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게임 열심히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또 런던에 간다고? 입대도 코앞인데 좀 쉬지 그러니?”
“쉬러 가는 거 맞아, 엄마. 말이 촬영이지 내 취미 생활만 잔뜩 즐기고 오면 되는 거니까.”
회귀한 이후로 수많은 음식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가끔씩은 집밥이 엄청나게 그리워지는 법이다.
엄마가 해 주는 김치찌개.
입이 꽤 짧은 편이라 김치는 별로 입에 대지도 않고, 김치찌개도 남의 집에서 만든 김치로 담근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울 엄마 김치찌개는 밥 두 공기 뚝딱이었다.
“음. 손에 물 묻히신 지 오래 되셔서 맛 변했을까 걱정이었는데, 그대로시네.”
“얘는. 내가 네 아빠랑 너희 밥 멕인 게 수십 년인데. 1년 쉬었다고 그게 어디 가겠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어느새 어엿한 부잣집 사모님이 되신 엄마였다.
아버지야 본인께서 수십 년을 일궈 오신 공장을 못 놓으시겠다고 여전히 낚시대 부품 공장을 운영 중이시지만.
엄마는 자식 잘 둔 덕 톡톡히 보시겠다며 집안일은 사용인분들께 맡기시고 놀러만 다니신 지 오래셨다.
물론 아버지도 공장 운영이 취미 생활이 되신 거지, 험한 일은 다 그만두셨다.
듣기로는 공장을 확장한다거나, 예전 거래처들 돌아다니시면서 떵떵거리는 데에 재미를 붙이셨다고 한다.
뭐, 처음에만 해도 자식 덕 보려고 키운 게 아니라며 내 도움을 거절하셨었는데.
내 벌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신 후로는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지셨다고 한다.
남의 한강도 아니고 아들 한강인데, 거기서 물 한두 바가지 푼다고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말이다.
몇 달 전부터는 두 분 다 생전 취미 없으시던 골프도 배우고 계셨다.
내가 런던에서 돌아오면 가족끼리 함께 라운딩 가기로 약속했다.
나도 회귀 이후로 골프를 쭉 배웠는데, 실력이 꽤 괜찮았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운동들은 퍽 잘하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골프도 내게 적성이 맞았나 보더라.
“그런데 울 귀한 아들 군대 가서 몸 상하면 어떡하니? 아직도 선임이 후임 때리고 그런다던데.”
“엄마, 나 엄마 아들이야. 대한민국에서 젤 유명한 엄친아가 난데, 날 괴롭힌다고? 그리고 내가 가는 부대는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군부대 아닐걸?”
현역 입대까지야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알아서 해 주는 대접까지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꽉 막힌 곳이 군대라던데.
그게 과연 모두에게 통하는 말일까?
막말로 오성그룹 회장 아들이 군대 가면 그 사람 괴롭힐 선임이나 간부가 있을까?
오히려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면 썼지.
게다가 내가 어학병으로 지원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좀 알아봤는데, 전체적으로 편한 보직을 부여받는 어학병 중에서도 땡보 of 땡보직이 몇 개 있다 들었다.
내가 그런 곳에 배정될 확률은… 아마 꽤 높지 않을까.
아무튼.
“누나는? 아침 안 먹는대?”
“네 누나? 새벽부터 도서관 나갔어. 어제도 말했잖니, 요새 네 누나 엄청 달라졌다고.”
“그래? 나는 그거 그냥 하는 말인 줄.”
사실 제일 놀라운 건 누나의 변화였는데.
몇 달 바쁘게 사느라 안 본 사이에 그게 돼 있더라.
로스쿨 준비생.
분명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누나였는데 말이다.
‘뭐… 걔가 공부는 좀 잘하긴 했지.’
집에서 하는 걸 보면 어떻게 그런 건지 참 의문스럽지만.
공부와 담 쌓았던 나와는 달리 꽤 좋은 대학에 다니던 누나였다.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면서도 학점도 괜찮았던 거로 기억한다.
취업도 무리 없이 바로 대기업에 합격했었을 정도.
물론 그래도 누나가 갑자기 로스쿨을 준비한다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
이제 막말로 웬만한 재벌집 딸 부럽지 않은 처지가 된 누나인데.
갑자기 자기가 먼저 로스쿨 준비생이라는 고난의 길로 들어서다니.
‘아니면 원래부터 그게 꿈이었던 거려나.’
예전의 우리 집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풍족하지도 않았었다.
국장 분위로 치자면 1~10분위 중 딱 8분위.
그런 집에서 로스쿨을 준비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장학금을 타 낼 만큼 어렵지도 않고, 준비 비용 및 로스쿨 합격 후 생활비 등을 모두 대 줄 만큼 넉넉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때는 포기했던 꿈을 넉넉해진 지금은 이루려는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어디서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같은 걸 보고 잘나가는 미녀 변호사의 꿈이 생긴 걸 수도.
뭐, 어쨌거나.
“그럼 다녀올게.”
아버지하고는 아까 나가시기 전 인사 드렸고.
누나야 뭐 지겨운 얼굴 굳이 한 번 더 볼 필요 없었으니.
집을 나온 내 행선지는 인천공항이었다.
<웬 이글스 데어>를 찍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려는 것.
[When Eagles Dare : Road to Chmpions.]
며칠 전 확정된 이번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었다.
이글스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의 애칭.
즉 크팰이라는, 이제 EPL로 갓 승격한 언더독의 챔피언스를 향한 여정을 뜻하는 제목이었다.
아직은 이 다큐를 기획한 최 PD도 생각하지 못한 거겠지만, 나는 이번 다큐 <웬 이글스 데어>를 시리즈로 제작할 생각이었다.
‘다음 제목은 뭐가 좋으려나.’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고 나면, 그다음은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컵을.
더 나아가서는 모든 클럽의 목표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게 될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다큐에서는 뒤에 붙은 소제목이 바뀌게 될 터.
전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팀만 달 수 있다는 황금 사자 패치나, 챔스 우승 트로피의 별명인 빅 이어를 갖다 붙이면 좋을 거다.
물론 지금에서야 아직은 먼 얘기.
하지만 저 목표들을 달성하고 나아가 로드 투 트레블까지 다큐를 제작하는 게 내 작은 목표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웬 이글스 데어> 시리즈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먹히는 다큐가 될 수 있었다.
‘뭐… 지금 이런 계획을 남들한테 말하면 코웃음만 치겠지만.’
사실 웃긴 얘기다.
말 그대로 이제 막 승격한 하위권 클럽인 크리스탈 팰리스.
그런 구단이 지금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것도 가당찮다 여길 사람이 태반이다.
비록 현재의 순위는 5위일지라도, 시즌이 후반부로 흐를수록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
실제로 바디와 마레즈, 마샬의 삼각 편대는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그 힘을 잃고 있다는 평이 많았다.
다른 클럽들에 의해 공격 과정에서 셋의 연계가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 브라위너와 살라가 오기 전의 이야기고.’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 크팰로 이적한 둘.
적응기를 거쳐 가며 팀원들과의 호흡을 맞춰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그 진가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공격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터.
내가 이번 시즌 크팰의 챔스 진출 가능성을 높게 치는 이유였다.
‘물론 챔스 진출에 성공하더라도 그 후의 목표들은 아직 먼 얘기지만.’
빅4들도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인 프리미어리그 우승컵과 2000년대 이후로 EPL에서 리버풀과 맨유, 첼시만이 들어 올린 챔스 우승컵을 노려?
EPL 우승이라면 몰라도 빅 이어는 내가 있던 미래에서 그 대단하다는 맨시티도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였다.
하지만 뭐, 원래 꿈은 크게 가지는 거라고.
보이스 비 앰비셔스라는 말도 있는데.
내가 이제 소년은 아닐지라도 야망은 여전히 가질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회귀자인 만큼 그 야망도 커야 하는 게 옳았다.
‘돈을 버는 건 쉽지. 그저 미래 정보만 활용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크팰이 빅 이어를 들어 올리는 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루기 힘든 목표고.’
개인 재산이 3, 40조쯤 되고, 가문의 재산을 다 합치면 1,000조인 만수르.
그가 맨시티를 인수하고 15년 가까이 지났어도 이루지 못한 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 좋은 선수들을 산더미처럼 사 와도 챔스 우승은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축구 구단에 그렇게 투자하는 부자가 어디 만수르 하난가?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엄청난 거부 소리를 듣겠지만, 몇 년 후 내 기준에서는 짜잘한 사업체들 몇 개 가진 게 전부인 보유 자산 몇십억 달러 수준의 구단주들을 다 제외하고도.
맨시티의 만수르, PSG의 하마드 알 사니, 뉴캐슬의 빈 살만, 라이프치히의 마테시츠 구단주 등.
매년 몇천억 원을 어렵지 않게 투자하는 이들이 축구계에서는 한둘이 아니게 된다.
바꿔 말하면 내 경쟁자가 그만큼이나 많다는 뜻.
‘원래 난이도가 어려워야 더 재밌는 법이지.’
게임 고인물들이 노 장비 클리어를 노리는 것처럼.
빡센 목표일수록 성취했을 때의 재미가 더 커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내게는 쓸 수 있는 치트키가 하나 있었다.
‘응, 우리 스트라이커 홀란드, 우리 윙포 음바페.’
크팰의 위상 탓에 지금 당장 메날두를 같이 쓰는 건 불가능해도.
몇 년 후 저 둘을 함께 영입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 * *
“케빈 더 브라위너와 모하메드 살라. 이 두 선수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소리시죠?”
내가 건넨 선수 프로필을 들춰 보던 최 PD.
최 PD와 촬영 팀은 나보다 일찍 런던에 도착해 다큐 제작을 준비 중이었다.
그가 이번 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의 팬이 되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건지.
꽤나 상세한 촬영 계획을 짜 온 그였다.
기존 선수단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엿보이던 계획서였다.
하지만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구단에 합류한 덕배와 살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건지, 관련된 촬영 계획이 미진하기에 내가 추가적으로 둘의 중요성을 알려 준 것이었다.
언젠가 저 둘이 월드 클래스에 올랐을 때.
이번 촬영 장면들은 중요한 자료가 될 터였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데 걸리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을 거였고.
“네. 살라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수도 있는데, 덕배는 바로 EPL에 바로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구단에 찾아가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시게 되면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아실걸요?”
“하하. 작가님 선수 보는 눈이야 워낙에 정평이 나 있으니… 그런데 덕배? 이 친구 별명인가요?”
“아. 이름 앞 글자만 따면 KDB라 제가 그냥 한국식 애칭 느낌으로 김덕배라 부르고 있습니다. 아시죠? 예전 개콘에 있던 캐릭터.”
“그럼요. 음, 좋네요. 김덕배… 덕배. 친숙하기도 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게 촬영 소스 뽑기도 좋을 것 같고요.”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지,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이번 다큐 작가를 찾아가 무어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런던에 오는 동안, 이미 집필된 다큐멘터리 대본을 한번 훑어봤는데.
몰입도가 높아 보였던 게 꽤 실력 있는 작가더라.
여하튼.
아직 촬영이 시작된 건 아닌 터라, 경호원만을 대동한 채 밖으로 나섰다.
몇 달 후면 한동안 못 찾게 될 영국인 만큼 예전에 못 끝냈던 런던 구경을 실컷 할 생각이었다.
‘뭐, 제대하고 나면 싫어도 영국에 와야 할 일이 있겠지만.’
내 전역 연도는 2016년.
그 해의 영국에서는 세계 경제사에 꽤나 중요한 이벤트가 열린다.
‘역시… 게임은 열심히 하고 볼 일이야. 웹 소설에서도 게임 빙의물에서 살아남는 사람들 보면 다 고인물들이잖아.’
그리고 그건 다행히도 진성 FM 유저였던 내가 잘 아는 이벤트였는데.
‘FM 2017 버전부터였나? 그때부터 랜덤하게 이벤트가 발생해서 고역이었지.’
EPL에는 외국인 선수 규정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이벤트가 어떻게 발생하냐에 따라 취업 비자 관련 규정이 다르게 바뀌어 그걸 신경 쓰는 게 꽤 힘들었었다.
그 이벤트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브렉시트.
2016년도가 바로 브렉시트를 놓고 영국에서 국민투표가 열리는 때였다.
그 투표는 그간의 예측과는 달랐던 영국의 EU 탈퇴 지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게 무슨 뜻이겠나?
심지어 영국과 유럽은 물론 세계경제 전체에 영향이 갈 만큼 커다란 사안에서?
‘큰돈.’
그냥 큰돈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돈을 벌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