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마법의 단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투자 전문가가 아니다.
지금도 아니었고, 회귀하기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2년간 모은 2억 3천을 풀로 투자하는 상남자식 배짱 - 다른 말로는 만용 - 을 가진 투자자였을 뿐이었고.
그걸 잃고 나서야 ‘아, 시발 이렇게 할 걸’, ‘이걸 사지 말고 저걸 저때 샀더라면…….’ 따위의 후회만 하던 놈이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지식은 꽤나 단편적이라는 거다.
취미는 또 취미라고.
내후년 어떤 축구 선수가 뜨게 되고, 그 선수가 언제쯤 부상을 입고, 미래의 월드 클래스 소리를 듣던 선수가 그 부상 하나로 얼마나 폼이 떨어지는지는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주식에 있어서는 이게 어느 시기에 몇 %가 뛰고, 언제는 떨어지며, 또 언제 다시 치솟는지 등은 잘 모른다는 소리였다.
[테슬라 주가, 1년간 620% 급등!]
[종가 244.81달러로 마무리. 앞으로는 전기차가 모든 내연기관 차를 대신한다?]
[2006년 이후 IPO 실시 기업 중 가장 큰 폭의 상승세!]
[테슬라 시가총액 300억 달러 돌파, GM과 포드 시총의 절반에 달해.]
테슬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테슬라의 지분을 모았을 때만 해도, 지난 1년간 주가가 4배가 넘게 올랐다며 이미 미래 가치가 모두 선반영됐다고 떠들던 테슬라였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가 입을 모아 한 소리였고, 시장의 중론도 그러했다.
하지만 요 몇 달 사이 150%를 상승해 버렸으니.
이건 당연히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처음엔 내가 지분을 모으자마자 85달러까지 떨어져서 비웃음도 있었지.’
내 매입 가격이 150~160달러 정도였는데.
몇 주도 지나지 않아 테슬라의 주가가 85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실리콘밸리에 그런 소문이 돌기도 했단다.
그 동양에서 건너온 작가 양반 사업은 몰라도 투자에는 소질 없다는 거 같더라.
실리콘밸리에 오자마자 제대로 호구질 당했다더라.
뭐, 그런 말들.
‘그런데 지금은 반응이 달라졌으려나.’
애초에 테슬라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였으니 별다른 타격은 없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테슬라로 50%의 수익을 거뒀다는 게 아니다.
달러로 치면 앉은 자리에서 수억 달러를 번 거였으니, 별게 아닌 게 맞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수억 달러 수준이 아니라 수백억 달러를 생각하고 투자한 테슬라였다.
수십 배가 뛸 걸 알고 있었으니, 50%의 수익이야 그냥 지나쳐 가는 작은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
하지만…….
‘아오. 이 관종 새끼.’
이건 얘기가 좀 달랐다.
[일론 머스크, “모두들 우진처럼 똑똑해질 필요가 있어. 그는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가 이번에 테슬라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봐라.”]
…미국 날아가서 한 대 패고 올까?
마음 같아서는 전용기 빌려서 그거 타고 가서 머스크 뒤통수 한 대 때리고, 전용기 대여료까지 저놈한테 청구하고 싶었다.
인터뷰, 인터뷰라니.
관종련 머스크가 한 경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얘기를 꺼낸 것이다.
뭐 자기 딴에는 자기를 믿고 테슬라에 투자한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조롱을 당하고 말았으니 꺼낸 말일 거다.
실제로 며칠 전 문자가 오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 – 흐흐. 우진, 이번에 우리가 실리콘밸리 헛똑똑이들 콧대를 제대로 꺾어 줬다고.]
저 때만 해도 그냥 확 뛴 테슬라 주가에 대한 반응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수준이 아니었던 것.
관련 잡지를 살펴 보니, 내가 자기한테 보여 준 신뢰가 어느 정도였고, 그 모습에 자신 또한 감동했고, 잠깐의 부침도 겪었지만 이렇게 결과로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거기까지만 했다면 참 내 생각을 잘하네… 하고 끝냈겠지만.
이놈의 자식이 꽤나 구체적인 액수까지 미디어에 풀어 버린 것.
[선우진! 이번에는 투자 대박?!]
[최근 미국의 VC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선우진. 알고 보니 테슬라에도 10억 달러 투자?!]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작가, 아니 세상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작가.]
덕분에 국내 언론이 시끌시끌했다.
미국에서야 웬 판타지 소설 작가가 투자로 떼돈 벌었다는 게 그저 일회성 가십거리에 불과하겠지만.
국내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들이 그야말로 쏟아지다시피 했는데.
전에도 느낀 거지만, 아무래도 내가 인터넷 언론들한테 있어 조회 수 치트키쯤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번 테슬라 투자로 벌어들인 게 어느 정도이고, 그게 한 대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과 엇비슷할 정도다 등등.
참 많은 뉴스가 있었다.
물론 커뮤니티 반응은 더 시끄러웠는데.
-??????
-그새 5억 달러 쳐 번 거?
-와;;; 선우진 국내 부자 순위 5위 입갤ㅋㅋㅋㅋㅋ 개쩌네, 진짜.
-재벌 회장들 다 따잇해 버렸네…….
└근데 재벌들은 그룹을 사실상 소유한 거라 보유 주식 가치만 따지면 안 됨
└선우진도 자기가 갖고 있는 회사들 IPO 돌리면 됨.
└스웜 조만간 서구권 진출한다던데… 저거 안 그래도 미국에서도 꽤 핫하더라. 넷플릭스 대항마라고
└ㅇㅇ 투자 문의 속출한다고 함. 미국서 일하는 지인발 정보.
-그런데 진짜 저번에도 의문이었는데, 얘 다 돈 어디서 난 거?
└ㄹㅇ VC에도 10억 달러, 테슬라에도 10억 달러, 크팰에도 구장 건설이랑 선수 영입에 지금까지 쓴 돈 합치면 10억 달러 좀 안 되고…….
└써밋 엔터랑 스웜 투자도 있음 ㅋㅋㅋ 거기에도 웬만큼 돈 썼을걸.
-진짜 여기 나온 추측이 맞는 거 같은데… 링크: https://…….
└와… 이 말대로면 ㅋㅋㅋㅋㅋ십 소설 천재가 아니라 투자 천재였네.
특히 저번에 이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게 있는데.
바로 저 많은 투자 자금의 원천이 어디냐는 것.
그전까지는 어떻게 소설과 출판사를 통해 번 돈을 굴리는 건가 보다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수준이 아니게 되면서 자연스레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탓에 국내 경제지에서도 전보다 훨씬 많은 인터뷰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내 그간 행보를 분석하면서, 언론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내가 그간 다른 경로를 통해 번 수익이 족히 수십억 달러는 될 거라 추정한 기사들도 여럿 존재했고.
거기에 또 불을 끼얹은 소식이 하나 있었으니.
[선우진, ‘달려라, 쿠키’가 성공할 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반년 만에 140억 원 상당을 벌어들인 선우진.]
[수익률 400%? 별거 아닙니다. 한 소설 천재한테는 말이죠.]
‘달려라, 쿠키’ 출시 이전에 사들였다가.
출시 반년 후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와 NHM에 팔았던 데브브라더스의 지분.
내 측에서 저 얘기를 떠들지는 않았으니, 아마 데브브라더스나 NHM을 통해 알려진 것 같았다.
-140억? ㅈㄴ 큰돈이긴 한데, 선우진 재산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지 않음?
└그건 맞음. 근데 저 투자를 언제 했는지 보셈.
-‘달려라, 쿠키’가 나오기도 전이네? ㅁㅊ
-미친… 이 새끼 ㄹㅇ 회귀자 아님?
-ㅅㅂ 그런 듯… 선우야 다른 건 안 바란다. 로또 번호 2등짜리 하나만 꽂아 줘라.
-글고 언론에 나온 게 저거뿐이라 그렇지. 투자를 저거 한번 했겠음? 심지어 저때 40억 가까이 넣은 거면… 그때 소설로 번 돈 대부분 다 처박은 거.
└저 새끼 ㄹㅇ 강심장 of 강심장이네.
└야수의 심장ㄷㄷㄷㄷㄷ
-저렇게 투자로 돈 한번 벌면 저 손맛 쉽게 못 잊지 ㅋㅋㅋ 아마 지금도 야수의 심장으로 투자하고 있을 듯.
-암튼 그래서 결론이 어케 되는 거? 선우진이 지금까지 투자로 수십억 달러 번 게 트루인 거?
└ㅇㅇ
└100%는 아니어도 그럴 확률이 높다 정도?
└거의 그렇다 보면 됨… 지금 나온 거로는 자기 회사 담보 잡아서 대출 풀로 땡겨도 불가능한 액수 ㅋ
└21살의 패기인가, 저게.
음음… 이런 게 바로 스노우 볼이겠지.
머스크가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 이런 결과를 낳은 거니까.
뭐,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으니.
‘조만간 날 잡고 인터뷰해야겠지?’
세간의 추측이 맞다는 걸 밝힐 생각이었다.
사실 언제까지고 내가 소설 천재, 얼굴 천재, 사업 천재에 이어 투자 천재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한번 정도 짚고 넘어가야 했을 일.
물론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뭘 통해 얼마를 벌었고, 그거로 또 얼마를 벌었다 수준으로 털어놓지는 않을 거다.
그냥 언론에서 추측하는 게 100% 진실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사실인 건 맞다고만 말할 생각.
내 투자 일대기를 얘기하려면 코인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괜히 지금 시기에 코인 얘기를 했다가는 자칫하다가 나중에 대역죄인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내 언급으로 사람들이 가상 화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원역사에서처럼 가상 화폐들이 끝도 없이 오르다 투자를 넘어 투기 열풍이 풀고, 언젠가 붐! 하고 터져 버리는 순간.
돈을 잃은 사람들은 오갈 데 없는 화를 풀 대상을 찾게 될 거다.
그리고 그건 그리 낮지 않은 확률로 가상 화폐를 처음 알려 준 내가 될 거고.
게임스탑과 도지코인으로 나한테 오지게 욕 먹은 머스크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왔다.
사실 나도 내가 선택한 거지, 머스크와 별 관련이 없이 했던 투자였는데도.
그 얄미운 얼굴을 잔뜩 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 않나.
뭐, 여하튼 간에.
“좋은 날이다, 애송이들아-!”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내가 <찬탈자>를 완결 짓고 일주일이 흘렀다.
바꿔 말하면 그날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저 멍청한 첼시 놈들을 때려눕히기에 딱 좋은 날!”
지금 주먹으로 작전판을 강하게 치며 비엘사 감독이 외치는 바로 그날이 오늘이었다.
“자, 이게 오늘 첼시 놈들의 선발 멤버지. 꽤 익숙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오늘이 오기 전, 비엘사 감독은 몇 가지 준비를 했는데.
첼시가 선보일 예상 선발 멤버를 몇 개 추려 그것에 대해서만 경기 준비를 한 것이었다.
다행히 며칠 전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몇몇 주전 멤버를 90분 뛰게 한 첼시였고.
덕분에 비엘사 감독의 준비가 제대로 빛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이대로 경기에 이기기만 하면 최고의 연출인데.’
<웬 이글스 데어>의 촬영 팀들은 라커 룸 내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지금 라커 룸에 구단주 역할로 왔다기보다는 그저 구경하러 온 것.
오늘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그러면 가자! 셀허스트 파크를 찾은 불청객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러!”
“예-!”
“예-!”
툭-
툭-
라커 룸을 나서 경기장을 향해 떠나가며 나와 피스트 범프를 주고받은 선수들.
그중 더 브라위너가 날 보며 씨익 웃었다.
조금의 긴장도 없이, 자신감 넘치는 웃음.
오늘 폼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뜻이리라.
나는 입장하는 선수들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본 후, 내 자리로 향했다.
VIP 좌석인 만큼 이제 막 경기가 시작하려는 시간임에도 입장이 수월했는데.
“하하. 오셨군요. 혹시 오늘 나타나시지 않는 건가 걱정했는데.”
주인공이 팰리스라면, 오늘의 엑스트라성 빌런이 될 로만 또한 내 초대로 그곳에 있었다.
‘오, 겁먹어서 튄 줄?’
방금의 말은 대충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지.
“설마요. 오늘만 기다렸는데.”
“그렇습니까? 그런데… 촬영 중이신 건가요?”
내 뒤로 따라 들어온 카메라들을 보고 묻는 로만.
“예. 팰리스 다큐를 촬영 중이거든요. 조만간 영국과 러시아에서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스웜을 통해 공급될 예정이라서요.”
“아하. 다큐멘터리라…….”
“물론 부담되신다면 MR. 아브라모비치의 모습은 넣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두고두고 박제될 것 같아서요.”
“박제요?”
“아, 한국식 표현입니다. 서로의 승리를 자신하는 두 구단주가 만나, 한 명은 지고 돌아가게 될 테니. 꽤 괜찮은 장면이지 않을까요?”
“…….”
“그러니 부담되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방금 내 말은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그 어떤 남자도 물러설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