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베팅에 성공함
-ㄷㄷㄷㄷ 선우진 미친 거 아님?
-와… ㅋㅋㅋㅋ 말이 안 나오네. 20조? 20조라고?
-그것도 30조 이상이라는 소문도 있음ㅋㅋㅋㅋㅋ
-선우진 돈 많은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많았음……?
20조 원의 자금 동원력.
한국이 난리가 난 것도 당연했다.
지난 15년도 포브스가 선정한 선우진의 국내 부자 랭킹은 3위, 전 세계 부자 랭킹은 97위.
그때 포브스가 추정한 선우진의 총기업 가치가 대략 95억 달러 정도였는데.
그 두 배가 넘는 돈을 브렉시트에 베팅한 거였으니.
-ㄹㅇ 돈 어디서 났냐.
└다 대출이지 ㅋㅋ
└아니, 대출도 뭐 껀덕지가 있어야 나오지.
└저번 포브스 기준으로는 95억 달러인데… 10조 원은 땅에서 솟아난 거?
-ㄴㄴ 생각해 보니 그사이 틱톡이 존나 성공했잖음… 해외서도 잘나간다던데, 틱톡 기업 가치가 몇백억 달러 정도 될걸?
-아니, 틱톡은 뭐로 돈 버는데 그렇게 비쌈?
└광고비로 좀 땡기긴 할 텐데… 그래도 지금은 돈 벌기보다는 쓰는 단계지. 여튼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 가치 뻥튀기 되는 거 하루 이틀임?
언론에 알려진 건 실제 투자금보다 반 이상 축소된 금액이고.
실제로는 대출도 아닌 온전히 선우진의 돈이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난리가 났다.
선우진이 그렇게 부자였다니.
비교를 좋아하는 한국인들답게 바로 오성그룹의 회장과 비교에 들어간 그들이었다.
-ㅋㅋㅋㅋ오성그룹 회장 총재산 130억 달러던데… 2~30조 원이면 그 두 배 아니냐.
-한국 최고 부자 입갤 ㄷㄷㄷㄷ
-역시 사람은 글로벌하게 놀아야 하는구나… 나머지 10대 재벌들이 십몇 년간 기를 써도 못 넘던 오성을 선우진은 5년 만에 넘어 버리네.
-이 새끼들 뭔 소리 하냐? 오성은 글로벌 기업 아님? 오성 시가총액이 2,000억 달러 정도 되는데… 지배 지분으로 그거 사실상 본인 건데, 그냥 130억 달러라 치면 안 되지.
└ㅋㅋ선우진도 IPO 마음만 먹으면 기업 가치 뻥튀기 씹가능임. 포브스가 산정한 건 엄청 보수적으로 잡은 거라 오류도 많고 ㅋㅋㅋ
└ㄹㅇ 이번에 써밋 엔터가 인수한 MGM이 55억 달러였는데, 선우진 총재산이 95억 달러라는 게 말이 되냐?
└저게 말이 2015년도지 작년 초에 나온 거라 그럼 ㅋㅋ 그때는 <마지막 마법사> 터지기도 전이었고… 그거로 써밋 엔터가 최소 10억 달러 벌었을 거임 그 이후로 나오는 영화들도 다 대박 났고.
└그리고 넷플릭스도 1년 사이 주가 2배 오른 거 알지? 포브스가 추정할 때 넷플릭스 기업 가치 기반으로 했을 텐데… 지금 스웜도 최소 2배라는 뜻. 심지어 그때는 서구권에선 아직 넷플릭스 > 스웜이란 소리 들었는데, 요새는 또 비등해서 더 높을 수도.
-뭐임? 님들 선우진네 회사 직원임? 어케 그렇게 잘 앎?
-직원은 씨발 ㅋㅋ 걍 선우진네 회사 언제 IPO 되나 하고 아가리 쫙 벌리고 있는 주식쟁이들이지.
└??? ㅅㅂ 어케 알았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Polls close at 10pm / 00:32:17]
개표 방송까지 앞으로 30분.
장장 15시간에 이어진 투표가 그 끝을 앞두고 있었다.
확실히 영국 전역의 관심이 오늘의 투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우선 모든 방송사의 우측 하단에 투표 마감 시간이 카운팅 되고 있었고.
EPL 얘기를 보려고 Sky sports를 틀었는데, 거기서 해 주는 프로마저도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조금 전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죠?”
“네. 앞전 있었던 예측 조사와 결과는 비슷합니다. 표본 6,000명을 대상으로 잔류 53%, 탈퇴 47%.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표본 5,000명을 대상으로 54%의 잔류 결과가 나왔죠.”
말이 여론조사지, 사실상의 출구 조사다.
투표를 끝내고 나오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 뿐이지.
여론조사 기관들이 실제로 설문 전화를 돌려 어떤 선택을 노렸는지 물어보는 거였다.
‘그게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 조사였다.
그도 그럴 게, 어떤 기준으로 전화를 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영국에서 쓰는 내 전화기로도 전화가 왔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어느 쪽에 투표했냐 묻는 전화였는데.
브렉시트를 찬성하지만 영국인이 아닌 관계로 투표권이 없었다 대답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뭐라 중얼거리고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계적인 말과 함께 전화를 끊던데.
어렴풋이 들었던 거로는 “찬성이요? 예, 알겠습니다.”였던 것 같았기 때문.
아무튼 간에…….
“그러고 보니 오늘 또 재밌는 뉴스가 있었죠.”
“저희 채널에서는 몇 년 내내 유명 인사셨던 분이죠.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를 집필한 선우진 작가? 아니면 크리스탈 팰리스의 구단주, 태양?”
“하하. 후자가 편하겠네요. 그래서 선우진이 브렉시트 탈퇴에 엄청난 돈을 베팅했다고요.”
아까 전 시킨 피자를 받고 돌아오자 TV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게 들렸다.
이거 참.
EPL을 중계하는 Sky sports에서 내 얘기를 할 때도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낯 간지러운 기분.
한국의 8시 뉴스나 9시 뉴스에 나올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영국 아나운서들 특유의 RP 발음 때문인가.
우진 선이라 부르는 내 이름이 닭살을 돋게 한다.
“예. 몇 시간 전 투표가 한창이던 도중, 언론을 통해 알려진 소식이었죠. 180억 파운드! 와우, 전 팰리스의 구단주가 이토록 돈이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EPL에서는 보여 준 모습이 조금 다르니까요. 저평가받고 있는 선수를 싸게 사들여,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이미지이니까요. 물론 모든 이적을 다 합쳐 보면 매 이적 시장마다 쓰는 금액이 어마어마하긴 합니다만, well. 지금까지 만수르나 PSG의 구단주인 셰이크 타밈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죠.”
“하지만 이제 제 머릿속에는 그 둘 이상 가는 슈퍼 리치로 자리 잡게 될 겁니다. 180억 파운드를 50 대 50의 싸움에 베팅하다뇨!? 돈이 얼마나 많으면 그럴 수 있는 거죠?”
“하하. 알려진 소식으로는 거의 전 재산을 배팅했다던데요? 물론 선우진의 총기업 가치를 합산하면 180억 파운드 이상 가긴 합니다만… 아마 이번 베팅에 실패한다면 그중 몇 군데를 IPO시켜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젠장, IPO라니. 어려운 용어는 쓰지 말고 다시 축구 얘기나 하자고요. 선우진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 팰리스의 챔스 경기나 말해 보죠. 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EPL 1위답지 않은 경기력이다? 라 리가에게 너무 밀려 버렸다?”
“정확해요-!”
…이놈들이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네.
런던에서 열린 홈경기에서는 1 대 1로 무승부.
지난 2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호날두에게 해트트릭을 당하며 1 대 3으로 패배.
팰리스의 서포터들은 물론, 나에게도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띡-
이미 몇 번이나 돌려본 그걸 다시 보기 싫어 TV를 아예 꺼 버렸다.
우걱우걱-
그 대신, 배달 온 피자를 집어 먹으며 폰을 켜 문토피아에 들어갔다.
요즘 내가 모르던 재밌는 웹소들이 많이 나온단 말이지.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나비효과다.
원래보다 훨씬 일찍 연 10억 원 단위로 버는 웹소 작가들이 늘어나니, 온갖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여하튼.
‘좀 자다가… 일어나서 개표 결과나 확인할까?’
* * *
브렉시트 투표를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쪽은 당연 영국의 금융계였다.
만약 브렉시트가 통과될 시 가장 영향이 크게 미칠 쪽이 금융이었기 때문인데.
그건 세계 금융시장에서 런던이 차지하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우선, 유로달러(euro-dollar) 시장이라는 거대한 금융시장.
유로달러란, 유럽에 있는 달러라는 의미로 지금은 미국 밖 은행에 있는 달러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달러는 미국이 발행하는 통화이지만 전 세계가 인정하는 기축통화인 만큼 미국 외 온갖 곳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영국은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이 파운드에 대해서는 지불준비금을 요구하지만, 달러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는 덕에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달러 거래가 집중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세계 금융시장의 축인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요청을 당일에 바로 해결이 가능한 중개지로서의 입지 덕에 달러뿐만 아니라 유로의 거래도 활발한데.
무려 유럽연합(EU) 내 헤지 펀드 자산의 80%와 유로달러 거래의 80% 이상이 영국에 집중되며 전 세계 유로화 거래의 45%가 영국 내 금융시장에서 이뤄질 정도였다.
미국과 제3세계 시장의 돈이 EU와 교역하기 위해 런던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
런던의 금융가를 부르는 더 시티(The City)라는 명칭이 월 스트리트 다음으로 유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순간, 더 시티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더 시티가 아니게 된다.
패스포팅(Passporting)이란 권리가 있다.
금융기관이 EU 회원국 중 어느 한 곳에서만 인가를 받으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상품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용어로, 브렉시트가 이뤄지는 순간 영국이 상실하게 되는 권리였다.
브렉시트가 이뤄진다면, 더 이상 예전처럼 유럽의 금융 상품을 가져와 미국에 팔고, 아시아에 팔고 했던, 또는 그 반대의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
물론 다른 회원국의 동의만 있다면 여전히 패스포팅 권리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EU의 그 어떤 회원국도 영국에서 홀로 독점하다시피 하던 막대한 이권을 빼앗고 싶지 않을 리 없었다.
즉, 다른 산업 이상으로 금융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거라는 뜻.
“헤이-! 일어나! 개표 시작한 지 좀 됐어.”
“오, 결과는?”
“잔류 91,915표. 탈퇴 68,614표. 방금 뉴캐슬어폰타인 결과가 나왔거든.”
“와우! 시작이 좋은데?”
그렇기에 각자가 지금 다루는 금융 상품에 따라 브렉시트가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는 이들마저도 한마음 한뜻으로 잔류를 응원하는 영국 금융계의 분위기.
하지만 그런 금융계에서도 유독 개표 방송을 집중해서 보고 있을 이들이 있었다.
바로 바클레이스의 사람들.
“제스, 안 자요?”
“응. 먼저 들어가. 나는 개표 방송 좀 보다 들어갈 테니.”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떨리는 마음인 이는 단연 CEO인 제스 스탤리.
아내를 먼저 침실로 보낸 그가 위스키 잔을 쓰다듬으며 TV 스크린을 바라봤다.
[In - 91,915 / 57.3%]
[Out - 68,614 / 42.7%]
순조로운 시작.
스크린 안에서는 잔류를 찬성하는 이들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도시별로 그 결과가 집계되어 발표되는데, 앞서 나온 도시들이 주로 잔류파들이 많은 도시였기 때문.
벌컥-
다 마신 위스키 잔에 새로 술을 채워 넣은 제스 스탤리가 그대로 잔을 원샷 했다.
평소에는 위스키의 흥취를 느끼며 조금씩 음미하는 나름의 애주가인 그라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기분이었다.
목 안으로 들어간 알코올의 뜨거움이 아니면 편한 마음으로 결과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In - 158,536 / 49.5%]
[Out -161,744 / 50.5%]
그러다 뒤바뀌게 된 개표 상황.
제스 스탤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꽤 큰 차이로 벌어져 있던 게 어느새 뒤집혀 있던 것.
우우웅-
그때 온 문자 한 통.
[제스, 유로-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있어요. 현재 1유로가 1.44달러. 개표 방송 이전보다 -3%가 된 겁니다.]
위스키 잔을 매만지고 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물론 변화의 폭도 아주 작은, 잠깐의 변동에 불과했다.
개표 상황이 뒤바뀐다면 다시 올라가게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술을 한 잔 더 들이켠 그는 찬장에서 시가를 꺼내 테라스로 나갔다.
바깥 공기를 쐬며 넉넉하게 시가 한 대를 다 태우고 들어오면 결과가 바뀌어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그리고 그가 시가 연기를 몇 모금 정도 빨았을까.
우우웅- 우우웅-
탁상에 놓고 온 그의 핸드폰이 불안한 진동 소리를 연신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