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차이나 머니는 언제나 굿 머니
LA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일등석.
미국에서 바쁘게 지낸 탓일까.
비행기에 타자마자 피곤함이 쏟아졌다.
“…으음.”
그래도 비행시간이 꽤 길었던 터라 도중에 깨게 됐는데.
배는 고프지 않아 와인만 한 잔 주문했다.
일등석 승객을 전담하는 분답게 친절함이 가득했던 스튜어디스.
“왜 승무원들이 유독 보스한테만 친절한 거 같을까요.”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승객이라면 다 받는 서비스인데요.”
“아니, 태도가 다르다니까요, 태도가.”
옆에서 핀잔을 주는 경호팀장 에드였다.
다른 경호원 모두가 일등석을 타는 건 아니지만, 에드 같은 경우는 항상 내 옆 좌석에 함께했다.
잠에서 깬 김에 에드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흠. 에어 차이나 일등석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다른 항공사에 비해 뭔가 허접하단 말이죠.”
“하하. 조금 그런 면이 있죠.”
“후… 역시 중국 놈들이란, 좋아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숨길 수 없는 에드의 중국 혐오.
사실 에드뿐만 아니라 내 경호팀원 대부분이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내 사정상 미국만큼이나 중국을 여러 번 찾았었는데, 그때마다 중국 싫어하는 티가 팍팍 나더라.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PMC 출신들도 있지만 대부분 미군 특수부대 출신인 나의 경호팀원들이다.
한국군이 그런 것처럼 그들의 선배 군인들이 과거 중공군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었고.
현역이던 시절에도 실제로 개전 시나리오를 몇 번 준비하기도 했었단다.
‘뭐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중국. 차이나. 짱… X.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예전의 나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배틀그라운드라고 내가 20대 초중반에 꽤나 즐겨 했던 게임이 하나 있는데.
그 게임을 내가 접게 됐던 계기가 바로 중국 플레이어들 때문이었다.
경쟁전을 돌릴 때마다 오만가지 핵을 써 대는 중국인 놈들.
심지어 마이크도 여기저기 송출하면서 내 시체에 와서 티배깅을 하던 것까지.
그런 날에는 홧김에 당시 쓰고 있던 헌터물에 중국인 헌터를 등장시켜 주인공의 손에 참교육당하는 에피소드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흠흠.’
왠지 모르게 중국을 갈 때마다 기분이 들뜨게 된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
사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중국에서는 항상 좋은 일이 생긴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만드는 거지만.
여하튼.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 * *
베이징에서 내려 또 비행기를 탔다.
행선지는 항저우 공항.
무협지에 나오는 그 항주가 맞았다.
“항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항저우 공항에 도착하자 SW 프로덕션 중국 지사장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분명 직접 오지 않고 안내해 줄 직원만 보내도 된다고 전했는데.
역시 오너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법인가 보다.
“신수가 훤해지셨네요.”
“하하. 모두 작가님 덕분이죠.
남태유 지사장.
한국에 있을 때 회사에서 몇 번 봤던 인사였는데, 최 대표가 직접 스카우트해 온 사람이었다.
스웜이 중국에 진출하게 되면서 중국 지사를 차렸는데, 가장 먼저 자원했다고 한다.
듣기로는 지원자를 받기 일주일 전 이혼을 했다던데…….
그 때문일까.
당시 한국을 떠나던 그를 배웅했을 때 봤던 것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 보였다.
괜히 인터넷에서 하지 말라고 그렇게 외치는 게 아니었다.
“회사로 바로 모실까요?”
“아뇨. 서호로 가 주세요. 항주에 오면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남태유 지사장이 가져온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보통 옛날 무협지를 보다 보면 서호로 뛰어들었다, 서호 위에서 검격이 오갔다 등의 표현이 등장하고는 하는데.
그게 바로 항주 서쪽면에 위치한 서호라는 호수였다.
사실 중국에 서호(西湖)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수백 개는 된다던데, 이곳이 그 수백 개의 서호 중 가장 유명한 곳이었으니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
우우웅-
그때 걸려 온 국제전화.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트렌트였다.
“여보세요.”
[보스! 이런 물건을 어디서 찾으신 겁니까?]
“물건이요?”
[팀 말입니다! 팀!]
팀이라는 이름이 미국에서는 꽤 흔한 터라.
내 경호 팀에서도 팀이라 불리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을 정도였지만.
트렌트가 말하는 팀은 당연 티모시 샬라메일 터.
“연기력이 괜찮던가요?”
[괜찮다마다요! 원석, 아니… 이미 가공도 어느 정도 끝마친 보석이나 다름없습니다. 몸 쓰는 것도 훌륭하고요. 무용을 꽤 배웠다고 하더군요.]
“오, 좋네요.”
[예. 빅터 3세를 연기하려면 액션 신이 필수인데, 살짝 테스트만 해 본 거기는 해도 액션 신 소화 능력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흥분한 기색의 트렌트.
그와 그간 일을 같이해 오면서 느낀 건데.
작품 보는 눈처럼 배우 보는 눈이 꽤 좋은 그였다.
나 같은 경우야 내 미래 지식 + 배우 지망생으로 살아오며 쌓은 눈으로 배우를 판단한다면, 그는 본능적으로 이 배우가 팔리는 배우인지 아닌지를 아는 느낌.
“좋네요. 에이전시 계약 의사도 있대요?”
[당연하죠. 보스를 거의 은인처럼 생각하던데요? 뭐… 저처럼 보스 밑에서 몇 달만 있어 보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되겠지만요.]
“…요새 일이 편한가 보네요.”
[흐흐. 예. 제 위에 있는 유일한 상사 한 명이 조만간 훈련병이 되실 예정이라.]
내가 한동안 미국에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밝힌 이후 조금 더 막 나가기 시작하는 트렌트.
물론 나는 트렌트의 이런 점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면 티모시가 SW 에이전시의 첫 배우가 되는 건가.’
SW 에이전시는 당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 차린 연예 기획사.
미국의 에이전시는 한국의 연예 기획사와 그 형태가 꽤 다르긴 하던데, 결국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았다.
돈 되는 배우가 있으면 회사도 큰돈을 번다는 본질.
저번 티모시와의 만남 이후 영미권에도 배우 전문 에이전시를 하나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린 거다.
티모시를 포함해 앞으로 유명해지거나, 내 작품에 등장하게 될 배우들과 계약을 맺을 예정.
<마지막 마법사>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로버트도 영입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이미 소속 에이전시가 있어서 무리였다.
로버트가 그저 그런 배우도 아니고 이미 해리포터를 거쳐 트와일라잇에서 빵 터졌던 스타였던 만큼 위약금도 상당했고 말이다.
아무튼.
“좋아요. 그러면 <찬탈자> 출연 계약도 이참에 마무리짓죠. 초반부는 고정 개런티로, 3부 이후부터 재협상하는 방향으로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트렌트와 통화를 이어 가던 중.
차가 멈췄다.
서호에 도착하게 된 것.
트렌트와 몇 분 더 <찬탈자>의 제작 계획에 대해 논의하다가 통화를 끝낸 후, 차 밖으로 나섰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구경하게 된 서호.
“크으. 어떠십니까, 작가님. 기가 막히죠?”
남태유 지사장이 옆에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한 후 경호원들의 모습을 살폈다.
대부분 별 감흥이 없는 건지 시큰둥한 모습.
저들의 중국 혐오 때문은 아닐 거다.
사실, 나도 지금 비슷한 생각이었으니까.
‘상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별로였다.
유명 관광지여서 관광객들이 하도 많은 탓일까.
아니면 너무 기대를 해서일까.
무협지를 보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소동파가 서호를 보고 중국사의 유명한 미인인 서시에 비유했다기에 큰 기대를 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닌데.’
경관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다.
반짝이는 호숫빛도 퍽 아름다웠고, 저 멀리 보이는 탑도 꽤 느낌있긴 했다.
다만 그게 소동파가 떠들던 것만큼이 아닐 뿐.
‘역시 중국 놈들 허풍은 알아줘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몇 분 더 서호를 둘러본 후 구경을 끝냈다.
그리고 향하게 된 헝뎬영화성관광구.
사실, 서호가 엄청 보고 싶어서 왔다기보다는 가는 길에 있어서 들린 거였다.
원래의 최종 목적지는 SW 프로덕션의 중국 지사가 위치한 헝뎬영화성관광구였다.
“도착했습니다.”
SW 프로덕션의 중국 지사의 사무실은 헝뎬영화성관광구의 중심지에 있었다.
많은 영화사가 자리한 곳인 만큼 임대료가 상당하기는 했지만, 그런 높은 임대료에도 다른 영화사들이 기를 쓰고 들어오려는 곳이라고 한다.
중국 문화에 있어서 체면이라는 건 엄청나게 중시되는 것 중 하나인데.
영화사가 이곳 관광구의 중심에 위치하느냐, 변두리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제작사의 체면이 천지 차이란다.
배우들과 직접 촬영 계약을 할 때를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제작사들이 중심지로 오려고 하는 것.
뭐, 그런 인기 많은 곳에 SW 프로덕션 중국 지사가 사무실을 어떻게 얻은 거냐 하면은…….
“작가님! 오셨군요! 제가 마중을 나갔어야 했는데!”
“하하. 아닙니다. 제 부하 직원도 아니신데요.”
말해 뭐 하나.
오늘도 어김 없이 나를 무척이나 반기는 렌샤오.
이제는 텐센트의 자회사인 텐센트 픽처스의 대표가 된 그 덕분이었다.
SW 프로덕션의 중국 지사는 텐센트 픽처스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찰리우드라고 하던가…….’
차이나와 할리우드를 합친 합성어.
중국의 박스오피스를 뜻하는 단어였다.
미국에 이어서 매출액 순위 2위의 커다란 시장.
작년 상반기 중국 박스오피스 매출액이 무려 15억 달러가 넘었을 정도였다.
하반기에는 더욱 성장을 거듭해 20억 달러를 찍었었고.
‘그리고 그중 5억 달러가 검객무쌍이었지.’
라라랜드의 총매출을 5억 달러 내외로 예측하고 있는데.
월드 박스오피스가 아니라 중국 내에서의 박스오피스만 5억 달러를 달성한 거다.
그야말로 미친 매출액.
트렌트도 내 검객무쌍 영화의 수입을 듣고 그걸 써밋 엔터에서 만들어야 했다고 땅을 쳤을 정도였다.
뭐, 사실 아무리 할리우드의 기술이 월등하다고는 해도 중국인들을 사로잡는 데에는 중국 제작사가 최고인 터라.
써밋 엔터에서 만들었다면 그렇게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찰리우드의 성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올해에는 처음으로 글로벌 영화 시장 매출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될 거다.
‘완다 그룹이 찰리우드에 500억 위안을 투자했댔지.’
그 뒷배경에는 부동산 재벌인 완다그룹의 회장이 한화로 9조 원에 가까운 돈을 중국의 영화 산업에 투자했기 때문이었는데.
중국 정부에서도 문화 산업을 자기들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선정해 팍팍 푸시를 해 주고 있단다.
<검객무쌍>으로 큰 성공을 맛본 텐센트 픽처스도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고.
원래는 해외 영화를 들여오는 배급사 정도에 불과했던 텐센트 픽처스를, <검객무쌍>의 돈맛을 한번 본 이후 렌샤오를 대표직에 앉히기까지 하며 제대로 사업을 벌이고 있지 않나.
듣기로는 저번 상반기 이후 텐센트도 100억 위안 상당의 금액을 텐센트 픽처스에 투자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텐센트에…….
‘꼽사리 낀 거지.’
무협지에서도 종종 나오는 단어인데.
화수분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원은 하수분(河水盆)이라고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황하의 물, 하수를 담았던 물통이라던데.
그 물통이 얼마나 컸던지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물건이라는 뜻을 지니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하수분이라는 단어가 화수분으로 바뀌게 된 거고.
아무튼.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이곳이 바로 내 화수분.
내 돈 나오는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