이 없던 한국 재계.

이제는 좀 연관이 되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보스, 그런데 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가요?”

제이슨이 꺼낸 또 하나의 보고서.

내가 요청했던 ‘트럼프가 당선됐을 시’에 대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미국 대선 그 자체에 대한 예측 보고서였는데.

“저희 분석실에서 면밀이 분석한 결과입니다. 물론 보스께서 확신하셨던 그간의 일들이 보스의 예상대로 흘렀던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틀릴 가능성이 꽤 커 보인다는 거군요?”

“물론 저는 보스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분석실에서 계속해서 의견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제이슨.

그가 건넨 보고서를 빠르게 훑었다.

그걸 정리해 보자면 대충 이러했다.

‘트럼프 당선 시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달라 하셨는데… 보스, 아무래도 트럼프가 아니라 힐러리가 될 것 같은데요?’

사실 나와 같은 회귀자와 극성 트럼프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는 지금 시점에서는 꽤나 명확해 보이니까.

모두가 힐러리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는 상황.

아마 제이슨이야 지금까지 내 예측이 전부 들어맞았던 걸 바로 옆에서 봤으니 의심하지 않겠지만.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인력들(특히나 브렉시트 이후 새롭게 확충한 이들)은 그렇지 않겠지.

그렇기에 뭐, 내 생각과 반대되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군주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그 생각과 반대되더라도 충언을 아끼지 않는 게 진짜 충신 아니겠나.

‘그렇다고 내가 진짜 군주인 건 아니고…….’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오글거린다.

여하튼.

“예. 지금 상황만 보면 누가 봐도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되겠죠. 저 또한 동의합니다.”

“……?”

그렇게 말하자 살짝 흔들리는 제이슨의 눈빛.

마치 ‘그러면 왜……?’라고 묻는 듯했다.

내게는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면 말하려고 준비했던 멘트가 있었다.

“제이슨이 아셔야 할 게 있는 것 같네요. 브렉시트 때는 예측이었죠. 하지만 이번에 제가 하는 건 예측이 아니라는걸요.”

“그러면……?”

“예측이 아니라 그렇게 되게 하는 거죠. 저는 트럼프가 당선될 거라 베팅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한 무기도 이미 준비해 놨고요.”

“……!”

내 말을 듣고 나서는 눈이 크게 뜨이는 제이슨.

으음… 그걸 보자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는 했다.

사실 다 거짓말인데… 이번에도 예측이 맞긴 한데. 하하.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양심의 가책 따위가 아니었다.

제이슨이 지금 저러는 것처럼…….

‘트럼프 또한 내가 자신의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생각하게 만들어야지.’

AMD나 NVIDIA를 넘어서, 더 많은 것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지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방금 제이슨에게 말한 내 무기.

그걸 통해 트럼프에게 내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여러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띡-

제이슨이 떠나고.

TV를 켜 CNN을 틀자 보이는 뉴스가 있었다.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지원했습니다. 와인스틴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뿐만 아니라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 부부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와인스틴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총체적인 의견은 모두 힐러리 캠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물론 그 과정에서 내 존재는 철저히 숨겨져야 할 것이다.

괜히 민주당 측의 미움을 사고 싶지는 않으니까.

뭐, 트럼프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자기가 주도해서 상대 후보 측의 오물을 발견하는 그림.

주인공병 걸린 트럼프에게는 딱 어울리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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