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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95화 (95/267)

95화 쥐를 잡자 찍찍찍

그렇지 않아도 이번 기회에 공부를 좀 했다.

콜 옵션이 무엇이고, 풋 옵션이 무엇인지.

콜 옵션은 주가가 오를 것에 베팅하는 옵션.

‘그러니까 콜 옵션을 겁나게 땡기면 된다 이거잖아? 내년 중순까지는 말이야.’

그러는 한편, 예상대로 중국 증시가 활활 타오르면서 상승할 때에는 반대로 풋 옵션을 매입하면 되는 거다.

한때의 선우진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중국 시장의 버블에 올라타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을 때!

나만이 홀로 중국 증시가 나락 갈 것에 베팅하는 거다.

물론 내가 진짜 금융인도 아니고.

공부를 해 봤자 겉핥기 지식이 전부.

그냥 주가가 오를 거 같으면 콜 옵션을, 반대로 주가가 떨어질 거 같으면 풋 옵션을 사야 한다는 것 정도가 내 지식의 전부였다.

하지만 자세한 건 사실 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전문적인 일은 맡길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

“사실 중국은 규모 대비 금융 선물 시장이 그리 큰 편은 아닙니다. 금이나 철강, 농산물을 다루는 상품 선물 시장은 세계 2위 규모를 자랑하는 것에 반해, 금융 선물 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거든요.”

제이슨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래서 그와 같은 전문가를 두는 법.

사실 옵션 투자와 같은 영역은 주식과 코인 투자만 몇 번 해 본 게 전부인 나와 같은 문외한에게는 미래 정보가 있더라도 무작정 손대기가 힘든 영역이었다.

더욱이 투자하려는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단순히 ‘이만한 돈을 줄 테니, 콜 옵션 상품을 주시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미래 정보를 알고 있는 만큼, 그런 주먹구구식 투자를 하더라도 엄청난 수익률을 거둘 수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고작 엄청난 수준이 아니었으니.

금융 전문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옵션 상품이 필요했다.

‘괜히 재벌물 웹 소설들에서 주인공이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아닌 거지.’

여하튼.

“하지만 그리 큰 편이 아니라는 것도 상품 선물 시장에 비교해서 그런 거지, 중국의 금융 선물 시장도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애초에 시장 크기가 크기다 보니, 4년 전 중국의 주가지수 선물이 처음 거래된 날의 총거래 금액이 무려 10조 원이었을 정도죠. 선물시장에 몇 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해도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거라는 뜻입니다. 만약 정말로 내년에 상해 종합 지수가 2배가 넘게 뛰고, 그걸 예측한 채 선물 투자를 한다면… 수익률 1,000%도 거뜬하게 달성할 수 있겠죠.”

흐흐.

수익률 1,000%라니.

1년 반 뒤면 내게 찾아올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며 제이슨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하하.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모두 그림의 떡이죠. 저희 같은 외국인이 중국 선물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예?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람.

나도 모르게 실실거리던 입꼬리가 순간 움찔거렸다.

중국 선물 시장에는 외국인이 투자를 못 한다고?

“안타깝게도 중국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의 주가지수 선물 시장 투자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죠. 물론… 보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국 당국이 적극적으로 주식시장 성장을 시키려 한다면, 머지않아 자격 제한이 풀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쯧,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QFII) 자격으로는 B주만 투자 가능한 게 중국이라는 나라이니까요.”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QFII) 자격.

작년에 바이트댄스를 비롯해 중국의 몇몇 기업에 투자했던 적이 있는데.

중국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QFII 자격이 필요하다 해서, 제이슨을 통해 내 해외 투자 법인이 저 자격을 취득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별다른 구분 없이 선물 시장에도 투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선물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거였다니.

‘어라……? 그러면 내 원대한 계획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따로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년 반 후 얻게 될 수십억 달러의 수익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었는데.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분이 나락으로 수직 하락해 버렸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였다.

“물론 보스께서도 아시다시피 굳이 중국 선물 시장에 직접 투자하지 않아도 되겠지만요.”

제이슨의 말이 이어졌다.

“중국에 직접 투자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회하면 될 뿐이죠. 상해 종합 지수와 그 흐름을 같이하는, 그것도 외국인에게도 활짝 개방된 주식시장이 있으니까요. 으음. 역시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저를 영입하신 거였군요.”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제이슨을 영입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내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 렇죠? 하하.”

“홍콩! 홍콩의 H지수는 상해 종합 지수와 움직임이 거의 같죠. 중국 본토의 기업이 홍콩 증시로 우회 상장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스탠다드차타드에 있던 시절에 제가 하던 업무도 그런 우회 상장 기업을 다루는 거였고요. 역시, 이것까지 알고 계셨군요.”

……?

그으래요?

처음 알게 된 얘기이기는 했다.

제이슨이 홍콩에서 금융인 생활을 처음 시작했단 것만 알고 있었지, 전문 분야까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어리둥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흠흠. 그렇죠. 제가 제이슨을 고용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그거였으니까요.”

최대한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배우로 카메라 앞에는 서기에는 힘든 형편없는 연기력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위화감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보스! 제게 이번 일을 맡겨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각오 가득한 눈빛을 보여 주는 제이슨.

이거 참.

요즘 말에 ‘될놈될’이라고.

내가 황소자리여서 그런가.

소띠도 아니고 개띠인데도 뒷걸음치다 쥐를 잡아 버리고 말았다.

* * *

“후우.”

제이슨이 선우진과의 대화를 끝내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 네비게이션을 조작했다.

그가 찍은 목적지는 바로 항저우 공항.

원래라면 예약해 놓은 근처 호텔로 향했을 거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비행 시간 동안 잠을 취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의 일을 마무리 후 곧바로 선우진을 만나러 오느라 내내 바쁘게 움직인 그였다.

그렇기에 선우진과의 만남이 끝나면 근처 호텔에서 푹 쉴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쉴 틈이 없어져 버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행선지가 그나마 가까운 홍콩이란 것.

그가 그간 쌓아 왔던 금융계의 인맥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1%’

그가 이번 일을 통해 받게 될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 비율이었다.

겨우 1푼에 해당하는 거니, 무척이나 적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투자금을 생각해 보면 며칠 몇 주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일이었다.

‘10억 달러.’

한화로는 1조 원이 훌쩍 넘는 금액.

스탠다드차타드에 있던 시절 저만한 돈을 다뤄 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그가 스탠다드차타드를 나와 한국에 따로 차렸던 자산 운용사의 규모도 몇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건 팀 단위나 회사 단위로 그랬던 거였지, 이렇게 하나의 프로젝트로 1조 원 상당을 투자하는 건 나름 잔뼈 굵은 그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많은 돈을 모두 옵션 투자에 쓰겠다고?

정말이지 볼 때마다 놀라운 배포를 보여 주는 선우진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돈을 거머쥐게 된 걸지도…….’

적은 돈을 두 배 불리는 건 쉽다.

급등주에 100만 원 정도를 넣어 200만 원이 되는 걸 경험해 본 투자자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1,000만 원을 넣어 두 배로 불린 사람들도 꽤 있을 법하다.

하지만 1억 원을 넣어 그걸 두 배로 늘려 본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위험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1억 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자신들의 연봉 이상의 돈.

그만한 금액을 풀로 베팅할 정도의 배짱은 아무에게나 없는 법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배짱이 아니라 객기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다.

‘보스가 돈을 많이 버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해에 10억 달러씩을 꼬박꼬박 벌어들일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선우진의 현재 자산의 추정 가치는 40~50억 달러 정도였다.

써밋 엔터나 SW 프로덕션은 모두 상장하지 않은 상태이니, 정확한 시장 가치는 더 제대로 따져 봐야겠지만.

아마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다.

즉, 10억 달러면 선우진이 가진 전 재산의 5분의 1.

선우진에게도 10억 달러라는 금액은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1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두 옵션에 투자할 생각을 하다니.

선우진이 그간 해 왔던, IT 기업들에 십수억 달러를 투자한다거나 하는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칫하다가는 전부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게 옵션의 세계이지 않나.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성공한다면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있다는 뜻.’

무려 10억 달러의 옵션 투자.

조지 소로스가 영국 중앙은행을 털어 버렸던 것처럼, 어쩌면 금융사에 대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스케일이었다.

물론,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정확히는 기록되어서는 안 되지.’

옵션은 주식과는 달랐다.

완벽한 제로섬 게임.

이익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그만큼의 손실을 기록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선우진의 예상대로 그가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고,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아마 선우진은 단번에 전 세계 금융사들의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

그가 수백억 달러를 벌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금융사들이 그만한 손실을 보게 됐다는 뜻이니.

자기 돈을 잃고 좋게 봐줄 사람은 없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최대한 비밀리에 이뤄져야 했다.

그의 보스인 선우진 또한 그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지 않나.

‘수익률이 낮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돈세탁에 힘써야겠어.’

적어도 수십 개의 회사를, 그것도 각기 다른 명의로 설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투자 자금도 여러 나라를 거쳐 그 출처를 알 수 없도록 해야 했다.

게다가 투자금도 10억 달러나 되다 보니.

어디선가 홍콩 증시에 대한 콜 옵션을 매집하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알리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흐름을 포착한 다른 금융기관들이 끼어들게 된다면, 수익률이 엄청나게 떨어지거나 언론의 눈길을 사게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앞으로 제이슨이 상대해야 하는 금융기관들이 무척이나 많아질 거고,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을 거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몇 달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중년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다고는 볼 수 없는 나이의 제이슨.

요즘 들어 이십 대의 젊은 시절처럼 며칠 밤을 새는 건 이제 무리라는 생각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왜일까.

“하하!”

오히려 체력이 가장 좋았던 이십 대 때보다 지금이 더욱 열정에 불타는 것은.

비록 금융사에 기록될 일은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10억 달러를 다루고, 나아가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일이라니.

금융인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일에 끼어들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문득, 이제 막 금융인이 됐던 시절의 스스로가 떠오르는 제이슨이었다.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등.

현대 금융사의 신화적 존재들처럼 되길 원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

바삐 살다 보니 잊어버리고 만 꿈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때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기분.

제이슨은 선우진의 영입 제의를 받아들인 몇 달 전의 자신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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