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세계 1위 부자가 되고픔
우우웅- 우우웅-
단잠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우는 진동 소리.
확인해 보니 문자가 십수 통이 와 있었다.
[윌리엄 - 젠장… 개표 결과 보고 있어요?]
[윌리엄 - 당신이 맞았어요!]
[윌리엄 - 이대로라면 브렉시트라고요, 브렉시트!]
첫 연락은 개표 결과가 발표되던 도중 온 윌리엄의 것.
시간을 보니 개표 방송 이후 6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아마 그 비슷한 때에 결과의 윤곽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 모양.
[제이슨 - 축하드립니다, 보스]
그 이후에 온 건 축하 연락.
제이슨의 것 말고도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브렉시트에 베팅한 게 여러 곳에서 주목을 끌었던 만큼, 나와 연을 맺었던 온갖 곳에서 문자를 받았다.
[일론 머스크 - Jesus, 넌 진짜로 마법사인 게 틀림없어.]
[일론 머스크 - 네 재산이 화성까지 가는 소리는 나만 들리는 건가? To the Mars-!]
특히 눈길이 가는 건 화성 덕후의 연락이었는데.
사실 아까 전에도 연락이 왔던 머스크인데.
내 뉴스를 보고 혹시나 싶어서 자기 포지션을 몇 개 정리했다고 한다.
영국의 EU 잔류에 초점을 맞춘 금융 상품을 정리하고, 그 반대에 투자한 것.
뭐, 나에 비하면 꽤 소소하다면 소소한 금액인 1억 달러어치긴 했지만.
여하튼.
[윌리엄 - 설마 지금 자고 있는 건 아니죠?]
[윌리엄 - 와우… 바클레이스 친구들이 알면 미쳐 날뛰겠군요.]
[윌리엄 - 자기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정작 가장 큰 수혜자는 태평하게 단잠에 빠져 있다니…….]
[윌리엄 - 당신 같은 강심장은 난생처음 봐요.]
1시간 전까지 추가적으로 왔던 윌리엄의 연락.
그 이후로는 온 게 없었다.
그 외에도 연락들을 쭉 훑어본 후, TV를 켰는데.
[파운드화 - 14% 폭락! 1985년 이후 최저치.]
[브렉시트 쇼크! 파운드-유로, 파운드-달러, 파운드-엔 전부 급락 중!]
[너무 급격히 변하고 있는 파운드화… 영국 내 환전상 현재 모두 영업 중지 상태.]
윌리엄의 연락이 도중에 끊긴 이유가 있었다.
아마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바삐 움직이고 있을 터.
물론 몇 달을 준비한 일이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다.
띡-
티비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 가며 브렉시트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 있었는데.
여기저기가 시끄러웠다.
영국의 모든 뉴스 채널에서 브렉시트 쇼크를 조명하고 있는 건 당연한 거였고.
영국 채널들 말고 세계 각국의 주요 뉴스 채널도 볼 수 있게 세팅해 놨는데.
[금융 정책을 통해 엔저를 유도했던 아베노믹스가 위기에 놓이게 됐습니다. 아베 내각은 재임 기간 동안 양적 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 결과 1달러에 110엔까지 엔화 가치를 낮추는 데에 성공했었는데요.]
그러다 틀게 된 일본 채널.
NHK가 아마 일본 공영 방송인가 그럴 텐데…….
뭐라고 떠드는 건지는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일본어를 조금 알기는 아는데 아주 간단한 회화 수준인 터라.
경제 용어와 같은 전문 용어들이 섞인 탓에 지금 뉴스 앵커가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대충 아베와 엔 얘기가 나온 거 같긴 한데.
‘뭐, 사실 궁금해할 이유는 없지.’
사람이라면 다들 눈치가 있기 마련인데.
난 스스로 꽤 눈치가 있다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치로 저기 뉴스 앵커의 말을 해석해 보자면.
[하지만 브렉시트의 여파로 엔화 가치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달러당 110엔을 기록하던 환율이 99엔까지 폭락하면서 소니, 히타치, 혼다 등 여러 수출 기업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 220조 엔 이상을 푼 아베 내각은 더 이상 활용 가능한 환율 조정 수단이 없는 것으로…….]
‘어쩌고, 저쩌고. 아무래도 우리 일본 좆된 거 같습니다… 정도가 되려나?’
아마 크게 틀린 해석은 아닐 거다.
응, 그거 맞아.
니네 좆됐어.
* * *
“젠장. 네 보스는 미친 게 틀림없어.”
“내 보스라니? 우리 보스지, 이제는.”
밤을 통째로 새운 탓에 퀭한 얼굴을 한 윌리엄과 제이슨.
애초부터 브렉시트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던 윌리엄은 물론이고, 앞서 선우진의 기적 같은 투자를 봤음에도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제이슨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 외 수십 명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가득한 피곤함 속에도 감춰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잘 알지, 잘 알아. Bugger, 광인을 보스로 모시게 될 줄이야.”
“혹시 부담되나?”
“부담은 무슨! 짜릿하다면 모를까.”
극도의 흥분감.
금융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상황이다.
420억 파운드라는 막대한 금액이 언론에까지 완전히 공개된 건 아니었지만, 금융업계 내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돌 터.
전세계 모든 금융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자취를 남길 수 있다니.
주체할 수 없는 짜릿함이 밀려들고 있었다.
“흐흐, 흐하!”
빠르게 포지션들을 청산해야 하니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갑자기 홀로 웃음을 터뜨리는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이 바쁜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에 샴페인을 따고 미쳐 날뛰고 싶은 게 그들 모두의 심정이었으니.
물론,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한참이나 이른 상황이었다.
브렉시트라는 초유의 사태가 전세계 경제에 던져 버린 거대한 폭탄.
이 폭탄의 유효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장 지난 몇 년간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도 어떻게든 돈을 짜내 시장에 풀고 있었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영국 정부와 금융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브렉시트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시에 지금 상황을 기회로 생각하고 밤늦게 일하고 있을 전세계의 금융업 종사자들도 그러할 터였고.
어쩌면 빠르면 몇 시간 이내로 안정을 되찾을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그들은 그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의 수익을 내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파운드화 폭락이 심각합니다. -15%… -15.3%… 이러다가 -20%선까지 가겠는데요?”
“이탈리아 FTSE MIB지수 -11.38%입니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유로존 탈퇴 이슈가 있었던 그리스와 스페인도 모두 종합 지수가 10% 넘게 하락했고요.”
“금 관련 포지션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클릭 한 번 한 번에 수억 달러, 수십억 달러가 오간다.
윌리엄과 제이슨, 그리고 그들의 직원들 모두 이쪽 일에 십수 년 이상 종사한 베테랑들인데.
포지션을 청산하는 간단한 일이 이토록 떨릴 줄이야.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탁-!
“후우.”
마지막으로 남았던 누군가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이 모든 수익을 확정 지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그에 맞춰, 막내 직원이 어디선가 빠르게 샴페인을 여러 병 가져왔다.
펑- 하는 샴페인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예에에-!”
“우와아!”
“우린 오늘 역사를 썼다고!”
직원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서로를 얼싸안고, 샴페인을 서로를 향해 뿌리며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
그렇게 잠깐의 광란이 지나간 후.
윌리엄이 손수건을 꺼내 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후, 이제 가자고. 우리 미친 보스에게 오늘의 성과를 알리러.”
* * *
“마스터, 손님이 오셨습니다.”
당연하게도 손님은 제이슨과 윌리엄.
둘 모두 잠도 안 자고 바로 온 건지 모습들이 꽤나 추레했다.
“축하드립니다, 보스.”
떨리는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네는 제이슨.
윌리엄은 내 방의 모습을 보고 멍해진 듯한 기색이었다.
꼴이… 조금 별로인가?
어제 먹던 피자가 남아서 그걸 먹으면서 플스를 하고 있었다.
집에 상주하는 요리사가 직접 요리를 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가끔씩은 이렇게 인스턴트 식품, 그것도 식은 인스턴트 식품을 그대로 먹는 나름의 감성이 있었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내 미래이자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느낌.
그런 내 방 안 모습을 쭉 둘러본 윌리엄이 물었다.
“설마… 피파를 하고 계셨던 겁니까?”
“오, 맞아요.”
“혹시 쭉 그러신 건가요?”
“쭉은 아니고. 졸려서 어제 좀 자다 일어나서부터? 그런데 윌리엄도 피파를 하나요? 그럼 좀 보세요. 조금 전에 카드깡을 했는데 네이마르가 나왔거든요. 그것도 최고 좋은 시즌! 이게 무려 500달러 가치라고요. 성능을 시험하고 있었죠.”
“하하… 네이마르, 네이마르요. 500달러.. 500달러… 하하.”
이어진 내 말에는 더욱 어이없어하는 기색.
나는 한 번 씨익 웃어 준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브렉시트 여부야 미리 알고 있던 거였고.
“그래서 수익금이 얼마죠?”
중요한 건 그래서 내가 얼마를 벌었냐는 것.
“파운드는 오는 길에도 계속 요동치고 있어 달러로 말씀드리자면…….”
이어진 제이슨의 말.
이번에는 나도 살짝 놀랐다.
[871억 6천만 달러]
기존 투자금인 420억 파운드를 제하고, 옵션 거래의 수수료 또한 지불하고, 가용 가능한 투자금이 부족해 몇 군데 금융사에서 대출했던 대출금과 이자까지 모두 제하고 남은 금액.
즉, 이번 브렉시트를 통해 내가 번 것만 따진 돈.
우수리 떼고 871억 달러.
“한화로 102조 원입니다. 보스.”
내 머릿속 계산을 제이슨이 센스 있게 도와줬다.
102조 원이라… 하하.
큰돈을 벌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만.
진짜 커다란 돈을 벌어 버렸다.
60조 원 조금 넘는 금액을 들여서 그만큼을 번 거였으니… 대충 2.5배 정도 불렸다는 것.
‘오성그룹 회장 아조씨 재산이 얼마셨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130억 달러였나 그러셨지?
아들에게 미리 물려주신 돈과 여러 차명 재산을 다 합쳐도 300억 달러 언저리쯤 되실 텐데.
그걸 오늘 수익금만으로도 3배 가까이 추월해 버렸다.
비록 수익금은 언론에 알려진 투자금 대비 축소되어서 알려지겠지만, 그것만 따로 쳐도 오성그룹 회장 아저씨 재산을 넘는다.
즉, 오늘의 일로 내가 공식적인 대한민국 부자 1위가 된 거다.
물론 공개되지 않은 재산을 따지면 원래도 내가 오성그룹 회장님보다 돈이 많긴 했을 거다.
하지만 나만 알고 있던 거랑 이제 모두가 그 사실을 아는 건 다른 거니까.
뭐, 그래도…….
‘생각보다 별로 기쁘거나 그렇지는 않네.’
세계 1위 부자가 되면 좀 다르려나?
포브스 선정 1위 부자 그런 것처럼 단순히 세계 부자 순위의 1위 말고.
석유, 왕가 재산, 어디 가문의 재산 그런 거까지 다 합쳐서 산정했을 때 나오는 진짜 1위 부자.
‘사우디에서 요즘 EPL을 기웃거린다던데.’
맨시티를 인수한 만수르.
이후 만수르를 따라 PSG를 사들인 셰이크 타밈.
그 둘에 이어서 새로운 기름 부자가 축구판에 끼어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요즘 돌고 있다.
아마 이후 뉴캐슬을 인수하는 사우디의 왕세자, 빈 살만이 원래보다 몇 년 빠르게 EPL에 끼어들려는 것 같다.
‘아닌가. 원래 빈 살만이 맨수를 인수하려다 뉴캐슬로 돌렸나 그랬으니… 그게 지금쯤이었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빈 살만 재산이 내가 알기로는 2,800조였다.
흐으음.
갈 길이 먼 거 같기도 하고.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기름과 회귀.
내가 이제 쓸 수 있는 미래 정보는 5년 정도가 끝인데.
사우디 기름은 앞으로 100년은 더 나온단다.
뭐, 그래도 회귀가 기름한테 질 거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