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게 야스지
개봉 전 반응을 보고, 중국에서 대박 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몰랐다.
[봉 감독의 신작 영화 ‘마션’이 중국에서 개봉 5일 만에 6,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게 어느 정도의 흥행인 겁니까?]
[네, 지난해 SF 영화 최대 화제작이었던 그래비티가 중국에서 총 7,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뒀는데요.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그래비티가 개봉 기간 내내 벌어들인 수입을 마션이 겨우 5일 만에 따라잡은 겁니다.]
TV를 틀었더니 나오는 한 영화 관련 예능 프로.
오늘 저 프로그램의 주요 화제가 마션이었나 보다.
마션의 국내 흥행이 어제 자로 700만 명을 넘어서며, 남은 기간 동안 천만을 넘길 게 확실시된 만큼, 마션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한 것 같았다.
[와! 무서운 흥행인 거네요. 그러면 이게 관객 수로 치면 얼마인 겁니까?]
[예. 중국의 경우 티켓값이 정가가 70위안 정도 하는데요. 소셜 커머스나 오픈 마켓에서 상시적으로 할인가에 판매하는 탓에 대부분 반값보다 더 아래인 20위안에서 25위안 정도에 팔리고 있습니다. 한국 돈 3,500원. 지금 환율이 1,100원이 조금 안 되니까… 달러로 치면 3달러 정도죠.]
[어? 그러면 중국에서 벌써 관객 수가 2천만 명을 넘긴 거겠네요?]
예능 출연진들의 말대로 산뜻한 출발을 넘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였다.
북미 내에서 마션의 첫 주 성적(목, 금, 토, 일)이 6,300만 달러였는데.
중국에서 5일 만에 그걸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하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북미와 중국의 시장의 크기를 감안하면 꽤나 고무적인 성과.
아무리 중국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영화 시장이라고는 해도 시장 크기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니 말이다.
[맞습니다. 지금 마션이 국내에서도 대단한 흥행을 이어 가면서 조만간 1,000만 명을 넘길 거라 예상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벌써 그 두 배를 넘어 버린 거죠.]
[엄청나네요. 이게 고작 5일 만에 벌어진 일이라면 최종적으로는 총관객 수 5천만 명을 넘기는 거 아닙니까?]
[업계 내에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에 달하는 관객 수가 되겠군요.]
[와! 이게 저한테는 SF 영화라고 하면 크게 흥행하기에는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이번 기회로 깨지게 됐습니다.]
[하하. 사실 아바타가 역대 세계 흥행 1위 영화 자리를 차지하면서 SF도 엄청난 흥행을 일으킬 수 있다고 증명하긴 했죠. 물론 마션은 하드 우주 탐사물이라는 점에서 아바타와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그 이후로도 마션과 관련된 논의가 지속됐다.
주로 마션의 성공 이유를 분석하는 게 오늘의 메인 플롯 같았는데.
써밋 엔터에서 분석한 것과 꽤 겹치는 게 많았다.
‘내 중국 내 유명세. 그리고 마션에서 호의적으로 그려지는 중국의 모습.’
특히 써밋 엔터에서도 후자의 이유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번 마션의 경우처럼 해외 블록버스터 영화의 중국 흥행량이 홈그라운드인 북미의 흥행량과 비슷한 수준인 건 꽤 이례적인 현상이었는데.
그 주된 이유가 스토리 곳곳에 등장하는 중국 친화적인 요소 때문이라 분석한 것.
그리고 그런 만큼 앞으로 써밋 엔터에서 제작하게 될 영화들에도 그런 요소들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들이 많았단다.
뭐… 완전히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중국 영화 시장은 지금도 북미에 이어 두 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
몇 년 후에는 그 차이가 더욱 좁혀져 북미 뒤를 따라가다 못해 바짝 달라붙게 된다.
내가 있던 미래에서는 거의 1 대 0.9의 비율 정도로 시장 크기가 형성됐었을 정도였으니.
적당히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 거기에 친중국 요소 한두 스푼만 뿌려도, 중국 내에서 매번 엄청난 흥행을 거둘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사내 의견은 내 선에서 모두 커트해 버렸다.
마션이야 앤디 본인이 소설에서 그렇게 묘사했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찍은 거였지만.
앞으로 써밋 엔터에서 제작되는 영화 중 제작자가 흥행을 생각해 일부러 친중 요소를 넣는 경우가 있다면.
가차 없이 커트해 버리겠다고 말이다.
‘결국에는 반감만 사게 될 테니까.’
내 기준에 중국은 내게 엄청난 돈을 벌게해 준 나라였으니, 참으로 고마운 곳이었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기는 해도, 여기서 몇 년 더 지나면 더 심각해져 전 세계적으로 반중 정서가 최대를 찍게 된다.
그때 가서도 쭉 친중 영화를 제작한다고?
응, 대륙 뒤꽁무니 따라가다 욕 오지게 먹게 되는 디즈니 꼴 나기 십상이야.
중국 돈맛에 중독돼서 시땡땡 씨한테 고개 조아린다고 욕 엄청 먹게 될 거다.
누군가 그러기를,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했다.
물론 나는 속물적인 사람이라 돈이 없으면 가오도 사라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2억 3,700을 잃고 울면서 소주 까먹던 과거의 선우진이었고.
지금의 나는 돈도 겁나게 많아서 가오만 챙겨도 되는 사람이다, 이거야.
돈 못 버는 건 참아도, 대륙 뒤꽁무니 따라간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그리고 사실 뭐…….
‘아이 씨. 그래서 안 볼 거야?’
적어도 중국한테는 저런 마인드로 나가는 게 맞았다.
작품 내에서 중국을 까더라도, 스토리가 너무 재밌는 탓에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게 되는 작품.
그런 걸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편하게 방구석에서 미래 지식으로 돈만 벌면 되는 걸, 굳이 내가 이렇게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는 것도 남 눈치 안 보고 좋은 작품들을 왕창 만들고 싶어서였으니까.
아무튼.
[그런데 선우진 작가의 대단한 점은 또 있죠. 이렇게 흥행 가도를 이어 가고 있는 마션도, 선우진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된 검객무쌍에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게요. 무려 30억 위안, 한화로 약 5천억 원의 수익을 거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체 주제가 언제 바뀐 건지, 마션 얘기를 하다가 어느새 내 얼굴에 금칠을 해 주고 있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는데.
우우웅-
[최기섭 PD님]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름을 보고 순간 누군가 싶었지만, 빠르게 기억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제작부 소속이셨나 그랬는데.’
“예. 전화받았습니다.”
[아, 작가님! 저, 다름이 아니라…….]
* * *
SW 프로덕션에는 당연히 다큐 부문도 있었다.
애초에 처음 회사를 만들 때 예능과 드라마 등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인력들도 여럿 모았기 때문.
‘스웜 내에서 꽤 수요가 있다 들었지.’
물론 대박을 치다 못해 끝까지 화제성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종영됐던 우주남이나 무전기 등이 활약한 드라마 쪽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꽤 꾸준한 수요를 자랑하고 있다 들었다.
다큐멘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물론, 평소 다큐를 보지 않던 시청자층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돈을 지상파 방송국보다 훨씬 많이 쓰니까.’
모든 경우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더 많은 돈 = 더 나은 퀄리티’라는 공식이 들어맞는 게 이쪽 업계였다.
특히나 다큐멘터리는 더욱 그러했고.
사실, 지상파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살펴보면 참으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연출 PD와 카메라 감독 등의 스태프들이 최소 7~10일간 해외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책정된 제작비라고는 꼴랑 편당 2,500만 원이 전부.
심지어 SBC에서 일하다 스웜으로 영입된 한 다큐 전문 PD에 따르면, 최소 7억 원에서 최대 10억 원까지 필요한 다큐를 찍는 데에 지상파 방송국이 지급하는 돈은 보통 2억 원 내외라고 한다.
나머지는 알아서 협찬을 따오거나 어디서 지원을 받아 오라는 것.
당연히 그런 만큼 돈을 대 주는 협회나 단체의 입김이 알게 모르게 다큐에 섞일 수밖에 없고, 퀄리티도 내려갈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SW 프로덕션에서는 필요한 제작비라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 주고 있었으니.
제작 및 촬영 인력들의 의욕도 고취될뿐더러, 자연스레 돈값 하는 영상이 뽑힐 수밖에 없었다.
뭐, 아무튼 다큐멘터리 부문은 다른 OTT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분야.
아직은 아니었지만 넷플릭스도 조만간 다큐 분야에 투자를 강화하면서, 일명 넷플릭스 향(向) 다큐멘터리가 유행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기 전에 스웜이 먼저 선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
‘으음, 그래도 내가 다큐를 찍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큐멘터리요?”
“네. 물론 작가님 위주로 찍는 건 아닙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건 참 다행이었다.
사실 최 PD한테서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을 때는 무슨 ‘성공한 작가의 삶’, ‘20살에 재벌을 뛰어넘는 부를 축적한 선우진의 비밀은?’과 같은 뭐 그런 주제로 찍자는 건 줄 알았다.
그런 거면 바로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어디까지나 메인 주제는 크리스탈 팰리스가 될 거고요. 작가님은 구단주로서의 모습만 보여 주시면 됩니다. 최근 크리스탈 팰리스의 성공의 뒤에는 작가님이 계시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알고 보니 주제가 축구였다.
축구 다큐멘터리.
아직은 대부분에게 조금 생소하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지 않은 분야.
‘죽어도 선덜랜드… 엄청 재밌게 봤었지.’
개인적으로는 내 최애 다큐였다.
2부 리그로 강등된 구단, 부활을 위해 발버둥 치는 팀, 그걸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그런데 승격은커녕 결국은 강등되고, 마케팅을 위해 다큐를 제작하려 했던 구단주가 결국 구단을 팔고 나가는 현실적인 결말까지.
해외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봐야 하는 다큐였다.
물론, 크리스탈 팰리스를 가지고 다큐를 찍는다면 죽어도 선덜랜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일 거다.
“어디 보자. 지금 팰리스 순위가… 5위였죠?”
“네. 4위인 아스날하고는 겨우 2점차죠.”
현재 크리스탈 팰리스의 순위는 무려 5위.
시즌 초반 10경기 남짓을 치뤘을 때의 성적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간에 2연패를 당하며 7위까지도 내려간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4승 2패로 6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5위 자리를 탈환한 것도 모자라 아스날의 순위를 바로 뒤에서 위협하고 있는 상황.
즉, 한 단계만 더 위로 올라가면 모든 클럽의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예! 제가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싶은 게 바로 그겁니다. 이제 막 2부 리그에서 올라온 크리스탈 팰리스, 심지어 시즌 시작 전 구단주가 교체되는 상황까지 있었죠. 당연히 언론에서는 크리스탈 팰리스가 바로 강등당할 거라 봤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음.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겁나 잘나가고 있죠.”
“네, 그것도 대부분 구단주이신 작가님 덕분에요.”
“아닙니다. 모두 비엘사 감독과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 덕분이죠.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흐흐.
방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 PD의 말에 자꾸 입꼬리가 실실거리려고 한다.
그만 움직여 입꼬리야.
지금은 폼 잡을 때라고.
‘하지만 이게 또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사실 지금 같은 순간이 내가 축구 구단을 인수한 주된 이유였다.
FM 게임에서 2부 리그 구단의 감독직을 맡은 후, 승격이나 대회 우승을 이뤘을 때 받던 게임 내 찬사들.
그게 게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면 대체 어떨까 싶은 생각 때문.
그런데 지금 최 PD가 그 지점을 아주 정확히 공략하고 있었으니.
“무슨 소리를! 저도 이번에 크리스탈 팰리스의 약진을 보면서 수정궁의 팬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됐죠. 작가님이 구단주로 취임했다는 게 크리스탈 팰리스라는 구단에 있어서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요!”
“하하. 별말씀을요. 너무 제 칭찬만 하시니 부끄럽네요.”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해도, 속으로는 더 칭찬해 달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노릇.
뭐, 어쨌거나.
‘축구 다큐… 입대까지 이제 두 달 반 남기는 했는데. 그전에 잔뜩 놀려고 했던 휴가를 런던에서 보내 볼까?’
문득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아직은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조만간 입대를 하게 되는 나.
하지만 군 입대 전까지 구단을 전적으로 서포트하면서, 챔피언스리그라는 꿈을 서포터들과 함께 꾸는 나의 모습!
그렇게 구단을 지원하다 결국에는 입대를 위해 떠나게 되고.
내 입대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 이름을 외치며 그리워하는 서포터들!
그리고 떠나간 구단주를 위해 온 힘을 모아 노력하는 팀.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열기는 더욱 거세지고.
지금의 기세를 더욱 이어 가 승리, 또 승리!
그리고는… 결국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돼고.
내게 쏟아지는 찬사!
‘와, 시발.’
인생 뭐 있나?
그게 야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