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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99화 (99/267)

99화 이상한 나라

어라?

강주원이 이걸 몰랐다고?

아니, 같은 한국 남자도 아닌 피터도 알고 트렌트도 알고 심지어 로버트와 티모시까지 아는 내 입대 사실을 이 사람은 왜……?

아, 맞다.

“내가 말 안 했구나.”

“…미친놈인가?”

그러고 보니 입대 날짜를 결정했던 건 미국에서였던 터라.

미국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군대 가기 싫다며 하소연을 했었는데.

이게 한번 가 봤던 게 그래도 경험은 경험이라고.

몇 주 지나니까 나도 덤덤해져서 그 이후로는 입대 얘기를 떠들고 다니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중국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온 거라, 한국에서 만나게 된 강주원한테는 군대 얘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던 것.

“아, 생각해 보니 형한테는 말 안 했네. 양 PD님은 아실 텐데. 말 안 했어요?”

“어… 아, 그러면 그때 말했던 게 군대 얘기셨나? 네가 한동안 바빠질 거라 하셔서 그냥 다른 사업 때문에 그런 건가 했는데… 아니, 아무튼. 월드컵이 6월인데 그때 들어가 있는 거면 입대가 대체 언제라는 거야?”

“4월 초중순이니까. 한 두 달 남았네요.”

두 달 남았다니까 강주원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한다.

그러면서 내 정곡을 찔러 버렸는데.

“너… 친구 별로 없구나.”

“윽.”

“입대가 두 달 남았는데 나하고 여기서 롤 듀오나 하고 있었다니. 후우.”

이 사람 몰랐는데 딜 잘 넣네.

아까 정글할 때나 이렇게 좀 하지.

내가 원딜로 빡세게 딜 넣는 동안 자기 스킬 빠졌다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어서 욕하려다가 형이라 참았고만.

“사실이라 킹받네.”

“킹받네? 그건 또 뭐야. 요즘 애들 유행어냐?”

“아… 그냥 열받는다고요. 암튼 두 달 뒤에 입대입니다. 원래 뭐 어떻게든 군대 빠질까도 했는데, 괜히 그랬다가는 욕 먹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건 잘 생각했어. 나도 디스크 때문에 공익 갔거든? 진짜 아파서 간 건데 너도 알지? 나 가끔씩 허리 때문에 촬영 중간중간마다 쉬는 타임 가지는 거. 근데 한동안은 그거 가지고 조리돌림 엄청 당했다, 진짜. 아니, 다른 데서는 어떻게든 빠지라고 하면서 연예인들 군대 빠지는 건 야박하단 말이지.”

“그거야 연예인 중에 하도 가라로 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죠.”

“어쭈? 이제 군대 간다고 군대 용어도 쓰네? 아무튼 걔네는 가라여도 난 진짜였다고! 후, 괜히 나까지 싸잡혀서 욕먹고. 허리 때문에 간 거라 말 해도 들어 먹지를 않아요, 아주! 그렇게 허리 아픈 사람이 운동은 어떻게 하냐고. 내가 이거 웨이트로 허리 아픈 거 멈추려고 운동을 얼마나 빡세게 하는데! PT 선생님한테도 돈 엄청 주고.”

그건 인정.

다른 건 몰라도 운동 열심히 하는 건 인정이었다.

나야 그냥 몸만 어느 정도 관리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하는데, 강주원은 자기 몸이 하나의 상품인 만큼 관리에 엄청 힘을 썼다.

방금 말한 대로 허리 이슈 때문도 있었고.

언제 한번 운동하러 같이 간 적 있는데, 따라가기가 벅차서 도중에 따로 하게 됐을 정도였다.

“그런데 너 언론에도 안 밝혔어? 너 정도면 입대 기사 엄청 뜰 텐데, 얘기가 하나도 없네.”

“남들 다 가는 거 뭐 자랑이라고 그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요. 그냥 남들 가는 것처럼 조용히 가면 되는 거지.”

“오오. 이 새끼, 마인드 봐라?”

“마인드는 무슨. 큐나 돌려요, 빨리.”

그 뭐냐 연예인들 군대 가는 걸 보면 연예부 기자들이랑 팬들 훈련소 앞까지 따라오고 그러던데.

내가 입대할 때도 그럴 게 분명했다.

지금은 아무리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기는 해도, 막상 입대 날에는 세상 만사 다 뭣 같은 심정일 텐데.

괜히 입으로 계속 식빵 굽는 걸 미디어에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후. 진짜 나보다 억울한 입대자도 없을 거야.’

신체 정신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수행하는 국방의 의무라지만.

나는 그걸 남들보다 두 배나 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다.

심지어 그걸 어디 가서 그렇다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게 될 거고.

이게 진짜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하튼.

“브라질 가는 예능 재밌긴 하겠네. 형, 그거 출연하면 부대에서 챙겨 볼게요.”

“4월 입대면 6월에는 훈련소 아냐? 아닌가? 요즘 훈련소 몇 주지? 뭐 암튼 자대 갔어도 이등병이 채널 고를 권한이 있을 거 같냐? 흐흐. 나 같은 아저씨 나오는 프로 말고 걸그룹 애들 나오는 프로만 엄청 틀걸.”

“아, 그러려나.”

“당연하지, 인마. 야, 그런데 너 조심 좀 해야겠다. TV에 여자 연예인 나올 때마다 너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선임들 엄청 많을 거야. 쟤 실제로 봤냐, 봤으면 성격 어떻냐. 쟤랑 누구랑 사귄다는데 진짜냐. 그런 것들.”

“제가 뭐 연예인도 아닌데. 다 모른다고 하면 되죠.”

“네가 연예인만 아니지,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거 누가 모르냐. 그리고 이번에 SW 프로덕션에서 만드는 아이돌 서바이벌? 그거 엄청 핫하더만. 그거 군대에서 방영되면 선임들이 너 붙잡고 엄청 물어볼걸. 흐흐.”

군 입대 얘기를 괜히 꺼냈나.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3위가 축구한 이야기, 2위가 군대 이야기, 1위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군대 이야기 보따리가 한번 풀리니, 군대 얘기만 주야장천 하기 시작한 강주원이었다.

“아, 그리고 이제 자대 가면 뭐가 제일 중요한 줄 알아? 우선 간부랑 선임들 이름 싹 다 외우고, 뭐든지 대답 크게 하고. 그래야 폐급 소리 안 듣는다?”

“예이, 예이. 그만 떠들고 갱 좀.”

“그래. 지금 그러는 것처럼 힘없이 말하면 아주 그냥 작살나는 거다. 어? 선임이 ‘야.’ 하고 부르면 ‘이병 선! 우! 진! 부르셨습니까!’ 이렇게 팍팍 관등 성명 외치면서.”

물론 2회차 입대자인 내 입장에서는 굳이 집중해서 들을 필요는 없는 얘기.

‘여자 연예인 얘기만 좀 조심하면 되겠네.’

안 그래도 연예계 소문 같은 거는 엄청 물어볼 거 같았는데.

그런 건 그냥 다 모른다고 철판 깔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 위치가 위치다 보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게 많았다.

‘배우 지망생일 시절에도 느낀 거였지만, 연예계는 소문이 엄청나게 빨리 도는 곳이란 말이지.’

다들 입이 어찌나 가벼운지.

대중들한테 들어가는 소문 정도는 대부분 헛소문인 게 많았지만, 업계 내에서 도는 소문 같은 경우는 대개 실제에 가까웠다.

자본과 욕망, 쾌락의 소용돌이 같은 곳이어서 그런가.

남들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다른 업계보다 몇 배는 더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여하튼.

만약 선임이 알면서 왜 아무 말 안 하냐고 뭐라 하면…….

글쎄, 사실 그런 선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게 유명해지고 느낀 건데, 유명세라는 건 생각보다 엄청 큰 가치를 지니고 있더라.

어디를 가도 나를 알아보는 건 조금… 아니, 엄청나게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다들 나에게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점.

게다가 나는 돈 많기로 유명한 거로는 한국에서 오성그룹이랑 대현그룹 회장들 다음으로 가는 사람이었으니.

예전 내가 군대에서 봤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그런데 얘가 내 선임이라고? 아오.’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은 이번 생에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그리고 또 중요한 게 뭐냐. 바로 ‘나다싶으면’이라는 건데. 이게 뭔 뜻이냐면…….”

“나다 싶으면 해라?”

“…어? 어 그거.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아무튼 뭐 작업할 거리가 생길 때 나다 싶으면 알아서 나서서 해야 한다 이 뜻이야. 물론 자대 처음 가면 네가 제일 막내일 테니, 당연히 네가 먼저 나서야겠지? 그래야 에이스 소리 듣는다.”

예전에도 한번 느낀 건데.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강주원 이 사람도 친구 별로 없는 게 분명했다.

본인 말을 빌리자면 연예계는 정글 같은 곳이라 함부로 친해질 수가 없어 친구를 몇 안 사귄 거라던데.

게다가 다른 일반인 친구들은 배우 생활에 전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말 많아서 다들 질려 버리고 떠난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군대 얘기 나왔다고 지금 몇십 분 내내 군대 얘기만 주야장천… 어?

잠깐만.

“아니. 근데 님아.”

“가장 중요한 건 청결과 정리 정돈! 관물대 정리 알아서 잘하고… 어? 왜? 갱 왔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었는데.

아까 자기 입으로 그러지 않았나?

“님 아까 분명 공익 나왔다고 하지 않음?”

“……!”

“아니. 공익이야 몸 아프니 그럴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익이 현역한테 군대 부심을……?”

“어? 상대 용 먹는다. 집중! 집중!”

말 돌리는 거 봐 봐.

이 사람이 괜히 친구 없는 게 아니라니까?

나만 아싸 아니라고.

* * *

[북미 박스 오피스 1위, <마션>. 2주차 매출액 3억 달러 돌파 및 손익분기점 통과!]

[개봉 4주차 만에 전 세계 박스오피스 4억 2천만 달러 달성한 <마션>. 심지어 아직 중국에서는 개봉하지도 않아!]

[마션 국내에서도 대흥행 기세 이어 가고 있어. 3주차 관객 수 564만 명. 총 매출액은 486억 추정!]

몇 주가 더 흘렀다.

이제 슬슬 마션의 최종 성적에 대한 윤곽이 나오고 있었는데.

‘국내에서 천만 영화 페이스.’

최종 1,36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아바타의 3주차 페이스가 반 정도인 700만이었는데.

마션의 지금 기세면 천만 관객을 살짝 넘길 것 같았다.

물론 한국에서 천만을 뚫는 거야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였지, 진짜 중요한 건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그간의 흥행 데이터로 살펴 판단해 보면 월드 박스오피스는 7~8억 달러 정도, 그중 국내 흥행만 1,000억 원 가까이 될 것 같았다.

‘아직 중국에는 개봉도 안 했는데 벌써 4억 달러를 넘겼으니까.’

중국에서 심사를 통과하는 데에 시일이 좀 소요된 탓에 며칠 후에 개봉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4억 달러를 넘긴 거였으니.

현재 마션에 대한 중국 내 관심도를 생각해 보면 중국에서만 2억 달러 가까이 되는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중국 내 유명세 때문도 있었지만, 마션에 등장하는 중국에 대한 묘사 때문.

작중 세계관 내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어 항공 우주 기술로 2위를 달리는 국가로 등장한다.

심지어 그냥 2위인 게 아니라 중국의 항공 우주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묘사되는데.

자체적으로 우주정거장까지 가지고 있다고 나올 정도.

거기에 영화 막바지에 보면 미국과 중국이 협력 작전을 펼쳐 주인공을 구하려고 하는 모습까지 나온다.

중국 내의 반미 감정상, 이 부분을 불호라 여기는 반응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중국의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제대로 묘사했다며 아직 개봉 전인데도 ‘역시 선우진!’, ‘역시 선 따거!’, ‘믿고 있었다고!’와 같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었다.

‘내용에 난 관여한 게 하나도 없는데.’

정작 중국을 저렇게 그린 건 원작자인 앤디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만 했을 뿐, 원작의 흐름은 건들지 않은 봉 감독이었기에 그런 점들이 그대로 영화에 표현된 거였고.

아무튼.

-선우라면 저러는 게 당연해.

-그가 쓴 검객무쌍을 다들 봤겠지? 그러면 당연히 검객무쌍에서 드러난 의와 협에 대해서도 잘 알 거고. 선우가 바라 본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지.

-역시 대단한 작가. 원래도 그랬지만 그를 더 좋아하게 됐어.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한국인.

-그래서 대체 언제 개봉하는 거야? 이번 주말? 바로 영화관에 달려가야겠어.

‘아니, 그거 무협이 원래 그렇듯 세계관만 중국에서 따온 거지. 중국 생각하고 쓴 거 아닌데요?’

마션의 개봉을 기대한다는 중국 커뮤니티 반응들을 보고 속으로 열심히 외쳐 봤지만.

내 외침이 저들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이거 참.

역시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하는 데에는 도가 튼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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