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끝까지 안 가도 내가 이김
내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계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스웜과 틱톡, 트위치.
써밋 엔터와는 달리 모두 인터넷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심지어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저 회사들 모두 엄청난 가입자 수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도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스웜, 2016년 2분기 실적 발표. 전 세계 가입자 수 1억 2천만 명 돌파.]
[이제 대세는 라이브 스트리밍? 선우진의 트위치, 동시 접속자 수 90만 명 달성.]
[틱톡! 가입자 수 8천만 명 돌파. 인스타그램에 비하면 6분의 1이지만 증가 속도는 비슷?!]
당연하게도 폭발적인 가입자 수의 증가만큼 저 업체들이 사용하는 데이터량도 무지막지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물론 자체적으로 갖춘 서버와 데이터 센터들이 있기는 하지만…….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데이터 센터라는 게 돈 준다고 갑자기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 타 회사들의 데이터 센터들을 인수하는 건 데이터 센터의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관련 인력에 대한 비용도 엄청났다.
그냥 데이터 센터만 사고 끝이 아니라 그걸 관리하고 운용해야 할 인력도 추가적으로 고용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부족한 서버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를 이용 중인데.
이게 비용이 정말 한두 푼이 아니더라.
‘스웜이… 지금 매년 700억 원. 트위치가 150억 원. 틱톡은 아직 50억 원 수준이긴 한데…….’
총합이 900억 원.
저것의 약 1,000배인 100조 원가량을 이번 브렉시트 투자로 벌었으니 ‘에게? 겨우 900억?’ 싶을 수도 있겠지만.
브렉시트와 같은 기회가 매번 있는 것도 아니고.
수익률은 비슷할 수 있어도 저만한 투자 수익을 감당할 만한 미래 정보는 이제 해 봐야 한두 개뿐이다.
그것도 그 미래 정보라는 게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는 코로나 팬데믹이고.
게다가 900억 원이 지금 900억 원인 거지, 앞으로도 저 정도만 드는 게 아니었다.
아마존(Amazon).
한때 디아블로에 매진했던 초딩 때에는 강인한 여전사가 떠오르는 단어였고, 상남자 투자자로 살았던 때에는 내 계좌에 드물게 빨간불을 띄우던 고마운 회사가 떠오르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돈 먹는 하마 놈들.’
물 먹는 하마의 제습 효과가 그렇게 좋다던데.
아마존의 돈 먹는 실력에는 미치지 못할 거다.
AWS와의 클라우드 계약은 현재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MSA(마이크로 서비스) 방식이 아니라, 몇 년치 계약을 한꺼번에 맺어 매년 지불하는 연간 계약 방식이었는데.
스웜이 AWS와 맺은 계약이 올해를 끝으로 종료된다.
달리 말하면, 조만간 새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AWS 측에서 부른 새로운 연간 비용이 자그마치 2억 달러(약 2,200억 원).
가격이 3배 넘게 뛰어 버린 건데, 그나마도 3년짜리 계약이라 3년 후에는 거기서 또 뛰게 될 거다.
물론 현재 스웜의 성장세, 나날이 늘어가는 가입자 수와 데이터 사용량을 생각해 보면 AWS가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한 거기는 했다.
근데 그건 AWS 측에서의 얘기고.
‘세입자가 좀 잘나간다고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버리면… 기분이 확 상한단 말이지.’
게다가 내가 갖고 있는 점포가 한 곳도 아니고.
큰 곳만 세 곳인데, 그러면 다른 두 곳도 계약 끝나면 월세 올릴 거란 얘기잖아?
물론 이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단순히 건물주 - 세입자 관계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내 기분이 상한다는 건 비슷했다.
빼애액! 공감해 달라고!
아무튼!
그렇게 클라우드 비용에 대한 계산기를 조금 돌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 거다.
어? 너희만 건물 있어?
나도… 지금은 없지만, 건물 세울 돈은 있다 이거야.
안 되겠다. 그냥 나도 내 건물 세울래.
뭐, 대충 이런 생각의 흐름.
그리고 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특히 코로나가 터지고 세상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과 PC 앞에 상주하기 시작할 때 얼마나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지.
즉,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곳에다가 건물을 지으면 이게 60년대에 강남 땅 사고 80년대에 분당 땅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
‘어떻게 이걸 안 하고 배겨.’
내 돈이 앞으로 몇조 원은 우습게 나갈 거 아낄 수도 있고.
그러면서 남들 돈을 최소 몇 조에서 몇십조 원까지 가져올 수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잠재적인 고객(테슬라와 스페이스 X)도 확보해 놨는데.
안 하는 게 바보다 이 말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성이라는 새 잠재 고객이 생기기도 했고.
“앞으로 선우진 대표님과 오성이 쭉 좋은 관계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박재용 부회장과의 얘기는 얼추 마무리가 됐다.
그가 원한 대로 시그마 캐피탈이 갖고 있는 하만의 지분을 넘기기로 했고.
그 또한 오성전자의 AWS 비중을 일정 부분 앞으로 시작하게 될 내 클라우드 회사에 넘기기로 구두 약속을 했다.
이미 AWS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확장하게 될 곳에서는 나와 협력하기로 잠정적 합의한 것.
뭐, 그저 구두로 나눈 얘기에 불과하지만 오너의 말은 천금보다 무거운 법.
‘안 지키기만 해 봐.’
바로 유튜브 채널 파서 영상 올린다.
영상 제목은 [박재용에게 통수 맞은 썰 푼다 ㅋㅋ].
국내 조회 수만 최소 500만일 거다.
물론, 장난이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추진하게 될 클라우드 사업에서 오성과의 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될 거니까.
‘데이터 센터 건설을 오성그룹에서 담당하기로 했으니까.’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는 규모의 경제로 얻게 되는 이점이 어마어마한 사업.
그런 만큼 전 세계 수십 곳에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걸 오성 측에서 맡기로 한 것이다.
이것 또한 구두 약속이니 만큼, 세부적인 건 추후에 정해질 예정.
실제로 건설에 들어갈 때 오성이 우리에게 넘길 클라우드 비중과 함께 데이터 센터 건설에 오성이 얼마나 참여할지가 결정될 거다.
‘데이터 센터들에 들어가야 할 메모리 반도체 수량을 대충만 따져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걸 오성전자에서 공급하게 되는 것.
즉, 오늘의 만남은 나한테나 오성한테나 서로 윈-윈이 되는 거다.
만약 종합적인 스코어를 따져 본다면…….
‘현재까지는 50 대 50 정도?’
오성전자는 1년에 AWS에 쓰는 비용만 수천억 원일 정도로 클라우드 시장의 엄청난 고객이고.
데이터 센터 건설에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도 오성전자가 모두 공급한다면 오성에게는 막대한 이득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것.
하지만 마냥 50 대 50의 윈-윈 관계로 끝나지는 않을 테고.
누가 조금이나마 더 웃게 될지는 실무자들의 다툼에서 결정되겠지.
관련해서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박재용 부회장은 오늘의 대화가 자신들에게 조금 더 이득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당장 나와 악수를 나누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박재용 부회장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울의 기울기가 자기네들 쪽으로 살짝이나마 기울어져 있다 생각하지 않을까.
클라우드 비용은 어차피 지출해야 하는 비용인데.
데이터 센터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건 추가적으로 얻어 낸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더 크게 웃는 게 누가 될지는… 결국 끝까지 가 봐야 아는 법이지.
명언 제조기로 유명하신 돈까스 선생님께서 그랬다.
요! 끝까지 가는 사람이 무조건 이겨요!
나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말인데.
원래 회귀자는 끝까지 안 가도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라서 그렇다.
* * *
신라호텔을 나온 박재용이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오성 타운으로 가시죠.”
오성그룹의 서초구 사옥인 오성 타운.
올해 3월을 기점으로 오성전자 인력의 대부분이 오성 디지털 시티와 우면동 R&D 센터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일부 조직은 건물에 남아 그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오성 타운 40층과 41층에 위치한 속칭 ‘오성의 컨트롤 타워’, 미래전략실 또한 그런 조직 중 하나였다.
박재용 부회장은 그곳에 찾아가 미래전략실과 함께 오늘 선우진과의 만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아마 15분 정도면 도착할 터.
그사이 박재용 부회장은 조금 전까지의 만남을 정리하기로 했다.
“도착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해 있는 오성 타운.
박재용 부회장이 곧바로 부회장실로 향했다.
그 앞에는 이헌호 팀장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선우진 대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장 이헌호.
그가 박재용 부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박재용 부회장과 하버드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인물로, 현재 미전실장을 맡고 있는 김지성 실장이 박희건 회장의 사람이라면 이헌호 팀장은 박재용 부회장의 사람.
“어렵네요. 딱히 이렇다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박재용 부회장이 잠깐의 고민 후 답했다.
‘내게 유튜브를 권하기도 했고…….’
그럴 의향만 있다면 엄청난 콘텐츠들을 추천해 주겠다던데.
그럴 생각은 없다 하니 알려 주지 않기는 했지만.
대체 뭔지 엄청나게 궁금하기는 했다.
여하튼.
오성그룹 부회장, 사실상의 후계자인 그에게 유튜브 채널을 권하는 사람이라.
정말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
선우진에 대해 박재용 부회장이 받은 인상이었다.
사실 오늘의 만남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박재용 부회장은 선우진이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이지 않을까 추측했었다.
언론에서 말하길 그를 보고 세상에 다시 없을 사업 천재이면서 투자 천재라던데.
박재용 부회장이 아는 사람 중 그런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이가 바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지.’
여러모로 아버지와는 꽤 다른 인물이었다.
4억 달러가 푼돈이라.
아버지라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 말 하나 때문에 선우진을 특이하다 평한 것은 아니었다.
“중동에 갔을 때 말입니다.”
“예. 부회장님.”
“빈 자이드 왕세제, 빈 살만 왕세자 같은 이들을 만나고 느낀 게 있었죠. 아, 이 사람들은 재벌과 다르구나. 단순히 왕가에서 태어나 다른 것이 아니라, 석유라는 절대 불패의 힘을 갖고 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요.”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기분.
그걸 선우진에게서 느낀 박재용 부회장이었다.
마치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기지에 무한히 솟아나는 황금의 샘을 갖고 있는 듯한 모습.
자신의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인 확신이라도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걸까?
오성그룹의 후계자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란 그조차 아버지가 쓰러진 지금, 한 치 앞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데.
도무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래도 오늘의 만남이 퍽 만족스러웠던 박재용 부회장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계산기를 조금 더 두드려 봐야겠지만, 저희로서는 좋은 거래네요.”
이헌호 팀장의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
대화를 나눈 대로 흐른다면 선우진 측이 오성전자에 발주할 막대한 양의 메모리 반도체는 그들에게 큰 이익이 되리라.
물론 그들 또한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선우진 측에게 안겨 줘야겠지만… 현재 오성에서 판단하기로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들여야 하는 돈 대비 경쟁이 너무 과도한 시장.
수년 내로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드라마틱하게 시장이 확장될 계기가 없는 이상 그들이 조금 더 나은 거래를 했다 볼 수 있었다.
“아, AMD 인수 건에 대해 묻더군요. 저희가 인수를 실제로 시도했던 게 맞냐고요.”
“예? AMD요?”
“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 줬습니다. 실제로 시도했던 게 맞고, 결국 불발됐다고. 그리고 그 이유까지도요.”
당시 오성전자의 계획은 이랬다.
팹리스 기업인 AMD 인수를 통해, 그저 파운드리 기업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두 분야 모두를 석권해 반도체 업계에서 1위로 올라서는 것.
하지만 그런 그들의 계획은 너무나도 쉽게 무산되고 말았는데.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로 넘어가 심사를 받기도 이전에, 연락 한 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미국 재무부에 두고 있는 끈.
그 끈을 통해서 어차피 AMD 인수는 성사되지 않을 테니 괜한 힘을 빼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흠. 선우진 대표가 팹리스 시장에 진출하고 싶었나 보군요. 힘들 텐데요.”
CPU 기술은 미국의 수출 제한(export control) 분야.
아무리 로비스트가 합법인 미국이라 해도, 어떠한 로비에도 AMD를 오성전자에 넘길 계획은 없다며 못을 박은 것이다.
“예. 저도 그래서 혹시 AMD 인수를 원하시는 거라면 힘들 거라 말해 줬습니다. 미국 재무부 장관이 선우진 대표의 편이 아닌 이상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고요.”
“하하. 재무부 장관 정도로 되겠습니까? 미국 대통령 정도는 되어야겠죠.”
박재용 대표의 말에 웃음으로 답하는 이헌호 팀장이었다.
‘아니, 어쩌면 미국 대통령과 친하다 해도 힘들겠지.’
조만간 예정되어 있는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가 엄청나게 우세라던데.
그녀의 든든한 뒷배인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모두 선우진의 직접적인 경쟁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