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브렉시트의 영향
“만약 정말로 영국이 EU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요?”
윌리엄에게 던진 질문.
그는 시티 오브 런던에 근무하는 금융인답게 금세 A부터 Z까지 설명을 마쳤는데.
‘우선 주식시장이 폭락할 테고…….’
거기에 파운드화 가치 또한 하락.
그 여파로 다른 통화들의 달러 대비 가치 하락을 불러일으킬 거고.
안전 자산 중 안전 자산인 금의 가격은 또 치솟을 거라 했다.
그리고…….
“엔화는 또 오를 거라고요?”
“네. 아마 그럴 겁니다. 다른 통화와는 달리 엔화는 안전 통화로 취급되니까요.”
“흠. 그러면 일본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뭐… 아마 아베 총리의 머리가 한 움큼 정도는 빠지게 되겠죠.”
“……?”
“4년 동안 아베노믹스로 어떻게든 내려 놓은 엔화가 몇 시간 만에 원상복귀 될 테니. 머리가 한 움큼만 빠지면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브렉시트가 일본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될 거라는 소리.
일본이라…….
뭐, 일본에 대해 악감정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감정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었는데.
그건 한일 간의 과거사 때문도 있지만 일본 언론들 때문이 제일 컸다.
문화계의 갈라파고스 소리를 듣는 일본.
그런 만큼 내 소설들도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
그때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나와의 비교부터 시작해서, 한국인의 소설은 일본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기사들이 왕창 쏟아졌었는데.
재밌는 건 그런 기사들이 내 글이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나서부터는 쏙 들어가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야말로 강약약강 그 자체.
게다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에 대한 각종 루머성 기사를 써 대는 일본 언론들이었다.
일본에 가 본 거라고는 저번에 일본 독자들을 위해 사인회를 가진 게 전부인데.
무슨 내가 일본 여배우들과 그라비아 아이돌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카사노바라는 헛소문이 온갖 주간지에 도배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걸 그대로 써 내려간 한국 몇몇 인터넷 언론 때문에 고역을 겪은 적도 있었고.
‘아니. 진짜 그런 거면 안 억울하지.’
여배우들과 그라비아 아이돌.
그런 사람들하고 내가 실제로 만나서 밥이라도 먹었으면 아무 말 안 하겠다.
인사를 나눈 사람들도 몇 안 되는데, 카사노바는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뭐, 여하튼.
이야기의 막바지쯤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네. 그러세요.”
“흠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러라고 하자마자 윌리엄이 한 말.
“이건 미친 짓입니다. 땅바닥에 돈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이 사람도 참.
미친 짓이라니.
솔직히 말하란다고 진짜 솔직히 말하는 걸 보니까 영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었다면 군 생활이 퍽 힘들었겠다 싶다.
“왜 그렇죠?”
“물론 예상하신 대로 브렉시트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45 대 55… 아니, 최대한 좋게 쳐줘도 50 대 50이라는 게 문제죠. 승률 50%짜리 도박에 수십억 파운드를 베팅한다? 그게 미친 짓이 아니면 뭡니까?”
열정적으로 떠드는 윌리엄.
그렇게 말하며 제 NYU STERN 동기인 제이슨을 바라보는 게, 꼭 ‘이 사람 제정신인 거 맞아?’라고 얼굴로 묻는 듯했다.
제이슨이 그런 윌리엄을 보고 작게 웃었다.
피식-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그러자 윌리엄의 얼굴이 더욱 이상해진다.
외눈박이들만 사는 나라에서는 두눈박이가 이상한 게 된다고.
윌리엄은 지금 나와 제이슨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뭐 윌리엄이 나를 이해하건 말건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윌리엄에게는 내가 필요로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였고, 그렇기에 내가 그에게 일을 맡길 거라는 거였으니.
“50퍼센트라… 하하. 그게 미친 짓인가요? 당장 카지노만 가도 그보다 적은 확률에 돈을 거는 이들이 수두룩할 텐데요.”
“그야 그렇죠. 그치들이 거는 돈이라고는 많아 봐야 수백 파운드가 전부니까요. 하지만 이건… 이건 다릅니다. 수십억 파운드라고요, 수십억. 시티 오브 런던의 어떤 금융사도 그만한 배짱은 없을 겁니다. 이런 건… 스릴에 미친 스릴 중독자다 할 일이에요.”
만나 보고 느끼게 된 건데, 윌리엄과 제이슨은 분명 NYU STERN 시절 꽤 친한 사이였을 것이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된 지금도 그럴 거고.
제이슨의 보스인 내게 저런 말을 아끼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여하튼.
스릴 중독자?
틀린 말은 아니다, 한때의 나를 두고 말하는 거라면.
스릴과 위험 따위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 베팅을 때릴 수 있던 과거의 상남자 선우진이라면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시도를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을 지향하는 하남자가 되어 버렸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더 이상 상남자로 살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나저나…….’
윌리엄이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았다.
우선 잘 쳐줘 봐야 50%의 확률이 아니라 100%라는 것.
뭐, 그래도 이거야 나 같은 회귀자만이 알고 있는 거였으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잘못 알고 계신 게 있네요.”
“예?”
“수십억 파운드요.”
“……?”
“수십억이 아니라 수백억 파운드를 배팅할 건데요?”
나를 그냥 하남자도 아니고.
하남자 of 하남자로 보는 건가?
수십억 파운드라니.
그걸 누구 코에 붙여?
* * *
-와! 손흥민 팰리스 이적!
-ㄹㅇ? 찌라시임? 아님 오피셜?
-BBC라 걍 거피셜이라고 보면 됨. 공신력 1티어.
-ㄷㄷㄷㄷㄷ 킹갓민국.
-선우진이 직접 픽했다던데;; 손흥민이 그 정도 재능인가?
└약간 같은 한국인이어서 사심 섞인 것 같기도…….
└뭐라는 거냐 ㅋㅋ 박지성 이후로 최고 선수인데. 재능은 박지성보다 높음.
└그건 좀;
└재능만 얘기하는 거라면 맞말이긴 함…….
-윗 댓글 개소리 좀 그만해라. 손흥민 나이에 박지성 PSV에서 챔스 4강 갔음 ㅋㅋ 그것도 팀 에이스였고. 손흥민이 팰리스에서 챔스 4강 + 에이스급 활약 가능할 거라 봄?
└지나고 보니까 박지성은 천재였음 ㅋㅋ
└노력형 얼굴이라 다들 노력형인 줄 알았던 거지.
└일단 국대 기준, 박지성>>>>>넘사>>>손흥민임.
└ㅆㅇㅈ
-어휴… 얘네는 뭐 허구한 날 싸우냐? 걍 한국 선수 EPL, 그것도 챔스권 강팀 갔다고 하면 축하해 주면 안 됨?
└팰리스가 챔스권 강팀?
└그러면? 전년도도 4위에, 올해는 전반기 1위인데? 맹구빠임?
└아니, 챔스권 아니고 우승권 강팀이라고 ^^
└ㅇㅈㅋㅋㅋㅋ
내가 자주 가는 축구 커뮤니티가 손흥민의 이적 소식으로 시끌시끌했다.
국내 스포츠 팬들은 물론, 지상파 방송국 뉴스에까지 보도된 손흥민의 이적 소식.
사실 박지성의 은퇴 이후 해축의 아이콘 역할을 계승한 손흥민인데.
선수도 아닌 내가 관심 대부분을 가져간 탓에 원래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흥민의 국내 인기와 관심도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EPL에서 성공적인 구단주로 자리 잡았다고는 해도.
역시 스포츠 선수를 응원하는 데에서 오는 뽕 맛은 선수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와우. 제가 아르헨티나 음식을 끝내주게 좋아한다고 말했던가요?”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네 먹던 것만 봐도 알지. 저번에 선수단과 함께 단체로 초대했을 때 자네가 제일 많이 먹고 갔던 거 기억 안 나나?”
“하하. 그랬었나요? 그날 와인에 너무 취해 버려서…….”
날 식사 자리에 초대한 비엘사 감독.
여러 시즌을 함께하면서 그와도 꽤 친밀한 관계가 됐는데.
오늘 그는 내게 아사도(Asado)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식 정통 바베큐를 대접했다.
‘한국식 바베큐랑 다른 맛이 있네.’
소고기에 소금만 뿌려 장시간 굽는 요리였는데, 거기서 소시지와 치즈, 채소 등을 곁들여 먹는 방식이었다.
한국식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는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쏘니는 어땠나요?”
“쏘니? 쏜의 별명 같은 건가? 흠, 마음에 드는군. 아무튼, 좋은 선수더군. 좋은 팀메이트이기도 하고.”
식사 내내 비엘사 감독과 나눈 주제는 올 겨울 이적시장에서 새롭게 영입해 온 이적생들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손흥민의 영입.
사실 내 추천으로 시작된 이적이었지만 비엘사 감독이 그 추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있었는데.
‘손흥민은 비엘사 감독의 전술에 딱 맞는 영입이니까.’
그의 전술적 기조를 상징하는 ‘비엘시즘’.
그 영향을 받은 현역 감독들을 꼽자면 대표적으로는 펩 과르디올라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일 텐데.
세 감독이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게 있다면 당연 비엘시즘의 핵심인 강한 전방 압박과 패스 앤 무브를 통한 트라이앵글 형성에 있었다.
하지만 비엘사 감독과 과르디올라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건 과르디올라는 점유율을 더욱 중시한다면 비엘사 감독은 더 다이나믹하고 스피디 한 공격 전개를 선호한다는 점이었다.
즉, 비엘사 감독이 뒷공간을 노리는 긴 패스를 선호한다면 과르디올라는 짧은 패스를 선호한다는 뜻인데.
비엘사 감독의 그런 패스 철학은 그의 옛 제자였던 포체티노 또한 공유하는 부분이었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포텐이 터졌던 것도 그런 이유였지.’
종적인 쓰루 패스를 통해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포체티노의 전술적 철학이 빠른 역습에 특화된 손흥민과 무척이나 잘 맞았던 것이다.
물론 토트넘 이적 초기에는 손흥민의 몇몇 단점이 부각되며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결국 손흥민을 내가 기억하던 월드 클래스로 성장시킨 건 빠른 역습을 중시하던 포체티노의 철학 덕분이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때 포체티노를 지도하며 자신의 비엘시즘을 주입시켰던 스승 비엘사 감독 또한 손흥민을 그렇게 성장시킬 수 있단 의미.
올 시즌 전반기의 부진 덕에 1,800만 파운드(약 300억 원)의 저렴한 가격에 사 온 손흥민을 6,000만 파운드 이상의 시장가치로 키울 수 있단 뜻이었다.
‘뭐 그것 말고도 부채 의식도 있었고.’
원래라면 이번 시즌 손흥민을 영입하며 윙포워드 뎁스를 늘렸을 토트넘.
하지만 정작 토트넘의 선택은 손흥민이 아니라 루카스 모우라를 원 역사보다 2년 일찍 사들이는 거였는데.
사실 이건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분명했다.
‘맨유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PSG로 갔을 디 마리아가 바로 직행해 버렸으니.’
디 마리아의 PSG행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루카스 모우라가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고.
토트넘은 두 배 비싼 손흥민 대신 모우라를 택한 것.
그러다 주전 경쟁으로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부진을 겪게 된 손흥민이었으니, 약간의 미안함이 생겼던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손흥민의 성장 가능성과 현재 능력이겠지만.
‘바로 주전으로 기용하는 건 무리지만… 로테용 자원으로는 차고 넘치지. 후반 조커로 활용해도 좋고.’
공격진이 포화라는 의견도 서포터들 사이에서 있었지만.
사실 그건 구단 내부 사정을 잘 모르기에 하는 말이었다.
리야드 마레즈야 부상 한 번 없이 시즌을 보내는 유명한 철강왕이니 걱정이 없었지만, 반대쪽의 안토니 마샬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아직 풀로 시즌을 치른 경험이 별로 없는 마샬이기도 했고.
막대한 돈을 들인 의료진들이 면밀 체크를 하고 있기는 해도, 부상 빈도 자체가 높은 건지 잔부상이 잦은 마샬이었다.
특히 요즘 들어 드리블러인 마샬을 향한 거친 압박이 늘어나고 있어 더욱 그랬다.
여하튼.
“에르난데스 형제들은 어때요?”
“그 둘? 말할 것도 없지. 하하. 어디서 그런 친구들을 데리고 왔나? 스피드는 말할 것도 없고, 수비수임에도 발밑이 참 좋아.”
그리고 이어진 이적생 얘기.
비엘사 감독은 손흥민은 물론이고 이번에 영입하게 된 에르난데스 형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