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22화 (122/267)

122화 브리티쉬 머니

잉글랜드, 런던 크로이던 구 (Croydon) 사우스 노우드 (South Norwood).

셀허스트 파크 내 회의실.

“모두들 오랜만입니다.”

잉글랜드를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당연 팰리스의 경기를 보기 위함이었겠지만.

그 외의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구단에서 정기적으로 가지는 재정 회의.

한동안 가장 큰 물주이자 구단주인 나 없이 이뤄졌던 회의에 오랜만에 참여하게 됐다.

“중요한 것부터 보고 시작해 주세요.”

이적 시장마다 막대한 이적료를 푸는 돈 많은 구단이라면 피할 수 없는 FFP(재정적 페어 플레이) 룰.

지난 시즌까지 크리스탈 팰리스가 얻는 스폰서 수익은 상당 부분 내 회사인 스웜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구단의 주된 수입인 입장권 수익에 있어서 크리스탈 팰리스는 그리 뛰어난 구단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확장 공사를 최대한 했음에도 총 3만 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셀허스트 파크.

물론 총 10억 파운드 가까이를 들여서 신구장을 건설 중이지만, 완공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수용 인원 6만 명 규모의 구장을 건설하고 있는 만큼 완공되려면 아직 1년여가 더 남아 있었다.

아무튼.

EPL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 인기로 매 경기 전 좌석이 매진되고는 있었지만, 4~5만 명쯤은 가볍게 수용할 수 있는 다른 EPL 구단의 수익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유니폼 메인 스폰서와 셔츠 뒷면 등의 스폰서십 계약도 내가 인수하기 전 체결했던 게 남아 있었던 터라…….

지금까지의 팰리스는 솔직히 말하면 수입의 60% 이상을 내게 의존하던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매 이적 시장마다 뭉칫돈을 쓰고 있었으니.

슬슬 FFP 룰 위반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암울했던 상황은 이제 달라지게 됐으니.

“새로운 스폰서십 계약은 크게 두 개네요. 나이키와 오성 그룹.”

“네. 그렇습니다.”

우선, 기존 퓨마에게 후원받던 유니폼 계약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퓨마는 그간 리그는 물론이고, 챔스에서도 16강 진출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둔 팰리스를 쭉 후원하기를 원했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서 마케팅 비용에 엄청난 돈을 풀고 있는 나이키에게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물론 아디다스 또한 상황은 비슷했고.

“다음 시즌부터 나이키와 10년 동안 6억 파운드(1조 200억 원)면… 첼시가 아디다스한테 받아 가는 금액의 두 배입니다. 나이키가 제대로 작정을 한 거죠.”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연 재정 담당자.

나이키가 제시한 초대형 계약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탈 팰리스가 요즘 전 세계 축구계에서 아주 핫한 구단인 건 맞다.

승격 이후 곧바로 EPL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나아가 챔피언스리그까지 진출해 16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올 시즌에는 우승 트로피까지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단의 역사라는 게 한두 시즌으로 쌓아 올려지는 게 아닌 만큼.

팰리스의 그간 성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크리스탈 팰리스는 EPL에서 중간 정도의 명성을 지닌 구단에 불과했는데.

그런 팰리스가 유니폼 스폰서십으로 나이키에서 받는 금액이 첼시가 받는 돈의 2배.

비록 아디다스가 맨유에 지불하는 연간 7,500만 파운드, 바르셀로나와 레알이 각각 나이키와 아디다스에게서 챙기는 1억 파운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저 세 클럽과 첼시 그리고 현재 팰리스의 명성을 고려해 보면 나이키가 이번에 제안한 금액이 얼마나 미친 수준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다… 뒤에서 짝짜꿍한 끝에 나온 결과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뭐, 별다른 얘기는 아니다.

그냥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스포츠용품 브랜드지만 그 무엇보다 마케팅을 중시하는, 마케팅 회사나 다름없는 나이키.

그런 나이키가 최근 오프화이트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려는 참인데.

그런 마케팅의 일환으로 최근 써밋 엔터에서 심혈을 들여 제작하고, 스웜에서 대대적으로 밀어준 ‘나이키와 그들의 제품 라인인 덩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그 다큐멘터리가 스웜 내에서 대흥행이 되면서 전체적으로 나이키의 매출이 뛰었으며.

특히 스웜이 중국에서 무려 3,500만 명이나 되는 가입자 수를 확보하고 있는 덕분에 중국 내 나이키의 매출은 10배 가까이가 뛰어 버렸다는 놀라운 사실.

거기에 앞으로 써밋 엔터를 통해 제작되는 영화 중 상당수의 작품에 퓨마나 아디다스, 스니커 대신 나이키의 것이 등장할 거라거나 하는 비밀 이야기.

…뭐, 그걸 굳이 구단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뭐 하겠나.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을 거다.

‘만약 <마지막 마법사>의 세계관에서도 사람들이 스니커를 신었다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문득 떠오르는 웃긴 생각.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마법사>와 <찬탈자> 속 사람들은 가죽신과 강철 군화를 신는 이들이었다.

여하튼.

“오성 그룹에서 제시한 금액은 총액 2억 파운드(4,000억 원), 연간 4천만 파운드입니다. 5년짜리 계약이죠.”

작년을 끝으로 첼시와의 스폰서십 계약이 종료된 오성 그룹.

올 시즌에는 어떤 구단과도 유니폼 스폰서십을 맺지 않았기에, 원래 그런 것처럼 해외 스포츠 마케팅을 축소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예상외로 팰리스에 스폰서십 계약 문의를 넣더라.

그것도 나이키가 그런 것처럼 꽤 상당한 금액으로.

나이키와는 달리 오성 그룹과는 내가 딱히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걸 생각해 보면… 꽤나 이례적인 액수.

물론 엄청 이상한 건 또 아닌 게 사실 팰리스로 스폰서십 문의를 넣는 국내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팰리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국내 시청률이 예전 박지성 선수가 뛰던 시절 맨유급으로 나왔고.

남성 위주 커뮤니티들에서 내 영향으로 크리스탈 팰리스라는 구단 자체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보니.

유럽과 국내 마케팅을 모두 신경 쓰는 기업들 대상으로 팰리스 유니폼에 자기네들 이름을 박아 넣는다는 건 꽤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팰리스의 국내 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뛰게 될 예정이라…….

‘어쩌면 그 소식을 어디서 입수라도 한 걸까?’

최근 구단 내에서 비밀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이적이 하나 있는데.

그 소식이 오성 그룹에 들어간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팰리스 내에서는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는 있기는 하지만, 상대 선수의 국적을 고려하면 오성 그룹이 정보를 알아냈을 수도 있는 노릇.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지.’

크리스탈 팰리스를 인수하고 깨달은 점이라면.

축구, 특히 EPL에 있어서는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참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내가 옵션 계약을 통해 몇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든 세계 금융계는 딱히 별다른 영향 없이 돌아가지만.

고작해야 20개의 구단밖에 없는 EPL에는 한 명의 슈퍼 리치 + 회귀자 구단주의 존재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것도 그 구단주의 구단이 EPL에서 엄청난 기적을 써 내려가는 구단이라면 특히 더 그랬다.

그런 나의 영향으로 원래라면 올 시즌부터 EPL에서 뛰었을 한국인 선수 한 명이 여전히 분데스리가에 남아 있었다.

바로 손흥민 선수.

‘사실 되도록이면 연관되지 않으려 했는데.’

축구라는 게 선수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어떤 감독 밑에서 뛰는지, 어떤 롤을 부여받는지, 어떤 동료가 있고, 어떤 팀 케미스트리를 구축하는지 등.

선수의 성공에 있어서 작용하는 요소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만큼, 내가 기억하는 원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나와 연관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는 레버쿠젠에서 올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며, 내가 기억하던 그 선수의 재능을 전혀 선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토트넘으로 떠나 적응 이후 잠재력을 펼쳤을 선수가, 내 영향으로 잔류하게 되며 그렇게 된 걸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팰리스에서 그 선수를 영입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 * *

[크리스탈 팰리스, 한국인 선수와 링크되다?!]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크리스탈 팰리스로의 이적 가능성 높아!]

[일부 서포터들의 반발. “지금 공격진에 추가할 자리가 있나? 자국민을 영입하려는 구단주의 지시가 아닌가?” 하는 반응 보여.]

[공식 크리스탈 팰리스 서포터즈 클럽 성명문 발표. “눈깔 제대로 안 달린 병신들은 닥쳐라.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태양을 지지한다.”]

[선우진이 본 손흥민의 잠재력은?!]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구단주의 입김? NO! 팰리스에서 이뤄지는 모든 이적의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다. 코치진과 함께 선수를 면밀히 지켜본 후 내린 결정.” 이후 이어진 추가적인 이적 관련 질문에는 “오늘은 앞으로 있을 맨유와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온 것. 이적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라고 밝혀.]

[“맨유를 상대로 자신 있냐고? 리그 1위의 구단이 홈경기에서 리그 6위를 맞이하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니겠나?”라며 자신감을 선보인 비엘사 감독.]

* * *

구단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켄싱턴 가든에 위치한 자택으로 향했다.

하도 애원하는 탓에 강주원도 같이 머물기로 했지만, 지금은 런던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러 간다고 나가 있는 상황.

집 안에는 나와 소수의 사용인들 그리고 비밀스럽게 나를 찾은 손님들뿐이었다.

첫 번째 손님은 저번 옵션 거래의 수수료로 2억 달러 상당을 챙긴 제이슨.

“오늘 멋지시네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처음 봤을 때의 그도 물론 일반 직장인 연봉의 십수 배를 벌어들이던 사내였지만…….

‘지금만큼의 부티는 나지 않았지.’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금융인이었기에 고급 원단의 정장을 빼입었던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고급 원단의 정장이 수천만 원짜리는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손목에 차고 있는 저 시계.

예전에는 해 봐야 롤렉스,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정도의 시계 브랜드 이름만 알지, 롤렉스 빼면 봐도 무슨 시계인지 모르던 나였지만.

지금의 나는 제이슨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5억짜리 스위스 시계란 걸 알아볼 정도의 식견은 갖췄다.

‘비싼 거 차고 다니네.’

내게도 값비싼 시계들이 여럿 있는데.

모두 내 돈으로 산 건 아니고 어디서 선물받은 거다.

중국에서 소설 대박 나고 선물받은 게 몇 개 있었고, 어디서 듣고 온 건지 한국 군인들한테 손목시계는 필수라 들었다며 피터가 선물해 준 1억짜리 스위스 시계도 하나 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받은 게 더 있는데.

모두 한두 번 정도 차고 다닌 후 장식장에 고이 모셔 뒀다.

그러다 가끔 멋낼 때만 차고 다니는데, 사실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니는 건 나하고 영 안 맞더라.

군인 시절에야 군인 국룰 시계인 지샥을 찼었지만, 그것도 일병 말쯤부터는 안 차고 다녔다.

군번이 꽤 잘 풀려 일병 2호봉 때부터 후임들이 여럿이었던 터라.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편리하다는 생체 시계들이 주위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애플 워치를 선물받아 꽤 차고 다녔는데.

내가 기억하는 스마트 워치의 처리 속도와 괴리감이 심해 그것도 못 차겠더라.

여하튼.

“이쪽은 윌리엄입니다. 저와 NYU STERN 비즈니스 스쿨 동문이죠.”

제이슨을 따라 나를 찾아온 윌리엄이라는 사내.

그는 영국 태생의 사내로, 런던 금융가의 중심, 시티 오브 런던에서 근무하는 사내였다.

제이슨이 그를 나에게 데려온 이유는 하나였다.

‘아, 스폰서십 계약 파운드화 말고 유로화로 맺으라고 전달해야겠다.’

조만간 있을 브렉시트.

차이나 머니도, 아메리칸 머니도 좋다지만.

역시 금융의 본고장은 영국 아니겠나.

브리티쉬 머니를 쓸어 담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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