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전역뽕이 너무 큼
달칵-
10억 달러, 한화로 대충 1조 1,600억 원.
그만한 금액이면 내게는 물론이고, 작년 기준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보유 재산 총 792억 달러)에게도 큰돈일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서 10억 달러가 작은 돈일 리는 없을 테니.
여하튼.
그 10억 달러를 홍콩의 H지수에 콜옵션으로 묻어 두었는데.
내가 입대한 지 딱 1년이 되던 때였나 그랬을 거다.
옵션을 사들일 때만 해도 9,000대 중반이었던 H지수가 14,000의 벽을 뚫어 버렸던 게.
물론 지수의 상승률은 고작 60%였지만, 내 옵션 투자의 수익률은 그 몇 배.
‘60%나 오른 거니 고작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397%에 비하면, 뭐.’
10억 달러가 투자 한 번으로 40억 달러가 되어 버린 것.
게다가 홍콩에서의 옵션 투자는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H지수가 14,000을 가볍게 뚫어 버리며, 모두가 설마 15,000의 벽까지 뚫어 버리나 하는 희망적인 예측을 하던 그때.
곧바로 시장에 나온 풋 옵션을 모조리 사 버렸다.
사실, 나도 이때부터는 조금 긴장되기는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조만간 중국과 홍콩 증시가 함께 꼬라박는다는 것만 알았지.
언제, 얼마나 꼬라박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승 일변도 중국 증시, 점차 하락하고 있어.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는 중국 증시.
-홍콩 H지수, 상해 종합 지수따라 지속적 하락.
처음 끝날 줄 모르던 중국 증시의 상승 기조가 꺾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도 그렇고 옵션 거래를 총괄하던 제이슨 또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을 거다.
뭐, 나야 그래도 이미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사업체들이 있고, 앞으로도 미래 정보가 많은 만큼 40억 달러를 모조리 날렸다 해도 조금 뼈아픈 수준에 그쳤겠지만.
제이슨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나 다름없는 이번 옵션 거래였다.
-인민은행, 기준 금리 4.6%로, 지급 준비율 18%로 낮추는 경기 부양책 발표.
-경기 부양책 효과 보나? 개장과 동시에 주가지수는 0.53% 상승 출발.
-인민은행의 경기 부양책 발표 이후 안정화되는 상해 종합 지수와 홍콩 H지수.
심지어 도중에 한번 중국 증시가 안정화되려는 기미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직도 당시 제이슨의 떨리던 눈동자가 기억났다.
이제 슬슬 풋 옵션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며, 지금도 40억 달러를 2배로 불렸으니 충분한 수익이지 않냐 넌지시 말을 꺼내던데.
나름 내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기는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긴장한 기색을 계속 숨길 수가 없더라.
하지만 그런 제이슨과 달리, 나는 이게 잠깐의 반등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알바로 번 돈 모조리 잃고, 눈물 섞인 깡소주를 마시게 된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했으니.
그리고 결국.
-중국 주식시장 대붕괴의 시작? 사상 처음 서킷 브레이커 발동.
-1차 서킷 브레이커가 풀린 후에 재차 7% 폭락.
-사우디-이란 단교로 인한 중동발 불안 확산과 중국 제조업 지표의 부진이 원인으로 지목돼.
-개장 후 13분 만에 5.38%가 하락하며 3일 만에 서킷 브레이커 재발동!
2016년도의 시작과 함께 시원하게 내리꽂기 시작한 중국 증시.
아마 중국 증시에 투자하던 대부분이 예전의 나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바닥 아래 지하가 있고, 그 지하의 밑에도 지하가 있다고?!’와 같은 심정.
-상해 종합 지수, 심리적 저지선인 3,000선 무너져!
-고점 대비 50% 하락, 끝내 52주 신저가 경신.
-중국 증시를 따라 수직 하락하는 홍콩 H지수. 최악의 경우 중국발 대공황이 될 수도.
여하튼.
하락이 계속되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튀어나왔는데.
나는 지금이 바로 풋 옵션을 정리해야 할 적기라 판단했다.
뭐, 그건 내 전역 시기와 겹쳐서도 있지만.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격언처럼, 비록 지금이 홍콩 H지수의 최저점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내려올 만큼은 내려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지.’
내가 풋 옵션을 정리한 시점의 홍콩 H지수가 8,400.
그리고 어제자 최근 3년 내 최저점에 도달한 H지수가 7,500.
수십억 달러의 옵션 계약이라 정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었던 만큼, 매우 적절한 시점에 치고 빠진 거라 볼 수 있었다.
뭐, 어쨌건 간에 그렇게 내가 이번 중국 증시 폭락에서 벌어들인 금액이 총…….
‘240억 달러.’
풋 옵션에서 600%의 수익률을 올린 것.
투자금이었던 10억 달러를 빼면 230억 달러의 수익금.
흥분 가득한 콧김을 뿜어내면서, ‘보, 보스! 대박입니다!’라고 소리치던 제이슨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600%의 수익률이야 금융인으로 살면서 여러 번 봤겠지만서도, 40억 달러를 가지고 그만한 수익을 거둔 적은 결코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게다가 거기서 1%가량을 수수료로 제이슨에게 떼 줬으니, 이제 그 또한 준 억만장자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제이슨이 더 이상 내 밑에서 일을 안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자진해서 계속 나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무슨 역사의 산증인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사실 나는 그냥 회귀했다 뿐이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 터라 조금 부끄러운 말이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 * *
홍콩의 핵심 금융가.
많은 금융 기관이 자리한 그곳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돌고 있었다.
“옵션질로 떼돈을 번 곳이 있다며?”
“수십억 달러를 집어넣어서 거의 너다섯 배는 벌었다던데.”
“전담한 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놈들은 수수료로 떼돈을 챙겼겠군! 빌어먹을, 우리가 죽어 나는 동안 그런 놈들이 있다니.”
“최소 수억 달러는 받았겠지. 우리가 받아야 했을 보너스가 다 그쪽으로 간 거나 다름없어.”
최근, 중국과 홍콩 증시의 폭락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풋 옵션을 엄청나게 사들여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이들이 여럿 있는데.
알고 보면 그게 여럿이 아니라 한 세력에서 전부 사들인 게 아니냐는 소문.
소문은 점점 살을 붙여 가면서 이제는 홍콩 금융가에서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게 수십억 달러나 되는 자금이 갑자기 나타나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으니.
모두 한 세력에서 나온 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세력이 대체 어딘데?”
“글쎄.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렇게 투자하는 거면 본토 자금은 아닐 테고, 자금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 쪽도 가능성이 낮으니…….”
“그러면 일본 쪽일 수도 있겠군.”
“엔저 덕에 니케이 지수가 천장을 뚫고 있는데, 굳이 홍콩까지 와서 도박할 놈들이 있었으려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이슨이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최대한 감춘 덕에, 자금의 출처가 선우진이라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옵션이란 것은 제로섬 게임인 만큼 선우진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그대로 누군가의 손해가 됐다는 뜻이었는데.
만약 선우진이 그 세력이었다는 게 알려졌다면, 한동안 곤욕을 치를 뻔했다.
아마 최소 몇 년 동안은 홍콩 금융기관들의 공공의 적이 됐을 터.
“그러면 결국 하나네! 이런 빌어먹을 돈지랄을 할 새끼들이 어디겠어? 중동 놈들이지!”
“기름 냄새 나는 개자식들!”
그렇게 한동안 홍콩 금융가에서는 중동 자금들이 배척받는 현상이 존재하게 됐다.
* * *
모든 전역자라면 공감할 만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전역뽕.
군대라는, 어떻게 보면 20대 남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과제를 끝낸 전역자들에게 찾아오는 뽕.
누군가는 이제 전역도 했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어떤 시험이건 간에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군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6시 30분에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이 될 거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도 비슷한 뽕이 찾아왔다.
‘왠지 모르게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딱히 별다른 이유 없이 앞으로 모든 일이 쭉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
뭐, 사실 마냥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 게.
240억 달러라는 자금은 적어도 세상사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돈이기는 했다.
가령…….
“트렌트, 저번에 말했던 인수 건 진행하죠.”
[와우! 정말이십니까? 무려 60억 달러인데요?]
“네.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조만간 그것 이상의 돈이 생길 수도 있다고요.”
회귀 이후 처음 겪는 ‘돈이 모자란 경험’ 때문에 미뤄 두었던 인수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거나.
[으음. 그거 듣고 사실 써밋 엔터의 IPO를 통해 자금을 모으시려는 건가 싶었죠. 그런데 IPO 추진 얘기가 조금도 없기에 그냥 하신 말이신가 싶었는데…….]
“하하. 제가 몇 번 말하지 않았나요? 제가 갖고 있는 사업체를 상장시킬 생각은 없다고요.”
[예. 그렇죠. 그래서 대체 60억 달러가 어디서 나신 겁니까? 그만한 돈이면 저희 써밋 엔터의 총기업 가치와 맞먹는 거 아시죠?]
“제 기업인데 당연하죠. 뭐, 여하튼… 좋은 일이 있었어요. 제가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는 좋은 친구가 한 명 있거든요.”
내 농담 섞인 말에 통화 너머로도 트렌트의 어리둥절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트렌트에게 바로 MGM 인수를 위한 인수단을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
MGM은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의 약자.
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사자 대가리 하나가 나타나서 ‘어흐응-!’ 울부짖고 사라지는 로고 있지 않나.
그 회사가 바로 MGM이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계속된 흥행 부진과 재정난 끝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타이틀을 박탈당한 것도 모자라 부도까지 났던 그 회사.
[아마 인수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할리우드가 제대로 난리가 날 겁니다. 써밋 엔터가 이제 메이저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역사를 이유로 무시받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트렌트가 말한 것처럼 써밋 엔터에 부족한 역사와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MGM 인수의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인수 이유가 그것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IP도 쓸 만하지.’
MGM은 <록키>와 <007>시리즈의 주인인 회사.
그 두 시리즈 이외에도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가 한둘이 아니었다.
무려 4,000여 편의 영화 작품과 TV 드라마들.
스웜과 넷플릭스의 성공으로 인해 원래의 역사보다 빠르게 OTT 시장이 커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다른 영화 제작사들이 OTT 서비스가 큰돈이 된다고 인지하는 것도 빨라지고 있었고.
즉, 앞으로 경쟁해야 할 건 넷플릭스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당장 디즈니에서도 자체적인 OTT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워너와 소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써밋 엔터, MGM 인수 추진.]
[선우진… 할리우드 점령 노리나? 60억 달러로 오랜 역사의 스튜디오를 자신의 품에 거두기를 원하다.]
[경쟁이 점점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OTT 시장. 스웜이 MGM을 인수하게 된다면 한발 앞서가게 될 것.]
며칠 지나지 않아 관련 기사들이 여럿 등장했다.
아마 MGM 측에서 매각 금액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기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만약 지금보다 OTT 시장이 더욱 커졌었다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이나 애플 등의 IT 회사들이 OTT 진출을 노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까지는 기존 영화나 드라마 산업과 관련있던 회사들만 OTT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회사들인 파라마운트나 워너 등의 스튜디오들은 굳이 나와 경쟁하면서까지 MGM을 인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군대 간 사이 예전에 사 놨던 회사가 한 가지 서비스를 출범했는데.
문득 어쩌면 이 서비스가 내 가장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진 소셜 미디어 산업까지 넘보다?! 틱톡,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