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89화 (89/267)

89화 친절한 아저씨를 만났다

“헤이. 이번에 나온 스타트렉 시리즈 봤어?”

“Fuck! 부탁이니 그딴 영화에 스타트렉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마. 그건 그냥 스타트렉이라 이름 붙인 또다른 스타워즈에 불과하다고.”

“맞아. 스타트렉스러움이 전혀 없는 쓰레기였지.”

일론 머스크의 파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소박한 페이팔 마피아들이었다.

파티 내내 대화의 주된 주제가 최근에 개봉했던 스타트렉 다크니스였을 정도.

‘미국에서는 스타트렉이 이공계 너드들의 최고 영화라더니…….’

이들의 대화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페이팔은 물론 여러 IT 기업을 이끄는 이들이었던 만큼, 이공계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던 터라 파티 내내 알아듣기 힘든 과학 용어들이 오가더라.

어쨌든.

대화 주제가 영화였던 덕분에 내가 끼어들기도 쉬웠다.

“오! 써밋 엔터의 주인이라고요? 위플래쉬였나, 그 드럼 영화? 그건 저도 재밌게 봤죠.”

“Damn! 인수한 지 반년 만에 벌어들인 수익이 10억 달러가 넘는다고? 이거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셨구만!”

“아하. 본업은 소설가셨군요. 어? <마지막 마법사>요? 분명 읽은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재밌는 점은 일론 머스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 대부분이 <마지막 마법사>의 팬은 아니었다는 것.

아예 읽어 보지 않은 건 아니고, 읽어 보기는 했는데 자신들의 취향이 아니었다더라.

내가 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트렉을 보기는 했지만 딱히 즐기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와 이공계 너드들의 감성은 꽤 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하긴… 사실 내가 쓴 소설 중 제일 흥행에 실패한 게 SF 장르였지.’

객관적인 기준에서 보면 충분히 성공작이었지만, 내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초라한 흥행 성적.

게다가 평단에서도 대중성은 썩 괜찮아도 코어 SF 팬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 했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뭐,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어떤 대단한 천재도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내가 천재라는 자화자찬성 멘트는 아니었고.

그냥 내가 잘 쓸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잡스가 일으킨 스마트폰 혁명의 대단한 점은 디자이너들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죠. 사실 지금의 실리콘밸리에서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은 이미 포화 상태나 다름없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에 걸맞은 기술? 그건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다 갖추고 있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른 특별한 점이 필요하죠.”

“그 점이 디자인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이 기업에 투자하려는 거고요.”

마냥 영화 얘기만 나눈 것도 아니었다.

개개인이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벤처 사업가들인 페이팔 마피아.

그들의 식견을 듣는 건 내게도 꽤 큰 도움이 됐다.

‘나는 미래 정보라는 치트키를 쓰는 거지만… 이들은 모두 다 개인 능력으로 이 자리에 온 거니까.’

가진 재산으로만 따지면 내가 훨씬 위일지는 몰라도, 미래를 보는 눈에서는 비교하기 힘들었다.

가끔은 내가 기억하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언젠가는 나도 미래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올 터.

그때를 위해서라도 저들과 같은 눈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그들도 예측하지 못한 게 있기는 했다.

“흠. 테슬라요? 일론 저 친구가 하는 거니 성공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문제죠. 테슬라가 여러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은 제조업이잖아요? 큰 수익률을 거두려면 한참은 있어야 할 겁니다.”

“우진이 원한다면 제가 가진 지분을 넘길 생각은 있긴 한데… 왜 그러는 겁니까? 실리콘밸리에는 테슬라보다 몇 배는 더 유망한 회사들로 가득하다고요.”

내가 테슬라의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몇몇 이들이 따로 해 준 말들.

페이팔 마피아 대부분이 테슬라의 성공 확률을 그리 높게 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언젠가 성공하겠지만 그 단계까지 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보고 있는 거였다.

‘하긴. 지금 시기는 테슬라가 거품 소리를 듣고 있을 때니까.’

지난 1년간 4배가 넘게 오른 테슬라의 주가.

투자 시장의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실리콘밸리에서도 주가에 거품이 꼈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사실 나 같아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테슬라의 지금 주가는 미래 가치가 이미 선반영된 결과.

여기서 테슬라가 수십 배 더 오를 거라고 예상하는 건 미래에서 온 게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뭐, 아무튼.

파티를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꽤 여럿한테서 지분 인수에 대해 구두로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테슬라의 지분율은 대략 4.8% 정도.

“휘유- 대단하군. 이렇게 되면 자네가 테슬라의 3대 주주가 되는 걸세.”

“첫 번째야 당연 일론 너일 거고. 두 번째가 있다고?”

“그렇지. 뱅가드 그룹이 테슬라의 초기부터 큰 투자를 했었거든. 아마 6% 정도를 들고 있었을 걸세. 물론 개인으로는 자네가 두 번째인 거고.”

뱅가드 그룹.

미국의 자산 운용사로 업계에서 규모로는 블랙록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큰 회사였다.

그 운용 규모가 거의 5조 달러에 달할 정도.

‘5조 달러…….’

한화로는 거의 6,000조 원.

개인과 자산 운용사를 비교하는 건 참 의미없는 일이겠지만, 새삼 내가 다루는 자금이 미국 경제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가 확보하게 된 테슬라 지분이 5조 달러를 다루는 뱅가드 그룹의 지분율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은 거였으니.

꽤나 고무적인 성과라 볼 수 있었다.

* * *

[SW 프로덕션, 사람액터즈 인수? 선우진, 연예계도 점령하나.]

내가 미국에 있는 사이.

한국에서는 연예 기획사 인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관여한 일은 아니었고, 최진섭 대표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일.

예전에 기획사를 인수해 보는 게 어떻겠냐 운을 띄웠던 적은 있는데, 최 대표가 괜찮은 의견이라 여겨서 자체적으로 인수를 추진한 거였다.

물론 노리는 건 모두 배우들이 주로 소속된 전문 연예 기획사들.

‘연예 기획사 사업에서 진짜 돈 되는 건 아이돌 만드는 거라지만… 딱히 돈 때문에 추진하는 사업은 아니니까.’

돈은 이미 넘쳐 나기도 할뿐더러.

자체적으로 기획사를 가지려는 진짜 목적은 작품 제작에 있어서 원활한 배우 수급에 있었다.

제작 인력도, 자금도 충분하고, 작가진들도 여럿 영입한 덕분에 찍을 작품들도 많은데, 쓸 만한 배우들이 없어 SW 프로덕션 제작 일정에 약간의 제동이 걸렸었던 것.

‘거기에 내 기준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더라도 남들만 배부르게 해 주는 건 배 아프기도 하고.’

물론 언론에서 나보고 한류스타 제조기라 떠드는 것처럼, 스웜의 자체 제작 콘텐츠에 출연만 하면 배우들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 때문도 있었다.

어쨌거나.

[최진섭 대표 – 작가님, 최종적으로는 사람액터즈로 결정내렸습니다.]

며칠 후 최 대표에게서 온 보고 문자.

인수 대상으로 올라왔던 기획사 중 가장 인재 풀이 괜찮았던 사람액터즈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한시연 - 와! 이제 진짜 한 식구가 됐네요, 저희!]

[한시연 - (축포 이모티콘)]

[양진철 PD - 그러게 ㅎㅎ]

[양진철 PD -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시연 씨.]

연기천재가 되었다의 단톡방.

시차 때문에 조금 늦게 확인했더니, 이미 사람액터즈 인수 소식으로 단톡방이 시끌시끌해져 있었다.

한시연이 기존 사람액터즈 소속 배우였기 때문.

그리고 한시연 외에도 연기천재 단톡방에서 SW 프로덕션과 한 식구가 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강주원 – 아, 극단 나온 지 10년밖에 안 됐는데 한시연이랑 또 한솥밥 먹어야 하네 ㅡㅡ]

[한시연 - 그러게ㅎㅎ]

[한시연 - 좀 꺼져 주면 안 될까, 주원 오빠? ^^]

[강주원 - ㅗ]

바로 강주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연예 기획사 ‘강한남자’, SW 프로덕션에 인수. 엔터사 쓸어담기 시작하는 SW 프로덕션.]

‘네이밍 센스가 참…….’

본인이 강씨라서 그런 건지.

연기천재가 되었다 촬영 이후 기존 소속사를 나와 강한남자라는 사명으로 1인 기획사를 차렸던 강주원.

그의 회사도 이번 기회에 SW 프로덕션에서 인수하게 됐다.

참고로 이건 최 대표가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추진한 일.

사람액터즈 인수 소식을 듣고 이왕이면 강주원도 영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뿐더러, 강한남자가 생각보다 알짜배기 기획사였기 때문도 있었다.

‘대학로 출신 배우들이 많이 속해 있으니까.’

연기천재가 되었다의 성공으로 톱급 한류스타의 반열에 오르고.

프런트로 연타석을 치면서 광고계의 블루칩이 된 강주원이었다.

실제로 한동안 TV만 틀었다 하면 강주원 얼굴만 나오던 탓에 술자리에서 내가 불평한 적도 있었다.

아니, 돈도 이미 많은 양반이 뭐 하러 그렇게 광고를 많이 찍냐.

오늘 여기 술 마시러 나오기 전에도 형 얼굴을 5번이나 봤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했다가 돈은 자기보다 수백 배 많으면서 더 벌려고 외국 싸돌아다니는 놈만 하겠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튼.

강주원이 그렇게 열심히 찍은 광고료는 1인 기획사인 만큼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을 거다.

그 돈 다 어디다 쓰냐고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말을 안 해 주다가 술에 취하고나서야 겨우 털어놓은 게 있었다.

‘대학로 극단을 인수한 다음에 월급 명목으로 배우들에게 돈을 지원해 주고 있었을 줄이야.’

본인이 극단 출신이어서 그런 걸까.

말은 연극 출연료로 주는 거라지만, 돈 안 되기로 유명한 대학로 연극이 인당 기백만 원 이상 줄 만큼 잘될 리가 없다.

다 강주원이 자신의 사비에서 떼서 월급을 줬던 것.

뭐, 아무튼 취한 강주원에게서 그 얘기를 듣고 소속 배우들에 대해 알아봤는데.

흙 속의 진주들이 꽤 있더라.

아직은 시기가 조금 이르지만, 원래라면 몇 년 내로 브라운관에 등장하게 되는 대학로 출신 배우들.

극단에서 갈고닦은 연기력으로 작품 하나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조연 배우들이 여럿 있었다.

‘그걸 보고 또 수집병이 도져 버렸지.’

크리스탈 팰리스를 인수하고 나서 유망한 선수들을 사들이는 것도 그렇고.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이것저것 투자하는 것도 그렇고.

머지않은 미래에 떡상하게 된다는 걸 나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보면 그걸 내가 갖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삼국지로 치자면 조조와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강주원 - 항상 고맙다, 우진아.]

물론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강주원은 내가 모두 선의에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한시연 - 이런 좋은 날 작가님은 어디서 뭐 하시길래 답이 없으시지?]

[강주원 - 우진이? 그저께 통화할 때 들은 거로는 일 대충 다 끝내고 놀기만 한다던데.]

[한시연 - 어? 뭐야? 둘이 언제 말 놓음?]

[한시연 - 나두 나두 우진이라 부를랭.]

[강주원 - ㅡㅡ 어딜.]

[강주원 - 이제 우진이가 너희 회사 오너인데 더 깍듯해져야지.]

[한시연 – 아니,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

[강주원 - ㅋㅋㅋ그럼 나처럼 회사 사들이기 전에 말 놓던가 했어야지.]

[한시연 – 머야, 그런 게 어딨써.]

[양진철 PD – ㅎㅎ…….]

[양진철 PD - 저는 지금 호칭이 제일 좋습니다, 작가님 ^^]

[양진철 PD - (충성)!]

쌓여 있던 단톡방을 쭉 읽어 내렸다.

[나 - 이제 봤네요.]

[나 - 저는 좀 전까지 자다가.]

[나 - 아는 분한테 홈 파티 초대받아서 거기 왔슴.]

[나 - (사진)]

아까 전 파티 호스트와 찍은 사진을 첨부해 보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메세지 옆 3이라 쓰여 있던 숫자가 모두 사라졌고.

[한시연 – 오, 집 엄청 좋아 보인당.]

[강주원 - ??????????]

[양진철 PD – 와…….]

[양진철 PD - 작가님… 대박…….]

[강주원 - 미쳤네… 너 진짜 월클 맞구나…….]

셋에게서 돌아온 반응.

한시연을 제외하고 둘은 내가 사진을 같이 찍은 파티 호스트가 누구인지 알아봤나 보다.

[한시연 – 머야.]

[한시연 - 또 나만 왕따야?]

[강주원 – 아오.]

[강주원 - 넌 배우라는 애가 저분을 못 알아 봄?]

[한시연 - ㅎㅎ 할리우드 배우신감…….]

[한시연 - 해외 영화는 로맨스 빼고는 잘 안 본다고오…….]

[양진철 PD - 작가님… 저는 사인 좀… 제발 부탁드립니다.]

[강주원 - 어? 나도! 나도!]

확실히 한 명은 배우고, 다른 한 명은 PD여서 그런가.

“음?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나요, 우진?”

“아. 죄송합니다. 스티븐과 찍은 사진을 방금 친구들한테 자랑했거든요. 하하.”

스티븐 스필버그.

둘 모두 이 친절한 아저씨의 팬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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