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97화 (97/267)

97화 마션 개봉

“감독님!”

“아! 어서 오세요, 작가님.”

시사회장.

스태프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니, 오랜만에 뵙는 봉 감독님이 있었다.

“살이 엄청 빠지셨네요.”

“사막 지대에 한참을 있다 보니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요새 좀 찌운 겁니다. 하하.”

“고생 많으셨어요. 그만큼 영화 잘 나왔던데요?”

내 말에 씨익 웃는 봉 감독.

꽤 활기 넘치는 얼굴이 그의 자신감을 말해 주고 있었다.

듣기로는 이전에 있었던 북미 시사회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던 것.

게다가 미국에는 정식 개봉 하루 전에 열리는 전야제 상영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어제였다.

미국에는 오늘자로 8시간 후쯤 정식 개봉되는 것.

아무튼, 전야제 상영은 사실 일종의 변칙 개봉인 하나의 상술인데.

영화사들이 전야제 상영의 인기를 통해 그 작품이 앞으로 어느 정도를 벌어들일지를 예상하는 데에 쓰기도 했다.

마션의 전야제 상영 수입 기록은 총 320만 달러.

작년 하반기에 개봉했던 마션과 비슷한 SF 장르의 영화인 ‘그래비티’의 전야제 상영 수입이 140만 달러였으니.

그보다 2배 이상의 관객이 마션을 찾은 것이었다.

물론 전야제 상영의 비율대로 흥행 성적이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은 출발이라는 건 맞았다.

‘그래비티가… 총수입이 7억 달러였나.’

현대 SF 영화 걸작 반열에 든 영화, 그래비티.

내가 알기로는 원래의 마션의 흥행 수익이 그래비티에 살짝 못 미치게 될 텐데.

이번에는 어쩌면 그래비티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같은 장르로 정면에서 그래비티의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를 이기게 되는 것.

그 때문에 써밋 엔터 차원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홍보비를 투자하기도 했다.

“헤이, 우진.”

“맷, 그동안 잘 지냈어?”

“촬영 끝나고 푹 쉬었지. 요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조금 바쁘게 지냈고. 그보다 지미한테 연락받았어? 네가 자기 토크쇼에 한 번 더 왔으면 싶다던데?”

“응. 안 그래도 며칠 전 회사 통해서 출연 제의가 왔더라고. 출연할지 말지는 아직 안 정했지만.”

주연 배우인 맷 데이먼과도 인사를 나눴다.

마션은 사실상 주연이 원 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

그런 만큼 맷 데이먼의 역할이 엄청 컸는데,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명불허전의 연기력이었다.

봉 감독과 그의 조합이 꽤 괜찮았던 건지.

몇몇 부분에서는 내가 알던 마션보다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작가님!”

“우진아, 잘 지냈냐? 후, 나 맷 데이먼 엄청 팬인데 인사 좀 시켜 주면 안 돼?”

시사회장에 도착해 만난 연기천재가 되었다 팀.

그 외에도 여러 배우가 보였다.

봉 감독과 연이 있어 초대를 받아 온 이들도, SW 프로덕션 때문에 시사회를 찾은 이들도 보였다.

강주원과 한시연부터 시작해서, 봉 감독의 페르소나로 유명한 송강오 배우 등 여러 국내 배우가 시사회장을 찾았는데.

‘…어? 저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눈에 익을 듯 말 듯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

“PD님, 저분 누군지 아세요?”

“누구… 아아. 연 감독이요?”

“감독?”

“네.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돼지의 왕이라는 애니 보신 적 있으시나요? 그거 제작한 양반인데,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꽤 유명할 겁니다. 최근에는 사이비라는 작품으로 시체스 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

눈에 익은 이유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필모를 들으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스웜에 추가해야 할 장르가 있었는데.

‘OTT에는 역시 좀비물이지.’

특히 영미권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스웜에는 더더욱 필요한 장르였다.

예로부터 좀비 블록버스터라 함은 전 세계 어딜 가나 통하는 장르였으니.

‘…서울행.’

국내 성적도 자체적으로 1,000만 관객을 넘고, 해외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며 큰 수입을 거두는 작품.

연 감독이 바로 서울행의 감독이었다.

여기서 저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한국 영화판이 좁은 게 이럴 때는 참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시사회 끝나면 바로 컨택해 봐야겠다.’

이윽고 마션의 상영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폭풍을 마주치게 된 화성 탐사 대원들.

그리고 그중 홀로 조난되어 버린 마크 와트니.

결국 그가 죽은 줄 안 다른 탐사 대원들은 모두 화성을 떠나게 되고…….

마션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맷 데이먼의 입을 빌려 울려 퍼졌다.

“I'm pretty much fucked(아무래도 좆 됐다).”

시사회를 찾은 모두가 영화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 * *

“감독님! 전작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순수 외국 영화인 마션입니다. 영화에 한국인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소설 마션은 철저한 과학적 고증으로 유명한 작품인데요. 그 점이 영화에도 반영되어 실제 NASA와의 촬영에서도…….”

“영화 그래비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봉하는 마션입니다. 혹시 그래비티의 흥행 수익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십니까?”

방영이 끝나고, 감독과 배우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첫 질문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봉 감독과 맷 데이먼을 비롯한 출연진들한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

“와… 진짜 재밌었네요, 그쵸?”

“그러게요. 다른 스페이스 블록버스터하고는 다르게 영화 색감이 화려한 편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더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만든 것 같아요. 봉 감독님 특유의 영상미가 돋보이더라고요.”

“디테일도 미쳤고요. 혹시 영화 중반부에서 주인공이 패스파인더를 찾아낼 때 보셨어요?”

내 주위의 연기천재가 되었다 팀도 작품에 대해 이렇게 떠드는 걸 보면 마션이 그만큼 재밌었다는 뜻일 거다.

‘확실히 스크린으로 크게 보니까 맛이 또 다르네.’

우선 영상이나 음향에 있어서 차이가 컸다.

마케팅비를 제외하고 마션 촬영에 쓰인 제작비만 1억 달러가 넘었는데.

돈을 때려 부은 만큼 영상과 음향에 있어서는 확실히 내가 알던 마션보다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양 PD님이 언급한 것처럼 디테일 부분도 그렇고.’

사실 이게 내가 봉 감독의 마션을 리들리 스콧의 마션보다 내 취향이라 평가한 이유였다.

SF 덕후인 앤디답게, 원작 소설에는 엄청나게 촘촘한 과학적 디테일들이 많았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버전에서는 그런 디테일들이 상당수 삭제되어 있었다.

마션 또한 스페이스 무비인 만큼, 심플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영상미를 전달하기 위해 세밀한 디테일 부분들은 과감하게 삭제했던 것.

가령, 마크 와트니가 감자를 재배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실험 방식이나 다양한 공식들, 패스파인더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선외활동의 디테일함 등이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들리 스콧 감독과는 달리 봉 감독은 소설에서만 드러났던 디테일을 대부분 버리지 않고 영화에서 살려 낸 것.

괜히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 감독이 아니었다.

예전 봉 감독과 작품을 같이했던 어떤 배우한테 듣기로는, 봉 감독은 집을 지을 때 못 한 포대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못 53개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이라던데.

그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디테일을 붙잡느냐, 디테일을 포기하더라도 영상미에 더욱 신경 쓰느냐를 놓고 누가 위라고 볼 수는 없겠지.’

그저 내 취향이 지금 버전에 더욱 가까운 것뿐이었다.

* *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많았다. 봉 감독의 ‘마션’ 올해 상반기 최대 흥행 예감.]

[마션, 아바타와 겨울왕국에 이어 3번째 천만 외국 영화 될지도?]

[라라랜드에 이어 마션까지. 한국 극장가를 점령하는 선우진의 영화들!]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사람들이 재난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를 제대로 보여 주다.]

[선우진 매직은 이번에도 통했다! 그가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이유.]

시사회 다음 날.

언론에서 마션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극장가와 언론계에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우진이랑 봉 감독이 합심해서 할리우드 도전하는 건데, 까면 안 되지.’

이걸 굳이 내가 말하면 너무 자랑 같기는 하지만.

나는 국내 한정으로는 엄청난 호감 픽이었다.

해외에서의 성공으로 국뽕도 채워 주고, 수백억 원을 기부해 억까들도 물리쳤으며, 크리스탈 팰리스 인수를 통해 코리안 EPL 구단주라는 업적 획득으로 2, 30대 남성의 호감을 잔뜩 사기도 했으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을지라도, 그걸 대놓고 말하면 눈총을 사게 되는 수준이었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해외 유명 영화감독들이 ‘샤라웃’ 해 주고, 국내 흥행 성적도 엄청나게 뛰어난 봉 감독도 그러했고.

그런데 그런 봉 감독이 제작 및 연출을 맡고, 내가 돈을 댔다?

이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까고 싶어도 깔 수 없는 무언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까긴 까더라도 내가 먼저 까서 몰매를 맞고 싶지 않다는 느낌.

그 때문에 여기저기 다 뒤져 봐도 마션을 혹평하는 기사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호의 섞인 호평뿐.

‘음… 이런 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문득 떠오르는 기시감.

그 왜…….

예전에 그런 영화가 하나 있었다.

<드래곤 워>라고, 역대 최고의 코미디언이라는 말에 전혀 손색이 없는 전설적인 희극인분께서 제작 및 연출을 담당하신 영화가 하나 있다.

전생에는 조선인이었지만 이번에는 미국인으로 환생했다는 설정으로 주연 배우들을 모두 외국인으로 써, 국내는 물론 서구권 흥행을 노린 영화였는데.

당시 <드래곤 워>가 유독 언론에 회자됐던 이유 중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드래곤 워>가 ‘전설적인 희극인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미국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영화’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

마치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 좀 응원합시다’와 같이 말이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떠했냐 하면은…….

‘처참했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드래곤 워>가 개봉했던 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당시 중1에게는 꽤 큰돈을 지불하면서 그때의 여자 친구와 영화관에서 <드래곤 워>를 봤었다.

그리고 왜 이딴 영화를 골랐냐며 욕을 겁나 들었었고.

후우… 수진아, 잘 지내니?

이제는 얼굴도 기억 안 나네.

하여튼.

흥행 성적도 내 감상과 비슷했다.

국내에서는 나름 선방하며 8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주 목표였던 해외 시작에서는 그야말로 폭망.

총제작비도 아니라 미국 마케팅 비용만 1,500만 달러가 들었는데, 미국에서의 최종 흥행 성적은 1,100만 달러였다고 한다.

로튼 토마토나 메타 크리틱 등의 영화 평가 사이트에서도 모든 한국 영화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을 정도.

-아 ㅅㅂ;; 언론에서 계속 빨아 주니까 왜 괜히 불안하냐?

-ㄹㅇㅋㅋ 드래곤 워 꼴 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닌지.

커뮤니티 등에서는 <드래곤 워> 때의 호들갑이 떠오른다는 댓글이 여럿이었다.

-에이… 그래도 지금까지 선우진 픽들 보면 <드래곤 워> 얘기 꺼내는 건 오바임.

-ㅇㅈ. 그건 국뽕 때문에 기사들이 빨아 주기만 했다가 관객들이 통수 맞은 거고… 선우진은 애초에 주모 제조기인데, 둘이 같냐.

-근데 내가 미국 영화 사이트 반응도 좀 훑어봤는데, 함정 카드는 아닌 듯? 다들 평이 좋음.

-뭐라노 ㅋㅋㅋ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니가 뭐라노; 전야제 상영 모름? 영알못 티 내네.

└(삭제된 댓글입니다)

└ㅋㅋㅋㅋㅋ밴 ㅅㄱ

-선우진 작가님, 응원합니다! 저번에 선우진 작가님이 기부하셨을 때 저희 가정도…….

└캬, 이렇게 미담 하나가 또.

└아, 그놈의 선우진 미담 개꼴 보기 싫네… 기부한 거 1년 전 아님? 언제까지 떠듦?

└십;; 500억 기부해도 유통기한 1년 안 되는 거냐? 기준 빡세네 ㅋㅋㅋㅋ

-그래서 쟤 군대 언제 감?

└알아서 가겠지 ㅋㅋ 선우진 엄마냐?

└ㅋ

└ㅋ거리고 있네, 찐특이냐?

오랜만에 커뮤니티를 쭉 훑어봤는데.

재밌는 댓글들이 많았다.

참고로 마지막 댓글의 답글은 내가 직접 달았다… 흠흠.

아무튼.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션의 흥행을 응원하는 쪽.

그렇게 여러 기대 속에서, 마션이 정식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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