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드디어 브렉시트
런던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제이슨이 전해 준 희소식.
-제이슨: 남은 옵션을 모두 행사 완료했습니다. 이번 수익은 19억 달러입니다.
내가 지시했던 건은 아니었고, 제이슨이 추가로 진행했던 옵션 투자.
두 달 전 제이슨이 작성한 보고서를 믿고 승인했더니, 그 믿음의 대가가 무려 19억 달러였다.
올해 초 중국에 서킷 브레이커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제도 시행 첫날부터 서킷 브레이커가 작동되면서 홍콩의 증시까지 동반 급락한 것.
이번에는 미래 정보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 낸 성과라 기분이 남달랐다.
‘이 돈으로는 게임 회사를 인수하자.’
그리고 그 회사를 통해 최근 온갖 회사들에서 문의가 오고 있는 <마지막 마법사>의 게임화를 맡길 생각이었다.
사실 원래는 되도록 <마지막 마법사>의 게임화는 나와 연관되지 않은 곳에 맡기고 싶었다.
괜히 내 소유의 회사에서 만들었다가는 원작자인 내 눈치를 보다가 게임성에 악영향이 갈까 싶어서.
하지만 여러 고민 끝에 그런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결국 게임도 내 계획에 필수적이란 걸 깨달아 버렸으니까.’
계획이라니 괜히 거창해 보이지만… 아니, 거창한 게 맞나?
여하튼.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다.
전 세계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아우르는 제국.
물론 <마지막 마법사>에 주인공이 세운 제국이 대륙을 일통 하는 것처럼 산업 전체를 먹는 건 미국의 반독점법 때문에라도 불가능하겠지만… 그 언저리쯤은 가야겠지.
최소한의 목표는 루퍼트 머독이 세운 머독 제국 이상의 것.
지금은… 제국 정도는 아니어도 작은 소왕국 하나 정도는 세웠다고 생각한다.
[‘무서운 성장세’ 틱톡, 국내 이용자 수 벌써 페이스북의 절반.]
[유행 지난 페이스북? 이용자당 ‘月 사용 시간’은 페이스북도 뛰어넘어.]
[누가 아직까지 페북을 써? 요즘 대세 SNS는?]
특히 한국에서는 이미 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출범 이후 엄청난 상승세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2, 30대 사이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앱 1위에 등극한 틱톡.
뭐, 방법은 간단했다.
국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스웜.
그 1개월 무료권을 바탕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였고, 틱톡 특유의 숏폼 영상이 가진 중독성은 그들을 이후로도 붙잡아 놓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추가적인 부수 효과도 있었는데.
기존 OTT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이 틱톡을 통해 스웜을 접했다 그대로 스웜을 쭉 구독하게 하는 선순환도 발생했다.
즉, 요즘 한국 사람들… 정확히는 2, 30대들의 하루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혹은 등교 준비를 하며 틱톡을 켠다. 그러고는 지난밤에 올라온 포스트들을 확인하고 댓글이나 좋아요를 남긴다.
그러고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밀린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하교나 퇴근 후에는 오늘 새로 올라온 스웜의 드라마를 시청한다.
요즘 대세인 드라마들은 다 스웜의 것들인데, 이것들을 보지 않으면 다음 날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에 못 낄 정도다.
개중 인터넷 방송에 취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실시간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를 켤 것이다.
혹은 PC를 켜 게임을 하거나.
나는 저런 생활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는 것은 물론, 게임까지 손에 거머쥐려는 거였다.
PC는 당연하고 해외에서 인기 있는 콘솔 시장까지 전부.
게임 회사를 인수하고 <마지막 마법사>의 게임을 자체 제작하려는 것도 그러기 위한 첫걸음이다.
아마 경쟁자는 스팀을 갖고 있는 밸브나 에픽게임즈가 되지 않을까.
‘여기서 유튜브까지 내 거였으면 대륙 일통이나 다름없는데.’
물론 어렵다 못해 아예 불가능한 목표였다.
이미 유튜브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기도 했고, 그 제국의 주인인 구글이 내게 그걸 내줄 리도 없기 때문이다.
설령 내주겠다고 하더라도 반독점법 때문에 불가능할 일이었고.
* * *
영국에서 몇 달을 더 보냈다.
[피터 - <찬탈자> 집필은 잘되어 가고 있어?]
[나 - 응. 2부는 이제 두 권 정도면 모두 끝날 거야.]
[나 - 다 쓰게 되면 빠르게 완결권까지 출판될 거고.]
[나 - 너는 어때. <마지막 마법사> 촬영은 잘되고 있어?]
그사이 피터로부터 가끔 <찬탈자> 집필을 서두르라는 재촉이 왔는데.
이제는 나도 비슷한 독촉으로 되돌려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마법사>의 2부 촬영.
많은 기대와 함께 이번에는 1부보다 3천만 달러나 더 많은 총제작비 3억 4천만 달러가 투입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부 때는 세웠던 역대 1위 제작비 기록을 2부에서는 세우지 못했다.
내가 군대에 들어가 있던 사이 공개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제작비가 이미 그 기록을 경신했기 때문.
<마지막 마법사>의 2부는 2천만 달러 정도 차이로 2위에 랭크됐다.
뭐, 앞선 1부의 대흥행으로 굳이 총제작비 1위라는 홍보 효과를 노릴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여하튼.
[트렌트 - 이번 분기 예정된 제작 목록입니다.]
써밋 엔터의 일은 가끔씩 트렌트를 통해 직접 보고받고 있었다.
이제는 제작할 영화 선정과 관련된 많은 부분에서 내 손을 떠난 써밋 엔터였다.
내 지시를 받아 제작되는 작품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다.
해 봐야 한 분기에 하나 있을까 말까.
뭐,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 중 내가 흥행을 확신하는 작품들이 슬슬 떨어져서도 있고.
내가 군대에 있던 사이 써밋 엔터를 통해 개봉한 영화들, 그중 내 미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냈던 영화들의 흥행 타율이 꽤나 괜찮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트렌트의 작품 보는 역량은 회귀자인 내가 인정한 수준.
듣기로는 써밋 엔터를 통해 시나리오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그중 재밌어 보이는 것들만 선별해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신인 작가와 신인 감독들이 가장 작품을 맡기고 싶은 회사가 써밋 엔터라고 한다.
그럴 수 있던 데에는 써밋 엔터가 할리우드 내에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 덕분이라던데.
‘기존 고루하고 보수적인 6대 메이저 스튜디오와 정면으로 맞붙는……? 그런 이미지랬나.’
원래 모름지기 모든 산업은 고착화되면 썩기 마련이다.
그건 엄청난 부가 결집되어 있는 할리우드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워너와 디즈니, 유니버설 등의 메이저 제작사는 그런 모습이 더욱 심했다.
사실 미국에 대해 많은 한국인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자유, 진보의 상징인 나라답게 미국의 회사들에서도 그런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가 만연할 거라는 착각.
하지만 그런 건 일부 IT 기업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급격하게 덩치를 키운 여러 스타트업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고.
정작 그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미국처럼 보수적인 나라도 드물었다.
물론 어딜 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간 봐 온 할리우드의 모습은 진보와 보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보수에 가까웠다.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들을 보면 다 오래 해 먹은 사람들이 웃대가리를 차지하고 있지.’
하지만 써밋 엔터는 달랐다.
기존 존재하던 적당한 규모의 제작사를 내가 인수해 이렇게 키운 기업.
그 과정에서 ‘할리우드의 전통 혹은 써밋 엔터의 전통’이랍시고 의견을 뻗대던 사람들은 모두 잘려 나갔다.
게다가 내가 그냥 오너도 아니고 작가 출신의 오너여서 그런가.
할리우드의 신인 작가들이나 감독들 사이에서 써밋 엔터는 일종의 꿈의 직장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연공서열 따위는 없이 능력만 있다면 그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복잡하고 고루하기 그지없는 정치질에는 신경을 꺼도 되는 회사.
덕분에 써밋 엔터에서 잘려 나간 많은 이들의 자리를 채운 건 위로 올라가려는 열망이 가득한 젊고,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만큼 돈도 많이 받아 간다.
저번에 보고받기로는 임원급 인사들을 제외하면 써밋 엔터의 평균 연봉이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1.5배라던데.
지금까지는 그만한 돈값을 하는 게 분명했다.
‘이번 제작 목록에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가득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작품으로 전부 채워진 이번 분기 제작 목록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기분.
아마 기존에 묻혀 있던 시나리오들이 써밋 엔터를 통해 발굴된 것도 있을 거고.
원래의 역사보다 일찍 제작된 작품들을 통한 나비효과로 나온 시나리오들도 있을 거다.
‘내 미래 정보를 언제까지고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5년.
그 이후에는 회사의 자체 역량으로 성장해 나가야 했다.
물론, 그 5년 동안은 최대한 미래 정보를 뽑아 먹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써밋 엔터, 록 그룹 Queen의 영화 제작 확정! 제목은 보헤미안 랩소디!]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 이어 음악 영화를 또 제작하는 써밋 엔터!]
보헤미안 랩소디는 고작 5,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0억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이는 작품.
이건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외에도…….
[스웜, 올해 출범하는 자체 제작 드라마 목록 ‘LA CASA DE PAPEL…….’]
몇 가지 제작에 들어간 드라마가 있었다.
LA CASA DE PAPEL.
최근 내가 배우고 있는 새로운 언어인 스페인어 실력을 활용해 번역하자면, 종이의 집이 되시겠다.
뭐, 이렇듯 미래 정보를 써야 할 때는 써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오늘의 만남 또한 그런 일이었고.
“반갑습니다. 바클레이스에서 CEO를 맡고 있는 제스 스탤리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두 은행, HSBC와 바클레이스.
그중 바클레이스의 CEO를 만나게 됐는데.
윌리엄이 연결해 준 인물이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하하, 집이 참 좋네요.”
그를 초대한 이유는 당연히, 하나였다.
제대 이후 런던에 와서 지낸 지 몇 달이 지났다.
그 말은 무슨 뜻이겠나.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왔다는 소리였다.
바로 돈복사 시즌.
“브렉시트 쪽에 투자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대략적인 사항은 윌리엄을 통해 전해 들으셨겠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 금액이… 수백억 파운드시라고요?”
액수 때문인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제스 스탤리.
그래도 지금까지 보안은 잘 지킨 게 분명했다.
방금 내 투자금을 처음 들은 것인지, 그와 함께 내 집을 찾은 투자 매니저들의 눈빛이 변하는 게 보였다.
“네. 정확히는 420억 파운드죠.”
한화로 대략 60조 원 정도.
홍콩에서의 옵션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것은 물론,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사업체 및 주식을 일부 담보로 HSBC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HSBC에서 대출을 받아 놓고 거기를 통해 투자해 버리면 꼴이 조금 웃길 것 같아 이렇게 바클레이스를 찾은 것.
여하튼.
수백억 파운드라고 듣기는 했어도 해 봐야 100~200억 파운드 정도일 거라 예상했나 보다.
언론에 공개된 내 재산을 전부 합치면 그쯤 되니.
동원할 수 있는 금액도 그 정도일 거라 예상했을 터.
420억 파운드를 투자하겠다는 말에 아직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제스 스탤리와 그의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하하. 강심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겨우 반반의 확률인데 그만한 돈을 투자하시다니.”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이죠.”
입가에 잔뜩 미소를 짓고는 내게 말을 거는 제스 스탤리.
그의 생각이야 뻔했다.
아마 윌리엄이 나를 말릴 때 했던 것처럼 미친 짓을 하는 미친 도박 중독자처럼 보였겠지.
다른 직원들의 눈길도 마찬가지다.
뭐, 여하튼.
‘이 양반이 아마 끝이 좋지 않았을 텐데.’
1~2년 후에 터질 하비 와인스틴의 성 추문 파문.
내 기억으론 거기에 연루되어 CEO 자리를 사임하게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바클레이스의 CEO 자리는 나 덕분에 1~2년 정도 일찍 바뀌게 될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