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돈과 신념
국내에서도 꽤나 화제가 된 크리스탈 팰리스와 맨유의 경기였다.
[선우진 입장하는 거 비춰 주자마자 함성 쏟아지네 ㄷㄷㄷㄷ]
[와! 퍼거슨 경이랑 선우진 투 샷.]
-옆에 지성이 형도 있네 ㄷㄷㄷㄷ
-아까 퍼거슨이랑 선우진 악수하는데 퍼거슨이 엄청 째려보던데 ㅋㅋㅋㅋㅋ 선우진 싫어하나?
-경쟁 팀 구단주라 좋아하진 않을 듯 ㅋㅋㅋㅋ
-저번 시즌 팰리스 때문에 순위 밀려서 맨유 유로파 갔잔아 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맹로파.
-우드워드도 있네; 어후 저 새끼는 언제 꺼지냐.
-팬들한테나 개새끼지, 구단주 입장에선 우드워드만큼 돈 벌어 주는 놈도 없어서…….
-기사 떴다. [스웜, <웬 레드 데빌즈 데어> 전격 론칭?! <웬 이글스 데어>의 후속작?]
-오! 맨유 다큐도 나오나 보네.
-아하… 그래서 저렇게 원정 경기까지 보러 간 거구나.
-시너지 지리긴 할 듯… 맨유 인기가 중국이나 동남아권에서 장난 아니던데… 그쪽 ott 시장 스웜이 다 먹고 있으니.
-한국은 왜 빼냐 ㅋㅋㅋ맹구 놈들 패악질 제일 심한 게 한국인데. 국내 ott 시장은 글고 스웜이 점유율 95%고.
한때는 한국의 해외 축구 팬덤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게 바로 맨유였다.
물론 지금은 맨유의 부진과 다른 클럽들의 약진이 겹치며 조금 시들해지기 했다만은.
그래도 여전히 가장 큰 팬덤을 자랑하는 게 국내에서 맨유의 인기였다.
그리고 크리스탈 팰리스의 인기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당장 선우진을 통해 유입된 이들은 물론, 스웜 내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자랑하는 <웬 이글스 데어>를 통해 유입된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로 팰리스의 팬이 된 이들이 상당했는데.
EPL, 영국 축구라는 ‘남의 잔치’에서 항상 조력자나 도우미 포지션이었던 동양인이 모든 걸 주도적으로 이끌며 구단을 성장시키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국뽕 섞인 재미를 선사했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성사된 국내 1, 2위 인기 구단끼리의 대결.
그런 만큼 EPL 중계권을 갖고 있는 모든 방송사에서도 오늘의 경기를 집중 조명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많은 축구 팬이 타이밍 맞춰 시킨 치킨을 받고, 오늘 혈투에 가까운 재밌는 경기가 진행될 거라는 부푼 기대와 함께 치킨의 포장을 뜯었는데.
이게 웬걸.
-아, 경기 10노잼이네.
-맨유 진짜 맹구됐구나… 제대로 된 공격 전개 하나 없고.
-너무 원사이드게임 아니냐? 유효 슈팅도 9 vs 1이네 ㅋㅋㅋㅋ 그나마도 키퍼 정면 땅볼이고.
-걍 맹구놈들아, 이제 인정해라 ㅇㅇ 너희는 유로파가 딱이야.
-찬양하라, 크리스탈 팰리스!
-맹구 멸망-! 쑤아릿ㅅㅅㅅㅅㅅㅅㅅ
-오늘 팰리스 승 안 건 흑우 없제?
-아; 불법 토토충 꺼져라.
-편의점에서 산 합법 토토인데요 ㅎㅎ
허무하게도 전반 내내 쳐 맞다 결국 2 대 0으로 하프타임에 돌입한 맨유였다.
하지만 박지성 선수의 활약으로 한때 국내 해외 축구 커뮤니티를 장악했던 맨유 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니
[데파이 떴다!]
[데파이 몸 푸는 짤.mp4]
[700억의 사나이 등장 ㄷㄷㄷㄷ]
선우진의 픽으로 국내서도 화제가 됐던 멤피스 데파이의 후반전 출전 때문이었다.
* * *
삐이이이익-!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몇 분쯤 지났을까.
[아, 이게 뭔가요…….]
장내 아나운서의 탄식에 가까운 소리.
“What the……?”
거기에 우드워드에게서 들려온 의문 가득한 탄성과 갑자기 멈춰 버린 퍼거슨 감독의 껌 씹는 소리.
그건 꽤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뭘 본 거죠?]
[측면에서 공간을 확보한 마이클 캐릭의 크로스였거든요. 예, 꽤 훌륭했던 크로스였습니다, 팰리스 수비진들의 키를 넘어 페널티박스 구석으로 향하는. 그리고 그 자리에 멤피스 데파이가 있었고요.]
방금 멤피스 데파이가 보여 준 장면.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이 날린 절묘한 크로스를 멤피스 데파이가 오버헤드킥을 날리려다… 그냥 공중에 풀썩 뛰고는 바로 주저앉은 장면.
[역동작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크로스 궤적이 좋아 돌아 들어갈 시간이 충분했는데요.]
[방금의 장면 한 번 다시 보도록 하죠.]
이곳, 셀허스트 파크를 설계상의 이슈로 수용 인원을 5만 명 이상으로 늘리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신구장이 건설되기 이전까지 서포터들이 경기를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도록 각종 최신 기술들이 돌입되어 있었다.
방송사의 화면처럼 조금 전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그중 하나였는데.
거기에 멤피스 데파이의 뻘짓이 다시 한번 재생됐다.
Hahaha-!
몸을 뒤틀어 점프를 하려다가 안 된다는 걸 알고 포기한 듯한 멤피스 데파이의 모습.
그게 꽤나 웃겼던 탓에 경기장에는 그를 향한 팰리스 서포터들의 비웃음이 가득했다.
심지어 카메라맨은 재생 장면이 끝나자 곧바로 맨유 벤치 쪽을 비췄는데.
[하하! 루니마저도 웃게 한 장면이었군요!]
하프타임 데파이와 교체되며 벤치로 향한 웨인 루니.
맨유의 또다른 레전드 중 한 명이 멤피스 데파이의 슈팅 시도를 보고 빵 터진 장면이 잡힌 것이다.
나름 얼굴을 숨겨 보겠다고 한쪽 손으로 입가를 가리기는 했지만.
잔뜩 올라간 얼굴과 웃음 가득한 눈매는 숨겨지지 않았다.
‘이게 지금 상황에 나오네.’
회귀하기 전 이와 비슷한 장면을 다른 경기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운명의 장난인 건지, 오늘 저런 모습이 나오고 말았다.
나로서도 루니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 상황.
하지만 또 그럴 수 없었던 게…….
“@#!$!$#@-! 지! 자네, @#[email protected]$-!”
잔뜩 화가 나셔서 박지성 선수에게 제 분노를 토로하시는 퍼거슨 영감님 때문이었다.
오늘… 저런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이제는 퍼거슨 감독님보다는 영감님이라 부르는 게 더 친숙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여하튼.
‘퍼거슨 영감님 혈압을 걱정할 게 아니라…….’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내 멱살 붙잡을 걸 먼저 걱정해야 할 거 같은데……?
이거, 차라리 내가 몰래 빠져나가는 게 나을 수도?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패! 4-1로 마무리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
[4,800만 파운드의 사나이? 480만 파운드도 아까워! 맨유 공식 서포터즈의 의견.]
[환상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 올 시즌 홈경기 무패로 이글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있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맨유 우드워드, 퍼거슨에 소리치는 장면 포착.]
[퍼거슨도 지지 않는다. 전직 헤어 드라이어의 경험을 살려 우드워드에게 소리치는 퍼거슨 감독.]
[선우진은 무슨 죄? 우드워드와 퍼거슨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난처한 기색만 표하는 선우진.]
홀짝-
경기가 모두 종료되고 다음 날.
나는 테라스에 앉아 뉴스를 살피며 지난밤의 뉴스들을 살폈다.
오늘의 경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는데.
경기가 막바지로 흘러갈 때쯤 꽤나 재밌는 장면들이 여럿 카메라에 잡혀서였다.
‘영감님이 화가 많이 나셨지…….’
생각하면 할수록 자리 배치를 잘못했다 싶었다.
멤피스 데파이, MD7의 화려한 데뷔는 정말로 화려한 장면을 여럿 연출했는데.
루니가 보고 빵 터졌을 때의 슈팅 시도는 물론이고.
그 이후 드리블을 치다 반 다이크에게 가볍게 공을 뺐겼는데 그걸 모르고 1초가량 더 뛴 장면이라거나, 낮게 크로스가 깔려 온 공을 헤딩이나 발끝으로 처리한 게 아니고 배로 트래핑 하면서 그대로 키퍼에게 공을 헌납한 배치기 장면 등.
올해 최고의 장면 Top 3를 그대로 차지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준 멤피스 데파이였다.
‘뭐… 그래도 막바지에 골을 넣으면서 체면치레하기는 했지만.’
4 대 1로 끝이 난 경기.
맨유가 넣은 한 골이 바로 멤피스 데파이의 골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데파이가 4,800만 파운드의 값어치를 못하는 것도 맞고, 아직 맨유라는 팀의 베스트 11에 포함될 정도의 실력이 아닌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그가 영 재능 없는 축구 선수는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네덜란드 리그에서 보여 줬던 모습도 그러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85분경 멤피스 데파이가 팰리스의 이적생 테오 에르난데스를 드리블로 제치고 바로 슈팅을 때려 골대 구석을 흔든 골은 꽤 멋있었다.
하지만… 뭐, 40분 내내 똥 싸고 1분만 멋있으면 뭐 하나.
후반전 내내 혼자 해결하려다 공을 탈취당하는 등, 템포만 빼앗는 탓에 10점 만점 평점에 5.6을 받은 멤피스 데파이였다.
“마스터,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아, 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마스터라는 단어.
저것만 들으면 왠지 일본 라노벨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단 말이지.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 집사 학교까지 나오신 분이어서 그런가.
호칭을 바꿔 달라고 말해 보긴 했는데, 그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던 켄싱턴 저택의 집사님이셨다.
“반갑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도착한 손님이라 함은 에온 프로덕션을 이끌고 있는 바버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이라는 이부 남매였다.
[써밋 엔터, MGM(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와의 합병?!]
[할리우드의 산증인, MGM을 집어삼킨 신흥 강호 써밋 엔터!]
[선우진의 할리우드 정복이 시작되다. 전역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가고 있는 그와 써밋 엔터.]
[총액 55억 달러에 MGM을 인수한 써밋 엔터. 할리우드에 격변이 있을 거로 예상돼.]
며칠 전 할리우드를 충격에 빠트렸던 기사.
이전 60억 달러가 들 거라 예상했던 MGM 인수를 55억 달러에 끝마칠 수 있었다.
이로서 써밋 엔터는 명실상부한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된 것.
물론 그 전에도 7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불렸다만은, 모두가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고 여전히 할리우드에 존재하는 메이저 스튜디오는 6곳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7대로 쳐 준다고 해도 항상 써밋 엔터가 그중 가장 아래의 스튜디오로 취급받고 있었고.
하지만 이제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다.
기존 6대 메이저 스튜디오들보다 더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MGM을 산하에 두게 됐으니.
“새로운 시리즈를 원하신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에온 프로덕션을 이끄는 이 남매를 초대한 것도 바로 MGM 때문이었다.
MGM이 갖고 있는 여러 IP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007 시리즈.
세계 미디어믹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이기도 한 그것의 소유권은 MGM과 에온 프로덕션이 함께 가지고 있는데.
저 두 남매의 아버지이자 에온 프로덕션의 창업자인 알버트 R. 브로콜리가 바로 007 시리즈의 첫 영화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무려 18개의 007 시리즈를 제작했을 정도.
여하튼.
“저희의 조건은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피부색은 상관없지만 반드시 영연방 출신 배우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길 것. 그리고 오로지 남성만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것.”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기억하시겠군요. 저희 EON 프로덕션에선 극장용 영화 시리즈 이외의 다른 007 시리즈는 만들 생각이 없다는걸요.”
“그건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탁-
나는 강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남매에게 수표 한 장을 건넸다.
“하! 몇 번이나 말했듯, 얼마를 주더라도 저희의 의견은……?”
“대체 이게 무슨……?”
그리고 그 수표의 금액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러던데.
신념은 돈 앞에서 꺾이지 않기에 신념인 거라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 그 말을 오늘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얼마면 되죠?”
“네?”
아아, 이것이 바로 백지수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