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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92화 (92/267)

92화 화수분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티모시 할 샬라메라고 합니다.”

풀네임을 다시 듣기는 했지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얼굴은 더욱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진짜 어디서 본 게 확실한데…….’

지금 얼굴도 익숙했고.

여기서 조금 더 나이가 먹은 모습을 상상해 봐도 무언가 떠오를락 말락 했다.

나름 사람 얼굴을 꽤 잘 기억하는 편인데.

이 정도의 친숙함이면 분명 어디선가 티모시를 본 게 맞다는 뜻.

“인터스텔라에 나온다고?”

그런 내 궁금증은 금방 해결됐다.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 피터는 부인과 함께 침실로 들어갔다.

식사 도중 마신 와인에 조금 취하기도 했고.

나이가 많아지면 잠도 많아진다면서 말이다.

둘이 자러 간 지 한 시간 조금 넘은 거 같은데, 지금 시각이 오후 11시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포함해 어린 친구들만 남아서 더 놀게 됐고.

그 덕에 티모시와도 대화를 나눠 봤는데, 티모시가 자신이 인터스텔라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

“응. 주인공의 아들 역. 거기 아역으로 캐스팅됐어.”

“그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을 농부가 되는 역?”

“어? 맞아. 어떻게 안 거야?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으음. 뭐 이것저것 들은 게 있어서. 시나리오를 보기도 했고.”

“…하긴. 내가 지금 엄청난 사람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였지.”

시나리오를 봤다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인터스텔라의 제작사인 레전더리 픽처스와 독점 배급 계약을 맺었을 때, 시나리오를 살필 기회가 있었던 것.

하지만 영화 내에서 비중도 그리 크지 않은 주인공의 아들 역, 그것도 아역 때만 담당한 티모시를 내가 눈에 익다고 생각했던 건 이유가 있었다.

‘듄… 맞지?’

블레이드러너 2049로 유명한 SF 거장 드니 빌뇌브 감독.

그 감독의 차기작이 분명 듄 시리즈를 영화화한 <듄>이었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건 아니었다.

촬영은 모두 끝나고 개봉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만 들었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내가 회귀했기 때문.

그럼에도 내가 영화 <듄>을 알고 있는 건 내가 소설 듄 시리즈의 팬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듄 2000이라고 전략 게임을 플레이 했던 적이 있는데, 삼국지 조조전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을 책임져 줬던 게임이었다.

왜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면 컴퓨터 가게 아저씨가 게임 몇 개를 서비스랍시고 불법 다운로드 해서 주곤 했지 않나.

듄 2000도 그렇게 내 PC에 깔리게 됐었고, 엄마 몰래 밤새 가며 플레이 했던 기억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도 나는 스타를 하지 않고 듄 2000을 했었을 정도.

뭐, 내가 스타를 즐기지 않았던 건 집에 온게임넷을 비롯한 케이블 TV가 되지 않았다는 점과 반 친구와 했던 첫 스타 일대일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후 싫증이 났었기 때문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듄 2000을 접한 후 머리가 굵어지고 난 후 원작 소설이라는 듄 시리즈 또한 읽어 보게 됐었는데.

반지의 제왕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누군가의 평에 전혀 손색이 없다 느낄 정도로 재밌게 읽었었다.

SF 쪽보다는 일반적인 판타지 장르가 훨씬 더 내 취향임에도, 내가 읽은 소설 중 톱 3로 꼽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듄 시리즈의 1, 2부 주인공인 폴 아트레이데스.

영화 <듄>의 포스터에서 그 배역을 맡은 젊은 남배우의 얼굴이 크게 강조되던 걸 본 기억이 있었다.

‘지금 모습에서… 조금 더 남성적으로 성숙해진다 치고, 머리도 장발이 되면…….’

분명 그 포스터 속 주인공과 지금 티모시의 모습이 겹친다.

뭐, 사실 포스터에서 봤던 모습과 굳이 겹쳐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기는 했다.

영화 <듄>의 남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아들 역할로 출연했었다는 걸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내가 본 포스터 속 그 사람이 티모시가 맞다는 뜻이다.

‘<듄>에 캐스팅될 정도면…….’

티모시의 연기력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뜻일 터.

1억 달러를 넘게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의 원톱 주연을, 단순히 얼굴 잘생겼다고 뽑았을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내가 몰랐던 것일 뿐, 당시 티모시 샬라메라는 배우는 어느 정도 티켓 파워도 갖췄으며 연기력까지 출중한 배우였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속편도 나오게 될 <듄>의 주연으로 발탁되지 않았겠지.’

듄은 오리지널은 물론 프리퀄 시리즈까지 나온 장편소설.

영화화를 시도했을 때 한 편만 찍고 끝낼 생각은 없었을 거다.

그런 만큼 주연을 발탁할 때에는 꽤나 고심을 했었을 텐데.

티모시 샬라메가 그 역을 따냈다는 건, 곧 그가 매우 뛰어난 배우로 성장한다는 의미였다.

‘당장 나도 <찬탈자>의 주인공 역을 누구에게 맡길지 엄청 고민하고 있으니까.’

<찬탈자>는 <빅터 연대기>라는 가제를 붙였던 빅터 3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정식 제목.

저번까지만 해도 뭔가 막혔던 기분이 들었던 <찬탈자>의 집필은 최근 탄력을 받고 있었다.

그 덕에 소설로는 벌써 5권 분량, 내용상으로는 청소년기에 돌입한 빅터 3세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요즘 <찬탈자>를 쓰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이 소설이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이 된 빅터 3세가 궁중에서의 정치적 암투로 인해 척박한 북부로 쫓겨나고, 그 이후 겪게 되는 고난 등을 통해 한 명의 전사로서 성장하는 빅터 3세의 이야기를 쓰는 게 퍽 재밌다고 느끼는 탓이었다.

단순히 외전격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 하나의 장편소설이 되어 가고 있는 것.

윅슨 출판사 측에서도 아예 <찬탈자>를 새로운 시리즈 소설로 출간하는 게 어떻냐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드라마 또한 풀 시즌만 7~8 시즌 정도가 나올 만큼 길어지게 될 거다.

계획을 도중에 바꿔 영화화로 방향을 튼다고 해도 <마지막 마법사>처럼 최소 4, 5편 이상의 시리즈 영화가 될 거고.

꽤나 장기 프로젝트가 되는 만큼 작품 내 비중이 원톱급인 주인공역을 맡을 배우가 무척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티모시 샬라메라는 배우가 눈앞에 나타나 버린 거다.

“좋아.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다고?”

“응. 컬럼비아 대학교.”

“와우. 공부도 잘했구나, 너.”

“뭐 못하지는 않았지. 하하. 그런데 컬럼비아에 붙기는 했는데, 다녀 보고 학교를 옮길 수도 있어. 듣기로는 연기 활동을 병행하는 데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하더라고.”

대화를 나누다 내년에 컬럼비아에 간다기에 한동안은 학업에 집중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혹시나 싶었던 대학 문제도 해결될 것 같았다.

‘지금 연기력이 어떨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놀란 감독이 괜히 캐스팅한 건 아니겠지.’

으음.

생각지 못한 행운을 거머쥐게 된 기분이었다.

몇 년 후에는 몇 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 영화에 원톱 주인공이 될 정도로 티켓 파워가 높아지고.

거기에 역변 확률도 0%인 터라 청소년기의 빅터 3세부터 성인 이후까지 소화할 수 있고.

이 모든 조건을 갖췄을뿐더러…….

지금은 유명 상업 영화이기는 해도 작품 내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조연의 아역으로 출연하는 10대 배우에 불과한 티모시 샬라메.

즉, 지금이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점 매수의 순간인 거다.

“그래? 혹시 내년 스케줄 잡혀 있는 게 있어? 빌리가 아까 넌지시 말해 주길… 연기를 기깔나게 잘한다던데.”

“어… 어?!”

“내년에 출판 예정인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 작품 실사화를 미리부터 준비 중이거든. 내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 주인공 모습이랑 네가 꽤 겹쳐 보여서. 혹시 생각이 있나 해서.”

“저, 정말로……?”

“응. 아! 내가 꽂아 주겠다는 건 아니고 오디션 한번 봐 보겠냐고 묻는 거야. 내가 원작자고 제작사의 주인이기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화에는 크게 관여 안 하거든.”

내가 꺼낸 말에 눈이 흔들리기 시작한 티모시.

옆에서 와! 소리를 내며 놀라는 빌리와 케이티도 보였다.

뭐, 내가 엄청나게 성공한 소설가이면서 엄청나게 돈 많은 부자라는 것도 모두 아는 만큼.

방금 내가 한 말이 가지는 의미가 작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물론이지! 그런 건 하나도 기대 안 하고 있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톡, 토도독-

티모시와 대화를 나누는 한편.

스마트폰을 조작해 트렌트에게 연락을 넣었다.

[나 - 헤이, 트렌트. 해피 뉴 이어스 이브!]

우선 연말 맞이 축하 인사를 보내고.

[나 - 저번에 말했던 <찬탈자> 있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우웅-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되지 않아 돌아온 답장.

오늘 같은 공휴일에 일을 시키는 악덕 상사가 된 것 같았지만.

‘트렌트한테는 그래도 되지.’

트렌트가 받아 가는 연봉이 얼마인데.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제작사인 써밋 엔터의 대표직인 만큼, 연간 수백만 달러를 기본급+α로 지급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에도 이렇게 맘껏 부려 먹어도 된다는 소리.

애초에 그만한 연봉은 알아서 휴일을 반납하라고 주는 거다.

아무튼.

[트렌트 - 해피 뉴 이어스 이브입니다, 보스…….]

[트렌트 - 저번에 얘기하신 대로면 소설 출간은 내년 중반쯤이라 하셨죠?]

[트렌트 - 소설이 어느 정도 흥행 궤도에 올랐을 내년 연말에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니…….]

.

.

.

[트렌트 - 현재로서는 이렇게 준비 중입니다.]

트렌트에게서 돌아온 장문의 문자들.

꽉꽉 눌러담은 걸 보면 연말에도 일 시키는 거냐고 무언의 항의를 보내는 것도 같긴 한데.

응, 어림도 없지.

이게 바로 코리안 기업 대표다, 이거야.

[나 - 아! 그리고 드니 빌뇌브라는 감독이 있는데, 꽤 재능 있어 보이더라고요. 한번 컨택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말은 괜찮을 것 같다고 썼지만 트렌트 입장에서는 당장에 영입하라는 것처럼 들릴 거다.

빌뇌브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 2049 이외에도 콘택트라는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에서 여러 상을 수상 및 노미네이트 되는 감독.

써밋 엔터가 단순히 흥행만 성공시키는 제작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메이저 스튜디오가 되기 위해서는 저런 수상 실적들도 중요했다.

[나 - 그리고 듄 시리즈 알죠? 알아보니 파라마운트가 최근에 영화화를 추진했다가 결국 포기했다던데… 판권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봐 주시고요.]

게다가 듄 시리즈는 한 명의 팬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작품.

되도록이면 판권을 가져온 후, 그걸 언젠가는 빌뇌브 감독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여하튼.

[트렌트 - 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트렌트 - 그리고 다시 한번 해피 뉴 이어스 이브입니다, 보스.]

[트렌트 - 조금 뒤면 새해기도 하네요. :)]

또 한 번 오늘이 올해 마지막 날, 그것도 오후 11시라는 걸 강조하는 트렌트였다.

* * *

일주일 후.

“다음에 또 봅세.”

“응. 그때는 아마… 내가 군인이겠지만.”

“흐흐. 벌써부터 그때의 자네가 기대되는군.”

연말부터 연초까지 이어졌던 피터의 휴가가 끝나고.

돌아가는 그와 그의 가족들을 배웅했다.

뉴질랜드로 바로 출발하는 가족들과 달리, 피터는 <마지막 마법사>의 촬영을 위해 독일로 향하게 될 터.

‘다음에 보는 건 피터가 내한할 때가 되려나.’

촬영이 모두 마무리되고, 개봉할 때쯤이면… 내년 연말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의 나는 아마 일병 말호봉이려나.

“…윽.”

생각하다 보니 기분이 나빠져 애써 군대 생각을 떨쳐 냈다.

여하튼, 입대까지 남은 90일가량.

허투루 보낼 생각은 없었다.

입대 한 달 전에는 놀기만 할 거지만, 그전까지는 바쁘게 살아야겠지.

대출한 30억 달러 중 벌써 반 이상을 다 써 버렸다.

우선 미국에서의 일은 대충 다 마무리됐으니, 이제 남은 반을 쓰기 위해 떠나야 할 차례.

“May I see your passport?”

행선지는 중국.

오랜만에 또 차이나 머니를 휩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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